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무엇을?
졸업…무엇을?
  • 강진수 기자
  • 승인 2017.02.27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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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수 에세이> 가장 아름다운 졸업을 만드는 사람

이번 달이 졸업식이 있는 달이라는 것을 한참 잊고 있었다. 길을 걷다보니 꽃다발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띤다. 대학교 정문에는 꽃을 파는 사람들이 내게 꽃다발을 흔들어 보이고, 오늘 졸업했는지 기분 좋아 보이는 학생들이 한껏 차려입은 옷맵시를 자랑하며 걷는다.

타지에서 여섯 달간 생활을 하고 돌아온 한국이라, 이런 모습들이 문득 어색한 기분도 든다. 누군가의 끝을 축하해주고 축하받는 달. 그리고 다른 시작을 두려워해야만 하는 새로운 출발선. 졸업이라는 글자가 전달하는 느낌은 그렇게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그것은 한국에서만 가지는 졸업의 의미는 아니지만, 축하와 기쁨보다는 두려움과 고독, 지독한 싸움으로 젊은이들을 모는 것 같은 색깔이 한국에서 더욱 짙어져버렸다는 점은 부정할 수가 없다. 꽃다발은 모두 웃고만 있는데 졸업생들의 웃음은 마냥 가짜일 것만 같다.

 

 

예전에는 졸업 때 받는 꽃다발들을 버리지 못하고 집으로 가져오곤 했다. 졸업 때 뿐 아니라, 모든 행사에서 꽃다발을 주고받기만 하면 늘 그랬다. 주렁주렁 꽃다발을 들고 집에 들어오면 어머니는 일일이 그것을 꽃병에 꽂아 두셨다. 그래서 며칠이고 꽃병의 물을 받아먹고 연명하는 꽃들을 바라보면서 언젠가 그것들이 시드는 날을 상상하던 것이다. 그리고 비로소 시들어 사라질 때, 졸업을 했구나. 아주 불현듯이 찾아드는 쓸쓸함을 마주보고서야, 나는 스스로 그런 마음을 의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꽃병에 갈아 꽂힐 새로운 꽃을 언제부턴가 기다리고 있었다. 잔혹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말들로 가득한 졸업식. 그것을 아름답게만 포장하려고 하는 어른들.

항상 졸업식이라는 무대 위에는 위대한 인물들만 올라왔고, 모두가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끄덕거리고 박수를 쳤다. 내게 졸업장을 주는 학교장, 선생들, 주변 어디 높으신 곳에서 오셔서 양복 주머니에 꽃을 자랑스레 꽂고 있는 소위 귀빈들, 그 중에서도 가장 반짝거리는 국회의원이나 시장, 구청장 등등. 그들이야말로 졸업식을 빛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두 단상 위 높은 의자에 앉아 서로가 서로의 연설에 귀 기울이던 시간. 그런 의례적인 시간을 졸업식이라고 으레 불렀고, 내겐 졸업식이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누군가 내게 따분한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주책 넘게 내 앞길에 대한, 대단한 조언들을 나열하는 시간이 어떻게 즐거울 수만 있을까. 그런 사람들은 결코 졸업식의 주인공이 되어야 할 사람들의 눈을 맞추고 이야기할 줄 모른다. 졸업을 해야 할 사람들이 무엇에 두려워하는지 모른다.

며칠 전, 성공회대에서 마련한 졸업식이 조금 특이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학교 청소 근로자분들을 모시고 졸업생들이 연설을 듣는 시간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것을 거부한 이 졸업식에서는 오히려 더 많은 들을 거리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근로자들은 그들 모두가 조금씩 모은 이천만 원을 학교에 기부했고, 좋은 근로 환경을 위해 노력해준 학교와 학생 모두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졸업식에 뿌듯해 하는 학생들의 모습. 힘이 되는 졸업식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올바른 조언을 해줄 수 없다면, 어떤 것이 올바른 것일 수 있겠는가에 대한 행동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성공회대가 졸업생들 앞에서 보여준 비전은 얼마나 새롭고 떳떳한 길을 제시해냈는가.

