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싸워 달라!’... ‘잘 부탁한다!’
‘잘 싸워 달라!’... ‘잘 부탁한다!’
  • 김영욱
  • 승인 2017.02.20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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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영욱의 ‘공군문화유적을 찾아서’ - 서울현충원 6.25 때 산화한 공군 전투조종사들과 호국부자의 묘 ②

꽃 같은 나이로 산화한 영령들의 묘비명(墓碑銘)이다. 그 중 이경복(李慶福,1925-1950) 소위는 L-5 정찰기의 조종간을 잡고 백성흠(白聖欽,1926-1950) 소위가 동승해 서울 상공에서 적진에 돌진해 함께 산화한 애국충정은 잊을 수 없다.

6.25 전쟁이 일어난 지 사흘만인 6월 28일에는 서울이 마침내 적의 손에 들어가고 말았다. 그러니 누구나 참으로 암담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육군지휘부는 서울을 포기한 뒤 한강에 방어선을 치고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기로 했다. 그래서 임시로 시흥지구전투사령부를 발 빠르게 편성해 북한군의 주력부대가 한강을 건너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영등포, 노량진, 동작동, 말죽거리를 잇는 한강방어선의 강변에 병력을 집중 배치했다. 육군 지휘부의 짐작대로 북한군은 6월 30일부터 한강을 건너기 시작했으나, 적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아야 했다. 하지만 육군으로서는 어느 방면으로 적의 병력이 집중할 것이며 무기는 어느 정도인지 등 여러 가지 적정을 확실하게 빨리 알 수 없었다. 그런 임무는 공군이 항공기로 정찰을 해서 알아야 했다.

 

 

그래서 공군참모부장 박범집 중령에게 ‘적군의 도하(渡河) 상황을 신속 정확하게 정찰하여 보고하라!’는 임무가 맡겨져 비행단의 모든 항공기를 동원해 정찰 임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정찰을 해서 얻은 정보는 육군지휘부에 통보하는 것은 물론이고 F-86 제트전투기로 참전 중인 미 극동공군 제5공군에도 보고 해야만 했다.

그러므로 수원기지의 L-4기와 L-5기와 대전기지의 T-6기가 정찰 임무를 위해 여럿이 한꺼번에 출격하게 되었다. 그때 이경복 상사와 백성흠 상사는 박범집 참모부장으로부터 “놈들이 한강철교를 이용해 탱크를 도하시킬 것으로 보인다. 귀관(貴官)들은 철교를 중심으로 한강 북쪽 일대를 정찰해 탱크의 집결 위치와 현재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확인해 보고하라!”는 특별 명령을 받았다.

당시 한강 인도교는 우리 육군에 의해 이미 6월 28일 새벽 2시 30분경 폭파되어서 북한군이 이용할 수 없었지만, 옆에 놓여있는 한강 철교는 폭파 실패로 이용이 가능했다. 그래서 북한군 탱크가 철교를 얼마든지 이용해 도하할 가능성이 컸다. 그런 사실은 미 제5공군도 중요하게 생각하여 철교를 폭격할 예정이었다. 따라서 폭격에 앞서 철교 주변의 적정을 살펴보기 위해 이경복 상사와 백성흠 상사는 둘이 한조가 되어 L-5 정찰기로 수원기지를 이룩해 북쪽으로 기수를 향했다. 시흥 상공을 지나 흑석동 상공으로 방향을 잡았다.

하늘이 너무 맑아서 정찰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날씨였다. 아래로 아군의 배치 상황이 한눈에 보이고, 남으로 향해 보따리를 이고지고 가는 피난민들이 줄을 이어가는 안타까운 모습이 보였다. 동작동 상공을 넘어서면서 조종간을 잡고 있던 이경복 상사는 고도를 확 낮추어 한강 남쪽의 아군 진지의 병사들에게 ‘잘 싸워 달라!’는 뜻으로 정찰기의 날개를 좌우로 번갈아가며 흔들었고, 병사들은 ‘잘 부탁한다!’는 뜻으로 손을 흔들었다.

