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대통령 박근혜가 일깨워준 밥 잘 먹는 방법

▲ 서울 광화문에서...

 

사람은 나이가 들면 입을 깨끗이 해야 한다지만, 내 입은 나이가 들수록 더러워져 갔다. 뉴스 같은 것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욕지거리가 터져 나온다. 욕지거리도 단순하지가 않고 매우 화려하고 험악해서 이를테면 “짝짝 포를 뜨듯이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연놈들”이라든가,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 너희들의 뼈를 갈아 마시겠다”는 식의 말도 안 되는 소리들이다. 내 입이 그렇게 더러운 언어를 쏟아내고 있노라면 나의 그녀는 눈을 하얗게 홀기며 한심하다는 투로 나를 째려보곤 했다. 그랬던 그녀가 언제부터인지 욕지거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니 무슨 저따위 바퀴벌레만도 못한 잡것들이 다 있어?”

나는 그녀가 내 입에서 나오는 욕을 사전에 차단할 목적으로 자기가 먼저 욕을 해버리는 줄 알았다. 그녀의 입이 그렇게까지 더러워지는 것은 단연코 내가 원하는 바는 아니었다. 그래서 가능한 한 욕지거리를 자제하려고 애를 써보기도 했지만 잘 안 되었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는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손뼉 장단이라도 치듯이 대통령이라는 단어만 접했다 하면 저렴한 욕지거리를 마구 쏟아내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아니 저런 게 무슨 대통령이야? 동네 양아치 건달들한테 시켜도 저것보다는 잘 하겠네. 저런 양아치 개만도 못한.”

“바늘로 한땀한땀,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그렇게 떠서 죽이면 우리의 속이 그나마 조금은 풀릴까?”

아, 이건 아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우리가 어쩌다가 이런 빌어먹을 꼴이 되고 말았는가. 욕을 하면서도 문득문득 깜짝 놀라서 그렇게 반성의 시간을 가져보고는 있었지만, 그래봐야 무슨 소용인가. 상습적인 도둑이 상습적으로 예배당을 찾아가 고해성사를 하듯이, 반성의 시간은 너무도 짧아서 금방 지나가 버리고 어느새 다시 욕지거리가 필요한 시간이 와 있곤 했다.

하루라도 욕을 안 하면 내가 그만 버러지가 돼버릴 것만 같았다. 하루라도 욕을 안 하면 뭔가 중대한 것을 상실한 것처럼 허둥거리다가 어느 순간 그만 픽 쓰러져버릴 것만 같았다. 하루라도 욕을 안 하면 신체의 모든 구멍에서 피가 터져 나올 것만 같았고, 하루라도 욕을 안 하면 극심한 배신감이 안에서 새끼를 치고 그 새끼들이 우리 자신을 먹어버릴 것만 같았다.

 

▲ 농민들의 상여행진

 

한 마디로 말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 숨을 쉬기가 어려웠고, 가슴은 바늘 끝 하나만 대도 금방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죽을 때가 아니었다.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차고도 넘쳤다. 아니 뭐 굳이 살아야 할 이유를 대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일찍 죽어야 할 이유 같은 것은 아직 없었다. 그런데도 죽을 것만 같았다. 가만히 있으면 내부에서 일어난 자체 폭발로 우리의 목숨이 끝날 것만 같았다. 살아야 했다. 살기로 하자면 뭔가 소리를 질러야만 했다.

물러가라. 꺼져라. 하야는 아깝다. 그런 고상하게 고급한 단어는 너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물러가라. 무조건 꺼져라.

우리는 방안에서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것은 중얼거림에 지나지 않았다. 그나마 그녀는 집회에 참석한 어린 학생들을 인터넷 뉴스로 보면서 박수라도 치고 있었지만, 나는 박수를 칠 용기조차도 없었다. 아니 그것은 아마 용기의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뭐랄까. 그 어떤 책임감 같은 것이 나를 짓누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저런 사람이 대통령 자리를 꿰차고 앉을 때까지 나는 뭘 했던가 하는 자괴감이 나를 숨도 못 쉬게 하고 있었다.

갑자기 불어닥친 이명박 바람이 문득문득 생각났다. 온 몸에서 반들반들 윤기가 흐르는 이명박 그 사람을 대통령 자리에 앉혀놓은 그때의 그 바람은 다른 어디 먼 데서 불어온 것이 아니었다. 모두가 평균적으로 가난할 뿐인 내 친구들이, 내 친척들이, 내 형제들이 합심해서 일으킨 바람이었다.

그해의 어느 하루 어머니를 찾아왔던 넷째 동생의 우격다짐을 나는 지금도 어제의 일처럼 기억한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어야만 서민들이 잘 살 수 있다고, 숨도 못 쉬게 가난한 서민들의 숨통을 이명박이 틔워줄 것이라고 사자후를 토해내는 넷째 아우의 열변을 나는 어이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정곡을 콱 찌르는 반박은 단 한 마디 못 하고 말았다.

