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 광화문에서 그녀가 찍어온 집회현장

 

대통령 박근혜와 그 일당들을 잡으러 간다고 보무도 당당하게 집을 나서는 그녀에게 한 시간 간격으로 문자를 보내 달라고 했더니 드디어 문자가 왔다.

“지금 출발해요. 버스가 꽉 찼어요.”

너무도 간단한 문자 같지만 그 간단함 속에 무수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그 무수한 이야기가 나를 설레게 한다. 동참하는 모든 사람들이 각자 현금 이만 원씩을 내기로 하고 대절한 버스가 꽉 찼다는데 어찌 설레지 않을 수 있으랴. 평소에는 갯벌 일을 끝내고 돌아오면 온 몸이 흐느적거리는 탓에 한 시간 정도 눈을 감고 있어야만 다른 일을 할 수 있었는데 오늘은 아무렇지도 않다. 하나도 피곤하지 않고 활기가 넘치는 것이 마치 순식간에 스무 살 청년이라도 돼버린 것 같다.

“서울 도착하면 어디에 주차를 해야 하는지, 벌써부터 걱정들이에요. 그래서 각자 아는 사람한테 전화를 해서 알아보느라 야단들이에요.”

출발과 동시에 도착지의 상황을 점검해야 할 정도로 그렇게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서울로, 서울로 향하고 있다는 그녀의 문자를 보고 있노라니 아, 87년 6월의 그 감격이 생각난다. 신설동에서 종로를 거쳐 청계천, 을지로, 퇴계로를 횡단해서 남대문으로 거기서 다시 광화문으로 그렇게 온 종일을 쏘다녔어도 몸이 피곤한 줄을 모르고 계속 팔팔하게 뛰었던 그날, 그날의 감격은 아마도 내 생애 최고의 기억으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삼십육 년 동안을 그렇게만 생각했었는데, 그랬는데 이제 그 기록을 갈아치울 때가 됐나 보다.

마음이 자꾸 푸르러지는 이런 날은 눈을 감고 누워 있을 수가 없다. 눈을 크게 뜨고 책을 볼 수도 없고, 인터넷 서핑에 취해 시간을 잊어버릴 수도 없다. 그렇다고 어디 가서 술을 마실 것인가. 아니다. 일을 해야 한다. 그녀의 옆자리에 혹시라도 잘생기고 기술도 좋은 남자 따위가 앉아서 수작을 벌이는 일이 없기를 기원하면서, 그녀가 구워놓고 간 고등어 반찬으로 밥을 한술 떠먹고 밖으로 나와서 고양이들과 잠시 놀아주는 척하다가 집 짓는 공사에 나섰다.

삼 년여 전부터 구상해 온 공사였다. 궁리하는 데만 삼 년이 걸렸고, 시작한 지도 벌써 다섯 달이 흘렀지만 아직도 기초에 머물러 있는 이 공사는 앞으로 또 몇 년이 걸릴지 나도 알 수 없다. 삼 년 전에는 흙으로 온돌방을 만들겠다는 것이었지만, 이런 이유 저런 이유 온갖 이유로 취소하고 돌과 시멘트로 견고한 안가를 구축한다는 쪽으로 완전 바뀌었다.

안가를 구축해서 뭘 하겠다는 것인지는 나도 아직은 모른다. 이런 혼잡한 시대를 그나마 사람으로 살고자 한다면 벙커 수준의 안가가 필요하다는 식의 밑도 끝도 없는 예감이랄까 생각 같은 것이 있을 뿐이다. 어쨌든 이 전대미문의 건축공사를 위해서 그동안 들인 나의 고민과 노력과 상처가 얼마인지 아직은 감도 잡을 수 없지만, 내 생애 마지막 작품(?)이라는 각오가 깃들어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 공사중인 나의 안가

 

