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 차를 만들기도 전에 시들어버린 국화

 

“요새는 뭔 영화가 있어요?”

“영화?”

갑자기 날아온 질문에 나는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그러고 보니 극장을 다녀온 지도 한참 오래되었다. 엉망진창으로 망가져버린 대한민국의 현실을 다룬 영화 ‘아수라’가 언뜻 생각난다. 그런데 그 영화를 본 게 언제였지? 두 달 전인 것도 같고 이 년여 전인 것도 같고 헷갈린다. 최순실이란 이름 석 자를 접한 이후 내 정신세계는 이렇게도 정신없이 뒤틀려 버렸다.

“음마, 아저씨도 모르시는갑네?”

말문을 못 열고 우물쭈물하는 나를 그녀는 배시시한 웃음과 함께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사장님이라고 불러야 마땅한 사람이었다. 나를 고용하고 인건비를 지급하니 분명한 사장님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사장님 호칭을 매우 싫어한다. 밥 벌어 먹기도 바쁜 사람한테 사장님은 무슨 사장님이냐고, 모욕도 그런 모욕이 없다는 거다. 그 바람에 나는 그녀를 불러야 할 일이 있을 때 한참씩 눈을 깜빡거려야만 했다. 이름을 부르자니 바로 옆에 있는 남자의 부인 이름을 함부로 부른다는 게 어쩐지 결례인 것 같고, 누구네 엄마라고 하자니 그 또한 그녀의 존재를 깎아내리는 것 같아서 입에 착 붙지가 않았다.

그녀는 영화를 좋아한다고 했다. 영화뿐만 아니라 음악도 좋아하고, 그림 구경하는 것도 좋아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게 죄다 서울에서 인쇄소를 운영하며 그럭저럭 살 만하게 살 때의 취미였을 뿐이고, 몸이 자꾸 아파서 도시를 포기하고 갯마을로 내려온 이후로는 끊는다는 생각도 없이 그냥 끊어지고 말았단다. 물론 귀농을 한 뒤에도 남의 집 품팔이나 하며 살았다면 그런 취미를 계속 이어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녀는, 그리고 그녀의 남편은 양식업 면허를 사 들여서 양식업자의 길을 걸었고, 그리고 양식장에서 나오는 바지락을 중간에서 판매하는 판매업자까지 겸하게 되고 말았다.

 

▲ 물 들어온다 빨리빨리 해~

 

생산과 판매를 겸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쉬운 일이 아니기에 그들 부부는 오히려 더욱 신명이 났다. 무엇이든 일단 투자를 했으면 이익을 내야 하는 법이다. 이익을 내자면 그 일에 열정을 바쳐야 하고, 열정을 바치자면 거의 모든 시간을 그 일과 관련된 생각을 해야만 한다.

그렇게 낮이나 밤이나 일만 생각해야 하는 그녀는 이제 영화고 그림이고 음악이고 죄다 잊어버렸다. 아니 잊어버려야만 했다. 그렇게 살아오던 어느 날 나를 만났다. 아니 나를 고용했다. 내 입에서 가끔 나오는 영화 이야기에, 소설 이야기에, 그림 이야기에 그녀는 잊고 있었던 자기 자신을 다시 찾은 것일까? 거기까지는 내가 알 수 없지만, 그녀가 그런 류의 이야기 듣기를 좋아해 왔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2016년도 갯벌 작업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하고 간단한 식사나 하자고 모인 자리였다. 최종 결산 결과 이익이 제법 발생했다면 값비싼 풍천장어에 복분자주를 돌렸겠지만, 이익은커녕 금융기관 대출만 늘어난 까닭에 오리 고기를 안주로 소주잔이나 돌리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마땅한 자리였다. 인건비나 간신히 해결하고 말았다는 사실 정도는 업자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는 일이었다. 금년에는 실패했으니 내년이나 기약하자고 수협으로 어디로 정신없이 쫓아다니며 돈을 빌려다가 종패를 뿌렸다는 사실 또한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

그러면 내년에는 좀 나아질까? 누구도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드 배치로 인한 중국 당국의 무역공격이 만만치 않아서 내년에는 설령 바지락이 폐사하지 않고 잘 자라준다 해도 금년보다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막연한 예상은 대부분 하고 있었지만, 누구도 감히 언급할 엄두는 내지 못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우울한 날이었다. 우울하다 보니 바지락 양식과 관련된 얘기는 가능한 한 회피하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이것저것 아무 얘기나 생각나는 대로 끄집어내놓고 흥미 없는 미소를 잠깐 지어보이다가 천장을 쳐다보며 무거운 한숨을 남몰래 삼키는, 그래야만 하는, 그럴 수밖에 없는 날이었다.

