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생각> 류승연

전문가 되기 참 쉬운 세상이다. 명함 한 장이면 뚝딱하고 전문가로 재탄생한다. 한 분야의 전문가로 거듭나기 위해 바쳐야 할 수 년의 시간과 노력들은 가뿐히 무시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진짜 전문가조차 때때로 사기꾼 취급을 받는다. 개탄스러운 일이다.

친정에 가 있을 때 일이다.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려는데 엄마가 약국은 어디를 이용하라며 적극 추천을 한다. 그 곳의 약사가 정말 괜찮다고. 엄마를 볼 때마다 “선생님~ 선생님~”하며 설명을 하는데 박카스 하나라도 더 사주고 싶은 마음이 들더란다.

초등학교 교사로 정년퇴직을 한 엄마는 선생님이라는 직업에 강한 프라이드를 갖고 있었다. “내가 선생님인 걸 어떻게 알았을까? 티가 나니? 딱 보기에도 반듯하고 선생님 같아서 알게 됐을까?” 굳이 엄마의 흥을 깨기는 싫어 가만히 듣기만 했다.

 

 

내과에서 진찰을 받은 뒤 같은 건물에 있는 세 곳의 약국 중 엄마가 추천한 곳을 찾아갔다. 약사에게 처방전을 내밀자 “선생님~ 체하셨나 봐요~”라며 친절히 응대를 한다.

약을 내 올 때도 마찬가지. “선생님~ 꼭 식사를 하고 약을 드세요~”라며 설명을 하는데 모든 고객에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붙인다.

집에 돌아가 엄마에게 이 사실을 얘기하니 생각 외의 격한 반응이 나온다.

“흥! 요즘은 개나 소나 다 선생님이구만.” 평소 욕은커녕 어감이 센 단어조차 사용하지 않는 엄마의 입에서 개나 소라는 말이 나오다니…. 교사라는 직업의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난 모습이 훤히 보였다.

당시는 별 생각 없이 웃으면서 엄마의 반응을 지켜봤는데 요즘 들어 나는 엄마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게 되었다. 너무나도 쉽게 기자를 자칭하는 이들을 지켜보면서다.

인터넷 상에서 알게 된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이 기자 일을 시작했다. 본업은 따로 있고 취미로, 또는 아르바이트로. 요즘은 시민 기자, 블로그 기자, 포스트 기자 등 누구나가 쉽게 기자가 될 수 있어 마음만 먹으면 몇 시간 후에 내 이름을 달고 인터넷 상에 기사가 실린다.

기자 명함을 달고 있긴 한데 기자 교육을 받은 적은 없는 일반인. 그의 기사는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훌륭했지만 전혀 다듬어지지 않은 내레이션과도 같았다. 분석 기사가 아닌 사실의 나열인 스트레이트 기사 형식을 빌려 왔음에도 너무나 많은 ‘주관적인’ 단어가 난무했던 것이다.

처음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일반인이 이 정도 쓰는 것도 어디야. 비록 기사 자체는 미숙하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내용은 바람직해. 그럼 됐지 뭐.

첫 기사가 나간 후 그의 주변에서 엄청난 반응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와~ 기자가 되셨어요?” “헐! 기자님이셨다니!!!” “멋져요. 대단해요.” 기자라는 직함을 달고 난 뒤 그 직함이 주는 꿀맛에 취한 그는 이후로 더욱 용기를 얻어 더 많은 기사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맛에 기자 하는구나”라는 그의 멘트를 보고 우려가 들기 시작할 때쯤 그의 기사는 더 이상 기사가 아니게 되었다. 그의 자신감이 치솟을수록, ‘기자님’이라 불리는 달콤한 술에 취해갈수록 그의 기사는 더욱 더 감정적인 마음의 해소구로만 사용이 됐다.

기사가 아닌 개인 의견. 칼럼이라 하기도 민망한 감정의 나열. 사실(Fact)을 기반으로 한 정당한 분석이 아닌 개인감정을 쏟아내기에 급급한 웅변. 그런 기사가 정치기사로 계속해서 쓰여졌고 그는 같은 정치성향을 지닌 일반인들에게서 ‘기자님’으로서의 환대를 받았다.

그가 기자로 활동해 가는 모습을 보며 요즘은 기자 되기가 참으로 쉬운 세상이구나 하는 걸 새삼 느꼈다. 그리고 씁쓸했다.

아직도 연락이 오가며 지내는 정치부 기자들. 청와대에서, 국회에서, 정부 부처에서 활동하는 그들은 3~4줄 짜리 단신기사를 쓰면서도 반드시 사실(Fact) 확인을 하고, 단어를 골라가며 신중하게 하나의 기사를 내놓는다. 분석기사, 해석기사 같은 경우엔 말할 것도 없다.

