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파노가 김기춘 스테파노에게
스테파노가 김기춘 스테파노에게
  • 가톨릭일꾼 김유철
  • 승인 2016.12.06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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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일꾼> 김유철의 Heaven's door
▲ 성 스테파노의 순교: 안니발레 카라치, 1603-04, 40×53cm, 파리, 루브르.

우리는 같은 ‘스테파노’일까?

<성경>이라는 것이 있지. 거기에 보면 내가 기록되어 있더군. 아마도 루카가 지었다는 사도행전 7장에 보면 나의 최후가 기록되어 있어. 부활한 예수를 따르던 공동체는 나를 첫 순교자라고도 부르고 그 이후 내 이름이 천주교회에서는 세례명이 되어 오래도록 세상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그것이 좋은 일인지 어쩐지는 나로서는 판단할 수 없었어. 단지 내 이름, 즉 ‘스테파노’로 산다는 것이 영광스럽기 보다는 해야 할 일이 많을 것이고, 가야할 길은 고단한 봉사의 길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네.

그리고 가끔가다 그 이름을 가지고 있던 자들을 이곳에서도 만나기도 했지. 물론 아주 드문 일이야. 한국교회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103위 성인과 124위 복자 안에도 각각 한 명씩 내 이름을 세례명으로 쓰는 것으로 봐서는 내 이름을 가졌다고 다 나처럼 최후를 맞이하는 것은 아닌 모양일세.

▲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한국교회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던 김수환 추기경도 내 이름을 썼던 모양인데 아직 만나지는 못했어. 암튼 기춘 스테파노, 아직 이곳까지 오기는 지상에서 남은 시간이 있겠지만 내 이름값을 하려면 남은 시간이 부족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오늘 내가 인간의 글을 빌려 편지를 보내는 거야. 먼저 퀴즈1 일세. “우리는 같은 스테파노일까?”

다시 <성경>을 볼까. 내가 성경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나 살아있을 때는 토라를 비롯해 예언자들의 말씀이 담긴 양피지 두루마리가 있었지만, 예수 부활 이후에 나온 이른바 새로운 약속이라는 <신약>이 교회에서는 전가의 보도처럼 여기고, 또한 지금도 교회의 전례에 중심이기도 하니 내가 하는 말일세. 거기에 보면 내가 사도들에게 선발되는 기준을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사도6,3)이라고 했지. 아마도 기춘스테파노, 자네가 부산의 명문고등학교와 서울의 초일류대학을 다니던 중 대학3년생이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할 정도면 공부실력만 보고 판단하는 자네 주변의 평판이 그와 비슷했을 거라고 미루어 짐작이 가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우리는 같은 ‘스테파노’일까?

‘봉사’는 무엇일까?

그런데 애당초 사도들이 나를 선발한 목적이 공동체를 위하여 “봉사를 하는 것”(사도6,2)이었지. 훗날 교계제도가 생겼을 때 사람들은 나를 ‘부제’라고도 일컬었지만 나는 그런 직급과 관계없이 공동체에 봉사하는 소임에 충실했던 거야. 아마 자네가 젊은 나이에 검사로서 임용될 때 선서를 했을 거야. 머리 좋은 자네니까 ‘검사의 선서’가 이것 비슷한 말로 되어 있는 것을 기억할거야.

“나는 이 순간 국가와 국민의 부름을 받고 영광스러운 대한민국의 검사의 직에 나섭니다.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고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를 지키라는 막중한 사명을 부여 받은 것입니다. 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 할 것을 나의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합니다.”

방금 말한 ‘검사의 선서’에도 ‘봉사’가 들어있군. 자, 그렇다면 퀴즈2 일세 “봉사는 무엇일까?”

