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록 에세이> 가슴으로 흐르는 영산강

봄기운이 스멀스멀 퍼지고 있다. 아직 겨울의 뒤끝이 남아 있지만 바야흐로 봄의 시작이다. 만물이 힘차게 일어서고 있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면서 바짝 움츠러든 마음이 깨어나고 있다. 해마다 우수 무렵이면 긴 잠에 빠졌던 개구리가 튀어나오고 나뭇가지엔 새순이 맺혀 새봄을 알린다.

여기는 영산강이 바라보이는 나주의 한 들판. 겨울을 이겨낸 가느다란 보리가 바람에 살랑살랑 춤을 춘다. 누웠다가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보리 물결 너머로 은빛으로 반짝이는 영산강이 S자로 휘우듬히 뻗어 있다. 그 끝을 향해 도란도란 흘러가는 강줄기가 눈이 부시다.

 

▲ 다야뜰 옆으로 흐르는 영산강

 

넉넉하고 다정다감한 물길에게 인사를 건넨다. 들판을 가로질러 흐르는 한 가닥 물길의 원경(遠景). 침묵에서 깨어난 강이 크게 소리치고 있다. 생명들의 자맥질 소리가 귓전에서 맴돈다. 강의 심장이 뛰는 소리를 가슴으로 듣는다. 바위를 타 넘고 풀잎을 적시고 들과 산을 휘돌아 여기까지 달려온 강물의 힘. 강 위로는 뭉게구름이 흘러간다. 천천히 동쪽으로 밀려가는 구름 사이로 햇살이 숨바꼭질을 한다.

그동안 여기저기 쏘다니면서 산수미(山水美)를 숱하게 봐 왔건만 영산강은 또 다른 진경(眞景)으로 나를 반갑게 맞아준다. 영산강을 직접 보기 전에는 이렇게 아름다운지 미처 몰랐다. 먼 길을 달려오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영산강은 ‘영상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섬진강이 아름답다고 다들 말하지만 영산강도 그에 못지않음을 여기 와서 똑똑히 본다. 섬진강이 유순하고 부드러운 여성의 이미지라면 영산강은 믿음직하고 넉넉한 남성의 표정을 보이고 있다.

강 옆으로는 푸른 보리밭이 펼쳐져 있다. 어디선가 까치 우짖는 소리가 들리고 인기척을 느낀 참새떼가 강가로 포르르 날아간다. 파란 하늘과 연한 보리밭 그리고 느리게 흘러가는 강의 조화가 참으로 멋스럽다. 강바람 들바람의 맛이 다르다. 코끝으로 와락 달려드는 그 맛을, 곱게 단장한 여인의 옷자락에서 풍기는 원초적인 향기라고 생각해 본다. 가장 한국적인 풍치 앞에서 나는 문득 시인이 된다.

영산강은 물을 가득 담고 있다. 며칠 전 내린 단비로 들판이 생기를 되찾고 있다. 남도의 크고 작은 마을을 휘돌아가는 영산강. 저 한강이나 금강에 견주어 물빛이 맑지 않고 강폭이 4∼5미터에 불과한 데다 수심도 1미터가 채 되지 않아 강다운 멋은 한결 덜 하지만 들판과 산을 휘감고 돌아가는 강줄기며 강변 풍경은 정말이지 잘 그린 그림 한 폭을 보는 것 같다. 누구나 이곳에 오면 강을 앞 배경으로 둔 곳에서 한번쯤 살아보고픈 마음이 들지 않을까. 일찍이 ‘택리지(擇里志)’의 저자 이중환은, “바닷가에 사는 게 강가에 사는 것만 못하고, 강가에 사는 게 시냇가에 사는 것만 못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강은 사람과 뗄 수 없는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 사진=전남도청

 

일찍이 문명이 태동한 곳도 강 주변이었다. 강을 따라 집들이며 위락시설이 들어섰고 길이 뚫렸으며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여전히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4대강 정비사업(살리기)도 사람살이에서 강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떠한가를 잘 말해준다. 물길을 통해 사람과 물자가 오가면 경제가 자연스레 발전하리라는 장밋빛 기대를 안고 첫 삽을 떴지만 결과는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부디 알찬 결실로 국민들에게 힘이 돼 주었으면 한다.

그동안 우리 강은 제 기능을 못해온 게 사실이다. 개발에 따른 오염은 가장 큰 문제였다. 강이 지닌 천혜의 환경은 접어둔 채 개발과 경제 위주로 밀고 나가서는 안 될 일이다. 나무만 보고 숲을 못 보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치산치수(治山治水), 옛 사람들은 산과 물을 잘 다스려야 탈이 없다고 했다. 자연을 다스리는 것은 사람을 다스리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댐을 건설하고 둑을 만드는 것은 가뭄, 홍수 같은 자연재해로부터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영산강은 담양군 용면 용추골에서 발원해 광주 들판을 따라 나주평야와 호남평야를 두루 적신 뒤 함평과 무안을 지나 영암 하구둑에서 잠시 맴을 돌다 목포 앞바다에 이르는 장장 136㎞의 젓줄이다. 물길을 가로막은 영산강 하구둑은 1981년 12월 완공됐다. 그렇게 물을 가둠으로써 덕도 많이 봤지만 피해도 컸다. 홍수와 가뭄을 억제하고 농사를 많이 지을 수 있었던 반면 수질이 악화돼 생태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현재 영산강의 수질은 농업용수로도 쓸 수 없을 만큼 악화됐다고 한다. 이제 그 탁한 물길을 살리는 일은 우리의 몫이 됐다.

