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선운사 보은염 축제와 새마을운동

사람이 뱀의 등을 탈 수 있을까? 탄다면 어떤 기분일까. 아니 그보다도 사람이 뱀의 등뼈 위에 집을 짓고 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함일까. 뱀이라는 동물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혜를 상징하는데 그렇다면 지혜로운 사람들이 모여서 집을 짓고 산다는 뜻인가?

사막처럼 펼쳐진 갯벌이 한눈에 잡히는 그 마을에 갈 때면 으레 그런 상념에 빠져들곤 했다. 마을 이름이 사등이었다. 모래사(沙)자를 쓰는 줄 알았는데 뱀사(蛇)자 사등이었다. 멀리서 보면 뱀의 등뼈를 닮았다 해서 붙인 이름이라는데 내 눈에는 아무리 봐도 뱀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런저런 쓸데없는 의문이 자꾸 생기는 것인지도 몰랐다. 장어도 있고 미꾸라지도 있고, 심지어는 용도 있는데 왜 하필 뱀을 마을 이름으로 삼았을까.

 

▲ 길닦음

 

전하는 설을 따르자면 사등 마을 사람들은 도적의 후예들이었다. 이들은 원래 이곳 갯마을 사람들이 아니었다. 나중에 선운사가 들어서는 도솔산 깊은 골에 숨어 사는 비범한 사람들이었다. 평범하게 살아서는 굶어죽기 십상인 세상이라서, 그나마 사람답게 살아 보고자 정든 고향을 떠난 이들은 사방 도처에 염탐꾼을 풀어놓고 어디에 누가 무슨 짓으로 얼마큼의 재산을 쌓아놓게 되었는지, 어느 날 어느 시에 어떤 부자가 어느 길을 통해서 어디의 어떤 권력자를 만나러 가는지 따위 정보를 수집해 들였다.

수집한 정보를 분석하고 전략을 수립해서 공격하는 도솔산 도적들은 당연히 보통 도적들이 아니었다. 보통 도적들은 배가 고플 때 전략은커녕 아무 생각도 없이 본능적으로 음식을 훔치다가 잡혀서 치도곤을 당하지만, 이들은 정보 수집에서부터 전략과 전술은 물론이고 무예 또한 출중한 당대 최고의 도적들이었다. 때문에 그 이름이 중앙에서까지 높았다. 이른바 악명이었다.

이 악명 높은 도적 집단은 바야흐로 무서운 것이 없었다. 중앙 정부에서도 감히 어떻게 해볼 엄두를 못 내고 전전긍긍만 했다. 그저 도적 무리를 소탕해주면 무엇을 어떻게 해준다는 약속이나 앵무새처럼 되뇌고 있을 뿐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무능한 정부와 그 졸개들의 하는 짓이란 대개가 그렇다. 도적이 도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분석해서 그 이유를 해소함이 정부의 해야 할 일이건만, 머릿속에 똥물만 가득한 관료들의 사리분별이란 구더기와도 같아서 제 목구멍을 채울 똥물이 어디에 많은가 따위에나 관심을 투사할 따름이다.

 

▲ 놀이는 즐거워

 

만약에 이때 한 중이 나서지 않았더라면, 도솔산의 도적들은 아마 중앙 정부의 최고 수장과 대등한 관계의 협상을 맺을 정도로까지 성장했을 것이다. 오늘날에 봐도 도솔산 골짜기는 깊고 갈래도 많고 물 또한 풍족해서 군사 일이십 만 명 정도는 넉넉하게 주둔할 만하다. 그런데 무슨 운명의 장난이 개입했다고 말할까, 아니면 필연이었다고?

어쨌든 담대한 중 한 명이 도적의 소굴을 찾아가서 담판을 벌이게 된다. 이 중이 나중에 검단선사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기록되는 바로 그 사람이다. 검단은 중국의 달마대사가 그랬듯이 홀로 숲에서 그리고 동굴 속에서 자기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을 벌인 끝에 승리한 사람으로 이름을 떨쳤다. 단식을 밥 먹듯이 해서 욕망의 근원을 정확히 파악했고, 사람과 벌레와 바람소리의 관계는 물론이고 그 처음과 끝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되었다. 원리를 알면 제아무리 난해한 수학 공식도 아무 문제가 안 되듯이, 욕망의 뿌리를 손에 쥐게 된 검단은 세상 그 무엇도 무서워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자기 자신의 고통을 벗어던진 그는 이제 이웃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세상의 고통을 구제할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검단선사의 이러한 역정을 살피다 보면 지식이란 무엇이고 그것은 어떻게 축적이 되며, 또한 그 지식을 어떻게 어디에 사용 내지 활용하는 게 인간 존재의 본령에 가장 부합하는가 하는 문제를 만나게 된다. 인간의 품위란 것도 결국은 지식의 활용 방식에서 절로 형성되는 일종의 아우라 같은 것일 테니 말이다. 어떤 사람이 가령 남들은 모르는 정보를 혼자 움켜쥐고 자신의 이익 창출에만 몰두한다면 그는 두 말이 필요 없이 천박한 자본주의자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고, 개인의 물질적 영달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에 몰두한다면 그는 선지자 또는 현자로 이름을 떨치며 죽어서도 제자를 두는 신기한 존재로 거듭나는 것 아니던가.

