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연의 아주머니>

두 돌이 갓 지난 첫째와 태어난 지 4개월도 안 된 둘째가 있는데 시월드가 들이닥쳐 1박 2일 동안 집을 점거한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차라리 이혼을 했으면 했지, 나라면 절대불가!

하지만 그 어려운 걸 해냈다, 우리 올케가. 난 개념 없는 진상 시누이가 되어 남동생 집에서 1박2일 간 탱자탱자 먹고 놀기. 올케~ 미안해~.

지난여름 캐나다에서의 파견 생활을 마치고 남동생네가 귀국했다. 처음에 갈 때만 해도 둘이었는데 넷이 되어 돌아왔다. 정부청사 이전 계획에 따라 남동생네는 본사가 있는 대구에 둥지를 틀게 되었다.

 

 

남동생의 귀국에 가장 들뜬 건 엄마였다. 멀기는 해도 기차타면 갈 수 있는 같은 하늘 아래에서 금쪽같은 아들 내외와 손주들을 본다는 게 마냥 좋았던 거다. 엄마는 올케와 상의도 없이 집들이 계획을 세웠다.

이 때는 이러이러하고 저 때는 이러이러하니 이 날 집들이를 하는 건 어떠니? 집들이를 기정사실화하고 날짜를 묻는 시어머니 앞에서 며느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꼬? 그렇게 날짜가 정해졌고 멀리 대구까지 간 김에 1박2일 자고 오는 걸로 결정이 나버렸다.

당일, 세종시에 사는 여동생은 따로 오고 우리 가족은 서울역에서 아빠와 엄마를 만났다. “귀한 휴가를 왜 처가 식구들과 보내야 하는 거냐!”며 남편은 입이 삐죽 나왔다. 어쩌겠니. 배우자의 가족행사에 참여하는 것도 결혼한 사람들이 해야 하는 의무인 걸.

KTX를 타고 동대구역에 도착. 남동생 집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없단다. 그럼 두 대에 나눠 택시라도 탔으면 좋겠는데 엄마는 단호하다. 지하철 타고 버스로 갈아타면 바로 도착한단다. 어른 넷과 아이 둘이 짐을 바리바리 들고 지하철로. 아빠와 남편과 나는 벌써부터 지치기 시작.

그래도 지하철을 탄 건 잘한 결정이었다. 이곳이 서울이 아니라 대구라는 실감이 팍팍 났던 것이다. 승차권을 뽑으니 동그란 동전 같은 게 땡그랑 하고 나온다. “우와~ 이게 승차권이야? 신기하다.” 사진을 찍고 난리법석. 특이한 승차권을 보자 여행 온 기분이 물씬 난다. 버스에 올라 옆 사람들의 사투리를 듣고 있자니 더더욱 마음이 들뜬다.

아침부터 준비해 택시 타고, 기차 타고,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남동생 집에 도착하니 몸이 천근만근이다. 부엌에서 음식 준비에 바쁜 남동생과 올케를 도와야 하지만 “형님은 쉬세요~ 애들이나 봐주세요~”라고 말하니 그 말에 따라야지.

부모가 모두 부엌에 있는 덕분에 100일이 갓 지난 조카는 거실 매트 위에 혼자 덩그러니 방치돼 있다. 3살 된 조카는 “쭈인 누나~ 쭈인 누나~”하며 우리 딸만 졸졸 따라다니고, 우리 아들은 괴성을 지르며 집안 여기저기를 뛰어다니고, 100일 지난 조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뽀뽀 세례를 거치고 나더니 젖을 다 토해내고 울어제낀다.

그 때 여동생네도 도착. 3살인 여동생의 딸은 낯가림을 시작. 여동생한테 달라붙어서 떨어지질 않는다. 여기저기서 아이들의 울음과 고성, 웃음소리와 비명 등이 난무하고 그 와중에 친정아빠의 설교와 친정엄마의 잔소리도 중간 중간 끼어드니 남자들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져 간다. 남동생과 남편, 제부는 한 시간에 한 번씩 담배 핀다며 나가선 한참 후에나 들어오기 일쑤.

정신없는 와중에 늦은 점심상이 차려졌다. 날 위해 특별히 종류별 소주를 모두 준비했다는 올케. 자랑스럽게 냉장고 문을 열어 보여주며 내 칭찬을 기다린다. 내가 SNS에 동네 아줌마들과 술자리 갖는 사진을 종종 올리는 걸 보고선 신경을 쓴 거다.

하지만 난 술을 안 먹는데…미안해서 어째. 못 마셔서가 아니라 주량도 세고 얼마든지 잘 마실 수도 있는데 술이 맛이 없어서 안 먹는다. 맛이 없다보니 먹는 게 고역이다. 그래도 올케의 성의를 봐서 탄산이 들어간 과일 소주 하나를 집어 들었다. 국 대신이라 생각하고 밥 먹는 중간중간 억지로 삼켰더니 살짝 취기가 돌며 온 몸에 열이 화르륵 오른다.

모두가 정신없는 와중에 슬쩍 오른 취기에 혼자서 센치멘탈해진 나. 대구의 공기를 마셔보겠다며 혼자 산책을 나섰다. 막대한 양의 설거지를 도와야 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형님은 쉬세요”라는 올케의 말을 충실히 따랐다.

밖을 나와서 처음으로 느낀 건 고요함이었다. 혁신도시라고 새로 지어졌다는데 아파트만 가득한 그 곳엔 차가 없었다. 넓은 8차선 도로가 차 한 대 없이 텅텅 빈 모습을 보는 건 이채로웠다.

