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닷컴> 고향에서 온 편지 ⑤

▲ 허허벌판 불볕 아래 비바람 아래 우뚝 제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그이가 허수아비다. 강진.

“허수아비도 지 헐 목시는 허제”

나락 한 알도 황금처럼 지키던 시절, 허수아비의 임무는 막중하였다. 허허벌판 불볕 아래 비바람 아래 우뚝 제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그이가 허수아비다. ‘그 사람’을 허수아비라 욕하지 말라.

차가운 바다 밑으로 꽃다운 아이들이 가라앉고 있는데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자리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은 패륜적 인간을 어느 한 시도 자리를 비우지 않고 묵묵히 새를 쫓는 소임에 충실한 허수아비에 비하지말라. “허수아비가 지키는 나락이 얼만디. 허수아비도 지 헐 목시(몫)는 허제.”

고창 무장면 목우리 신흥마을 김삼순(85) 할매의 말씀.

나락 한 알이 귀하고, 콩알 한 알을 주으러 사립문밖으로 앉은 담박질을 하는 생애를 살아온 이다.

“이날이때껏 촌에 삼서 넘에 무시 한 개 몰래 뽑아먹은 죄도 지어본 적이 없소.”

남의 무시 한 개 뽑아먹는 것도 ‘죄’인 마을은 청와대로부터 너무나 멀다.

 

 

▲ 모든 것을 비우고 허공으로 건너오르는 능허교 아래 용이 물고 있는 엽전 세 닙.

쓰면 죄가 되는 ‘무서운 돈’

번뇌 가득한 세상에서 정토로 건너가는 무지개다리. 순천 송광사 능허교. 무지개 뜨려면 비가 내려야 할 터. 비를 관장하는 용의 머리를 다리 아래 달아둔 뜻이다.

그 용이 물고 있는 여의주에 철사줄에 꿴 엽전 세 닙이 매달려 있다. 사연인즉슨, 신도들의 시주를 받아 이 다리의 불사를 마치고 나니 엽전 세 닙이 남았더란다. 그 남은 돈을 고심 끝에 다리 아래 매달아 둔 것. 다만 다리를 고치거나 다시 지을 때만 사용될 수 있는 돈이다.

승가에는 ‘호용죄’(互用罪)라는 것이 있다 한다. 어디어디에 써달라고 내놓은 시주를 그 목적이 아닌 다른 일에 쓰는 허물을 이르는 말. 오로지 한 목적 외에 쓰면 죄가 되는 ‘무서운 돈’을 무섭게 지킨 일화는 지금 아침저녁으로 울리는 송광사 범종에도 아로새겨져 있다. 깨진 종 불사를 하게 된 1977년 취봉 노스님이 뜻밖에 거금 150만원을 내놓으셨다 한다. 6·25전쟁 때 타버린 종고루 중창불사를 마치고 남은 돈을 한푼도 딴 곳에 쓰지 않고 본전과 20여 년 이자를 고스란히 모아 두었던 것.

모든 것을 비우고 허공으로 건너 오르는 다리 능허교(凌虛橋), 모든 속박을 벗고 걸림 없이 자유롭게 날아 오르는 우화각(羽化閣)을 지난다.

“한푼의 오차 없이, 한 생각의 빚진 마음 없이 인과에 분명한 이라야 이 능허교를 건너 우화등선(羽化登仙)할 수 있음을 알리려는 뜻”이다. 능허교 아래 엽전 세 닙. 제 잇속을 위해 나라도 팔아먹을 수 있는 사람들은 결코 지킬 수 없는 ‘동전 세 닙’이다.

 

 

 

▲ 잘 보이려고 애쓴 흔적일랑 없이 뭉그러진 웃음. 고창 무장읍성 송덕비.

“이젠 그만 좀 해처먹으렷다!”

