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그날이 왔다
마침내 그날이 왔다
  • 김수복 기자
  • 승인 2017.02.02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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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수컷 고양이의 죽음과 암컷들의 일상

이제 그날이 왔다. 만약에 우리가 그날을 예견하고 있었다면, 그래서 준비를 다 마치고 있었다면 그날은 별다른 충격도 의미도 없는 채 흘러갔을 것이다. 물론 죽음이 저기 어디쯤에 와서 새끼 고양이의 끊어지는 숨통을 받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미리 알았다면 새끼 고양이의 죽음은 없었을 것이고, 또한 우리가 생명의 작동과 끊어짐의 원리를 새삼스럽게 알았다느니 발견했다느니 어쩌고 지껄이며 짐짓 경이롭다는 표정을 지어보일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이 세상 모든 발견은 위대하다. 발견은 미래와의 대화인 까닭에 위대하다. 적어도 뭔가를 발견했다고 생각하는 한 그 사람은 나른하게 침체된 현재 상황을 벗어나서 껑충 도약할 것 같은 역동적인 기분에 사로잡혀 있기 마련이다. 하루가 채 안 돼서 그 발견이라는 것이 실은 다른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이미 알고 있는 일반상식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다소 허탈해 하기는 하지만, 그렇다 해도 몰랐던 것을 새로 알았다는 기쁨은 발견자 자신의 가슴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까닭에 삶은 지루하지 않고 흥미진진하게 여겨지기 마련이다.

 

▲ 수컷은 늘 깨어 있어야 했다

 

고양이라면 고양이라는 그 명칭 석 자밖에 몰랐던 내가 고양이를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은 고양이가 나를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내가 고양이를 알고자 해서 고양이를 어느 정도나마 알게 된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몰랐던 무엇인가를 새로 알기 위해서 내가 주도적으로 우연을 만들어낸 것도 아니었다. 어쨌든 나는 고양이를 우연히 만났고, 그리고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하긴 어찌 고양이뿐이랴. 지금은 내가 나의 그녀와 함께 살고 있지만, 불과 사 년여 전까지만 해도 꿈도 꿔보지 못한 일이었다.

고양이를 몰랐던 까닭에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었던 내가 그나마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녀가 내 옆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만일 혼자 외롭게 고군분투의 삶을 겨우 버티고 있을 무렵에 굶주린 어린 고양이 한 마리가 나를 찾아왔다면, 나는 아마 힐끗 한 번 거들떠나보고 말았을 것이다. 어쩌면 귀찮거나 기분이 나빠져서 저리 가, 저리 가,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방안에 그녀가 있었다. 그녀가 동물들을 꽤나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는 고양이 한 마리가 마당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졌다.

자, 이렇게 해서 낯선 어린 고양이 한 마리는 우리의 가족이 되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녀석을 잡아둔 것은 아니었다. 우유와 이런저런 먹을 것을 얻어먹은 녀석이 돌아가지 않고 남아서 졸졸 따라다니는 까닭에 우리는 점점 녀석을 가족 같은 감정으로 대하게 됐을 뿐이었다. 녀석은 그렇게 쓱쓱 자라났고, 어느새 가임기가 되어 수컷을 끌어들이는가 싶더니 새끼까지 낳았다. 그리고 사라졌다. 새끼를 낳은 지 일주일도 안 돼서 사라진 어미 고양이의 운명이 어찌 되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했고, 알아보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어쩌고 할 새도 없이 젖먹이 새끼 고양이들의 어미 노릇을 해야만 했다.

 

▲ 암컷들을 피해 혼자 있는 수컷

 

손으로 잡으면 한줌도 채 안 되는 새끼 고양이 네 마리의 어미 노릇을 한다는 거, 그거 뭐 그렇게 큰일이랴 싶었지만 아니었다. 큰일도 그런 큰일이 없었다. 그녀와 나 우리 두 사람의 평균치 일상을 포기하거나 다시 짜야만 할 정도로 큰일이었다. 사람이 몸에 익은 습관을 포기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당연히 즐거운 일도 아니었다. 책장을 넘기다가도 새끼 고양이가 칭얼거리면 독서를 포기해야 한다. 가끔은 성가신 느낌에 에이 또, 하고 투덜거리며 귀를 닫고 못 들은 척도 해보지만, 그래봐야 무슨 소용인가.

우리는 이미 새끼 고양이들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고, 새끼는 새끼인 까닭에 성장과 관련한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면서도 그것을 저장할 만한 공간은 아주 작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며, 그래서 수시로 젖꼭지를 물려줘야만 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고, 고양이는 사람과 비슷한 포유동물이지만 사람과는 영 달라서 유아기에는 똥오줌도 스스로는 배출을 못 하기 때문에 어미가 없을 경우 사람이 유도해 내야 한다는 것 또한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알아내서 활용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는 이제 새끼 고양이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자만심에 빠져 있었던 셈이다.