 

▲ 배를 가득 채운 갈매기들의 휴식

 

그러고 보면 사람이란 참 이상한 동물이다. 일을 하고 있는 순간에는 일을 하면 할수록 손해만 눈덩이처럼 쌓여갈 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세상은 복불복이라는 등 흰소리를 양념으로 웃고 떠들어대며 그럭저럭 사는 맛을 구가하지만, 일거리가 다 떨어져서 최종 결산을 해야 할 순간이 오면 그때야 문득 정신이 들었다는 듯이, 꿈에서도 생각지 못한 우울한 사실을 비로소 알았다는 듯이 깊은 한숨을 삼키거나 쓸데없이 천장을 골똘히 노려보는 등의 딴짓으로 그 무엇인가를 애써 잊고자 한다.

게다가 금년에는 최순실이라는 괴상할 것 하나도 없으면서 괴상하기 짝이 없는 이름 석 자가 등장해서 가는 줄 모르게 세월을 보내 버렸다. 그것은 실로 허망한 일이었다. 가는 세월을 잊을 정도로 집중할 만한 무엇이 있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련만, 그러나 최순실은 아니었다. 최순실이라는 이름 석 자를 놓고 이러니저러니 온갖 상상과 추측과 억측을 하느라 보내버린 시간 속에는 아무것도 얻을 만한 게 없었다. 오직 불쾌가 있을 뿐이었다.

법이라는 한 글자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할 이유가 없다는 듯이 그토록 매정한 눈초리로 사람들의 손길을 뿌리치던, 그토록 매정하게 그토록 표독한 눈초리로 카메라를 쏘아보며 국민 보기를 개돼지 보듯 하시던 우리의 엄정한 대통령 박근혜가 실은 명칭만 대통령이었을 뿐 최순실의 인형이었다는 것, 쓸데도 없는 욕심만 많아서 대통령 자리를 덜컥 꿰차기는 했지만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고 귀찮아서 약 먹고 잠자고 잠에서 깨면 예뻐지는 주사 맞고 화장하고 머리 올리고 해사하게 웃어대며 이런 남자 저런 남자 온갖 남자들을 집단으로 혹은 단독으로 불러다가 만나고 헤어지면 다시 약 먹고 잠자는 숲속의 공주 노릇만 해 왔다는 것.

각종 뉴스를 통해서 알게 된 대통령의 그런 실체(?)는 실로 기분 나쁜 것이었다. 온갖 상상과 억측과 추측이 춤을 출 수밖에 없는 일이었고, 욕지거리를 다발로 쏟아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욕지거리를 잔뜩 퍼부어대고 나면, 그러면 편할까 싶었지만 천만에 말씀이었다.

 

▲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프지만...

 

욕지거리를 다발로 쏟아내고 나면 일단 내 자신이 이렇게도 지저분한 입을 가졌던가 하는 자괴감이 들면서 우울해진다. 게다가 그런 날 밤이면 어김없이 최순실이 찾아와서 주둥이를 찢어버린다고 으르딱딱거리고, 박근혜의 표독한 눈초리가 나타나서 눈구멍을 파버린다고 또한 으르딱딱거리는 것이어서, 가위에 눌린 채로 잠에서 깨면 또 다른 욕지거리가 절로 터져 나오고, 그러면 그날 밤에 또 가위눌리는 꿈에 시달리는, 그런 되돌이표 같은 불쾌한 날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두 달 가까이나 계속되었다.

그러면 이제 끝났는가? 아니었다. 새로운 욕지거리 소재가 등장했다. 국정감사 청문회 장면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이를 갈았고, 혀를 내둘렀으며, 머리채를 절레절레 흔들어대야만 했다. 그때 터져 나온 욕지거리는 실로 창의적인 것이어서, 내 입으로 쏟아내 놓고도 내가 기억을 못하거나 기억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종류도 많고 수위도 어마어마하게 높았다. 그리하여 나는 그날 밤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김기춘의 손아귀에 잡혀서 어디인지 알 수도 없는 곳으로 끌려갔다. 어디인지 알 수도 없는 그곳에서 나는 몇몇 재벌과 관료들이 휘두르는 연장에 이가 뽑히고, 손톱이 뽑히고, 발톱이 뽑히는 지독한 고문을 당해야만 했다.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채로 꿈에서 깨어나 생각해보니 내가 제대로 사람답게 살아갈 길은 한 가지밖에 없는 것 같았다.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다 해도 나는 청문회장의 김기춘이나 재벌같은 자들을 사람으로 인정할 수가 없었다. 모름지기 사람이란 타인의 아픔도 나의 아픔과 같을 수 있다는 공감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법이라는 이름의 그물이 숙명적으로 안고 있는 구멍을 찾아내서 쏙쏙 잘도 빠져나가는 재주 하나만 믿고 날뛰는 양아치들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양아치 따위들이 감히 나를 잡아다가 고문을 해댄다. 비록 꿈속에서일망정 그렇게도 치욕스러울 수 없었다. 이런 치욕을 안고 내가 어떻게 사람답게 살아갈 것인가. 방법은 한 가지, 내가 먼저 그들을 죽여 버리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을 죽이지? 아, 기어이 이런 질문에 봉착하고 말았다.

