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구 달성군 비슬산 임도공사 현장 다시 가보니 /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 임도 건설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신갈나무. 이런 나무들이 주변에 빽빽했을 것이다.

 

갈참나무, 신갈나무, 졸참나무, 초피나무, 물푸레나무, 산오리나무, 당단풍나무, 생강나무, 비목나무, 떡갈나무, 굴참나무, 물박달나무, 꽃향유, 족도리풀, 사초(사래기풀), 꽃며느리밥풀, 산부추….

예상대로 대구 달성군 비슬산의 나무와 식물 종류는 무척 다양했다. 역시 생태자연도(산, 하천, 내륙습지 등에 대하여 자연환경을 생태적, 자연적, 경관적 가치 등에 따라 등급화한 지도임. 1등급이 최상등급) 1~2등급지에, 녹지자연도(식물군락의 자연성을 등급화한 지도로 9등급이 최상급의 숲) 8~9등급지에 해당하는 숲다웠다.

 

▲ 계명대 생물학과 김종원 교수가 당단풍나무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생태자연도 1등급지에 임도 닦은 대구 달성군

바로 대구 달성군이 비슬산에 닦고 있는 임도(임업경영과 산림을 보호 관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일정한 구조와 규격을 갖추고 산림 내 또는 산림에 연결하여 시설하는 차도) 공사 현장에서 본 나무들의 종류다. 녹지자연도 8~9등급에 해당할 정도로 다양한 아름드리나무들이 즐비한 산이었다. 이런 비슬산에 대구 달성군은 1200그루의 이상의 나무를 베어내고 계곡을 메우면서 임도를 건설하고 있다.

이에 대구환경운동연합이 달성군의 임도공사에 문제 제기를 했고, 지난 주말 대구환경운동연합, 생명평화아시아의 회원 20여 명이 ‘한국식물생태보감’의 저자인 김종원 교수와 함께 가창 정대에서 화원 본리리로 넘어가는 임도공사 현장으로 비슬산 생태기행을 나섰다.

 

▲ 계곡을 따라 임도를 닦고 있고, 그 때문에 계곡의 형태가 교란당하면서 급류가 흐르고 있다.

 

달성군이 내세우는 임도 개설의 목적은 (1) 산화방지 및 산림작업의 능률화 (2) 임업경영 개선을 위한 기반조성 (3) 임업소득의 증대 (4) 농림업의 균형발전과 균형적인 지역개발에 이바지하고자 한다 등이다.

그러나 임도는 산화방지 효과보다는 산화확대의 원인이 된다는 지적이다. 열기(바람)의 통로로 기여해 산불의 피해를 확대시킨다는 것이다. 임업경영 개선과 임업소득 증대라지만 이것도 현재의 임업이 아니라 “장래에 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라는 게 달성군의 주장이다.

 

▲ 비슬산에 심겨진 일본특산종 편백나무. 김종원 교수 뒤로 편백나무가 보인다.

 

즉 현재 당장 시급한 필요에 의한 것도 아닌데 임도를 건설해서 생태적으로 가치 있는 숲을 헤친 꼴이 되는 셈이다. 위에 열거된 무수한 나무들이 베어졌을 것이고, 계곡 또한 망가져 흐른다.

“이곳은 반딧불이가 충분히 살았을 계곡입니다. 이렇게 계곡을 건드려 놓으면 더 이상 반딧불이가 살 수가 없습니다.”

김종원 교수의 설명이다. 반딧불이가 살 정도의 건강한 계곡 또한 임도 건설로 망가져 급류가 흐르는 위태롭고 위험한 공간으로 변해버렸다.

 

▲ 임도 건설을 위해 수많은 나무를 베어내고 다시 나무를 심어 생태적 임도를 만들겠다는 달성군.

 

비슬산 고유종 베어내고, 일본 특산종 나무를…

길을 따라 조금 더 오르자 어처구니없는 모습이 나타난다. 숲을 뭉개고 임도를 닦은 바로 그 가장자리로 다시 나무를 심어 조경을 해둔 것. 이것이 이른바 달성군 관계자들이 이야기하는 전국 제1의 임도 모습이다(달성군 관계자들이 대구환경연합 사무실로 찾아와서 임도에 대해서 설명하는 자리에서 전국에서 가장 뛰어난 생태적 임도를 건설하겠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런데 그 나무의 모습을 본 김종원 교수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뒤이어 김종원 교수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새로 심어둔 이 관목은 황매화이고, 저 나무는 편백나무로 둘 다 일본 특산종들입니다. 비슬산 고유종 베어내고 일본 특산종 나무를 심다니, 도대체 누가 이따위 공사를 벌인단 말인가요?”

 

▲ 임도를 따라 계속해서 나무를 심을 예정이다. 이 예산은 또 얼마인가?
▲ 수직으로 깎여서 위태로운 임도와 시멘트 포장길. 이것을 생태적 임도가 부르는가?