그들은 흉물이 된 한강 인도교를 눈 아래로 보면서 한강 철교 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순식간에 철교 위를 지나 크게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북쪽 한강변의 서부 이촌동으로 진입했다. 무수한 불꽃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건 다름 아닌 북한군 고사기관총 대공사격이었지만, 총탄을 피해서 유유히 강을 따라 마포 상공으로 빠진 뒤 다시 방향을 바꿔 철교의 북쪽 어귀를 정찰하려고 막 기수를 잡으려는 순간에 갑자기 ‘펑!’하는 소리와 함께 기체가 크게 흔들렸다.

다행이 사람은 다치지 않았지만 백성흠 상사가 앉아 있는 뒤쪽 기체에 구멍이 뚫렸다. 하지만 백성흠 상사는 앞 조종석에 앉아있는 이경복 상사에게 “문제없으니 정찰이나 잘하자”고 말했다. 이경복 상사는 “알았다!”고 응답하면서 정찰비행을 계속했다. 그런데 조종사 뒷좌석의 백성흠 상사가 윗몸을 좌우로 내밀면서 아래를 내려보다가 20여 대의 탱크를 발견 했다. 이경복 상사가 백성흠 상사에게 “공격하겠느냐?”고 묻자 백상사는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면서 티엔티를 여러 개로 묶어 만든 사제폭탄 한 뭉치를 집어 들었다.

이경복 상사는 구멍이 뚫린 기체가 마구 흔들렸으나 비행고도를 1000피트에서 500피트로 낮추었다.

“빨리 던져!”

이경복 상가가 크게 외치자 백성흠 상사는 티엔티 사제폭탄를 한 뭉치씩 연달아 공격 목표를 향해 내던졌다. 다시 기수를 올려 적탄의 집중 사격을 피하면서 하늘로 치솟았다. 백성흠 상사는 적 탱크부대를 뒤돌아보며 폭발 순간을 기다렸다.

“꽝앙, 꽝꽝, 꽈앙 ... ... ...”

적 탱크 진지에 정확하게 명중했다. 그런데 그만 ... ... ...

적탄을 맞은 날개 일부가 파괴되어 심각해졌다. 백성흠 상사는 조종간을 붙들고 있는 이경복 상사에게 “침착하라!”고 말하자 이 경복 상사는 백성흠 상사에게 “걱정 말고 보고하라!”고 말했다. 그래서 백성흠 상사는 무전기로 수원기지에 적 탱크의 상황을 보고했다. 그러나 수원기지에서는 “무리하지 말고 기지로 돌아오라!”고 했지만 돌아갈 수 없었다. 다만, 그들 앞에는 하늘의 사나이들만 할 수 있는 장엄한 자폭돌입(自爆突入)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미 이경복 상사와 백성흠 상사는 날개에 맞은 적탄이 치명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강 남쪽으로 불시착 할 가망도 없었다. 이경복 상사는 백성흠 상사에게 “각오가 되어 있나!”고 물었다. 백성흠 상사 역시 비통하게 “깨끗이 사나이답게 돌진하자!”라고 대답하자 이경복 상사는 기수를 내리꽂으면서 적 북한군 탱크부대 한 가운데로 쏜살같이 돌진했다. 자폭을 감행한 이경복 상사와 백성흠 상사는 한강을 뒤흔드는 폭음과 함께 장렬히 산화했다.

두 용사의 자폭이 이루어진 20분 뒤였다. 미 공군의 F-86 전투기 네 대의 편대가 이촌동일대의 적 북한군 탱크부대를 강타했다. 그리고 한강 철교와 부근의 북한군에 대한 폭격도 단행해 적의 한강 도하를 지연시켰다. 그날이 1950년 6월 30일 한낮이다. 공군본부는 깊은 애도로 두 영혼을 달래며, 각각 공군 소위로 추서해 그 공훈을 높이 찬양했다. 오늘도 이경복, 백성흠 소위는 서울현충원 17묘역 8판에 각각 105호(묘소번호: 17-8-105)와 106호(묘소번호: 17-8-106)에 나란히 영면해 있으면서 장엄하게 산화했던 한강 북쪽 이촌동 쪽을 바라보고 있다.

<기사 이어집니다.>

<김영욱 님은 작가이면서 대한민국공군 역사자문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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