 

▲ 휴, 이제 다 끝났다.

 

고백하건데 나는 사람을 죽일 만한 능력이 없다. 힘도 없고 기술도 없으며 욕망조차도 없다. 그런데도 나는 무시로 그들을 죽이고 싶어 한다. 아니 죽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정녕 모순이라 할 만하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지독한 모순덩어리로 만들어 버렸는가. 이 죄는 아무래도 국회의원들에게 물어야 할 것 같다.

나는 대의민주제를 채택한 나라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국민들의 투표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들은 그러므로 당연히 국민의 대리인이고 나의 대리인이기도 하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면서까지 투표장에 나가 선거를 할 때는 김기춘 같은 공감능력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떨어지는 자들을 찾아내서 합법적으로 죽여 달라는 것이었지 무슨 엉터리 귀족이나 만들자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국회의원들은 스스로 특권층이 되어 거들먹거리거나 호시탐탐 청문회장의 재벌같은 자들의 개가 되기를 소망한다.

“야, 최경환이 진짜로 잘났다, 잘났어.”

국회에서 박근혜 탄핵안을 상정하고 투표를 하던 날 내 옆의 그녀는 길길이 뛰었다. 최경환의 지역구 바로 옆동네가 그녀의 고향인 까닭에 나는 미처 모르는 여러 가지 풍문을 그녀는 듣고 있었다. 풍문이 다 사실은 아니라 해도 ‘아니땐 굴뚝에 연기나랴’ 하는 속담을 우리 민족이 진리로 받아들이고 있는 한 부총리 출신 국회의원 최경환은 국민적 공분과 의문에 누구보다 성실하고 진실한 자세로 임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투표 자체를 아예 거부하겠다고 홀로 당당하게 큰소리 땅땅 쳐대며 퇴장했다.

 

▲ 지난 여름, 어느새 추억이 돼버렸다.

 

“이건 아니잖아.”

그래, 그건 아니었다. 탄핵에 찬성을 하든 반대를 하든, 투표는 해야 한다. 그런데 거부했다. 무슨 자격으로 거부했지? 국회에서의 투표는 국회의원의 의무이고, 투표를 하라고 국회의원으로 선출해 주었는데 투표를 거부했다. 이런 자를 국회의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다. 어쩌면 그의 눈에는 아직도 국민이 개돼지로 보이는 까닭에, 그래서 자기를 예뻐해 주는 박근혜의 심기나 어루만져 주자고 그런 패악무도한 짓을 저질러댄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박근혜 탄핵안은 상정되었고, 가결되었다. 상정된 탄핵안이 가결되었다는 선포가 나오는 순간 나의 그녀는 벌떡 일어서서 박수를 치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박수도 치지 않고 소리도 지르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앉아만 있는 나를 보면서 그녀는 왜 박수도 치지 않느냐고 나무랐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박수를 치지 않았다. 내 마음에 기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웃을 수도 없고 환호성을 지를 수도 없고 박수를 칠 수도 없었다. 굳이 작명을 하자면 ‘무거운 기쁨’이 나를 관통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그런 무거운 기쁨을 가슴에 안고 밖으로 나오니, 아, 마당에 국화가 피었다. 피기는 피었는데 시들었다. 그동안 못 피고 있었던 국화가 이제야 피어난 것인가? 피자마자 시들어 버린 것인가. 아니다. 이제 피어난 것이 아니다. 알고 있었다. 한 달쯤 됐나? 아니 두 달이 다 됐을 것이다. 두 달여 전에 나는 분명히 국화가 피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리고 보았다. 보면서도 못 보았다고, 그런 말장난 같은 말을 해야만 할 것 같다.

내가 마당에 국화를 심은 까닭은 꽃을 보자는 뜻도 있지만, 국화차를 만들어서 겨우내 그 향을 음미하자는 뜻이 더 컸다. 그래서 해마다 국화차를 만들었고, 누군가 손님이 오면 그것을 내놓았다. 더러는 나누기도 했다. 그런데 금년에는, 꽃이 핀다는 것을 알면서도, 보면서도 그게 국화라는 인식을 못 했던 것인가, 아니면 귀찮았던 것인가, 국화차를 만들자는 생각은 해보지도 못한 채 서리가 내리고 얼음이 얼어서 국화는 죄다 시들어 버렸다.

이게 다 박근혜 탓이다. 최순실이 탓이다. 김기춘이 탓이고, 우병우 탓이다. 최순실에게 돈 갖다바친 재벌들 탓이다. 그러고 보니 불러야 할 이름이 너무 많다. 최경환도 있고 이정현도 있고 윤상현도 있고 김진태도 있고 황교안도 있다. 그래도 끝나지 않았다. 조원진 이완영 서청원 홍문종 등등의 이름자들이 획획 지나간다. 얼마나 더 불러야 하는가. 나는 이렇게도 못난 이름들이 득실거리는 나라의 국민이었던 것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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