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이장희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3회

<2회에서 이어집니다.> 

▲ 이장희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 좀 더 상세히 얘기해본다면.

▲ 대통령과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가 골자다. 국민 10만 명 서명을 통해 입법하는 국민입법권도 들어있다. 국회와 정부만 가지고 있는 입법권한을 깨자는 것이다. 18세 선거연령 인하문제도 여야합의만 했을 뿐 진전이 없다. 직접민주주의를 강화해야 한다. 한국판 민정(民政), 다시 말해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 협정’이 그래서 필요하다. ‘마그나 카르타’는 왕과 시민이 약속한 헌장이다. 왕은 세금을 마음대로 걷지 못하도록 의회동의를 거치게 했다. 귀족은 백성에게 상응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고, 시민 권리도 강화했다. 협정내용은 10대 개혁과제를 담고 있다. 정치개혁, 경제개혁, 사회개혁, 민주개혁 등이다. 특히 정치개혁과 정당개혁, 선거제도개혁이 핵심이다. 여기에 전면비례제도와 직접민주주의 강화, 국민소환제, 국민창안제도 필요하다. 문제는 국회의원들의 협조다. 일단 3대 정당과 ‘국민주권2030’이 합의를 하고 서명해야 한다. 이번에 못하더라도 차기정권에서는 다루기로 하는 거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대선정국에서 1회성 행사로 잊히게 될 공산이 크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도 수락했다.

 

 

- 얘기의 방향을 좀 돌려보자. 국제법을 전공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 사실 대학시절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당시 교수님 강의가 노트만 읽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 학생들이 아예 강의노트를 복사해달라고 했을 정도였다. 딱딱하면 누가 듣겠나. 법대 3학년 때, 선배인 학내 모임단체 회장이 어느 날 찾아왔다. 아시아문제연구소에서 재일교포 의식 조사를 하는데 일본에 함께 가자는 제안을 했다. 재일교포에 대한 차별과 출입국관리, 인권문제 등을 조사하는 일이었다. 관심이 없어 처음에 거절하다 결국 따라갔다. 1965년 한·일협정을 통해 5억 달러 배상금을 받으며 당시 재일교포들의 법적지위 문제가 해결됐다지만 차별은 더 심화됐다. 심지어 목욕탕에 갈 때도 목에다 출입국 신분증명서를 걸어야 했다. 일본경찰이 교포를 잡기 위해 목욕탕 앞에 대기했다. 증명서가 없으면 형사범으로 구속해 10년 징역형을 내렸다. 이들을 북송선에 실어 내보내는 일이 비일비재한 시절이었다. 일본 정부는 골치 아픈 재일교포들을 편법적으로 강제 출국시켜 세금을 아끼려했다. 모든 재일교포는 지문채취를 해야 했고 인권침해도 심했다. 그런 걸 보면서 소수민족, 즉 ‘마이너리티’(Minority)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문제해결을 하려면 국제법을 제대로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 국제법을 전공한 학자로서 현정권에서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외교, 왜 중요하다고 보는가.

▲ 구한말 역사를 보면 국제외교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19세기 초 한반도에서 발발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도 우리가 힘이 없어 주권을 뺏긴 결과다.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군사력에 나라를 잃었다. 36년간 일본에 의해 고초를 겪었다. 우리같이 작은 나라들이 살 길은 외교밖에 없다. 외교는 안보적 수단이 아니다. 나라를 강하게 하는 길은 외교뿐이다. 우리의 외교목표는 평화외교·문화외교가 돼야 한다. 그런 힘으로 가야 승산이 있다. 대한민국은 평화를 사랑하는 국가다. 그런 이미지를 일관된 외교정책으로 삼아야 한다. 품격 높은 문화이미지를 국제사회에 정착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문화적 역량을 동원하고 평화적 외교를 통해 꾸준히 밀고 나가야 과거와 같은 비극을 막을 수 있다. 한반도는 대륙세력인 중국과 러시아, 해양세력인 미국·일본과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마주치는 중간지대에 있어 지정학적으로 늘 불안하다. 해양세력이 강하면 대륙으로 진출하고, 대륙세력이 강하면 해양으로 진출하게 된다. 두 양대 세력 중간지대 반도국가인 한반도는 언제든 참극을 맞을 수 있다. 살아남는 유일한 길은 외교밖에 없다.

 

 

- 외국을 예로 든다면.

▲ 유럽 영세중립국 스위스는 8개국에 둘러싸인 소국이다. 네덜란드도 한때 스페인에게 식민 지배를 받았다. 그러나 이들 나라는 생존했다. 국제법에 대한 규범과 행위 등을 면밀하게 연구하고 파악해 대처를 잘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와 함께 설득작업을 하고 자국과의 관계정립에 중점을 두었다. 중립국가로 가려면 그에 상응한 외교력 없이 불가능하다. 생존과 직결되므로 매우 중요하다. 1949년 나치정권 당시, 오스트리아도 ‘칼 레너’라는 탁월한 정치지도자가 외교를 통해 나라를 살렸다. 그는 사회주의자와 자유민주주의자들을 하나로 통합해 통일정부를 만들었다. 그런 다음 강대국들을 자국 땅에서 내보내는 협약을 이끌어 냈다. 화해와 협력을 통한 남남협력 외교를 통해 스탈린을 만났다. 미국과도 대화를 했다. 주둔군만 내보내면 어느 나라도 관여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다. 결국 1952년 영세중립국으로 유도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실패했다면 독일처럼 분단국으로 남아야 했다. 사례에서 보듯이 외교는 먼저 내부적으로 내공을 키워야 힘을 발휘한다.

 

 

- 마지막으로 2017년 대선을 전망해본다면.

▲ 올해 정치권은 바짝 정신을 차려야 한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도 결국 부실한 정당후보 공천검증과 선택을 잘못한 유권자 때문이다. 초법적이고 제왕적인 대통령 권력과 국회의 독선적 국정운영에 의해 의회민주주의와 정당민주주의가 실패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정치권은 근본적 재발방지를 위해 정당개혁과 후보선출 검증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선거에서 불량후보를 걸러내고 철저한 검증을 받도록 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예의다. 후보검증과 공천과정 실패는 국정혼란만 부를 뿐이다. 2012년 대선 당시 경제민주화와 복지공약 등으로 거짓 포장한 박근혜 후보의 인기 영합적 ‘포퓰리즘’(Populism)을 국민들은 간파하지 못했다. 탄핵정국에서 보듯 오늘날 대의민주주의는 대표성 위기와 통치불능 위기 등 한계에 봉착했다. 참여민주주의와 시민정치로 거듭나야 한다. 당원 50%와 국민추첨 선거인단 50%로 구성된 ‘국민 참여 경선제’(Open Primary)와 함께 모바일투표 도입도 필요하다. 특히 정당개혁의 일환인 직접민주주의 확대를 위해 정당대의기구와 비례대표의원을 추첨제로 할 필요가 있다. 추첨제 도입 없는 시민참여는 현장 활동가와 현장엘리트의 과대 대표성을 키운다. 국민의 불신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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