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김태동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1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특검수사가 진행될수록 새로운 비리들이 연이어 터져나오고 있다. 재벌에 검찰 등 공권력까지 연루된 이 ‘역사적인’ 사건은 특히, 뿌리 깊은 정경유착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사유화 된 권력은 재벌에게 특혜를 주어왔고 재벌은 돈으로 화답했다. 박정희 정권 때 만들어져 그 중간다리 역할을 해온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권력과 재벌에게 황금알을 낳는 ‘보물창고’로 활용돼왔다. 뿌리 깊은 정경유착이 가능했던 이유다. 이번 정권에도 전경련은 자신의 역할을 지나칠 정도로 잘해냈다.

그러는 사이 국가경제는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전문가들은 이미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됐다고 본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2.7%로 2년째 2%대에 그쳤다. 더구나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실질 국내총생산(GDP) 속보치'에 따르면 작년 4분기 GDP증가율은 0.4%였다. 분기성장률은 2015년 3분기 1.2%를 기록한 이후 1% 밑으로 떨어져 5분기 연속 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올해 성장률은 이마저도 어렵다는 전망이 앞다퉈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악재'까지 2017년 대한민국호를 인도해줄 등대불빛은 요원하기만 하다. 거기다 고착화돼버린 부의 양극화와 경제 불평등, 노동현장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비정규직,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는 가계부채와 청년실업, 빈사직전의 자영업자 문제까지…. 대통령을 탄핵으로 이끈 촛불들이 이제 정권교체를 넘어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고착돼온 적폐의 청산을 강력히 요구하는 이유다.

 

▲ 김태동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실패한 권력 박근혜 정권이 동력을 잃었고, 강력한 시민의 힘은 새로운 국가개조의 흐름으로 태동하고 있다. 시작은 지금부터다. 한두 번의 정권교체와 헌정, 권력구조 개혁만으로 한꺼번에 이뤄지지 않는다. 늦었지만 자본주의 체제 질서에 준하는 전면적 경로수정을 해야 한다. 특히 남북관계 개선과 동북아안보질서 강화, 노동개혁, 복지개혁, 교육개혁 등 혁신프로젝트를 완료하려면 한 세대는 걸릴 것이다.”

성균관대학교 김태동 명예교수는 “민중의 불만폭발로 정권교체를 이룬다 해도 현재의 심각한 실업사태와 경제위기에 봉착할 가능성이 많다. 오직 차기정권의 확고한 개혁의지와 통치철학에 달렸다”고 지적한다.

미국도 우리와 상황이 유사하다. ‘트럼프 현상’도 골 깊은 경제 불안감에 대한 반향이라는 지적이다. ‘미국우선주의’로 돌아선 트럼프가 TPP 탈퇴를 선언하면서 한국과 FTA 재협상 카드를 들고 나올 기세다. 또한 중국의 사드보복과 맞물려 한반도 경제-안보문제가 국내외 안팎으로 큰 파랑을 일으킬 조짐이다.

거대한 기업카르텔 사회가 돼버린 대한민국의 현재 상황, 재벌과 정치권력의 정경유착, 사회양극화, 적폐청산 등과 관련 김태동 교수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김 교수는 IMF 직후인 1998년 김대중 정부 초대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냈고 이후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금융통화위원회 위원과 한국금융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청조근정훈장과 은탑산업훈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다음은 심층인터뷰 전문이다.

 

 

- 현재 시국을 총체적으로 진단한다면.

▲ 국정농단과 권력비리의 정점을 찍은‘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촛불시위를 촉발시켰다. 그리고 그 결정적 계기는 4.13총선이 만들어낸 여소야대 정국이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이것이 모두 조직적인 시민의 힘으로만 된 것이 아니라 권력 내부의 무능으로 스스로 무너졌다는 점이다. 만약 박근혜 정부가 남북관계에 있어 전향적 행보를 하고 합리적 보수 노선을 취했었다면 시민운동은 과연 어떻게 됐을까. 아마 약화되고 소멸됐을지도 모른다. 1987년 민주화 운동이후 체제에 안주하면서 체질이 허약해졌고 그 폐단이 그대로 드러난 게 지난 4년이었다. 그러는 동안 박근혜 정권은 통일-안보-경제 등에서 혁신적인 정책을 펴지 못했고 70년 동안 누적된 부패권력의 무능함만 드러냈다. 지금 한국은 부실한 건축공사의 전형을 보여준다. 기초 공사부터 철학과 가치존중이 사라졌고, 썩은 대들보 같은 사법부와 관료, 벽에 금이 간 시민사회, 지붕인 자본주의가 동시에 흔들리고 무너졌다. 공권력이 사유화 된 1950년대 이후부터 한국 지배엘리트의 특징으로 굳어졌다. 이것이 국가실패와 시장실패, 사회실패라는 3중주로 나타났다. 실패한 권력 박근혜 정권이 동력을 잃었고, 강력한 시민의 힘은 새로운 국가개조의 흐름으로 태동하고 있다. 시작은 지금부터다. 한두 번의 정권교체와 헌정-권력구조 개혁만으로 한꺼번에 이뤄지지 않는다. 늦었지만 자본주의 체제질서에 준하는 전면적 경로수정을 해야 한다. 특히 남북관계 개선과 동북아안보질서 강화, 노동개혁, 복지개혁, 교육개혁 등 혁신프로젝트를 완료하려면 한 세대가 걸릴 것이다.