왠지 공기도 더 좋은 것 같아서 난 뒷짐을 지고 이 곳 저 곳을 걸어 다니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30~40분 혼자서 방황하다 집으로. 상황은 여전했다. 우리 아들은 갓난쟁이가 자고 있는 안방 문을 자꾸만 여는 장난을 치며 올케를 놀라게 했고, 세 살 동갑내기인 조카 둘은 장난감을 두고 싸워댔다. 8살인 우리 딸이 군기반장이 되어 3살짜리들을 진두지휘했는데 동생들과 몸으로 놀아주는 게 힘들었는지 현기증이 난다고 하소연한다.

심한 감기에 걸린 여동생은 계속해서 기침을 콜록콜록. 원래는 다 같이 자고 가기로 했었는데 아직 어린 조카들에게 감기를 옮기면 올케가 싫어할 거라며 밤에 먼저 가겠다고 한다.

한 것도 없이 아이들에게 시달리고 나니 또 저녁 먹을 시간이다. 원래는 대구의 자랑이라는 막창을 먹으러 가기로 했었는데 한 곳에 모인 아이들이 얼마나 흥분상태가 되는지 체험하고 나니 아무도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중국집에서 이것저것을 시켜서 한 끼 해결. 기침이 심해진 여동생이 퀭한 얼굴로 집에 가겠다고 한다. 아이들 때문에 정신없어서 여동생과는 몇 마디 나눠보지도 못했다. 제부와 사이가 안 좋아서 힘들어하는 중인 걸 아는데 안타까운 마음만 가득.

여동생네가 가고 나자 이번엔 조카가 비상이다. “엄마~ 리암이 얼굴에 불 났나봐.” 딸의 외침에 조카를 만져보니 온 몸이 불덩이다. 체온을 재니 39.5도. 몇 시간 새 여동생에게 감기가 옮은 것인지…. 이윽고 열이 40도를 넘어간다. 나라면 당장 응급실에 데려갔을 텐데 남동생과 올케는 침착하다. 해열제를 꺼내서 먹이더니 더 지켜보자고 한다.

캐나다는 한국과 달라서 이렇게 열이 올라도 해열제 먹이는 것 외에는 다른 처방을 안 내려준다고 한다. 그 곳에서 태어나 그런 식으로 자라온 조카는 해열제 하나만 먹고 그날 밤을 잘 버텼다.

한국에서라면 응급실에 가서 링거를 맞고 엉덩이엔 열 내리는 좌약을 넣을 일. 겨드랑이엔 얼음팩을 낀 채 몇 시간이고 누워있다 열이 37도 대로 내려가야 집에 보내준다. 남동생네의 대처법을 보니 한국 부모들이 너무 병원에 의지하며 아이들을 키웠구나 하는 게 새삼 느껴졌다.

남편은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남동생과 둘이 나가 술 한 잔 하고 올 생각에 들떠 있었는데 갑자기 조카가 열이 나는 바람에 나갈 수 없게 되자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 내가 남편보다 술을 잘 마시는데 남동생은 나보다 훨씬 더 술을 잘 마신다. 그런 남동생과 남편이 붙으면 남편만 꽐라가 돼서 올 게 뻔한 일.

그렇게 왁자지껄한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 아침이 됐다. 늦은 아침을 챙겨먹고, 우리 가족만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다. 올케도 쉴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잠시 자리를 피해준 것이었다. 그동안 엄마는 집안 곳곳을 청소했고, 아빠는 대구 시내를 보고 오겠다며 홀로 나섰다.

우리는 집 앞 놀이터에 갔다가 근처 카페에 가서 커피와 케이크로 휴식을 취했다. 남편은 “대구에 와서 제일 편한 곳이 이 카페”라며 넓고 멋진 남동생 집보다 좁고 어질러진 우리 집으로 어서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른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 목욕을 시키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올케는 몸도 마음도 지쳤는지 하루 새 얼굴이 홀쭉해진 것 같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1박2일 동안 음식 준비하랴, 막대한 양의 설거지 하랴, 갓난아기 젖 먹이랴, 3살 아이 열 내리랴, 시부모님 시중들랴, 시누이 가족 챙기랴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던 것이다.

“고생 많았어. 많이 힘들었지? 그래도 이번 아니면 언제 대구를 와 보겠나 싶어서 왔어. 수고 했어”라고 말하는 내게 올케는 “나중에~ 나중에~ 애들 좀 크고 나서 또 오세요”라고 한다. 또 오라는 건 좋은 말이지만, 나중에 애들 크고 나서 오라는 걸 보니 이번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짐작이 간다.

1분이라도 빨리 나가주는 게 도와주는 일. 기차시간을 넉넉히 두고 집을 나섰다. 다시 또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기차 타고, 택시를 타서 집으로 돌아왔다.

남동생 집의 반이나 될까한 작은 우리 집. 치우지도 못하고 바쁘게 나가 잔뜩 어질러진 우리 집. 그래도 우리 집에 오자 마음이 놓인다. 초라하고 비루해도 세상에서 제일 편한 곳이 우리 집인 것이다.

친정엄마는 자식과 손주들이 모두 모인 이번 대구행이 좋았던지 단체 카톡방에 메시지를 남겼다. “몇 년 만이니. 다 모이니까 너무 좋더라. 엄마 칠순 때도 다 같이 제주도로 여행가자. 엄마가 전부 다 쏠게. 오케이?” 

<주부, '아주머니'는 아직은 주인공이 아니지만 머지않아 니가 세상의 주인공이 될 얘기를 가리킵니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