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그 부역자들의 '고백무효'
대통령과 그 부역자들의 '고백무효'
  • 가톨릭일꾼 김유철
  • 승인 2017.01.05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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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일꾼> 김유철의 Heaven's door

고백무효

새해다. 하등 달라질 것 없는 여건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해’는 모든 것을 새롭게 받아들이고, 새로운 관점에서 재출발 할 수 있도록 시간의 신이 우리에게 베푸는 신비한 선물이다. 새로움이란 의미를 교회적 시각으로 본다면 그것은 고해성사의 은혜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고백과 화해의 만남

지난해 예수성탄을 앞두고 교회에 속한 이들은 대림절을 지내는 동안 나름의 사정에 맞는 ‘깊음’속에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또한 자신과 관계하는 모든 일을 반추해보는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당연히 그런 되새김 과정 또한 시간의 신이 베푸는 새해라는 선물만큼이나 하느님이 주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는 신비로운 선물의 극치일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그것이 거룩한 일임을 고백하며 ‘성사’(聖事)라고 부르는 것이다.

한국에 천주교가 전래된 이후에는 ‘고해성사’라는 용어를 쓰다가 1967년 ‘고백성사’로서 교회용어가 바뀌었고, 그것이 다시 2000년 천주교 용어집이 나올 때 ‘고백’告白을 넘어서서 인간과 하느님의 화해가 이루어지는 ‘고해’告解의 의미를 살려 지금은 다시 ‘고해성사’를 교회의 공식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참회하며 고백의 시간을 갖는 것은 고백 없이는 하느님이 우리를 용서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 용서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삶의 결실을 맺기 위함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화해의 성사, 즉 고해성사가 필요한 것이다. 아마도 우리가 고백하는 것은 바리사이의 꼿꼿한 기도가 아니라 세리가 말하던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루카18,9-14)의 마음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천주교회에서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자비송으로 미사를 시작한다.
 

sin vs crime

과연 우리는 그런 고백을 하고 있는가? 스스로 법률적 검사가 되어 형법에 의한 죄(crime)에 몰두하여, 도덕적인 허물(sin)은 다 묻어두고 있지는 않은가? 오래된 영화이지만 <빠삐용>이란 작품이 있었다. 무죄를 주장하며 교도소 생활을 거부하던 주인공 빠삐용의 꿈속에서 재판 광경이 재연된다. 재판관과 배심원들에게 자신의 무죄를 항변하지만 그들이 내린 판결은 유죄였다. 그의 죄목은 세상이 말하던 살인이 아니라 ‘인생을 낭비한 죄’였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우리 안에 진리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면, 그분은 성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시므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분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고 우리 안에 그분의 말씀이 없는 것입니다. 나의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죄를 짓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죄를 짓더라도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한1서 1,8-2,1)

요한 사도의 이런 말씀에 “아멘”이라 고백하는 것이 더도 덜도 할 것 없는 우리의 신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리와 달리 바리사이의 기도가 넘치는 세상이기도 하다. 자기의 잘못에 대한 분별은 많이 배운 지식에서 비롯되는 것도 아니고, 단순한 겸손에서 시작되는 것도 아니라 하느님의 시선에서 출발하는 새로운 지평 같은 것이다.

다른 사람에 비해 우월하다고 거품을 무는 사람을 국정농단의 사건 속에서 우리는 만나고 있다.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신앙은 하느님의 베푸심과 자비하심이 자기 안으로 흘러들어오고 다시 자기 자신에게서 흘러나감을 체험하는 것이다. 그 체험을 지닌 사람을 세상 사람들은 ‘실천하는 사람’이라 부른다. 우리는 작년 가을 이후 우리나라를 뒤흔든 사건의 장본인인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3차례에 걸쳐 공개 고백을 받았다. 언론은 그것을 ‘대 국민 사과’라 했지만 그것은 분명 ‘고백’이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이라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중략)...최순실 씨는 과거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지난 대선 때 주로 연설이나 홍보 등의 분야에서 저의 선거 운동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도 같은 맥락에서 표현 등에서 도움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 동안은 일부 자료들에 대해 의견을 들은 적도 있으나 청와대의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두었습니다.(하략)” (1차 대국민 사과 2016년 10월 25일)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중략)...어제 최순실 씨가 중대한 범죄 혐의로 구속됐고, 안종범 전 정책 조정 수석이 체포돼 조사를 받는 등 검찰 특별 수사본부에서 철저하고 신속하게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검찰은 어떠한 것에도 구애받지 말고 명명백백하게 진실을 밝히고 이를 토대로 엄정한 사법처리가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이번 일의 진상과 책임을 규명하는 데 있어서 최대한 협조하겠습니다. 이미 청와대 비서실과 경호실에도 검찰의 수사에 적극 협조하도록 지시했습니다. 필요하다면 저 역시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이며 특별 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습니다.(하략)”(2차 대국민 담화. 2016년 11월 4일)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중략)...저는 1998년 처음 정치를 시작했을 때부터 대통령에 취임하여 오늘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마음으로 모든 노력을 다해 왔습니다. 단 한순간도 저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아왔습니다.(하략)”(3차 대국민 담화. 2016년 11월 29일)
 

바리사이가 그렇게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매번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으로 시작했지만 그것은 바리사이의 꼿꼿한 헛기도의 재연이었을 뿐 말하고자 하는 방점은 그것과 전혀 반대쪽에 찍혀 있었다. 바리사이는 세리가 부끄러움 속에서 부르던 “오, 하느님!”을 같이 불렀지만 예수는 그것을 ‘스스로 높이는 자의 기도’라고 평가절하 했다. 바리사이는 다른 사람과 달리 부정직하거나 음탕하지 않음을 스스로 내세우고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루카18,12)라고 고백이 아닌 자랑을 내세웠다.

우리는 예수께서 비유로 말하던 그 바리사이를 세 번에 걸쳐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전 국민을 상대로 말하는 것을 생방송으로 본 것이다. 예수는 비유로서 말했지만 우리는 그것을 생생하게 살아있는 사람에게서 목격했다. 어쩌면 1차, 2차, 3차 그것은 변명을 넘어선 한마디로 거짓말일 뿐이었다.

한 때 지나가는 신자이든, 평생을 교회 안에 머무는 신자든, 혹은 필요에 의해서 천주교회를 택한 신자든 모두 하느님의 물, 성수(聖水)가 흘러간 자리이다. 그것이 이마에서 시작해서 가슴 깊은 곳까지 스며들어 자신의 발걸음을 인도하는 물길을 바라보는 것이 고백이며, 고해이고 사랑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2015년 “죄를 고백할 줄 아는 것은 하느님의 은사, 선물, 하느님의 작품”이라고 <자비의 희년> 교서에서 말했다.
 

무효라는 판결

박근혜 율리아나, 김기춘 스테파노, 고인이 된 최태민 요한, 명동성당에서 결혼했다는 장시호.그 외에도 국정농단에 부역하고 숨어 있는 수많은 천주교인과 썩어가는 이들에게 면죄부를 남발한 종교 브로커들, 그대들은 빠삐용이 꿈에서 만났던 재판관과 배심원의 판결로는 “유죄”이지만, 입으로 말한 모든 것은 하느님 앞에서 “고백 무효”다. 고.백.무.효.

<시인, 한국작가회의, ‘삶 예술 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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