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일꾼> 황인철 칼럼

창세기의 선악과만큼 많은 호기심과 질문을 가져오는 주제도 드물 것이다. 하느님은 왜 만드셨는가, 선악과를 먹은 것이 왜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정도로 큰 죄였는가, 선악과의 정체는 어떤 과일인가 등등. 창세기에 실린 설화는 그 상징에 대한 풍부한 해석이 뒤따른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오늘날 어떤 의미를 던지는지 결국 현재 우리의 삶의 ‘지평’ 속에서 새롭게 해석되게 마련이다.

안병무 박사는 민중신학을 개척한 선구자다. 그는 1970-80년대 한국 사회에서 극심한 불평등과 억압으로 고통받던 ‘민중’의 시각에서 성서를 새롭게 해석하였다. 그동안 30-4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시대는 30-40년 전으로 다시 회귀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민중신학은 새로운 의미로 읽힐 수 있다. 안병무 박사는 선악과에 대한 독창적인 시각을 제시한다. 그는 금단의 열매를 먹은 죄는 바로 “공(公)을 사유화한 죄”라고 설명한다.

"(금단의 열매)는 사유화해서는 안 되는 것, 성서의 표현대로 말하자면, <하느님의 것>일테고, 사회학적으로 말하자면 "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公은 바로 사유화할 수 없는 것, 사유화해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합니다. 하느님은 창조주입니다. 따라서 모든 것은 다 하느님의 것입니다. 즉 公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누구도 사유화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하느님의 것을 사유화 또는 독점하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까닭은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 즉 公을 파괴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안병무 <민중신학이야기> 중에서)

 

▲ 사진=한상봉

 

하느님은 에덴동산의 인간에게 많은 자유와 축복을 주셨다. 그리고 단 한가지의 금지를 명하셨다. 인간에게는 지켜야 할 한계가 주어졌다는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 한가지 한계마저 참지 못했다. 안병무 박사는 그 한계가 바로 “어느 누구도 사유화해서는 안 되는, 독점할 수 없는, 그러므로 내 것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 다시 말해 “公”이라고 말한다. 이 “공”을 침범할 때 인간은 더 이상 낙원을 향유하지 못하고 추방된 것이다.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주권이 어느 한 사람, 또는 소수의 사람에게 있지 않고, “모든 국민”에게 있는 정치체제가 바로 민주공화국이다. “공(公)”적인 가치를 지키는 데에 있어서, 현재까지 인류가 고안한 정치체제 중 가장 효과적이라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바로 민주공화국이다. 그렇기에 공화국(共和國)은 공화국(公和國)이기도 하다.

2016년,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 공화국의 붕괴, 민주주의의 붕괴를 경험하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국민의 권력을 사사로운 이익을 탐하는 소수에게 통째로 넘겨준 사건이다. 비록 합법적일지라도 권력이 한 사람(대통령)에게 집중될 때,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확인했다. 공화국의 붕괴는 공의 사유화라는 결과를 낳는다.

"권력은 원래 하느님에게만 속했다는 것이 성서의 기본전제이다. (중략) 그런데 이 공적인 권력이 사유화된 것이 왕권으로 시작되는 권력의 독점체제이다. 권력의 사유화, 그것은 언제나 폭력으로 이루어졌다. 왕권이나 현금의 독재자라는 것은 바로 이 공적인 것을 폭력으로 찢어버리는 자들이다."(안병무)

땀흘려 일하는 노동자의 몫은 소수의 재벌들이 차지하고, 온 국민의 먹거리는 다국적 곡물기업들에 빼앗기고 있다. 평등한 교육의 기회는 특권계층의 부정에 농락당한다. 정치, 경제, 외교, 국방 어디든 소수가 뻗친 탐욕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공화국이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휘청이는 사회에서는 자연도 남아나지 못한다.

하늘과 땅, 물과 공기, 숲과 동식물이야말로 공(公)적인 것이다. 어느 한 사람의 것도 아니고, 현 세대만의 것도 아니다. 더군다나 인간이라는 종, 호모 사피엔스 만의 것도 아니다. 지구는 인간과 그 안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 “공동의 집”이다. 하지만 인류 역사 속에서 항상 권력자는 자연을 탐해 왔다.

근대 이전 농업국가에서 하천의 관개시설은 한 사회 경제의 근간이었다. 또한 석탄과 석유를 이용하기 전, 숲(나무)은 핵심 에너지원이었다. 물과 에너지를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했다. 현대에는 또다른 형태로 자연을 착취하고 있다. 자연은 자본증식을 위한 먹잇감, 돈벌이를 위한 수단이 되었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사업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국립공원케이블카 사업도 다르지 않다. 특히 박근혜 정부의 산악관광개발 뒤에는 전경련과 최순실의 측근들이 있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모두가 더불어 받을 수 있는지는 몰라도 사유화해서는 안되는 것이 '공' 또는 공적인 것이다. 가령 하늘은 공이다. 하늘은 어느 누구도 사유할 수 없다. 땅도 본래는 공이다. 그것을 경작하고 그 소산을 나누어 먹을 수는 있으나 사유화할 수는 없다.” (안병무) 

환경문제는 그저 환경문제가 아니다. 환경과 사회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숨쉬고 살아가는 근본 토대를 지키는 것과 민주공화국을 바로 세우는 것은 다르지 않다. 지난 주말 180만의 촛불이 광장을 메웠다. 저 에덴동산의 금단의 열매로부터 시작되어 인류 역사만큼이나 뿌리 깊은 죄, 바로 ‘공(公)의 사유화’에 맞선 싸움이다.

뿌리가 깊은 만큼 싸움은 길고 힘들 것이다. 대통령 한 명 바꾼다고 될 일이 아니다. 재벌, 검찰, 보수언론, 기득권정당 등 공범과 부역자들의 수가 만만치 않다. 그리고 그들은 여전히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 나아가 그 힘을 유지하게 하는 정치 경제 시스템은 철옹성처럼 단단하다. 우리가 더 많은 초, 더 지혜로운 초, 더 오래 탈 수 있는 초를 준비해야만 하는 이유다.

<황인철님은 녹색연합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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