 

오랫동안 비슬산에 자생하던 종을 모두 베어내고 그 자리에 일본특산종 나무들을 심는다는 것이다. 과연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결국 이 산의 가치나 특징과는 전혀 상관없이 조경업자의 형편에 맞게 식재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조경업자의 배만 불리는 아닌가라는 비판이 따라온다.

애초에 필요도 없는 길을 깊은 산에다 내고, 그러면서 비슬산 고유의 나무들을 베어내고, 그 옆으로 다시 나무를 심는다고 해서 그것이 가장 우수한 임도가 되는 걸까. 달성군은 정녕 그렇게 믿고 있단 말인가.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 시멘트길로 변한 임도. 이곳에 무슨 생태적 고려가 있는가?

 

조경업자 위한 임도 건설

"이것은 임도가 아니라 차량 통행을 위한 도로다. 또한 조경업자를 위한 도로일 뿐이다. 이 나무 한 그루 심는데 몇 십만 원은 들 것이다. 수백 그루는 될 것인데 그렇다면 이 돈이 다 얼마인가."

이날 생태기행에 함께한 생명평화아시아의 성상희 변호사의 일갈이다. 그렇다. 조경업자만 좋은 일 시킨 꼴이 아닌가라는 성 변호사의 질문은 합당해 보인다.

 

▲ 긴 우산 크기만한 넓이의 신갈나무가 베어졌다. 녹지자연도 9등급의 숲이 모조리 베어진 것이다.

 

"독일의 흑림지대에도 임도가 발달했다. 그러나 그곳은 평지 비슷한 지형이기 때문에 길만 닦으면 된다. 산지를 훼손하는 게 아니다. 그렇게 해서 환경친화적으로 나무를 생산한다. 태풍도 없다. 그래서 산지의 물패임 현상도 없다. 그리고 그곳은 해양성 온대기후라 숲이 늘 축축하다. 산불이 날 가능성도 없다. 그런데 이런 독일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경제림이 없어 목재 생산도 없다. 산불진화용이라 하지만 임도는 도리어 바람길 역할을 해서 산불을 더 확대시킬 뿐이다."

김종원 교수의 설명이다. 그의 설명대로 우리나라는 아직 경제림이 없다. 그래서 임업을 위한다는 명분을 얻기 힘이 든다. 오죽하면 달성군이 장래에 있을 임산물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달까.

 

▲ 오른쪽 위치도에서 푸른색의 구간은 공사가 진행된 구간이고, 붉은색 구간은 임도건설에서 살아남은 계곡이다. 달성군은 전 구간이 임도구간이지만, 두 구간으로 나눈 이른바 쪼개기사업으로 환경영향평가를 피해갔다.

 

대구시민의 산, 함부로 손대지 말아야

"비슬산은 대구의 남쪽으로 열려있는 산이다. 남향집에서 늘 보이는 산, 그래서 대구 사람들에겐 중요한 산이다."

김종원 교수의 설명대로 대구사람들이 집에서 내다보면 보이는 비슬산. 어쩌면 대구사람들의 가장 큰 사랑을 받는 산인 비슬산이 합당한 이유도 없는 임도 건설 때문에 그 숲이 망가져가고 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임도란 말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임도가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꼭 필요한 임도인지, 임도를 닦아도 좋을 숲인지 먼저 그 타당성 조사부터 신중해야 한다. 쪼개기 사업으로 환경영향평가를 피할 일이 아니라, 정당하게 환경영향평가를 받아서 그 임도사업으로 인해서 환경에 지나친 영향이 없는지를 명확히 한 후 공사를 해도 늦지 않다. 자연은 한번 훼손되면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 임도건설에서 살아있는 비슬산 계곡 숲.

 

대구 달성군은 지금 절반 정도 놓인 임도와 연결해서 나머지 반대편 본리리로 넘어가는 임도공사를 환경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원래 계획된 노선이 아닌 대안노선을 잡아 임도를 이으려 하고 있다.

달성군은 쪼개기 사업에 대한 해명에서 '예산이 없어서 임도 구간을 나누어서 공사를 한다'고 했는데, 쪼개기 사업을 벌일 정도로 예산이 없다면서 굳이 새 예산을 뽑아서 별 필요도 없는 임도공사를 다시 하겠다고 나선 이유는 뭔가. 이 상황을 어느 시민이 이해할 수 있을까.

이쯤에서 중단하는 것이 옳다. 애초에 잘못 계획된 사업을 밀어붙이는 것은 행정의 몽니일 뿐 어디에도 도움이 안 된다. 이번 임도공사를 교훈 삼아 부디 함부로 나무를 베고 산을 깎고 시멘트를 바르는, 철지난 토건공사식 임도건설이 종식되길 희망해본다.

한편, 이번 임도공사로 훼손될 위기에 처했던 나머지 반대편 계곡은 환경단체의 문제제기에 의해서 온전히 살아남았다. 무책임한 임도 건설에 문제제기한 이들의 작은 승리다. 일행은 살아남은 계곡으로 하산하면서 비슬산의 깊은 아름다움에 흠뻑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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