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1회

자유언론실천재단은 ‘100만 촛불’이 켜지던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내자동에서 서촌으로 이어지는 골목 인근의 조용한 빌라촌, 재단 사무실이 있다. ‘100만 촛불’의 ‘박근혜 하야’ 함성이 여전히 귓가에 생생하게 울려 퍼진다. 1970년대 유신시대로 대한민국 시계를 돌리려한 박근혜 정권, 속속 드러나는 국정농단의 실체에 분노한 수많은 촛불들에도 아랑곳 않고 여전히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 여기에는 그동안 이런 사실을 제대로 감시하고 알리지 못한 언론의 책임도 크다는 지적이다. 7년 전 MB정권 당시 35위였던 한국의 국제 언론자유지수는 현 정권 들어서 75위로 주저앉았다. 대부분 언론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심지어 청와대 기자단마저 정권들러리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질문도 없는 권력화 된 청와대기자단을 해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이유다.

 

▲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40여 년 전 동아일보 기자로서 혹독했던 박정희 유신독재정권에 저항해 언론자유 수호를 이끈 김종철(72)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은 “어느 나라든 대통령이나 국가원수가 참석한 공식적인 자리에는 경험 많은 기자의 출입이 정상이고 인터뷰를 하는 것이 관례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은 국민의 대변자인 기자들의 손과 입을 묶었다. 기자회견장에서 취재의 필수품인 노트북을 볼 수 없는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또 “기자들을 들러리, 벙어리 기자단으로 만든 박근혜 정권은 안보농단·언론농단·경제농단의 잘못을 모두 최순실 탓으로 돌리고 엘시티로 위기국면을 모면하려다 국민의 역풍을 맞았다. ‘박근혜 게이트’는 개인비리를 넘어 집단적 탐욕과 공직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 그리고 중대한 국가정책을 놓고 사악한 농단을 벌인 것이다. 결국 JTBC가 ‘최순실 태블릿 PC’를 폭로하면서 국민들의 분노가 확산됐다. 그럼에도 국민을 무시하는 오만한 행태는 도를 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정권 3년 8개월 동안 정부가 추진한 정책은 한마디로 파탄지경이다. 국민안위와 국가안보는 풍전등화의 기로에 서 있다. 위안부 졸속합의와 사드 배치, 개성공단 폐쇄 등으로 국가의 자존은 추락했고 경제는 무너졌다. 게다가 이런 시국을 틈타 서둘러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체결한 것을 두고도 국민들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 하지만 사상 초유 국정농단의 ‘피의자’가 된 대통령은 귀 막고 눈 닫은 모양새다.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 김종철 이사장을 자유언론실천재단 사무실에서 만나 40여 년 전 유신치하 동아투위 사건 당시의 상황과 현 정권의 국정농단 사태, 우리 언론의 현실, 급변하는 국제정세 등등 얘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심층인터뷰 전문이다.

 

 

-40여 년 전 박정희 유신독재 당시 언론 상황은 어떠했는가.

▲ 1961년 5월 16일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국정지표로 ‘반공과 경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반공을 명분으로 정치적 반대세력을 탄압했고, 경제성장을 통해 국민지지를 얻겠다는 계산이었다. 그런데 1970년대 반공전선과 경제성장에 위기가 생겼다. 1960년대 말부터 동북아 냉전구도에 해빙 붐이 불면서, 반공을 정권안보의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던 박정희 정권에 치명타를 주었다. 불안해진 박정희는 1972년에 국민을 옭아맬 ‘유신헌법’을 선포한다. 암흑기가 다시 도래했다. 정치·경제·사회·언론 등 각 분야가 유신체제에서 숨을 죽였다. 1972년 당시 동아일보에 있을 때, 사주인 김상만 사장은 과도할 정도로 독선경영을 하고, 기자들과 사원들에게 심한 인격적 모욕을 가한 인물이다. 한마디로 언론독재자였다. 그가 있는 한 정부 비판 기사는 꿈도 못 꾸었다. 그런데 그해 4월 3일 중앙정보부가 민청학련, 인혁당 사건을 발표했다. 중앙정보부가 고문을 통해 조작한 사건이었다. 그런데도 이런 진상을 한 줄도 쓸 수 없었다. 2년 후 1974년 8월15일 국립국장에서 광복절행사 도중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 총탄을 맞고 사망한 시기에, 백기완·장준하 선생을 괴롭혔던 긴급조치 4호에 대해 위헌판결이 내려지자 구금이 해제됐다. 민청학련, 인혁당 관련자들도 중정의 고문조작을 주장했지만 언론들은 보도를 못했다. 이런 상황에 언론인들은 계속되는 유신정권의 언론탄압에 맞서다 결국 1974년 3월에 언론노조를 결성했다. 당시에 중앙정보부 등 공안원들이 동아일보사에 상주했는데, 기자들은 기관원들의 언론사 출입을 막았다. 그때 동아일보가 10.24 자유언론수호를 선포하고 민청학련, 인혁당 사건을 과감하게 보도했다.

