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방만하고 거대한 정부 아닌 작고 효율적인 정부 원해”
“촛불, 방만하고 거대한 정부 아닌 작고 효율적인 정부 원해”
  • 한성욱 선임기자
  • 승인 2017.02.22 14: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층인터뷰> 이장희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1회

탄핵정국이 이어지고 있다. 광장에선 촛불과 태극기가 충돌하고 있다. 극한의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외교, 안보와 경제는 극한 상황이다. 대선을 앞두고 있지만 지금대로라면 이 나라에 빛은 보이지 않는 듯하다. 대외적 상황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선 자국우선주의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일 세상을 뒤흔드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북한은 미사일발사 실험을 멈추지 않고 있으며, 개성공단은 폐쇄된 채 다시 가동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남북분단 70년이 넘었지만 통일은 여전히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린다. 100년 전 구한말 때와 유사한 동북아 정세로 한반도는 극도로 불안한 상황이다.

새로운 대한민국과 정치개혁에 대한 열망은 어느 때보다 거세게 일고 있다. 역사정의와 민주주의, 법치주의를 바라는 국민들의 목소리는 정치권에 구국적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국가개조와 정치개혁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뜨겁다. 국민은 오랫동안 쌓여온 적폐를 들어내는 대수술을 명령하고 있다. 핵심은 정치개혁이다. 지금이 국가의 근본틀과 원칙, 선거제도와 정당의 대개혁을 이뤄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인식에서다.

 

▲ 이장희 외국어대 명예교수

 

국민의 개혁요구 관철을 위해 설립한 시민단체 ‘국민주권2030포럼’ 상임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이장희 한국외국어대 법대 명예교수는 조속한 국정안정을 위해 국회가 국민대표로 책임 있게 나설 것과 국가시스템 10대 개혁과제를 공개적으로 제안한 바 있다.

이 교수는 “광장 촛불 시민혁명이 성공하려면 구조개혁을 반드시 입법화해야 한다”며 “안보위기를 불러온 외교도 국민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신뢰가 무너진 정부 외교는 국제사회에서 힘을 잃고 만다”고 지적한다.

한반도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첨예하게 충돌하는 지역이다. 한국같이 작은 나라에게 필요한 무기가 외교라는 그는 독일 킬 대학에서 6년간 국제법을 수학하기도 했다.

“유럽의 소국 스위스는 8개국에 둘러싸인 나라다. 그럼에도 중립외교를 잘했기 때문에 국제사회로부터 안전을 보장받고 있다. 한국도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면 국제적 외교전문가를 많이 배출해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제 폐지, 독일의 선거제도와 정당제도 도입, 국가개조와 정치개혁, 정당개혁, 외교개혁 등 현안들에 관한 고언을 듣기위해 동대문구 회기동에 있는 이 교수의 사무실을 찾았다. 다음은 심층인터뷰 전문이다. 3회에 걸쳐 게재된다.

 

- 탄핵정국이 이어지고 있다. 빨라지는 대선, 차기 정권이 추진해야 할 개혁의 방향이 무엇이라고 보나.

▲ 한국의 민주주의를 파탄 낸 현 정권은 헌법이 규정한 ‘국민생명과 재산’을 수호하지 못했다. 2015년부터 교수단체들이 박 대통령에게 ‘혼용무도(昏庸無道: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로 나라가 암흑처럼 어둡다)’라는 경고성 메시지를 계속 보냈다. 하지만 이를 무시하고 헌법적 법치(法治)가 아닌 어리석은 인치(人治)로 신뢰를 잃고 국가를 도탄에 빠트렸다. 시민촛불혁명이 이룬 탄핵정국이 종식되고 새 정부가 들어서면 한국 민주주의는 더 강력해지고 공고화 될 것이다. 본격적인 국가개조 단계로 들어간다. 이를 완성하려면 개헌을 해야 한다. 시민자유의 보장은 물론 완전하고도 되돌릴 수 없는 언론, 결사, 집회, 출판, 청원, 종교의 자유를 확고하게 ‘개런티(Guarantee, 보증)’해야 할 것이다. 유럽식 비례대표제와 연립정부 정당제를 도입하고 구시대의 잔재인 헌법재판소도 손질이 필요하다. 비 선출 법률전문가 집단인 헌재에 최고 공직자에 대한 탄핵결정을 맡기는 것도 문제가 많은 부분이다.