선서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지금 온통 한국을 쑥대밭으로 만든 대통령이란 사람도 취임을 하던 당시 이렇게 말을 했지.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지금 말한 대통령 선서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근간인 헌법69조에 하라고 나와 있는 강제조항이고, 대통령은 그 선서에 대한 준수의 의무가 있는 것이지. 기춘스테파노, 자네가 법대를 나오고 오래도록 법조인으로 있었으니 한번 보시게. 현재의 대통령이 헌법69조에서 말한 선서대로 하고 있는 지를 말이야. 하기는 자네가 이미 젊은 시절 ‘유신 헌법’이라는 것의 초안을 작성하는데도 참여하였다니 헌법이 무엇인지는 나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을 거야.

‘법’이란 무엇일까?

며칠 전 박지원이란 정치인이 자네를 ‘법률 미꾸라지’라고 말하더군. 아마도 그것은 법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 법 혹은 법의 허점을 잘 알고 있기에 ‘법대로’하면 빠져 나갈 것처럼 말했지만 진정 ‘법대로’로 하면 빠져 나갈 길이 없으니 이쯤해서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집착을 버려야 할 거야. 예수보다 훨씬 오래전 사람이었던 중국의 노자란 분이 일찍이 했던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疏而不失)’이란 말을 아시는가? 법조인들은 한문에 능통하니 “하늘의 그물은 크고 넓어 엉성해 보이지만 놓치지 않는다”는 뜻도 잘 알거라고 생각하네. 세 번째 퀴즈를 이쯤해서 내줄까? “법이란 무엇인가?”

자네가 얼마 전 했던 이 말을 기억할걸세. “보고 받은 일 없고, 알지 못합니다. 만난 일도 없고, 통화한 일도 없습니다.” 지난 11월 3일 박정희 100주년 관련 모임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기자들이 최순실과 관련한 보고 받은 일에 대한 질문에 자네는 ‘한 마디’면 될 것을 ‘네 마디’나 하더군. 묻지도 않은 일까지 부인 하는 것을 보고, 한마디로 오버하는 것을 보고 난 그 때 알았어. 내가 체포되어 최고의회에 갔을 때 사람들은 내 얼굴이 ‘천사의 얼굴’(사도6,15) 같다고 했지만 그 날 자네는 전혀 다른 얼굴이더군.

그대, 예수를 믿는가?

‘스테파노’로 산다는 것은 밥 먹을 때 성호 긋고, 부자나 높은 성직자들과 자주 만나고, 고준담론으로 평생을 사는 일이 아닐세. 그랬으면 애초에 나의 주님인 예수를 만나지 않았어야 할 거야. 주님이 자네를 거두어주고, 안아주고, 품어준 이유는 따로 정해져 있을 거야. 더욱이 내 이름 ‘스테파노’를 세례명으로 정하고 나를 주보성인으로 생각한다면 달리 살았어야 할 거야. 거듭 말하지만 나에 관해서 교회가 증언하는 것은 루카가 적은 사도행전 6장과 7장이 전부이지만 그것만 해도 내가 어떤 길을 걸었고, 어떻게 주님을 증언했는지 알 수 있을 걸세.

어찌 보면 자네는 ‘교회’의 모범신자일 수도 있겠지만 그리스도 신앙은 계명을 잘 지키고, 잘 바치고, 총애를 받아 자기 한 사람 잘 되는 길이 아니네. 그것은 내가 살던 유대교 지도자들이 가르치던 바였지. 그러나 나의 주님은 전혀 다른 주장을 하셨네. 그분은 그것 때문에 당신의 목숨을 잃었어. 예수는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불렀네. 주님은 가난한 사람, 굶주리는 사람, 우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가르치셨네. 자네도 그러한가? 그 말에 동의하고 가난한 사람, 굶주린 사람, 우는 사람들과 함께 행복의 길로 가고 싶은가? 마지막 퀴즈일세. “예수를 믿는가?”

머잖아 우리가 만나겠지만 부디 ‘스테파노’로서 만나길 기대하네.

어느덧 병신년의 끝이 보이네.

<시인, 한국작가회의, ‘삶 예술 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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