어쨌든 검단선사는 도솔산 골짜기에 은거하고 있는 도적들의 악명을 들었고, 그리고 단신으로 그 소굴을 찾아갔다. 도적들도 아마 한눈에 검단선사의 품격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검단은 곧장 도적의 수장과 자리를 같이 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검단은 거두절미하고 이렇게 따져 물었다.

“남의 것을 빼앗아서 먹고살면 행복한가?”

 

▲ 아이고 부끄럽게 뭔 사진을...

 

검단의 이러한 질문에 도적의 수장은 할 말이 없는 게 아니라 차고도 넘쳤다. 천하는 공적 재산인데 극소수 부자 관료들이 차지하고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기아에 허덕인다는 얘기서부터 힘없는 민중의 고혈이나 빨아 처먹는 관료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자 한다면 도적이 되는 것 외에 그 무슨 길이 있겠느냐는 얘기까지, 일사천리로 폭포수처럼 쏟아내는 도적의 얘기를 다 듣고 난 검단은 손뼉을 쳤다.

“좋다, 좋다. 너의 얘기가 맞다. 그러면 하나만 묻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먹을 것으로만 사는가? 아니면 입을 것으로만 사는가? 그것은 아니다. 내가 아플 때 옆에 사람이 나의 아픔을 알아봐 주기를 원하듯이, 옆에 사람이 아플 때 내가 그의 아픔을 알아보고 위로하며 치유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고민할 때 사람은 자기가 살아 있다는 뿌듯함을 느끼는 존재이다. 그렇지 않은가?”

검단선사의 이 말에 도적의 수장은 눈물을 철철 흘리고 말았다. 검단의 연설에 설득당해서 흘린 눈물은 아니었다. 감단의 얘기가 곧 자신이 하고자 하는 얘기였기에 절로 흘러나온 눈물이었다. 검단이 만일 어설프게 무슨 가르침이라든가 충고 같은 것을 하려 했다면 당연히 어림도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검단은 왕년의 문수보살이 실증적으로 체현해낸 바 있는, 타인의 아픔을 진짜로 내 아픔처럼 인식하는 동체자비의 심정으로 도적의 수장을 대했기에 도적의 수장은 이내 가슴을 열고 눈물로써 화답할 수 있었다.

“우리도 사람이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으로 살고자 하는 우리가 어찌 그러한 이치를 모르겠는가. 문제는 우리가 사람으로 살고자 해도 저 밥버러지만도 못한 관료새끼들이 우리를 그렇게 살게끔 놔두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이 아니 슬프고 억울한 일인가. 도적의 길 이상의 길이 우리에게는 없다. 있을 수가 없다.”

“아니다, 다른 길이 있다. 너희가 아직은 원한이 많아서 생각이 어둡고, 그래서 그 길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뭐냐, 그게 뭐냐.”

 

▲ 축제에 술이 없을 수야~

 

두 사람의 대화는 이렇게 해서 일단락되었다. 도적이 검단에게 길을 묻는 순간 도적은 이미 도적의 길을 포기할 준비가 돼 있었다. 이 놀라운 결단은 도적이 검단에게서 참된 지식인의 모습을 발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도적이 참된 지식인의 출현을 내심 갈구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같은 지식이라도 지식을 이용해서 자기 자신의 이익이나 취하는 자는 지식인이라 하지 않고 협잡꾼, 모사꾼, 거간꾼, 사기꾼 등등의 이름을 붙여주는데 그 이유는 더도 덜도 아닌 딱 한 가지이다. 지식은 산소와 같아서 존재하는 모든 이들의 행복을 위하는 쪽으로 활용해야지 한 개인의 영달이나 도모하는 쪽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

인류사를 보면 지식이 권력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오늘날에는 권력이 곧 지식으로 통한다. 제아무리 무식한 사람이라도 일단 권력을 잡았다 하면 모르는 것이 없는 것 같은 언행을 보인다. 그러다 보니 말을 하면서도 자기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조차 몰라서 눈만 깜빡깜빡 하는 경우도 무시로 생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경우를 가리켜서 우리는 언어도단이라고 하거니와, 슬프게도 우리는 지금 그런 시대를 살고 있다. 남의 돈 뜯어먹는 재주밖에 없는 사람들이 소리 높여 외치는 창조는 그래서 공허하기만 하다. 이십일 세기 첨단문명의 시대는 어쩌면 끝내 무지의 시대로 역사에 기록되고 말지도 모른다.

어쨌든 검단은 도적의 무리를 데리고 산을 넘어 바닷가로 갔다. 갯벌이 아삼삼하게 펼쳐진 그곳에서 검단은 도적들에게 소금 만드는 법을 가르친 다음 도솔산으로 돌아가서 선운사를 창건했다. 도적들은 착한 학생들처럼 열심히 소금 만드는 법을 배워서 염부로서의 새로운 삶을 꾸리기 시작했다.