 

 

- 시민촛불은 정권교체를 넘어 그동안 우리사회의 고질적 적폐의 청산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 이번 국정농단 사태에서 드러난 박근혜 정권은 권력기관을 동원한 전방위적 부패권력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빙산의 일각처럼 밝혀진 비리는 아직 100분 1도 안 된다. 구속된 최순실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을 통해 여러 재벌업체로부터 800~1000억 원을 거두었고, 정유라를 위해 이화여대에 일방적으로 정부 특혜를 준 것이 많은 학부모들과 학생들의 공분을 샀다. 이런 사태가 대부분 한창 예민한 중고생들이 대학진학을 앞둔 상황에서 벌어졌고 불공정한 사회교육시스템에 분노하며 광장으로 모이게 했다. 또한 시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숨겨진 나머지 99% 비리와 함께, 과거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에 들어간 20조원에 대한 진상문제에 대해서도 의혹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는 권력형 비리가 어떤 방식으로 뿌리내려왔는지를 주권자로서 제대로 깨닫고 감시해야 한다.

 

 

- 이번 사태를 겪으며 여권이 분열했다. 수구라고 불리는 언론들도 등돌린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다. 하지만 일부에선 어떤 형태든 반격에 나설 것이란 지적도 제기하는데.

▲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국면에서 크게 변한 것은 없다. 그러나 현재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국정원과 검찰, 언론과 재벌, 전경련 유착세력들은 탄핵으로 더 이상 필요성이 사라진 박근혜 정권을 시급히 퇴진시키고, 거국내각-개헌-대선승리 구도로 몰아갈 가능성이 높다. 2월중에 탄핵이 성사되더라도 다양한 각도로 정치적 시간을 끌면서 모든 정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전개되도록 전략을 짤 것이다. 또한 대선정국을 앞두고 야권후보 난립이 예상되면서 각종 음해성 공작과 보수언론의 후보 인신공격도 예견되는 부분이다. 그렇게 되면 촛불 열기는 식어들고 촛불이 목표로 한 개혁의 열망도 급속히 꺼질지도 모른다. 오직 대선 후보들의 불꽃 튀기는 경쟁만 남게 된다. 이런 혼란한 틈을 타서 수구 언론들은 여권후보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집중적으로 왜곡된 뉴스를 흘려 여권을 옹립하면서 지지세를 일방적으로 몰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 그렇다면 시민사회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보나.

▲ 지금은 새롭게 국가를 ‘리셋(Reset)’ 해야 하는 시국이다. 대한민국은 현재 남과 북이 쪼개진 반쪽짜리 국가다. 국민주권도 절반의 반만 인정되는 유신정권과 비슷한 상황이다. 이런 체제에서는 국민생명과 재산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 박근혜 정권에서 여실하게 그런 모습들이 나타났다. 특히 권력층과 재벌의 정경유착도 그렇다. 전 세계를 뒤덮은 신자유주의와 접목해 엄청난 성장을 이룬 재벌들은 노동성과 분배를 외면했고 말로만 경제민주화를 외치던 박근혜 정권의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지금은 국가와 정당, 시민사회가 함께 전향적으로 재결합해야 할 때다. 그런 다음, 어떤 방식으로 정권을 퇴진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과 함께 국정농단을 떠받친 검찰과 언론, 재벌을 개혁할 혁신안도 준비해야 한다. 또 민간부문에선 대학과 병원, 의료계 개혁 문제도 걸려 있다. 거기서 멈추지 말고 시민 주권적 열망과 촛불열기 결집을 통한 능동적인 제도 개혁을 어떻게 완성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2회로 이어집니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