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태국에서 살아보기, 사랑하기-13회

눈먼 자들의 도시

여행이라기보다는 휴가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학교 선생님들이 오랜만에 다른 지역으로 놀러가 하루 자고 오자는 제안을 해왔다. 직장인들이 휴가를 거절할 리 없듯이 얼른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약속한 날 자정부터 조그만 밴을 타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라 더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어디로 휴가를 간다고만 하면 자정이나 새벽에 차를 타고 그날 아침부터는 관광을 시작하곤 했다. 좁은 밴 안에서 몸을 접어가며 이동하는 피곤할 따름인 일정이었지만 이런 때가 아니면 휴가를 즐길 수 없을 뿐더러, 내가 사는 곳으로부터 멀리 나가보기 역시 어려운 일이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잡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칸차나부리’를 갔던 지난번보다는 훨씬 찬바람이 부는 시기에 새벽 저 편으로는 붉은 해가 솟고 있었다. 이 땅에서 보는 해돋이란 매번 진귀한 풍경일 수밖에 없다. 북쪽을 향하지 않는 이상 산이 드물고 푸른 지평선이 길게 늘어서 있는 땅 위로 해가 뜰 때, 그 빛으로 인해 갈라지는 하늘의 색깔이 가려지는 것 없이 완연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곤 하는 것이다.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문득 잠이 깬 두 눈은 점점 더 붉게 타오르는 해, 이 땅에서 그토록 자주 보아왔던 해의 모습을 또 다시 새로운 장면에 담아 기억하기 시작했다. 여행이 무디어지고, 내 삶의 휴가가 되어버린, 좁은 밴 안에서 서로 다른 이방인들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선잠에 들어버린 나의 소중한 시간들이, 매번 지겨우면서도 새로운 해를 눈앞에 두고 나도 모르게 설레던 것이다.

 

 

모든 것이 그렇게, 그 날 아침의 해를 보는 것만 같았다. 차가 멈춰선 곳에서 아무렇게나 시킨 이 땅의 음식과 그 와중에 한 잔 하고 싶다며 우기고 우겨 시켜낸 나의 커피. 그리고 파리가 날아다니고 도색이 벗겨져 덜렁거리는 식당 안에서 오랫동안 알고 지낸 동료인 것처럼 농담을 몇 번씩 주고받다가, 우리가 도착할 ‘파타야’는 어떠한 곳인지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던 아침. 그리고 다시 좁은 밴에 올라타 잠을 설치며 낯설지도 새롭지도 않은 도시를 맞이하던 기억들이 선연하게 빛을 낸다.

그때까지 내가 목격한 도시의 모습들이라곤 정말 당연한 것들이었다. 당연한 건물들과 당연한 사람들, 시장, 부둣가와 지나다니는 차들. 그리고 내가 이곳을 떠날 때까지도 나는 당연한 것만을 볼 줄 알았다. 당연한 음식들과 당연한 날씨, 같이 휴가를 온 선생들의 잡아끎 덕분에 힘없이 거닐던 당연한 관광지들까지. 그렇게도 당연한 것들의 나열 속에서, 나는 낯설어 해야 할 도시 앞에서도 이젠 모든 것이 익숙해져버린 줄로만 알았다. 나는 여행이 설렜던 것이 아니라, 지치고 피곤해져버린 일상 속에서 휴가를 애타게 바랐던 것이다. 휴가가 여행보다 더 나를 설레게 만들었고, 당연한 것들 품에 안겨 익숙한 설렘을 즐길 생각만 하고 이 도시에 입성했던 것이 틀림없었다.

 

 

그 모든 것을 비추어주던 해가 결국엔 떨어지고 나서야 나는 눈먼 나의 도시를 보았다. 차갑게 밤이 내려앉은 도시에는 해가 비추는 거리가 아닌, 온갖 네온사인과 조명들로 화려하게 치장한 거리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호객했다. 내가 당연하게, 또는 익숙하게 생각하던 모든 것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익숙해지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거리로 몰려나와 새로운 도시를 만들었다. 나는 그제야 그들이 눈먼 자들임을 알았다. 같이 온 선생들이 보여주겠다며, 궁금하지 않냐며 보여준 도시의 실상은 화려하면서도 병들어 있었다. 선생들이 앞서 걷는 거리 뒤편으로 너무나도 쉽게 들려오는 이방인들의 한국말에, 나는 선생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에도 부끄러움을 느꼈다. 너무나도 익숙한 한국인들이 순식간에 낯선 사람들이 되고, 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거리의 몸을 사고파는 행위. 무엇보다도 참혹한 것은 호객하는 몸이란 내가 나의 학교에서 가르치는 아이들과 동년이거나 그보다도 더 어린 경우가 많더라는 것이었다.