사람은 일단 자만심에 빠지면 자기가 자만심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마련이고, 그래서 뜻밖의 상황이 발생하면 이게 왜 이러지, 하고 의아해 하다가 중요한 때를 놓치는 낭패를 보기 마련이다. 새끼 고양이 네 마리의 어미 노릇을 자임하고 나선 우리의 처한 상황이 꼭 그런 형국이었다.

새끼 고양이들은 인공 젖꼭지를 열심히 빨아서 배를 채운 뒤에도 다른 것을 찾고 있었다. 인공 젖꼭지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뭔가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당연하게도 아직 몰랐다. 배를 다 채운 뒤에도 뭔가를 찾아 열심히 헤매고 다니는 녀석들이 참 부산스럽다, 하는 정도의 생각만 하고 있었을 뿐 새끼 고양들이 진실로 원하는 것은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다른 뭔가 보다 내밀한 것일 수도 있다는 쪽으로는 전혀 생각을 못했다.

 

▲ 격리되어 외로운 수컷

 

경찰관은 언제나 살인 사건이 완료된 뒤에 살인 사건 현장에 나타나듯이, 우리는 새끼 고양이 네 마리 중 한 마리가 거의 사경에 이른 뒤에서야 한 녀석이 수컷이라는 사실을, 수컷인 까닭에 암컷 세 마리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까지도 우리는 새끼 고양이들의 암수 구별을 못하고 있었고, 암수 구별이 필요하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새끼들의 대소변을 열심히 받아내면서도 어떤 녀석이 암컷이고 어떤 녀석이 수컷인지 아는 바가 전혀 없었으니, 오 이런, 단순무식도 그런 단순무식이 없었다.

하긴 우리가 암수 구별을 하고 있었다 해도 뭘 어떻게 해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고양이를 한 번도 키워보지 않았던 우리가 어떻게 암컷들이 수컷의 생식기를 어미의 젖꼭지로 오인하고 열심히 빨아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겠는가 말이다. 어쨌든 이 세상 모든 포유동물의 주특기는 입에 잡히는 것이면 그것이 무엇이건 빨아대는 것이고, 새끼 고양이들 역시 왕성하게 빨아대는 것 외에 달리 할 줄 아는 게 아직은 없으니, 우연히 발견한 수컷의 생식기를 열심히 빨아댔다 해서 괴상한 녀석들이라고 나무랄 일은 아닐 것이다.

일이 다 끝난 뒤에서야 추론해낸 바이기는 하지만, 새끼들은 배가 고파서 어쩔 수 없이 인공 젖꼭지를 빨아대기는 하지만 인공 젖꼭지 자체는 녀석들을 만족시켜주지 못했다. 어미의 젖을 빨 때 느껴지는 행복감이랄까 편안감이랄까, 하여튼 그 어떤 생명의 교류 내지는 연대 같은 것들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 허전함을 채울 무엇인가를 찾아서 열심히 헤매던 중에 수컷의 생식기가 문득 입에 들어왔다. 이게 뭐냐 하고 빨아보니 뭔가가 나온다.

 

▲ 죽어가는 수컷을 안고

 

새끼 고양이는 생식기를 살살 만져주면 배설물이 나오니까, 뭐가 뭔지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새끼는 그 오줌을 다소 특이한 젖으로 알고 맛나게 꿀꺽꿀꺽 삼킨다. 그때 옆에서 다른 암컷들이 그 장면을 발견하고 나도, 나도, 하고 덤벼든다. 추론을 해보자면 아마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수컷은 졸지에 암컷들의 표적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수컷은 싫다고 저항을 해보지만, 아직은 제 몸 하나도 가누기 어려운 상태이고 보니 다만 발버둥이나 쳐볼 따름이다.

경험이 선생이라고, 수컷은 이제 본능적으로 경비태세를 갖추기 시작한다. 한데 모여 잠을 자다가도 문득 깨어나서 슬그머니 빠져나온다. 우리가 녀석들의 그런 소리 없는 전쟁을 어렴풋이나마 알아채기 시작한 게 그 지점부터였다. 분유를 먹이고 네 마리가 다함께 잠들어 있는 모습을 분명히 목도했었건만, 한 마리가 외따로 나와서 잠들어 있는 것이었다. 이 녀석이 왜 이러나, 하고 다시 무리 속으로 넣어주고 잠시 뒤에 다시 와 보면 또 외따로 떨어져 나와 있는 것이었다.

그 참 특이한 녀석이네, 고독을 즐기는 녀석인가? 어쩌고 그렇게 우리는 신기해나 하면서 낄낄거렸을 뿐, 그때까지도 이상하다는 생각은 못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그 장면을 목도했다. 새끼 한 마리가 발라당 드러누운 자세로 사지를 버둥거리는데 다른 새끼 세 마리가 한꺼번에 그 위에 올라타서 일제히 사타구니 사이로 주둥이를 들이밀고 무엇인가를 서로 차지하겠다고 앙앙거리며 싸워댄다.