모름지기 일이란 즐겁게 해야 한다. 심신이 너무 지치게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육체를 동원해서 하는 일은 세 시간 정도가 적당하다. 중노동을 세 시간 이상 하면 몸이 피곤하고, 그러면 정신도 혼미해져서 자꾸 짜증이 나는 법이다. 그런 개똥철학을 갖고 있는 내게 갯벌 작업은 참으로 좋은 일이었다. 물이 나가면 따라서 나갔다가 물이 들어오면 앞장서 나오는 것이니 짧을 때는 작업 시간이 한 시간도 채 안 되고, 길다 해봐야 기껏 세 시간 남짓이다. 이 얼마나 자연의 법칙에 부합되는 일인가 말이다. 하물며 내가 내 집 뒤뜰에 벙커 수준의 내 방 하나를 더 만드는 작업을 하면서 내 몸을 혹사할 것인가.

물론 세 시간이 절대적 기준인 것은 아니다. 어떤 때는 세 시간을 넘어 네 시간, 다섯 시간 동안 일에 몰두하기도 한다. 그렇게 했는데도 힘들지 않고 오히려 즐겁다면, 그대로 된 것이다. 나의 그녀가 거짓말쟁이 도둑들을 몰아내려 서울로 떠난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오늘 같은 날은 아마 밤이 늦도록 일을 해도 피곤한 줄을 모를 것이다.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한참 돌을 쌓고 있는데 전화기가 신호를 보낸다. 벌써 한 시간이 지났나 보다. 전화기를 찾으러 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녀의 활짝 웃는 얼굴이 사방에서 폴짝폴짝 뛴다.

“고속도로가 완전 꽉 찼어요. 쌩쌩 달리지도 못 하고 천천히 행진하듯이 달리는 자동차 중에 삼분의 일은 창문에 탄핵, 물러가라, 퇴진하라, 등등의 문구를 붙였네? 아이 참, 전쟁하러 나가는 기분이에요.”

“아이고 전쟁, 전쟁이라고? 그렇다면 이기고 돌아와 줘. 지고 오면 안 돼 아찌?”

“으응.”

그녀는 기분이 최고조에 이르면 그렇게 장음으로 으응, 하는 표현을 쓴다. 그런대로 낙낙할 때는 말 잘 듣는 아이처럼 네에, 하고, 살짝 화가 났을 때는 아무런 감정 없이 알았어요, 하고, 시쳇말로 기분이 엿 같아졌을 때는 비에 젖은 돌 같은 목소리로 몰라요, 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무엇 하나 숨기지를 못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기분 하나까지도 숨기지를 않고 적나라하게 드러내놓고 다니는 그녀는 화장도 안 한다.

 

▲ 광화문에서...

 

화장도 안 하는 ‘내여자’ 그녀는 대통령 명함을 갖고 있는 박근혜를 내가 아는 한 이 세상에서 가장 미워한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세월호 참사가 있기 전까지는 미워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았었다. 그냥 뭐 여자 대통령이 생겼구나 하는 정도였다. 그런 그녀가 세월호 참사 이후 확 변해버렸다. 삼백 명도 넘는 엄마들을 그렇게도 처절하게 울려놓는 대통령은 대통령은커녕 사람도 못 된다는 게 그녀의 주장이었다.

그런데 사람도 못 되는 대통령이 꼴에 대통령 노릇을 한답시고 사고까지 쳤다. 사고도 보통이 아닌 대형이다. 게다가 지저분하기까지 하다. 명색이 대통령이란 자가 동네 양아치만도 못한 짓으로 국민 세금을 처먹어대며 통일에의 희망까지 깨부수고 있었으니 이걸 대체 무슨 버러지라고 이름 붙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고속도로 휴게소가 꽉 찼어요. 화장실을 가야 하는데 들어갈 수가 없어서 포기하고 다음 휴게소로 가는 중이에요.”

그새 또 한 시간이 지났다. 간단한 그녀의 문자 한 줄이 나로 하여금 온갖 상상을 해보게 한다. 자동차가 빨리 달릴 수 있게끔 만들어놓은 고속도로에서 자동차들이 빨리 달리지도 못하고 천천히 행진하듯이 달리다가 잠시 휴게소에 들어가고자 하지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선 자동차들 때문에 엄두를 못 내고 다음 휴게소를 기약하며 계속 천천히 달려야만 한단다. 당사자들이야 당연히 두 발을 동동 구르는 심사들이겠지만,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보기나 할 뿐인 나로서는 그저 감개가 무량하기만 하다.