기도 안 막히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바람은 왜 불었던 것인가. 그리고 나는 왜 그런 어처구니없는 바람을 차단하는 일에 온 몸을 던지지 못하고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던가. 이제 와서 고백을 하자면 서민들을 잘살게 해주지도 못하면서, 정의라는 이름자 하나 반듯하게 올곧게 세워놓지도 못한, 무늬만 진보인 정권의 막바지 행보에 대해서 나 자신도 이미 한숨을 내쉬고 있던 참이었다. 내가 비록 기름기 잘잘 흐르는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지지하지는 못하지만, 그 사람을 반드시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동생의 주장이 틀렸다고 반박할 만한 근거 또한 나는 거의 갖고 있지를 못했다.

 

 

그렇게 해서 천하에 잡스런 괴물 대통령이 우리 역사에 등장하고 말았다. 이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었다. 사람이란 모름지기 도둑질을 해도 당당하게 해야 한다는 일관된 철학으로 대통령의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퇴임 후의 안녕까지 보장받은 다음 집으로 돌아가는 이명박을 인터넷으로 지켜보는 내 가슴에서 불꽃이 튀고 있었지만, 그래봐야 무슨 소용인가. 이명박의 안녕을 보장한 대가로 대통령 의자를 넘겨받은 박근혜의 거짓말 기술은 이명박보다 열 배 아니 스무 배는 더 정교하다는 것을 내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나마 이명박은 자기가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알면서 거짓말을 하지만, 박근혜는 자기가 하는 모든 말이 참이라고 믿으면서 하고 있으니 그 얼마나 완벽한 거짓말인가 말이다.

그랬다. 어리석게도 나는 박근혜가 다만 하나 거짓말 기술이 매우 정교하다는 생각만 했었다. 최순실이라는 사람이 박근혜를 조종하고 있다는 생각까지는 차마 해보지도 못했다. 최태민이란 이름은 더러 들었고, 들을 때마다 코웃음을 치기는 했지만, 최순실이란 이름은 한두 번 들었던 것 같은데도 제대로 된 기억으로 남아 있지는 못했다. 그런데 그가 사실상의 대통령 노릇을 해왔다는 것이다.

무슨 이런 엉망진창의 경우가 다 있단 말인가. 나는 원래 딱 부러지는 꿈 하나 없이 되는대로 살아왔지만, 인생 중년에 이르러 꿈을 갖게 되었는데 그것이 기차를 타고 평양을 거쳐 중국으로, 러시아로, 유럽으로 끝없는 여행을 해보는 것이었다. 그런 꿈을 이명박이 흩트려놓더니 박근혜는 아예 끊어 버렸다. 그런데 그것이 박근혜 본인의 창의적인 발상조차도 아니고 박수무당 최태민의 딸 최순실의 무속적인 머리에서 나온 것이란다.

무슨 이런 빌어도 못 먹을 잡것들이 다 있는가. 오천만 국민을 상대로 아이가 병아리를 아파트에서 호기심으로 던져보듯이 소꿉놀이를 해 왔다는 얘기 아닌가 말이다. 이런 잡것들의 변명이나 듣고 있어야 하는가?

“가자. 우리도 청와대로 가자.”

“그래요. 가요.”

그녀와 나는 ‘손석희표 뉴스’를 보던 중에 치를 떨며 약속을 했지만, 그런데 지금 내 몸은 내 몸이 아니었다. 바지락 양식을 유일한 수입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십일월은 초조와 긴장, 불안의 계절인 한편 희망의 계절이기도 했다. 찬바람이 불어오면서 속속 죽어가는 바지락을 아직 살아 있을 때 한 마리라도 더 캐내서 팔아야 하고, 새로운 종패를 사다가 뿌리면서 잘 살아달라고 기도를 해야 하니 밤과 낮의 구별이 따로 없는 그야말로 정신이 하나도 없는 날들이었다. 내 몸이야 비록 양식업자 자격까지는 못 된다지만, 양식장에 빌붙어 품팔이를 하는 입장이고 보면 그들과 공동운명체임이 분명하고, 따라서 나는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즉흥적으로 해버린 셈이었다.

삼십 년 전 같으면, 아니 이십 년, 아니아니 십 년 전만 같았어도 모든 일을 작파하고 달려갔겠지만, 나이가 원수라더니 내가 지금 완전 그짝이었다. 내가 빠지면 작업에 어떤 지장이 있다는 것을 먼저 생각하고 있으니, 이게 나이 탓이 아니고 무엇이랴. 서울 집회에 참가한다는 약속 자체가 희망이 되어버린, 그런 전대미문의 희망에 들떠 있는 그녀에게 나는 못 가겠네, 소리를 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결국 해버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그녀는 혼자서 청와대로 가는 방법에 대해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고창의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었다. 그래, 그들은 확실히 다른 사람들, 완전히 낯선 사람들이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한 다리 건너 두 다리, 그렇게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서 만났다. 그리고 현금 이만 원씩을 내서 버스 한 대를 대절하고, ‘당신은 우리의 대통령이 아니다 물럿거라’는 문구의 현수막과 손피켓을 만들었다.

