<연재> 태국에서 살아보기, 사랑하기-5회

 

축제, 생각해보지 못한 행복의 크기

카니발, 무엇이 이 단어보다 더 뜨겁고 열정적일 수 있을까.

축제라는 것은 삭막한 땅에서 생겨날만한 것이 아니다. 오래 전부터 편안할 수 있었던 땅에서야 꽃처럼 피어나는 것이 축제다. 그래서 축제는 그 어느 것보다도 뜨겁고 열정적이어야 한다. 내가 살다 온 땅에서는 수많은 축제를 만들어내지만 어느 하나도 제대로 된 축제의 열기를 느낄 수 없다. 인위적이며 부자연스러운 분위기에 심지어 누군가의 지갑이 열리기만을 바라고 있는 수많은 시선들. 그런 것들은 축제에 어울리지 않는다. 태양이 따뜻하고, 비가 내리며 수목들과 사람들이 뿌리를 깊게 내리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곳. 지금 내가 밟고 서있는 곳이란 그런 땅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피부로 와 닿지 않는다. 태양은 한결같이 따갑고 구름은 언제나처럼 비를 쏟는데 그 어떤 계절도 이곳에서 흘러가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카니발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그 온도를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의 축제는 항상 뜨겁고 열정적이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그 축제를 위하여 쏟는 시간들을 아쉬워하지 않고 또는 그 자체로 즐거워한다. 축제라는 것은 당연히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돈벌이 같은 것을 위해 억지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주어진 모든 것에 축복을 내리기 위해, 사람들은 그들의 몸이 뜨겁도록 열기를 뿜어내는 것이다.

 

 

아이들이 축제를 준비한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도 여럿 수업에 자리를 비우고 축제를 준비한다고 바쁘다. 학교에는 브라스 밴드, 춤 동아리 등이 축제를 가장 앞에서 이끄는데, 그러다보니 한 달이 넘는 시간이 오직 축제를 위해 할애된다. 하루 종일 안무를 짜서 춤 연습을 하고 노래에 맞춰 퍼레이드를 연습한다. 점심을 먹고 나서 또 연습을 한다고, 보러오라고, 내 손을 잡아끄는 아이들의 몸은 뜨겁다. 그만큼 축제에 대한 애정이 있고 그들의 축제를 사랑한다.

같이 근무하는 선생님 중 카메룬에서 온 영어 선생, 클로드에게 아이들이 여러모로 참여하는 축제가 많다고 슬쩍 말을 던졌다. 그는 내 말을 받아들고 잠깐 곰곰이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이 학교는 그다지 공부에 아이들을 목매달게 하지 않아. 내가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늘 여러 축제와 활동들로 아이들은 바쁘지. 공부하는 것보다도 말이야.”

 

 

내가 왜 그럴까, 하고 그에게 다시 묻자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공부를 할 수도 없을 뿐더러 한다고 해서 그들이 좋은 대학을 갈 것이라는 보장도 없거든. 대부분 농사를 짓거나 기술을 배우니깐. 그러니까 아이들에겐 공부보다도 지금의 추억이 더 소중한 거야. 평생 동안 돌아봐도 오늘의 행복은 남거든.”

내가 생각한 행복의 크기는 아이들의 축제와 전혀 맞지 않았다. 이곳의 태양이 뜨거운 이유가 있다. 아이들의 살갗이 달아오른 이유가 있다. 그들은 축제라는 이름 아래에서 그들이 평생을 함께 할 행복을 빚고 있다. 초등학교만 졸업하고도 바로 농사를 짓거나 기술을 배우는 청소년의 수가 여전히 많은 이 땅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더 큰 행복에 감사하며 오늘의 축제를 준비했던 것이다.

물론 그 아이들이 어떤 사회의 부조리에 직면하고 스스로의 꿈을 접어두어야 했다면 그것은 분명 아이들이 살아가는 사회의 문제다. 하지만 사람의 문제는 아니다. 아이들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그들의 삶을 살았고 그것에 감사했으며 그들의 축제를 충분히 즐겼다. 그것으로 됐다. 나는 그것만으로 아이들이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다.

내가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행복의 크기를 아이들은 카니발에서 보여주고 있었다. 그 어느 것도 더 뜨겁고 열정적일 수 없다는 것처럼.
 

 

시장은 낯설지 않은 공간

비 오는 날 아침 일찍, 바람을 조금 쐬려고 현관을 나오자 집 바로 앞 시장이 분주하다. 비가 무수히 쏟아지고 있는 날 아침에도 시장은 열린다. 그런 모습들이 전혀 낯설지 않다. 이 땅의 시장도 내 과거가 담겨 있는 머나먼 땅의 시장도, 아니 내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 어느 곳의 시장도 낯설 수 없다. 이곳에도 그 어느 곳에도 사람과 사람이 있다. 비가 아무리 많이 내려도 사람들은 개의치 않게 함바 안쪽에 자리를 잡고선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한다.

나는 이 땅의 시장이 갖고 있는 하나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것은 아침 일찍 눈이 떠져서 그 이른 시각부터 시장을 골똘히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인데, 아무래도 상인들은 이방인의 낯선 시선에 그들의 공간을 위태롭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그 특징이란 것은 돈이라는 낯선 냄새가 지독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곳에는 돈 냄새가 시장을 위태롭게 하지도, 그렇다고 시장의 변화를 요구하는 그 누구도 없다. 이러한 점이 그 어디보다도 시장이야말로 낯설지 않은 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했을 것이다.

 

 

시장 지붕에서 빗물이 흘러내려 처마 끝으로 떨어진다. 처마 구석에는 작은 그릇이 있었는데 상인 하나가 다가가더니 향을 한 움큼 손에 잡아 불을 피운다. 그릇에 꽂아 세우고 나서 합장을 하고 기도한다. 나는 종교의 힘을 믿지는 않지만 가끔 그 허황된 거짓 같은 곳에서 피어나는 일종의 성스러움, 또는 그 분위기가 가지는 미지함에 대해 고민하곤 한다. 돈 냄새가 검게 드리우지 않은, 정말 신다운 신에게서 볼 수 있는 광채 같은 것 말이다. 상인에게서는 작은 빛이 새어나왔다. 그는 그의 신에게 기도하고 있었고 그 신을 믿고 있었다. 그것에는 돈을 얼마 내고 말고 하는 것은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돈 냄새에 익숙해져 있던 내 코에는 사람 냄새, 그리고 그들이 믿는 신의 냄새가 낯선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결코 낯설어서는 안 될 것들이다. 낯설지 않아야 할 것들이 낯설다. 우리는 차분하게 피어오르는 사람 냄새를 잊고 엉뚱한 신을 섬겼을 지도 모른다. 시장에는 시장이 섬기는, 낯설지 않은 신이 계셨다. 그곳은 낯설지 않은 공간이었다.

비가 무수히 쏟아지는 아침, 신은 그곳에 계셨다. 나는 그런 신을 섬기고 싶었다. 향이 짙게 피어 내 코끝에 닿자 장사치의 공간은 사람이 사는 곳이 되었다.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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