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리영희상’수상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1회

경제규모 세계 11위. 산업재해발생률은 최고 수준. 한국은 1년에 3000여 명이 산재로 사망한다. 세계 최고다. 그런데도 산재·보건·직업병 등에 대한 정부 태도는 안이하기만 하다. 석면으로 인한 갖은 질병과 직업적 백혈병, 최근의 가습기 살균제 문제는 물론이고 원전 등 국민의 보건환경과 생태환경에 대한 정부 관료들의 인식과 대응 태도는 제로수준이다. 역대 정부들은 하나같이 노동자들의 희생에는 눈을 감은 채 거대자본의 대변자 역할에 치중했다. 단적으로 지난해 온 사회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메르스(MERS)’ 사태 당시 무능대처로 질타를 받았던 복지부 장관, 그리고 수백명의 생명을 앗아간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대한 뒷북 대응과 환경부 장관의 상식 이하의 발언 등이 반증이다. 이렇듯 보건환경 문제는 물론이고 직업병까지 정부의 정책은 후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2013년에 정부가 민관합동으로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손상조사위원회를 만들었다. 여기서 저는 위원회와 같이 공동위원장을 맡으면서 조사를 했다. 이듬해인 2014년 살균제와 폐 손상의 인과관계를 공식적으로 밝혀냈다.”

2012년 한국환경보건학회 학자들과 함께 가습기 살균제 피해 역학조사에 나섰던 백도명(60)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의 얘기다. 그는 이후 6개월에 걸쳐 조사를 진행했고, 모두 95건의 역학조사를 통해 원인을 규명해낸 보고서를 통해 정부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원인규명의 ‘키맨(Key Man)’이었던 셈이다. 국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이로써 첫 발생 이후 8년 만에 원인을 규명해낼 수 있었다.

1992년 미 하버드대에서 산업보건학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한 백 교수는 당시 한국사회의 열악한 환경과 보건·노동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피해자들 돕기에 헌신하기로 결심했고, 이후 환경보건시민센터 공동대표까지 겸하면서 동분서주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 11월 30일엔 제4회 리영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석면 문제는 물론 극악무도한 작업 환경으로 인한 노동자들의 백혈병, 가습기 살균제 문제 등 어려웠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원인도 모른 채 질병에 신음해야 했던 노동자들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정의로운 사실을 밝혀내온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한국의 낙후했던 노동·환경·보건·직업병 등의 문제점을 정부와 국민들에게 일깨워준 ‘헬스 파이오니아(Health Pioneer)’ 백도명 교수에게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인 산업보건과 직업환경문제에 대해 들어보는 자리를 만들었다. 다음은 심층인터뷰 전문이다.

 

 

- 미국에서 산업의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뒤 환경노동·보건문제에 투신했다.

▲ 1992년 귀국해서 본 한국은 경제개발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그런 시대에 노동자들의 희생이 컸다. 특히 산업재해와 직업병, 두 가지가 가장 많았다. 산재(産災)는 외견상 쉽게 발견되고 통계를 잡는데 그렇게 어렵지 않다. 반면에 꾸준히 지속되어 온 직업병은 검진과정도 복잡해서 총제적인 통계가 어렵다. 따라서 단순한 보건행정에서 탈피해 정확한 환경보건 진단매뉴얼을 통한 기본조사나 기구·조직·인력·프로그램의 운영이 따라줘야 원인분석이 가능한 일이다. 또한 국가가 어떤 보건행정시스템을 잘 운용하느냐에 따라 원인규명도 정확하게 내릴 수 있다. 가까운 일본과 비교하면 한국의 직업병 숫자는 일본보다 오히려 적다. 반면에 산재사망률은 매우 높다. 세밀한 직업병이 아닌 단순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비율이 높다. 이 말은 안전사고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일본은 세계적으로 산재사망률이 극히 낮다. 한국은 아직도 산재사망이 영국과 일본에 비하면 약 10배나 높아 충격적이다. 한해에 약 2000~3000명이 산재로 사망한다. 건설계통 사망자가 제일 많고 다음이 제조·운송·통신 분야다. 그런데도 사업자의 산재 대비책은 너무나 무방비할 정도다. 심각한 점은 산재의 대부분이 사고가 났던 곳에서 또 다시 반복해서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업체에서는 대비를 했다고 하지만 철저하게 제대로 안한다. 결국 노동자가 산재를 당해도 단순과실로 처리하는 사회적 관례가 굳어져 있어 문제다. 이건 범죄행위다. 국가기관인 노동부나 산업안전공단, 근로복지공단이 있지만 산재정책의 실천이 매우 미약하다. 현장중심적인 산재정책을 통해 사업주에 대한 의식개선 강화와 근로자에 대한 안전교육 등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 선진국에 비해 한국의 산업재해 실태 어떤가.

