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뉴스지금여기> 총체적 실정 비판.... ’박근혜 이후’ 전망 보여 줘

박근혜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국정문란에 대한 전 국민적 분노가 들끓고 있는 가운데, 10월말부터 11월 14일까지 천주교에서도 시국미사와 성명 발표가 줄을 이었다.

10월 28일 가톨릭대 등 천주교계 대학교 학생들과 대신학교 신학생들을 시작으로 쏟아진 시국선언의 내용을 살펴보면, 특히 가톨릭 사제, 수도자, 대학생들이 박근혜-최순실 사건을 어떻게 진단하고,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10월말에 나온 서강대, 가톨릭대 총학생회와 수원, 부산, 인천가톨릭대 신학생들의 시국선언을 보면, 이때까지만 해도 ‘최순실게이트’로 이름 지은 이 사건에 대한 특검과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수준이었다. 10월 28일 가톨릭대 총학생회 시국선언에서 “박근혜 정권의 사퇴”를 언급했지만, 아직 본격적인 ‘대통령 하야’ 촉구는 나오지 않았다.

11월 1일 나온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정평위) 시국선언문은 이 위원회의 권위와 위상 때문에 눈여겨 볼 만하다. 정평위는 “대통령은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려는 진지한 자세로 국민의 뜻을 존중하여 책임 있는 결단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관련자들에 대한 엄정하고 투명한 수사, 공명정대한 재판을 요청했다. 한편으로 정평위는 교회 자신이 “그동안 예언자직을 온전히 수행해 왔는지를 겸허히 반성”한다며, 신자들이 현 사태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국정 정상화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밝혔다.

11월 4일 이번 사태에 대해 박 대통령의 두 번째 사과 대국민 담화가 나오자, 정의구현사제단을 시작으로 대통령 퇴진을 외치는 목소리는 더 높아졌다. 대통령의 사과에 진정성이 없고, 그 뒤에 나온 행동을 볼 때 권력을 내려놓을 생각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날 정의구현사제단은 논평을 내 “대통령은 당장 하야하라”고 외쳤다.

대통령 ‘하야’ 또는 ‘사퇴’라는 말이 없어도, 대통령은 “즉각 그 자리에서 내려오라”(11월 2일,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연합 등)거나 “대통령은 당장 물러나야 한다”(11월 9일, 수원교구 정평위)는 강력한 퇴진 요구도 빗발쳤다.

 

▲ 10월 28일 이후 천주교계 시국선언 (자료 = 가톨릭뉴스지금여기)

 

한편, 시국선언에 나선 천주교인들은 무엇을 문제로 지적했을까? 최순실 씨 등 비선실세로 지목된 이들의 비리 혐의, 국정 개입 의혹에 집중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가정보원 등의 대선 개입 논란과 함께 출발한 박근혜 정부의 총체적 실정을 지적한 경우가 있다.

가톨릭대 총학생회는 “최순실은 국정뿐만 아니라 비선실세 권력인 차은택, 고영태 등을 통해 민간까지 뿌리 깊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음이 밝혀졌다”며 이들의 부정, 비리 혐의에 초점을 맞췄다. 주교회의 정평위 시국선언문도 “비선 실세를 통한 국정 개입” 문제를 지적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앞서 2013년 천주교에서는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대통령선거 개입의혹에 대한 진상규명, 정의로운 해결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에 사제 2124명(당시 사제의 43퍼센트)이 참여할 만큼, 박근혜 정부의 출발점 자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또 최근 경찰의 물대포 진압으로 사경을 헤매다 숨진 농민 백남기 씨가 존경받는 가톨릭 신자였다는 점, 세월호참사에 직접 관련된 수원교구, 광주대교구를 중심으로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한 기도가 계속되어 왔다는 점은 최근 발표된 시국선언문에도 반영되었다.

이런 시각을 반영한 시국선언문들은 매우 강경한 어조로 거의 모든 박근혜 정부 정책을 비난하고 있다. 예컨대 11월 14일 인천교구 사제들은 “국가폭력에 희생된 고 백남기 임마누엘 형제, 세월호참사 당일 잠적한 대통령의 행적, 갑작스러운 개성공단 폐쇄, 사드 배치 결정, 한일 위안부 합의, 언론 탄압과 통제,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 등의 엄청난 부실을 초래한 마구잡이식 국정 운영의 패악에 깊은 분노를 느낀다”고 표현했다.

11월 7일 광주대교구 정평위도 비선실세의 국정개입이 헌법을 어겼다고 대통령의 무한책임을 요구하는 한편, “세월호의 진실, 경찰이 물대포로 백남기 농민을 죽인 이유, 국정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가 행한 선거개입”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 11월 14일 천주교 인천교구 주교좌 답동성당에서 시국미사를 마친 사제와 신자들이 촛불과 손팻말을 든 채 기도하고 있다. ⓒ배선영 기자

 

이에 비해 11월 4일 남녀 수도자 단체들은 위의 문제들과 더불어 “지난 4년 동안 국가로서의 책무와 역할을 다하지 못해 수많은 이들이 시련과 고통을 받았다”며 “농민 문제, 쉬운 해고와 노동개악” 등의 민중 문제를 지적한 점이 돋보인다. 또한 대전 정평위와 부산교구 사제단은 각기 재벌기업 수사와 전경련 해체를 요구해, 박근혜 정부의 국정문란이 대통령 개인이 아닌 재벌 중심 경제와 연관이 있다고 인식했다.

개신교계 대표들은 어떤 목소리를 냈을까? 보수 개신교의 대표격인 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10월 27일 최순실 씨 사건은 특검을 도입해 철저히 조사하면 된다면서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은 국정공백”이라고 입장을 냈다. 박 대통령의 하야나 탄핵 등에 반대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한기총은 이번 사태를 보며 언론의 막강한 힘을 다시 한 번 느낀다며, “개헌 논의가 국회 주도 하에 적극 추진되며, 입법, 사법, 행정부와 언론이 상호 견제 속에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독교교회협의회 회원교단장들은 11월 3일 시국선언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나 퇴진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내용상으로 볼 때 사실상 하야를 요구했다. 이들은 박 대통령을 향해 “대통령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셨다”며 “더 이상 대통령님께 희망을 두지 않는다. 다만 인간 박근혜의 새로운 삶을 위해 열심히 기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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