‘푸헐헐헐’이란 소리가 어울릴 법한 웃음을 시방 날리고 있는 중이다. 그 웃음의 속내는 “아나~선정비”라는 조롱은 아니런가. 고창 무장면 무장읍성(茂長邑城), 높으신 ‘나으리들’의 이름이 새겨진 송덕비들이 나란히 서 있다. 그 중 고개를 한껏 옆으로 비튼 거북의 얼굴은 특히 눈길을 끈다. 높으신 분들의 공덕을 기리는 기념비이건만 근엄한 표정을 하고 있기는커녕 고개를 틀어 하늘을 올려다보듯 웃고 있는 모양새. 거북머리를 비틀어 놓은 것은 백성들이 비를 세워 주면서도 미운 구석이 있어 일부러 그랬다는 풀이가 따른다. 잘 보이려고 애쓴 흔적일랑 없이 자유분방 뭉그러진 웃음이 권력따위에 ‘쫄지 않을’ 기색이다.

‘영세불망(永世不忘)’의 공덕일랑 돌에 새기는 것이 아니라 장삼이사의 입에서 입으로,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지는 것만이 진짜일 것.

높으신 분의 행차를 가로막고 “네 이놈, 너도 이젠 그만 좀 해처먹으렷다!”라고 통쾌한 일갈을 던지고, 돼 먹지 않은 사람들의 고위관리 임명 소식을 들을 때마다 “이 백성이 무슨 죄가 있기에 그 사람이 그 직책을 맡게 되었는가”라고 통곡했다는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이 떠오르는 오늘.

‘견리사의(見利思義)’라는 오래된 가르침은 한번도 새겨본 적 없이 의(義)를 팽개치고 이익(利)만을 좇은 족적이 또렷한데도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했노라고 사익과 사심은 없었노라고 자신의 죄를 덮고 공을 강변하는 후안무치한 자에게도, 그리고 이른바 ‘박정희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이땅에 온갖 기념비와 동상과 표지판을 세우려는 미망의 작태들에도 이 거북의 비웃음은 전해져야 하리.

 

 

▲ “나라 말아묵고 있는 못씰 것들부터 태우러 서울로 가야 헐 판인디 내가 시방 요거를 태우고 자빠졌네.” 이정숙 할매.

“우리는 양심이 힘이여”

저물녘 어둠을 사르며 화르르 들불 타오르는 밭머리.

“요 불을 놔야 못씰 것들이 싹 꼬실라져. 내년에 농사 잘 지슬라문 한번 싹 태와야써.”

이정숙(76·고창 무장면) 할매에게 올해 고추농사는 기쁨이 되지 못했다.

“비가 안와갖고 꼬치가 싹 디져붓써. 콩도 꼬치 꼬랑에다 숭겄는디 가뭄에 싹 디져불고. 쌀값도 어이가 없지. 암것도 남는 것이 없어.”

그럼에도 다시 들불 놓으며 내일을 기약하는 할매.

“나라 말아묵고 있는 못씰 것들부터 태우러 서울로 가야 헐 판인디 내가 시방 요거를 태우고 자빠졌네.”

이날평상 ‘쇠각시’로만 살아왔다.

“인자 몸뚱아리도 다 닳아빠졌는디 시방도 쇠각시인 것맹기로 살아. 요러고 일만 일만 하고 살아도 아그들 갈치기가 힘든게 학교를 많이 못 갈챘어.”

학교를 못 갈친 어매가 자식들한테 갈친 것은 “양심이 올라야 혀”, 오로지 그 하나.

“그란디 높은자리로 출세헐라문 양심은 놓고 가야헌갑서. 맨 양심 없는 높은 놈들이 우리같이 양심을 지킴서 산 사람들을 이겨묵을라고 해. 그럴수록 우리가 이겨야 혀. 지그는 시방 돈 지킬라고 아등바등할 것이여. 우리는 양심 한나 지키문 된게 무설 것 없어. 우리는 양심이 힘이여.”

글 남인희·남신희 기자 사진 박갑철 기자·최성욱 다큐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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