▲ 산업현장에서의 재난은 결국 잘못된 산재제도, 그리고 사업주와 근로자들의 안이한 안전의식 때문에 일어난다. 이러한 제도와 의식을 뜯어 고치려면 정부 관료들과 실무자들이 먼저 적극 나서야 한다. 특히 사업장에서 산재사고 사망이 많을 경우 해당 사업주에 대한 의식강화와 함께 근로환경을 바꾸도록 강력한 법적 조치까지 취해야 한다. 그럼에도 사업자가 이를 개선하지 않고 단순사고로 돌릴 경우 중범죄로 취급해 형사상 처벌을 가하는 것이다. 산재도 하나의 범죄다. 이런 사업자들에게 경각심을 줘야 한다. 관료들이 강력하게 나서야 잘못을 바로 잡을 수 있다. 안전에 대한 의식이 어느 정도 개선됐다고 하지만 일선 현장에서의 산재사망은 줄지 않고 있다. 사고 발생유형도 후진적이다. 고층에서 발을 헛디뎌 사망하거나, 차량이나 큰 물체에 깔리거나, 폭발사고로 인해 사망한다. 이런 사고들을 단순한 과실로 보면 안 된다. 사고를 미연에 대비하지 않고 방임했기 때문에 하나의 산업적 범죄다. 과거 김대중 정부, 그리고 노무현 참여정부 당시 늘어나는 산재사고를 줄이기 위해 정부차원의 대책마련에 많은 노력을 한동안 기울였지만 현 정부는 정책적 의지나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근로자 재해문제는 무관심하고 대기업 편만 드는 고질적인 갑과 을의 행태만 만연돼 있다.

 

 

- 제4회 리영희 상을 수상했다. 소감을 말해 달라.

▲ 리영희 선생님은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선구자적인 분이다. 1960년대 잔혹했던 유신독재시대에 시국 인사들에 대한 박정희 정권의 탄압과 투옥의 고난 속에서도 민주와 평화를 부르짖었다. 또한 이 시대 깨어있는 언론인으로서 정론직필의 펜을 놓지 않았던 실천적 지성인이다. 그분은 민주화운동과 사상 면에서 우리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프랑스의 ‘르몽드(Le Monde)지’는 리영희 선생을 이렇게 평가했다. ‘반공의 장막으로 가려진 냉전사회를 이성적으로 바라볼 것을 요구했다.’ 그분은 불의를 향해 온 몸으로 저항하며 진리수호를 외친 위대한 분이었다. 그 분의 뜻을 따라 지금의 어둡고 지난한 시대에 힘들고 지친 산업노동자들을 위해 작으나마 내가 가진 지식을 통해 진리의 횃불을 밝혀 우리 사회를 성숙시키는 한편, 선진한국을 만드는데 작지만 일조했다는 측면에서 주시는 상이라 보고 싶다.

 

 

- 한동안 나라 안팎을 떠들썩하게 했던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요즘 잠잠해졌다. 백 교수는 2012년 6개월에 걸쳐 살균제 피해의 원인을 규명해냈는데.

▲ 최초 피해발생 후 8년 만의 성과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가가 배상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몇몇 그룹이 두 번에 걸쳐 법정재판을 했지만 미결상태다. 일부 회사에서는 배상합의를 통해 종결지으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지난 2011년 질병관리본부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국민들은 믿지 않았다. 무엇보다 미온적인 태도의 검찰 그리고 환경부, 기업체, 학계까지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그럼에도 정부가 약속한 진상조사는 이행되지 않았다. 그렇게 되자 환경보건시민센터에 시민들의 가습기 피해신고가 급증했고, 수백 건에 달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2012년에 환경보건학회 회장인 저와 관련 연구원 9명이 함께 조사에 나섰다. 6개월에 걸쳐 연구한 결과 95건을 직접 밝혀내고,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폐 손상 영향’ 연구보고서를 냈다. 일반적으로 수면을 취하는 동안 가습기를 가까운 곳에 놓을수록 유아나 임산부에게 관련 질병이 늘어난 것으로 입증됐다. 이런 결과가 마침내 질병관리본부를 움직였다. 그렇게 해서 폐 손상 의심 사례에 대한 개인별 관련성 평가 공동조사위원회가 구성됐다. 저는 폐 손상 조사위원회 1차 조사위원장을 맡았고, 지금도 정부, 환경보건시민센터와 함께 공조해오고 있다.

<2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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