 

 

- 국가의 근본틀을 바꿔야 한다는, 국가개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 현재의 탄핵사태는 영국의 ‘브렉시트(Brexit)’와 트럼프 당선에 버금가는 혁명적 사건이다. 2008년 세계를 뒤덮은 신자유주의 체제가 국가운영에 헤게모니적 원리로 작동하지 못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신자유주의는 공익과 공공성의 극대화라는 민주공화주의 이념을 밀어낼 정도로 맹위를 떨쳤다. 탐욕스런 괴물과 같은 신자유주의는 기업친화적인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정점을 찍었다. 부자감세와 탈세, 사회적 노동안전망의 붕괴로 유례가 없는 양극화와 빈부격차를 초래했다. 언론자유도 심대하게 제한당하면서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가 됐다. 국가개조를 열망하는 촛불혁명은 방만하고 거대한 신자유주의적 정부조직을 폐기하고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원한다. 이러한 시대정신을 구현함에 있어서 국민과 함께 책임성과 공정성, 공익성 원칙을 세워야 한다.

 

 

- 국가개조론이 부상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 우리 역사에서 국가개조론은 간혹 등장했었다. 2014년 4월 16일의 세월호 참사는 국가개조론을 다시 수면위로 끌어올렸다. 우리사회의 근본을 깊이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몇 년 전에 방한했던 프란치스코 교황도 인간존엄의 가치를 역설하고 약자를 보듬는 행보를 몸소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변한 게 없었다. 오히려 ‘세월호’가 정치적 문제로 변질되었고 국민의 거센 요구가 약화되고 구호 수준에 머물렀다. 중도에 정경유착과 관피아 등의 부패를 청산하기 위한 개선책이 나오기도 했지만 말뿐이었다. 이번에는 권력남용과 국정농단이라는 봉건시대에도 상상 못할 일이 벌어졌다. 국민은 분노했다. 상머슴인 국가로부터 주인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한 국민은 제왕적이고 무능한 대통령을 바꿀 것과 함께 대대적인 정치개혁 단행을 명령하고 있다. 이것은 1987년 민주화 성과로 이룩한 대통령직선제를 뛰어넘는 사건이다. 과도하게 권력이 집중된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함과 동시에 국회, 정당, 검찰, 국정원 등 국가기관을 대개혁할 수 있는 신호탄이 됐다.

 

 

- 정치권에 대해 국민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보나.

▲ 세 가지다. 첫째 검찰·사법·국정원·언론·재벌, 그리고 경제민주화 등 개별적 개혁이다. 다음이 헌법개정, 마지막에 선거제도개혁으로 정리된다. 핵심개혁은 국회의원 선거를 ‘소선거구 상대다수제(1위 대표제, 최다득표제)’에서 비례대표제인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꾸는 일이다. 사법부·국정원·언론·재벌개혁은 1987년 민주화운동 당시부터 지금까지 주장해온 ‘어젠다’였다. 30년 동안 대선 때만 되면 후보들이 공약했던 단골메뉴였다. 국회도 국민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원죄가 있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여당은 여전히 대통령 친위대 역할을 자처했고, 야당과 국민의견은 철저히 묵살됐다. 정치적 상생은 실종되고 극단적 경쟁체제로 국정마비와 파행을 불렀다. 정당들은 동네 싸움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확고한 정책정당 역할을 못하는 현재의 정당구조로는 미래가 없다. 구조적으로 약점이 많은 정당법과 선거제도도 문제다.

 

 

- 소선거구제의 대표제 폐해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 우리사회 정치권력 병폐의 원인은 보수적인 양대 정당 체제가 불완전하고 구조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야는 국회를 전쟁터로 보고 의석수 쟁탈을 전유물로 여긴다. 국정을 논해야 할 정치권이 대통령 눈치를 보며 끼리끼리 뭉치는 지역 패권주의적 집단으로 전락했다. 극단대립과 비민주적이고 비능률적인 대립만 거듭했다. 양대 보수정당의 국회장악 싸움은 선거구(지역구)에서 한 표라도 많이 얻은 자가 독식하는 ‘1인 당선자’ 소선거구제에서 비롯됐다. 당선자를 제외한 다른 후보의 표가 모두 사멸되는 사표제는 패자전몰 제도를 낳았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다. 미국과 영국, 일본에서도 그렇다. 불합리한 선거제도를 고치지 않고 권력구조를 바꿔도 사라지지 않는다. 소선구제의 폐단을 없애고 선거개혁을 하려면, 하원제인 네덜란드와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등이 채택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도 고려할 사항이다. 또는 독일(하원) 식의 연동형(혼합형) 비례대표제도 좋다. 의석을 정당득표율에 비례해 정당에 배정하고 소수정당의 원내진출로를 열어야 한다. <2회로 이어집니다.>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주) 뉴텍미디어 그룹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 다 07108 (등록일자 : 2005년 5월 6일)
  • 인터넷 : 서울, 아 52650 (등록일·발행일 : 2019-10-14)
  • 발행인 겸 편집인 : 김영필
  • 편집국장 : 선초롱
  • 발행소 :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목로 72(신정동)
  • 전화 : 02-2232-1114
  • 팩스 : 02-2234-8114
  • 전무이사 : 황석용
  • 고문변호사 : 윤서용(법무법인 이안 대표변호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리
  • 위클리서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05 위클리서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aster@weeklyseoul.net
저작권안심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