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록 칼럼> 가을을 알리는 소리

만물이 침잠하는 계절이다. 소슬바람이 부는 가을밤, 가느다랗게 들려오는 저 소리. 그래, 가을밤은 풀벌레 소리와 함께 깊어간다. 풀벌레들의 속삭임을 가만히 듣고 있으려니 마음이 더없이 평화롭다.

가을밤 풀벌레 소리는 들을수록 정겹다. 마당가 풀섶에서, 갈라진 벽 틈에서, 툇마루 밑에서, 뒤란 장독대에서 속삭이듯 들려오는 소리는 가을밤을 수놓는 환상적인 코러스가 아닐 수 없다.

 

 

귀뚜라미가 ‘귀뚤귀뚤’하고 선창을 하면 베짱이가 뒤이어 ‘찍찌르르’하고 화답을 하고, 이에 뒤질세라 여기저기서 뭇 벌레들이 고운 화음을 보내온다. 노래 소리 같기도 하고, 울음소리 같기도 한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문득 고향이 생각나고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 벌레들의 합창을 들으며 밤하늘의 별을 세던 그 때의 추억이 아슴하게 그려지는 것이다.

나비가 봄의 전령이라면 귀뚜라미는 가을을 상징하는 친숙한 곤충이다. 귀뚜라미는 그 소리가 특이하여 고독한 사람의 벗이 되곤 한다. 그래서일까. 옛 시가에 보면 외롭게 지내는 여인이나 고향을 떠난 나그네가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시름에 잠겨 잠 못 이루는 애절한 정경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게 된다.
 

밤이면 나와 함께 우는 이도 있어
달이 밝으면 더 깊이깊이 숨어듭니다.
오늘도 저 섬돌 뒤 내 슬픈 밤을 지켜야 합니다.
<노천명, 귀뚜라미>

 

밤에 우는 귀뚜라미는 문인들이 가을철의 서정으로 즐겨 다룬 소재였다. 이 시는 인간의 슬픔과 외로움을 진하게 담고 있다.

귀뚜라미는 우리말로 ‘귓돌이’라고도 한다. 앞다리에 소리를 듣는 매우 예민한 감각기관을 갖고 있는데, 소리를 내는 빈도와 온도 간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어서 온도가 올라가면 소리도 자주 낸다고 한다.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면 나는 언제나 고향의 어머니가 생각난다. 객지에 몸을 붙인지도 어느 새 30여 년이 훌쩍 지났다. 매년 가을이면 귀뚜라미 소리와 함께 어머니가 두툼한 보따리를 들고 내 곁으로 다가오시는 것만 같다.

 

 

선들바람이 이는 가을밤,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는 맛도 그만이다. 문풍지를 뚫고 들려오는 그 소리의 여운이 책을 읽는 내 마음에 절절히 와 박힌다. 바야흐로 등화가친(燈火可親)의 계절이 아닌가.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란 말이 딱 어울리는 때가 아닌가 한다.

비록 다섯 수레의 책을 읽지는 못할지라도 풀벌레 우는 이 가을밤, 좋은 책을 읽으며 인생의 참 의미를 되새겨보자. 독서는 고독을 달래는 데도 제격이다. 이맘때쯤이면 누구나 마음 한 구석에 고독이라는 감정이 웅크리고 있으리라. 고독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마음 상태가 아닐까? 그런 뜻에서 이 가을 누구나 한 번쯤 고독이라는 병을 앓아보는 것도 내면의 성숙을 위해 필요하지 않을까.

바쁘게 돌아가는 삶일수록 책을 통해 마음을 안정시키고 지혜를 갈고 닦아야 한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책을 멀리한다면 결국 책속에 들어 있는 보석을 놓치고 만다. 책을 통해 얻은 지식과 교훈을 우리 경제 회생에 쏟아 부울 때다. 깊은 밤 램프에 불을 켜놓고 책을 읽는 사람이 많아질 때, 삶도 한결 풍족해지리라. 책을 사랑하는 것은 삶을 사랑하는 일이며 참 진리를 터득하는 길이다.

쉼 없이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는 뭐랄까, 누군가를 애타게 찾고 있는 듯한 소리처럼 들린다. 나는 문을 열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눈길을 보낸다. 장음으로 이어지다 어느 순간에 뚝 멈추기를 반복한다. 귀뚜라미 소리는 그렇게 계속되다 새벽녘이 가까워서야 잦아들곤 했다.

여치며 베짱이, 방울벌레, 사마귀, 땅강아지 같은 곤충도 제 나름의 소리로 가을 분위기를 고즈넉하게 만들어준다. 가늘고 긴 실 모양의 더듬이를 가지고 있는 여치는 이른 저녁부터 밤늦게까지 줄곧 울어댄다. 그 울음소리가 귀뚜라미와 비슷해 혼동하기 싶다.

베짱이는 우리 동화 속에 개미와 함께 등장하여 게으름과 나태함을 꼬집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이 풀벌레도 요즘은 환경오염 때문인지 보기가 쉽지 않다.

가을밤에 우는 풀벌레로 땅강아지도 빼놓을 수 없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란 이들이라면 한번쯤 보았을 이 곤충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땅 속을 파고 들어가는 벌레이다. 땅강아지는 어린이들이 놀이거리로 삼던 곤충이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장난감이나 컴퓨터에 재미를 붙여 곤충에 대해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우리들의 어릴 적 추억은 이렇게 하나 둘 사라져가고 있다.

 

▲ 벼메뚜기 튀김

 

주로 낮에 활동하는 가을 곤충으로 벼메뚜기도 있다. 논두렁 밭두렁의 풀숲 사이에서 이리 저리 튀던 벼메뚜기를 떠올리면 고향 생각에 마음이 푸근해진다. 가을이 오면 벼메뚜기는 무척 바빠진다. 짝짓기도 하고 알도 낳아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중학교를 다닐 무렵만 해도 논둑길이나 밭둑길을 지나가다 벼메뚜기들이 콩볶듯 사방으로 튀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학교가 파하고 집에 돌아오면 동네 친구들과 약속이나 한 듯이 누런 벼이삭이 고개를 숙인 논으로 뛰어 들어 벼메뚜기를 잡아서 강아지풀에 줄줄이 엮어 집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잉걸불에다 볶아 먹었는데, 일미(一味)가 따로 없을 정도였다. 이 고소한 벼메뚜기 볶음은 우리들의 간식이자 영양원이었다.

그러나 이런 풍경도 해가 갈수록 사라져가고 있다. 가을 작물에 마구 농약이 뿌려지면서 메뚜기의 수가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요즘 농촌에 가도 메뚜기를 잡는 모습을 구경하기가 어렵다.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일부 마을에서나 볼 수 있을 뿐이다. 농약을 치지 않고 벼를 재배하는 마을들은 매년 수확기가 돌아오면 도시 사람들을 초청해 메뚜기잡기 대회를 열곤 하는데 반응이 아주 좋다고 한다.

가을밤을 수놓는 풀벌레 소리는 자기의 존재를 확인시켜 짝을 찾는 구애의 소리이자 제 세상(가을)을 맞이한 기쁨의 노래 소리이다. 또 먹이사슬의 세계에서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의 소리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사무치도록 절절한 그 소리는 우리들의 황폐한 정신을 위무해 준다. 자연이 준 고귀한 선물이다. <수필가,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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