대나무를 잘라서 뾰족하게 깎아 들고 밤길을 행군하는 동학농민군들의 횃불이 내 머릿속에서 춤을 춘다. 고창의 무장면과 상하면에는 그 당시 농민들이 대나무를 잘라서 뾰족하게 깎았던 장소가 보존되어 있다. 그리 명예로운 역사의 현장은 아니다. 혁명이라는 장엄한 단어보다는 저항이라는 처절한 단어를 먼저 생각해야 하니 오히려 수치스럽다는 느낌조차도 있다. 피로 시작해서 피로 끝나버린 저항, 저항이라는 단어는 그 얼마나 서글픈가.

역사에 가상이란 없다지만, 만약에 그 당시 농민들의 처절한 저항이 끝내 성공해서 장엄한 혁명으로 빛을 보았다면, 그랬다면 일제치하 삼십육 년 따위는 당연히 우리의 역사에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 당시 관료들은 썩을대로 썩어버려서 사리분별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제 나라 민중을 죽이는 데 일본을 끌어들였고, 종당에는 그 일본으로 하여금 제 나라를 먹어버리게 했다. 먹어버리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개가 되어 불행한 민중들의 등골 빼먹기를 일로 삼았다.

 

▲ 그녀가 찍어온 현장

 

바로 그들, 일제에 부역했던 자들이 일제가 퇴폐해서 물러간 뒤에는 해방을 외치며 거리를 활보하더니 기어이 주인 노릇을 시작했고, 그 뻔뻔함과 후안무치를 자식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주었다. 사람이 사람답다면 차마 그따위 것들을 유산이랍시고 물려주지는 않았겠지만, 인간들의 머릿속이 워낙 혼미하다보니 새끼들마저 그렇게 못 되게 키우고 말았다. 그리하여 그 자식들이, 그 새끼들이, 자신의 입에 처넣는 한 숟가락의 밥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는지조차 모르는, 할 줄 아는 것이라곤 남의 것 빼앗는 재주밖에 없는 그것들이 이 나라의 모든 것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너무너무 기형적인 구조의 고착화를 낳고 말았다.

“서울에 도착했는데요. 나만 혼자 뚝 떨어지고 말았어요.”

오후 2시에 날아온 그녀의 문자가 나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이게 뭔 소리냐. 함께 버스를 타고 간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고? 이런 질문을 한가하게 문자로 할 수 없어 전화를 했더니 그녀 왈 “다들 짝이 있었거든요” 한다. 버스에 탄 사람들이 대부분 가족 단위거나 친구끼리거나 하여튼 두 명 이상씩이었는데 불쌍하게도 나의 그녀만 혼자서 달랑 그냥 혼자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금호역 근처 아파트 주차장에 버스를 세웠거든요. 여기서부터는 각자 알아서 행동하고 밤에 다시 모여서 내려가자는 거지 뭐예요.”

“아이구야, 그래?”

말문이 막힌다. 버스에서 아는 사람을 한 명도 못 만났다. 게다가 혼자 온 사람은 그녀뿐이었다. 버스 안에서는 그나마 대화도 하고 어울릴 수 있었지만 서울에 도착한 뒤에는 그것조차도 아니었다. 가족이건 친구건 모두가 동행이 있어서 하나둘씩 죄다 떠나 버렸다는 것이다. 서울이 초행은 아니라지만 갑자기 혼자가 돼버린 그녀는 아마 순간적으로 극도의 외로움을 느껴야만 했을 것이다. 내가 마치 그녀를 알 수도 없는 어딘가 어둠 속으로 떠밀어버린 것만 같다. 일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함께 갈 걸 그랬구나, 하는 후회가 와락 밀려온다.