영산강은 고대 때부터 짐과 사람을 실어 나르는 뱃길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영산강이란 강 이름은 나주의 ‘영산포’에서 유래했다. ‘19세기 나주 지도’를 보면 영산포는 당시 수심이 10여 미터로 배들이 드나들기 적당했다고 나와 있다. 그 후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자연스레 도시가 형성되었고 내륙과 해상을 잇는 교통의 중심지가 됐다. 1897년 목포항이 개항하고 1914년 호남선 철로가 개설되면서 위세가 다소 꺾이긴 했지만 소금이나 쌀, 홍어, 젓갈 등을 실어 나르는 포구로 여전히 큰 몫을 담당했다.

 

▲ 홍어회와 홍어무침

 

조선시대에는 소금배들이 강 상류인 담양까지도 갔다는 기록이 있고 보면 그 당시 영산포의 영화를 짐작해볼 수 있다. 또한 일제는 나주평야에서 생산된 쌀을 영산포에 모았다가 일본으로 실어냈는데, 지금도 남아 있는 정미소 건물은 이런 수탈의 역사를 잘 말해준다. 더구나 서남해에서 잡아온 홍어는 이곳으로 옮겨져 전국으로 팔려나갔다. 지금도 이곳 영산강변에는 20여 곳의 홍어 식당과 홍어 가게가 흩어져 성업하고 있다. 정약전의 ‘현산어보’에도 ‘나주 사람들이 홍어를 즐겨먹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홍어는 삭혀 먹어야 제맛이 나는데 냉장시설이 없던 시절, 흑산도(홍도)에서 영산포로 올라오는 동안 자연스레 발효가 되어 홍어의 가장 큰 특징인 톡 쏘는 맛이 생겨난 것이다. 나주가 흑산도를 제치고 오늘날 홍어의 도시로 거듭난 이유이기도 하다. 예나 이제나 홍어 주산지는 흑산도 근해다. 하지만 맛은 나주(영산포)를 따라가지 못한다. 다만 토종 홍어 대신 칠레산 홍어가 상차림에 올라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오방풍토부동(五方風土不同)이란 말도 있잖은가. 풍토가 다른 데 맛이 같을 수 없다. 따듯한 햇살이 좋은 이 봄날, 잘 삭힌 홍어에 막걸리와 묵은 김치, 기름 뺀 돼지고기를 곁들이는 ‘홍탁삼합’의 진미를 맛보고 싶은 게 어디 나뿐일까.

영산강변에 세워진 등대도 과거를 증언해준다. 영산강을 바라보고 서 있는 영산포 등대는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강변 등대이다. 철근콘크리트로 지어진 등대는 기본 원형이 잘 남아 있어 역사 자료로도 큰 가치가 있다. 강변에 등대가 서 있다는 건 그 당시 많은 선박이 왕래했다는 걸 말해준다. 목포에서 영산포까지 48킬로미터의 영산강 뱃길을 타고 수산물과 곡물을 실은 선박을 안내했지만 1980년대 들어서 강 상류와 하구가 댐과 둑으로 막히면서 선박 운항이 끊기는 바람에 그 기능을 상실했다. 영산포 등대가 서 있는 곳은 한때 번화했던 선창가였지만 지금은 그 어디에서도 옛날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강바람을 맞으며 외롭게 서 있는 등대만이 그 때를 기억하고 있을 뿐.

관광자원으로 톡톡한 역할을 하는 영산강 뱃길. 전라남도와 나주시가 영산강 옛길의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황포돛배를 띄운 건 칭찬할 만한 일이다. 돛배가 출발하는 다야뜰에서 영산나루를 돌아오는 코스는 약 6km로 배를 타는 시간은 약 40분 정도다. 높이 7m, 길이 12.5m, 폭 2.5m의 돛배가 기관사와 승객을 태우고 강바람을 가르며 달려가는 광경을 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30여 년 전으로 돌아간 듯하다.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돛배는 시간이 많이 걸려 동력장치도 장착했다.

원래 영산강은 밀물 때면 바닷물이 역류해 영산포까지 밀려들었다고 한다. 이때를 이용해 목포에서 황포돛을 단 배들이 내륙으로 들어왔고, 반대로 물이 빠지면 바다로 다시 나가곤 했다. 그 때의 풍경을 고스란히 되살릴 수는 없어도 분위기를 약간 띄워주는 것만으로도 옛 흥취를 느끼게 되니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황포돛배를 타기 위해, 영산강의 봄 정취를 즐기기 위해 구름 같이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면서 영산강의 미래를 점쳐보게 된다. 그리운 영산강아! 남도의 젓줄, 민족의 혈맥으로 우리 곁에 영원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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