빼곡히 들어선 눈먼 자들 사이로 비틀거리고 있을 때, 초등학생께로 보이던 한 아이는 짧은 치마를 살랑거리며, 온갖 색조로 물들인 눈꺼풀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며, 내 앞에서 훌라후프를 돌리는 재주를 부리면서, 내 팔 한쪽을 끌고 재미를 보지 않겠냐며 나에게 너무나도 쉽게 몸을 허락하곤 했다. 눈부신 네온사인을 뒤로 하고 빠져나온 골목 끝에는 방파제에 일렁이는 바다가 있었지만 어째서인가 그 바다에도 심한 구역질이 나고 말았다. 언덕 위편으로는 크게 도시 이름을 새긴 전광판이 색을 바꿔 가며 반짝거렸지만, 역시나 그 아름다운 빛과 색 앞에서도 나는 구역질을 하고 말았다. 사실은 이 구역질나는 바다와 부둣가, 전광판과 네온사인, 호객꾼과 수많은 이방인들의 행렬이 결코 낯설지 않다는 것이 나의 토악질을 더 부추겼는지도 모른다. 낯설어 해야 할 것에는 익숙하고, 익숙해야 할 것에는 새로운 의미를 붙여 넣으려고 하는 나의 여행, 휴가가 되어버린 나의 여행은 대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당분간은 휴가에 목을 매달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단 한 순간도 즐거운 휴가란 없었던 것이 당연할 지도 모르겠지만, 여행마저도 휴가가 되어버린 순간 앞에서 나는 낯선 것, 익숙한 것을 가릴 힘조차 잃어버린 것일 테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던 사람

하루 종일 밴을 운전해주던 랑 아저씨도, 나와 선생들이 머물 맨션 거실에서 잠을 자기로 했다. 선생들과 밤늦게 식사와 술자리를 갖고, 모두 지쳐 얼른 잠자리에 드는 시간. 잠에 얼른 들기란 원체 나와 맞지 않는 생활 습관인지라 맨션 바깥으로 몰래 빠져 나왔다. 그리고 그곳 구석 어둠에서 선생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한껏 웅크리고 담배를 피던 랑 아저씨를 만날 수 있었다.

밴을 운전해주는 것과는 별개로 딱히 나와는 말을 나눌 기회가 없던 랑 아저씨는 반갑다고 이제야 인사를 건넸다. 이후로 다리에 모기를 물려가며 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서로의 신상에 대한 물음이 전부였다. 오지랖이 넓은 내가 먼저 그의 일자리에 대한 물음을 던졌고 막상 그런 방향으로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가 일하면서 생긴 일들을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지금의 피곤한 일을 택하게 됐느냐는 나의 물음에 아저씨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일이 즐겁기 때문이라고 답해줬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더니 자신이 만난 오스트레일리아 친구와 유럽 친구들의 사진을 하나씩 보여줬다. 드디어 한국 친구도 생기게 되는가 보다, 라며 즐거워하던 아저씨는 물어보지도 않은 자신의 꿈에 대해 아주 쉽게 말하던 것이다. 돈을 충분히 모으면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나 자동차를 렌트해 다니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기에 아저씨가 금방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저녁식사 때 마지막 남은 맥주를 다른 선생들 몰래 도둑질해서 아저씨와 기울이고 나서 맞은 아침, 다시는 걷고 싶지 않을 ‘파타야’의 백사장을 걸었던 아침, 산책하는 내 옆으로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지나가던 오토바이가 한 아주머니의 팔찌를 뜯어 도망가던 그 잔인한 아침.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오토바이의 등을 바라보던 아주머니에게 나의 서툰 태국어로 괜찮으시냐고 묻던 그 도시의 아침에 비로소 랑 아저씨가 얼마나 ‘아무것’인지를 알았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었던 사람이 ‘아무것’이 된다는 것, 또는 그 속에 내가 있거나 조금이라도 나와 인연을 둘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낯설면서도 당연한 것인지. 정말 어려운 도시에서의 휴가, 잃어버린 나의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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