갯벌을 쟁기질로 일으켜 세워서 바닷물을 일차로 거른 다음 거대한 가마솥에 넣고 팔팔 끓여서 만들어내는 소금 자염, 이 소금의 인기는 당시에도 제법 높았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사람들의 생활은 유복했고, 그 고마움을 갚을 요량으로 소금 일이 끝나는 매년 가을이면 소금을 지게에 지고 선운사로 찾아가서 법당에 공양했다.

 

▲ 갯벌을 바라보는 소금막

 

이렇게 해서 보은염이란 이름의 새로운 브랜드가 창출되었다. 소금 만드는 법을 가르쳐준 검단의 은혜가 하늘보다 높다 해서, 그 은혜를 갚기 위해 매년 가을마다 지게에 소금을 지고 험한 비탈길을 걸어 선운사 대웅전에 공양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이 보은염 행사는 해마다 진화해서 나중에는 거대한 축제의 형식을 띠게 되었다. 해당 마을 사람들은 물론이고 주변 여러 다른 마을에서도 사람들이 몰려왔다. 수백 년을 계속해서 내려온 이 축제는 대통령 박정희가 도입한 새마을운동의 정신에 위배된다 해서 그만 중단되고 말았다.

노예처럼 쉬지 말고 부지런히 일해서 귀족처럼 잘살아보자고 외친 새마을운동이 가장 금기시한 것이 놀이문화였다. 놀이 중에서도 풍물 같은 전통적인 것은 거의 범죄시될 지경이었다. 장구나 북, 징, 꽹과리 같은 악기들은 죄다 새마을창고에 처박히고 말았다. 보은염 행사에서 길을 닦고 나아가는 것이 사물이요 풍물인데 북치고 장구 치는 놀이 자체가 범죄시되고 보니 축제는 자연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중단된 보은염 행사는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다시 시작되긴 했지만, 이 에피소드는 새마을운동이 무엇이었는가 하는 점을 엄중하게 다시 돌아볼 것을 요구한다.

새마을운동이 주창한 것은 두 말이 필요 없이 잘살아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아주 희한하게도 농촌의 인구가 절대적으로 감소한 것은 새마을운동이 북한의 천리마운동 만큼이나 최고조에 달했던, 밤에도 횃불을 들고 미친 듯이 삽질을 해댔던 시기와 일치한다. 오늘날의 통계청인 그 당시 재무부 통계조사국 자료를 보면 새마을운동 관련 노래와 구호가 아침마다 스피커를 꽝꽝 울려댔던 70년대 내내 농촌 인구는 매년 줄어들어 갔다. 새마을운동의 핵심은 결국 농촌 죽이기 운동에 다름 아니었다는 의혹이 제기될 법한 대목이다.

실제로도 농가 부채가 공식적으로 잡히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그 이전까지의 농가 부채라는 것은 소작농이 지주에게서 보리쌀 몇 가마 꿔다먹었거나 노름빚 정도였지만, 새마을운동이 쓰나미처럼 밀려들면서 요구하는 지붕개량이니 담장교체 사업 같은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짓으로 농민들은 거의 예외가 없이 빚쟁이가 되어갔다.

 

▲ 소금막 앞에서의 고사

 

어떤 주장에 따르면 쌍용그룹의 김석원 회장이 박정희에게 정치자금을 많이 대줬는데 주력 사업인 시멘트 판매가 부진해서 팔아줄 것을 요청했고, 이를 대통령이 수용하면서 새마을운동이 본궤도에 올랐다고도 하는데 사실 여부야 어떻든 시멘트와 슬레이트, 목재, 페인트 등등 건축관련 자재들로 인해 농민은 빚쟁이가 되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오늘날의 재벌이 탄생한 것만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데 사람이 잘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대통령 박정희에 따르면 오직 하나 돈이었던 것 같다. 돈이면 못할 것이 없다는,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으로 새마을운동을 밀어붙였고, 새마을운동의 영향으로 돈이면 다 된다는 인식이 대중적으로 확산됐으며, 그 결과로써 오늘날 우리가 천민자본이라 칭하는 재벌문화가 탄생했다.

새마을운동 이전에 국민교육헌장이라는 것이 있었다. 68년도에 재정 공포된 이 국민교육헌장은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어마무지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사람이 사람에게 그토록 어마어마한 것을 가르쳤던, 가르치고자 했던 대통령 박정희는 자기가 무슨 일을 벌이고자 하는지 알고나 있었을까. 민족중흥을 외치면서 민족의 고난을 위로하고 지켜준 놀이문화를 악으로 규정해서 창고에 처박아버린 그 사고방식은 대체 어디의 무엇으로부터 비롯된 것인가.

그토록 모순적이고 즉흥적이며 무책임한 사람을 아버지로 둔 현재의 대통령은 아버지를 국가적 차원의 신으로 모시고자 열심을 바치면서 창조를 외치는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창조의 결과물로 속속 드러나는 것이 한 여자의 말 사랑을 위해 국가 기관이 동원됐다는 것이고 보면, 뿌리는 속일 수 없다는 옛말은 역시 진리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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