 

 

-광고 게재를 막고 폭력배까지 동원했다는데.

▲ 사태가 이렇게 진전되자 ‘동아일보 대(對) 박정희’로 구도가 형성됐다. 동아일보가 먼저 진실보도를 하면서 다른 언론들도 자유언론선언을 하고 뒤늦게 따라왔지만 쉽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동아일보에서의 언론자유운동이 커지면서 천주교와 기독교계의 양심적 인사들이 이슈화시키자 박정희 정권은 최대위기를 느꼈다. 영구집권을 꾀하던 유신정권에 동아일보가 도전을 한 것이다. 그러자 중앙정보부가 동아방송과 동아일보에 광고를 내지 못하도록 대기업 광고주들에게 압력을 넣었다. 신문광고가 처음에는 조금 있다가 나중에는 거의 없어졌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동아일보 언론인들이 얼마 안 되는 월급을 갹출해서 광고를 내기도 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국민들이 동아일보 돕기 후원을 하면서 숨통이 다소 트였다. 심각해진 박정희는 이 문제를 국민표결에 부쳤다. 박정희 신뢰냐 동아일보 신뢰냐를 투표에 부친 것이다. 사실 이것은 동아일보와의 싸움이지 국민투표에 부칠 일이 아니었다. 결국 사태수습을 위해 시국양심수 200명을 석방했지만, 3월 초부터 동아일보가 노조간부들을 대량해고하자 이에 저항해 동아일보 출판국과 동아방송 사원들이 신문제작과 방송을 거부했다. 그렇게 1주일 지났을 때 사측이 폭력배 200명을 동원, 새벽녘 사내로 강제 침입해 기자와 아나운서, 프로듀서, 기자 등 160명이 쫓겨나면서 해직됐다.

 

 

-그 후 어떻게 됐나.

▲ 쫓겨난 160명 중에 일부 간부급 기자들은 회사 측 회유로 등을 돌렸지만, 남은 113명의 기자들이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를 결성해 지금까지 오고 있다. 42년이 지나는 동안 25명이 세상을 뜨고 88명이 남았다. 이들은 70세가 넘은 원로가 되었다.

 

 

-당시와 비교했을 때 지금 우리의 언론은 어떻다고 보나.

▲ 정론직필(正論直筆) 한 길을 걸어온 우리세대가 볼 때 현재 언론은 매우 위중한 상태다. 국민 앞에 제대로 서지 못했다. 조선·중앙·동아일보와 JTBC를 뺀 종편방송 채널A와 TV조선이 2012년 당시에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을 섰다. 이명박 정권이 미디어악법을 통과시켜 태동한 종편들이 주로 노인층을 대상으로 온 종일 정권유지 차원의 세뇌 방송을 해왔다. 그러다 지난 7월 조선일보가 우병우 사건을 보도하고, TV조선도 같이 터트렸지만 반응이 없었다. 9월에 한겨레신문이 미르재단과 K스포츠 사건을 알리면서 여론이 본격화됐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우병우 건으로 잠시 엎드려 있다가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노골적으로 ‘안티 박근혜’로 돌아섰다. 보수언론 중에 조선일보는 정보도 가장 많고 정치적 공작을 잘하는 신문이지만 국민들의 신뢰도는 낙제점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대하는 보수언론의 태도 어떻다고 생각하는가.

▲ KBS·MBC·연합뉴스·YTN을 제외하고, 모든 언론들이 ‘최순실 사태’를 ‘박근혜 게이트’로 몰아갔다. 박근혜 대통령을 식물정부로 만드는데 조·중·동이 발 벗고 나섰다. 그러다가 JTBC가 결정적으로 ‘최순실 PC건’을 터트렸다. 박 대통령이 주장한 개헌론 이슈가 한창 뜨거웠을 때다. 모든 언론들이 박근혜 때리기에 나섰다. 평상시 기회주의적인 언론들이었지만, 박근혜 게이트를 알리는 데는 어느 정도 기여를 했다. 미디어라는 속성은 하루하루 어떤 보도를 하느냐에 따라 국민들의 평가를 받는다. 지금 조·중·동과 종편 등 언론은 현 정권에 대해 등을 돌린 상황이다. 만일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를 한다면 조·중·동 등 보수언론들이 기회를 잡아 다시 극우세력 정권을 만들 공산이 크다. 그러면 민주진보진영은 보수진영에 맞서 재집권을 극렬히 막으려 할 것이고, 보수 세력들 또한 집권에 사활을 거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2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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