이런 변화는 앞으로 우리의 졸업식에 만들어져야할 과제다. 고민해보아야 할 부분은 어떤 지위의 졸업식, 어떤 명예의 졸업이 이루어져야 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누가, 우리의 졸업식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그 질문의 한 가지 답을 성공회대 졸업식이 보여줬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누군가를 밟고 나아가야만 하는, 그 과정에서 ‘성공’했다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누군가를 짓밟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라고 가르치는 연설. 이런 경쟁 사회적 구도에서 벗어나서, 누군가를 돕거나 또는 손을 잡고 함께 나아가거나, 그로 인해 서로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보일 수 있다는 신념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움은 비교 받을 필요조차 없다.

이 시대의 졸업식에서, 졸업생들이 비로소 졸업해야만 하는 것은 무엇일지 역시 고민해보아야 한다. 그들은 학교라는 소속에서 벗어나고 사회에 홀로서기를 해야만 한다. 결국 어떤 홀로서기가 가장 그들을 행복하게 해줄 것인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수많은 졸업식들은 그들 학교의 소속을 강조하고 앞으로 사회에 나가서도 그 소속감을 잊지 않기를 강요한다. 그래서 사회는 소속과 소속간의 대결로 점철되고, 혼자로 곧게 서 있는 졸업생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주체도, 제대로 된 주제도 없는 졸업식에서 졸업생들은 아무것도 졸업하지 못하고 사회로 내몰리게 된다. 사실 졸업식이라는 세레모니 자체는 이 시대의 어른들이 그들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아주 중요한 것으로 꾸며지고 만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스탠포드대학의 졸업식에서 연설을 한 적이 있다. 연설의 첫머리에 그는 자신이 이 대학 출신도 아니고 다른 대학을 다니다 중퇴를 했다며, 대학 졸업식에 이토록 연관 있어보기는 처음이라고 가벼운 농담을 던졌다. “자랑스러운 무슨 학교 졸업생 여러분”으로 연설을 시작하는 우리의 졸업식과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이 돋보인다. 그러면서 그는 그 나름의 살아온 경험을 토대로, 졸업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진단과 권할 수 있는 처방을 제시한다. 분명한 것은 그의 연설 속에서 그가 하는 말들이 완전한 진실이며 정답이라고 주장하는 부분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오직 방향을 제시할 뿐이고, 그것을 귀담아 듣는 것은 그 자리의 주인공인 졸업생들의 의지임을 연설 중에 잘 알고 있었다.

아름다운 졸업이란 결국 그 자리에 선 졸업생들을 존중하고 그들을 위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졸업생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정답처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그들의 앞길을 축복하고 좋은 선택들을 할 수 있도록 그 방향을 권해주고 선택권을 쥐어주는 것이 정말 아름다운 졸업식이 되는 것이다. 사회적 지위와 재산, 나이를 막론하고 단상에 ‘오를만한’ 사람들에게 그 자리를 주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진정 ‘위대한’ 연설을 하고, 졸업생들을 위해줄 줄 알며, 진심어린 조언을 녹여낼 수 있는 사람들은 결코 그들 자신의 부와 명예에 연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진정 단상에 ‘오를만한’ 사람, 아름다운 졸업식을 만들어나가는 사람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 점점 척박해질수록, 졸업식이라는 자리는 더 귀중한 시간들로 채워지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노력의 주체는 결국 졸업식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사람들, 학교 관계자, 교수들과 교직원들이 되어야 한다. 학생들에 비해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칭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패러다임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얼마나 학생들에게도 중요하게 작용하는지가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졸업을 만드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막연한 사회에 홀로서야 하는 청년들에게 진정한 힘이 돼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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