출발 전날 그녀는 마치 어린 학생이 소풍을 준비하듯이 가방을 준비하고 지갑도 챙겨서 가방 위에 올려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에 일어나 그녀 몰래 그녀의 그런 준비물을 보고 있는 내 가슴에서 온천수가 터졌다. 나는 새벽 4시 30분에 집을 나가야 한다. 그녀의 예정된 출발 시간은 8시 30분. 내가 아침 작업 마치고 집에 들어오는 시간은 아마도 9시 조금 넘어서일 것이다. 눈물이 안 나올 수 없는 순간이었다.

“한 시간마다, 실시간으로 문자를 보내줘. 통화는 배터리 아껴야 하니 가능한 한 자제하고, 알았지?”

집을 나서면서 그녀에게 한 마디 했다. 그녀는 배시시 웃는 표정으로 으응, 한다. 그녀의 그 으응, 하는 소리가 너무나 정겨워서 나는 그만 잠시 비틀거리고 말았다. 그날따라 새벽에 살짝 얼음이 얼었다. 바다에 나가니 손이 시렵고 발도 시렵고 온 몸이 으슬으슬 떨린다.

아침 작업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와서 그녀에게 전화를 걸고자 전화기를 찾으니 없다. 이런, 마음이 어지러워서 그만 전화기도 집에 두고 나왔던가 보다. 허둥지둥 집으로 가서 전화기를 찾아 들고 버튼을 누른다. 그녀의 낭랑한 목소리가 으응? 한다. 이러구 저러구 몇 마디를 하다가 문득 그녀의 입에서 쪽지 남겨뒀으니 그대로 하세요, 그런다.

뭔 쪽지? 하면서 나는 내심 철렁, 한다. 한 며칠 있다가 오겠다는 건가? 의문부호를 가득 안고 있는데 그녀는 느닷없이 무슨 밥 잘 먹는 방법에 대해 쪽지를 썼단다. 기도 안 막히다. 내가 무슨 ‘얼라’인가? 식탁 앞으로 가서 보니 고등어 세 토막을 구워 놓았다. 그것을 그냥 먹지 말고 데워서 먹으라고, 나는 아직도 낯설기만 한 전자레인지 사용 방법을 써놓았다. 허헛 참 내, 하면서도 눈물이 나오려고 하는 까닭은, 글쎄, 무엇인지 알면서도 굳이 모르겠다는 생각이어서 그냥 천장이나 잠시 쳐다보고 말았다.

 

▲ 그녀의 준비물

 

한참을 있다가 문득, 벼락처럼, 한 가지 깨달음이 나를 방문했다. 그래, 바로 그것이다. 밥을 잘 먹는 방법에 대해 우리는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밥 잘 먹는 방법이라. 이러한 테제는 너무나 엄숙하고, 서글프기까지 해서 눈물이 펑펑 쏟아질 것만 같다.

내가 내 손으로 내 입에 떠 넣는 한 숟가락의 밥, 이것은 내 몸 안의 뼈와 근육이 힘들다고 뒤틀리는 소리를 내며 땀구멍으로 쏟아낸 땀의 결정이요 오롯이 내 힘으로 이뤄낸 나의 것이다. 그 누가 뭐라 해도 당당하고 떳떳하고 의젓하기만 해서 부끄러움 따위는 티끌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한 존재의 자존감이요 자긍심이 아닐 것인가. 그런 내 몸이 지금 어디의 무슨 시궁창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인가.

명색이 대통령이란 사람이 지금까지 해온 짓을 생각하면 할수록 이가 갈려서 이빨이 다 빠져버릴 지경이지만, 그렇다고 분해하고나 있을 수는 없다. 대통령 하나 몰아낸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이미 아니다. 분명한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도둑들이, 사기꾼들이, 거짓말쟁이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는 자긍심도 자존심도 설 자리가 없다. 이런 엉망진창의 조건을 해소해야 한다.

정당한 노력이 없이 획득한 물적 자산은 이유 불문하고 국고로 환수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법에는 시효를 정해서도 안 된다. 부모가, 조부무가, 그 윗대의 조상이 이뤄낸 부당한 물적 자산 역시 그 방법이 매우 악랄했다면 시효가 없이 무조건 국고로 환수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테면 최순실의 부친 최태민이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취득해서 그 자녀들에게 물려준 물적 자산 일체를, 박근혜의 부친 박정희가 대통령이라는 공적 지위를 이용해서 사적으로 강탈한 정수장학회라든가 영남대학 같은 물적 자산 일체를 국고로 환수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대통령 박근혜와 그 일당들로 하여금 자기 입에 들어가는 한 숟가락의 밥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우치게 해야 한다. 도둑질도 능력이라는 착각으로 툭하면 국민들을 가르치려 들었던 대통령 박근혜가 밉다고 해서 사람 자격까지 박탈해 버릴 수야 없지 않은가. 그 사람을 진정한 한 사람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제 부당자산 환수법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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