말이 좋아서 생식기지, 그것은 아직 좁쌀 한 알 정도의 크기밖에 안 되었다. 그런데도 새끼들은 그것을 어미의 젖꼭지와 유사한 무엇으로 알고 빨아대는 것이다. 이걸 대체 뭐라고 말해야 하는 것인지, 수컷의 생식기를 어미의 젖꼭지로 오인해서 빨아대는 행위 자체도 어이없는 충격이지만, 그보다도 얼마나 애타게 어미의 젖꼭지를 찾아서 헤매었으면 수컷의 그 작은 생식기를 마침내 발견하기에까지 이르렀는가 하는 점이 우리를 사뭇 숙연하게 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미와 새끼의 관계는, 새끼와 어미의 관계는 무엇이란 말인가.

 

▲ 수컷이 죽은 뒤에

 

어쨌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늘어났다. 밤에 잠들어 있다가도 깨어나서 분유를 먹이는 정도는 이제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녀석들은 나날이 성장하고 있었다. 사흘 전까지만 해도 통제가 가능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저쪽으로 가지 말라고 해서 안 갈 녀석들이 아니고,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해서 안할 녀석들이 아니었다. 사람으로 치자면 미운 일곱 살, 딱 거기에 와 있었다.

수컷의 생식기도 제법 굵어졌다. 좁쌀만 하던 것이 녹두알만 해졌으니, 빨기도 딱 좋은 크기가 된 셈이다. 게다가 녀석들은 이제 기어 다니는 단계를 벗어나서 뛰어다닌다. 뛰어다니면서 놀다가 어느 순간 한 녀석이 수컷의 생식기를 덥석 물고 빨아대기 시작하면 다른 녀석들이 우 몰려온다. 그 빨아댐이 어찌나 집요하고 악착같은지 떼어놓고자 해도 잘 떨어지지가 않는다. 생식기는 매우 중요한 기관인 한편 급소이기도 한 것을, 어쩌자고 수컷은 그렇게 툭 튀어나와서 주목을 받아야만 하는지, 우리는 그렇게 어이없는 한탄이나 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궁리 저런 궁리 온갖 궁리 끝에 수컷을 종이상자에 담아 격리시키기로 했다. 암컷 세 마리와 수컷 한 마리를 따로 두고 관리하면 괜찮겠다 싶었지만, 이번에는 수컷이 외롭다고 난리를 친다. 사람이 하루 스물네 시간을 꼬박 고양이 새끼들이나 지키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어서 잠시 자리라도 뜰라치면 어느새 수컷은 밖으로 나와 있고, 암컷들 세 마리는 일제히 달려들어서 수컷의 생식기를 서로 먼저 그리고 많이 빨겠다고 아우성을 쳐댄다.

수컷은 그렇게 당하면서도 혼자 외롭게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당하는 게 낫다는 듯이 틈만 나면 밖으로 나와서 암컷들의 사냥감이 돼서는 그냥 사지를 버둥거리며 죽는다고 아우성을 친다. 그런 무자비한 암컷들을 손으로 잡아서 강제로 떼어놓으면 녀석들은 마치 이 세상이 무너지고 있다는 듯이 소리를 질러대며 사지를 버둥거린다. 지악도 지악도 이런 지악이 없고, 그악도 그악도 이런 그악이 없다.

 

▲ 이 녀석의 이름은 경이

 

“와아따 정말 미치겠네야 정말.”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소리를 질러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왔다. 그날, 암컷들의 공세에 시달리던 수컷이 마침내 단식을 시작했다. 아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인공 젖꼭지를 통해 나오는 분유를 빨아 먹어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어쩌면 힘이 없어서 못 빠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생명을 유지함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기능 중에 몇몇이 그만 작동을 중지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때쯤 녀석의 사타구니는 너덜너덜해져 있었고, 아무래도 회생은 불가능해 보였다.

나는 이미 그렇게 포기하고 있었지만, 차마 그 말을 발설하지는 못하고 그녀의 표정만을 살폈다. 슬픔에 잠긴 그녀는 따뜻하게 적신 물수건으로 수컷의 온 몸을 닦아주고, 다시 인공 젖꼭지를 물렸다가 숟가락으로 분유를 떠서 먹여 보다가 두 손으로 얼싸안고 입맞춤을 시도하는 등 그야말로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그런 꼴이 영 보기가 싫어진 나는 그만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버렸다.

그렇게 깜빡 잠이 들었다가 다시 깜빡 깨어보니 그녀는 여전히 새끼 고양이 수컷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앉아 있었다. 그 꼴이 또한 보기 싫은 나는 다시 눈을 감고 있다가 또 잠이 들었다. 그리고 또 깨어보니, 그녀는 이제 그냥 혼자 앉아 있었다.

“어떻게 됐어?”하고 물으니, 그녀는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죽었어요” 한다. 그리고 우는 소리를, 흐느끼는 소리를 낸다. 그런데 바구니 안에서는, 수컷을 그렇게 보내버린 암컷 세 마리가 밥을 달라고 앙앙 소리를 질러대며 이리저리 왔다갔다 난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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