독자들은 원고지 7~8매로 정리된 분석기사 하나를 1~2분 만에 읽으면 끝이지만 그들은 그 기사 하나를 써내려가기 위해 며칠, 몇 달, 몇 년 전부터 연결돼 내려온 정치흐름을 정확히 꿰뚫고 있어야 한다.

기사에 보도된 내용은 일부일 뿐 보도되지 않고 ‘Off The Record’로 남겨둔 더 많은 정보들을 기반으로, 공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다시 취재를 하고 사실 확인을 해서 대중 앞에 하나의 기사를 내놓는다.

누군가의 기사는 생각나는 대로 끄적인 감정의 나열이고, 누군가의 기사는 몇 달 몇 년의 내공이 모인 결정체다. 하지만 이들은 대중 앞에서 똑같은 기자로 취급을 받는다. 그리고 때때로 똑같이 ‘기레기’ 취급도 받는다. 나는 이 사실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언제부터 기자가 이렇게 쉬운 직업이 되어 버렸을까?

요즘 인문학에서는 ‘통섭’이라는 말이 흔하게 된 듯하다. 각 분야의 전문성도 좋지만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며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그 무엇.

각 분야의 전문가와 일반인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느낀 문제의식이나 개선해야 할 점 등을 자유롭게 기고할 수 있는 창구가 많아진 것은 분명 좋은 현상이다. 세상에 대한 감시의 눈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그 기회를 이용해 너도나도 기자를 자처하며 제대로 된 기자의식을 흐리는 세태는 솔직히 눈 뜨고 봐주기 힘들다.

누구나가 쉽게 될 수 있는 게 기자이고 누구나가 가볍게 쓸 수 있는 게 기사이다 보니 기자는 기레기가 되고 기사의 질은 끄적임 수준으로 내려간다. 가짜 기사가 판을 쳐도 구분할 방법이 없다.

십 년도 훌쩍 넘은 그 옛날, 사회부에 소속돼 처음으로 경찰서를 가던 날, “경찰서장의 책상을 엎고 와라”는 객기 어린 지시를 받아가며 기자수업을 쌓아갔던 나의 과거가 억울해지는 느낌도 든다.

울고 좌절하고 지치고 다시 일어나 싸우고 앞으로 나아가며 차근차근 배워갔던 기자정신과 사명감. 그렇게 단련되어가며 보냈던 시간들이 요즘 시대엔 아무 의미가 없어지는 듯 하여 개탄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싫어하는 정치인을 사심 푹푹 담아 일기 쓰듯 비난만 해도 기자님 소리를 듣고, 예능 프로를 보고 줄거리만 써도 기자가 되는 세상에 우려감마저 드는 것이다.

문제는 그렇다 해도 내가 이 상황을 바꿀만한 번뜩이는 대안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기자의 출입문이 낮아지면서 사회에 대한 감시의 스펙트럼이 넓어진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취재랄 것도 없이 TV를 보고 줄거리만 써도 그런 가벼운 기사를 또 재미있게 보아주는 많은 독자들이 있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저 예전에 친정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흥! 개나 소나 다 기자”라며 투덜대기만 하고 있는 것이다.

내 생각이 너무 경직돼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전문가는 전문가로 남기를 바란다.

의사 면허가 있어야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것처럼, 1종 운전면허가 있어야 큰 버스를 몰 수 있는 것처럼, 제대로 된 과정을 거치고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 기자정신과 사명감으로 단단히 무장을 한 이들이 진정한 기자 대접을 받았으면 좋겠다.

그 날 그 날의 핫이슈를 취재도 없이 감정이 이끄는 대로 끄적이고, 그것들에 자극적인 제목을 붙여 클릭수만 높이는 이들은 기자가 아닌 다른 호칭으로 불렸으면 좋겠다. 그냥 ‘글쓴이’로 정도로 불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 그런 의미에서 나도 마찬가지. 몇 년 째 ‘아주머니’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는데 한동안은 내 이름만 하단에 보이더니 요즘엔 내 이름 옆에 기자라는 호칭이 붙었다. 일단 원고를 보내면 그 때부터 모든 편집권은 편집국장에게 있고, 전직 기자의 예우를 해주신 거라 생각해 그동안은 별 말을 안 했다.

하지만 기자라는 호칭을 볼 때마다 나는 약간의 민망함과 약간의 쪽팔림과 약간의 부끄러움이. 지금의 나는 그냥 대한민국 아줌마이기 때문이다.

언제가 다시 기자라는 직함을 달 때가 올 거라 믿는다. 하지만 그 때는 ‘글’이 아닌 ‘취재 기사’를 가지고 당당히 서고 싶다. 그래야 내가 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

그러니 국장님~ 지금은 기자라는 호칭을 빼주세요~. 지금의 전 그냥 류승연이랍니다. 언제가 당당히 취재기사를 가지고 섰을 때 그 때 되찾도록 할께요. 기자라는 직함을. ^^

<주부/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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