두 시간쯤 뒤에 다시 통화를 했다. 혹시라도 풀이 죽어 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한 자락 깔고 조심스레 어디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뜻밖에도 팔팔하게 신나는 목소리로 “여기 광화문, 광화문, 광화문, 성호랑 함께 있어요” 한다.

 

▲ 역시 그녀가 찍어온 현장

 

서울에서 ‘선생질’ 할 때의 제자를 불러냈단다. 그녀가 선생질을 할 당시 그 녀석은 중학생이었지만 지금은 대학생도 아니고 군복무까지 의경으로 마친 어엿한 성인 남성이다. 나도 그 녀석을 한 번 보기는 했지만, 기분이 살짝 이상해지려 한다. 팔짱 끼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는 보나마나 그 녀석과 팔짱을 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 녀석은 나보다 키가 훨씬 크다. 덩치도 훨씬 좋다. 키도 크고 덩치도 좋은 그 녀석과 팔짱을 낀 그녀는 아무래도 종종걸음을 쳐야만 할 것이다. 그 녀석이 느긋하게 한 걸음을 떼고 있을 때 키가 작은 그녀는 최소한 두 걸음을 떼야 하니 필연적으로 종종걸음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런 그림을 부지중에 상상하며 눈을 깜빡거리고 있는 나, 그런 나를 내가 돌아보니 참 못났다.

“이런 바보 맹꽁이 같은, 이런 시국에 그런 넋나간 질투가 나오냐?”

민망하다. 민망해서 내가 나를 탄핵하기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부끄러운 마음에 작업을 중단하고 방으로 돌아와서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해서 광화문 현장을 중계하는 매체를 찾아들어갔다. 그때부터 한 시간, 두 시간, 다섯 시간, 장장 여덟 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그 사이에 그녀는 옛 제자와 헤어져서 다시 대절버스를 탔고, 새벽 두 시가 넘어 고창에 도착했다. 그녀가 버스 안에서 깜빡 잠이 들었던 까닭에 통화가 늦어졌다. 뒤늦게 마중을 나가서 보니 그녀 혼자 군청 앞에 서 있다.

그녀도 배가 고프고, 나도 역시 배가 고팠다. 김밥 집으로 들어가서 간단한 요기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네 시가 넘었다. 오늘 갯벌 작업은 새벽 다섯 시 반에 출발해야 한다. 잠을 자면 안 되는 시간이었다. 잠 한숨 안자고 기다렸다가 갯벌 작업을 마치고 돌아오니 내 몸이 내 몸 같지가 않다. 그래도 정신은, 시인 동주의 표현을 빌리자면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넉넉히 괴로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토록 괴로워해야 하는가.

 

▲ 그녀의 목소리

 

사람은 하고자 하면 못할 일이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사람은 해도 괜찮은 일과 하면 안 되는 일을 스스로 정해놓고 살아간다. 사람은 홀로 고독하게 숲속을 탐험하는 호랑이와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사람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혼자보다는 둘이 있을 때 재미있고 둘보다는 셋, 넷, 다섯, 열, 스무 사람이 함깨 어울릴 때 신나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을 사람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이심전심으로 정해놓은 대원칙이다.

우리는 그것을 부끄러움이라고 말한다. 부끄러운 짓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 부끄럽게 살지 말자는 것이다. 인간의 삶에서 부끄러움을 제거한다면 그것이 곧 짐승이라는 것이다.

부끄러움 중에 가장 큰 것은 거짓말이다. 미국의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을 일으켰을 때 그를 탄핵한 근거는 워터게이트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런 사실이 없다고 주장한 그의 거짓말이었다.

공직자들의 거짓말은 그 미치는 해악이 심대하다. 삼태기로 하늘을 가리겠다고 덤비는 대통령 박근혜와 그 일당들의 거짓말에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정서적 공황에 빠져 있는가를 생각하면 그들은 삼족을 멸한다 해도 그 벌은 약하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 거짓말 방지나 예방에 관한 법률이 없다. 이제라도 그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법이 만능은 아니라 해도, 최소한 거짓말이 용서받지 못할 범죄라는 인식 정도는 심어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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