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녀가 웃었다, 어쩌다 저리 되었을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녀가 웃었다, 어쩌다 저리 되었을까
  • 류승연 기자
  • 승인 2017.03.13 15: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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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류승연

 

탄핵이 인용되고 만 이틀 동안 두문불출한 그녀를 보면서 남편이 말한다. “혹시 박근혜 전 대통령도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는 거 아니야?”

나는 그럴 리가 없을 거라고 말한다. 그녀에겐 노 전 대통령과 같은 자긍심이 없다는 생각에서다. 그리고 삼성동 사저로 들어가면서 지지자들 앞에서 싱긋 웃는 그녀를 보며 탄식이 나온다. 어쩌다 저리 되었을까. 연민마저 느껴진다.

탄핵이 확정된 이후 계속된 그녀의 비상식적인 행동들을 보면서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그녀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전직 대통령이 아닌 친정엄마와 동갑내기인 한 사람으로서 그녀의 인생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게 된다. 한 평생을 정치 속에서 살아온 그녀의 삶은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어떠한 길을 걸어왔기에 결국 괴물이 되어 버린 것일까?

그래서 집안일을 하다말고, 아이들 밥을 차리다 말고 문득 그녀를 생각하고 있는 날 발견한다. 한 나라를 단 4년 만에 이리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죄는 일단 차치하고, 어느 순간에는 ‘불쌍한 사람’이라는 측은지심마저 드는 것이다.

내가 그녀라면…. 탄핵이 확정되는 순간 가장 먼저 아버지가 떠올랐을 것 같다. 그녀는 역사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일상의 삶 속에서 역사를 생각해가며 살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안다. 분명히 알고 있다.

부모님이 역사에 어떻게 기록되는지 똑똑히 지켜보았고, 후세에까지 이어질 그 부끄러움을 없애기 위해 국정교과서에 그토록 매달렸다.

“아버지. 당신의 딸인 내가 탄핵을 당했습니다. 직선제 이후 대한민국 최초의 탄핵대통령으로 역사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 때 느끼는 그 수치심은 평범한 삶을 사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간 것이리라.

아마도 그래서겠지.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며 끝까지 투쟁할 뜻을 전하는 그녀의 오기는. 역사에 남겨질 흔적이 두려워서.

내가 그녀라면…. 아버지 다음으로 떠오른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을 것 같다. 그녀와 노 전 대통령의 관계를 보면서 세상이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법칙을 따르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엿보게 된다.

이번 촛불이 그토록 오랫동안 전국 각지에서 끊이지 않고 타오를 수 있었던 것. 다 그녀 덕분이다.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처음으로 발의되었을 때 국민들 마음속엔 충격이 휘몰아쳤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어도 유교적 사상이 무의식적 근간에 깔려 있는 대한민국이다. 국민들은 “어떻게 한 나라의 대통령을!”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처음이 무서울 뿐 그 다음부턴 충격이 둔화된다. 바람도 처음 필 때만 두렵고 그 다음부턴 곧 무덤덤해진단다. 이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미 탄핵이 무엇인가를 한 번 겪어본 국민들이다. 훨씬 더 작은 일로도 탄핵의 충격을 느껴봤는데 나라 전체를 골고루 망가트린 더 큰 잘못을 두고 탄핵에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어떻게 한 나라의 주군을!”이라는 충격과 죄책감은 이미 2004년 그녀 스스로 주도한 탄핵에 의해 힘을 상실했다. 그녀가 행했던 과거의 업이 13년의 시간을 지나 현재의 그녀에게 고스란히 되돌아왔다. 세상의 이치 앞에 절로 숙연해지는 부분이다.

그녀 역시 노 전 대통령의 뒤를 따를지도 모른다는 남편의 예상은 삼성동 사저로 들어가는 그녀의 웃음을 보는 순간 산산이 깨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스스로의 품위를 잃지 않겠다는 자긍심이 있었고, 지켜야 할 것들도 많았다. 그는 바위에서 뛰어내림으로서 스스로의 자긍심을 지키고, 스스로의 정치신념도 지켰고, 그 신념을 이어가 줄 정치세력도 지켜냈다. 그것도 십 년 넘게.

하지만 그녀에게는 자존심만 있을 뿐 자긍심이 없다. 노 전 대통령과 같은 길을 따를 것이라는 우려는 접어도 될 것 같다. 스스로의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자긍심이 없으니 스스로 목숨을 끓을 이유도 없다.

그녀에게 자긍심이 있다면 기꺼이 멋있게 탄핵 승복연설을 했어야 했다. 심적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어도 대한민국 헌법의 결정에는 따르겠다고 국민 앞에 선서를 했어야 했다. 멋진 뒷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최소한의 자긍심이란 게 남아 있었다면.

그녀에게는 앙칼진 자존심만 남았다. 토라진 여자아이처럼 입을 꼭 다물고 두문불출하다가 자신의 지지층을 위해서만 웃음을 보인다. 그녀에게는 자신을 지지하는 소수만이 이 나라의 국민이었던 거다. 그녀는 그들만의 대통령이었던 거다. 임기 내내.

이쯤 되니 그녀가 불쌍해진다. 어쩌다 저리 되었을까? 한 인간으로서 딱하다는 생각도 든다. 왜 괴물이 되어버린 걸까? 어쩔 수 없었던 걸까? 아니면 스스로 선택한 것일까? 그녀의 삶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녀가 아는 삶이란 온통 정치뿐이다. 유년시절부터 현재까지 단 한 번도 정치 밖의 인생을 살아본 적이 없다. 그것도 아빠의 죽음과 함께 시간이 멈춰버린 그 옛날의 정치. 무소불위의 권력을 마음대로 휘둘러도 제동 거는 이 없던 그 시절의 정치. 힘으로, 돈으로, 협박으로 나라를 좌지우지하던 그 시절의 정치. 그것이 그녀가 아는 세상이고 그녀가 세상을 살아나가는 방법이리라.

그녀의 정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십 년쯤 전의 일인가 보다. 정치부 기자들에게도 박근혜 대표 혹은 박근혜 전 대표는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다 작심이라도 한 듯 그녀가 기자들과 2~3일에 거쳐 만남의 시간을 가진 적이 있다.

일간 신문사 따로, 방송사 따로, 인터넷 매체 따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공동 기자간담회를 하고, 기념사진도 찍고, 여의도에 마련된 음식점에 가서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식사를 마치자 그녀는 떠났고 친박 의원들이 기자들을 데리고 2차로 노래주점에 갔다. 양주와 맥주가 섞인 폭탄주가 돌았고 다들 얼큰히 취기가 올랐다.

함께 갔던 기자 선배가 잠시 보자며 나를 부른다. A의원이 택시비를 하라며 5만원을 줬단다. 안 받으려 해도 화를 내고 주머니에 넣고 가더란다. 밤이 늦었으니 택시를 타고 가라며 후배인 나에게 2만원을 건넨다. 절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란다.

술 몇 잔을 더 마시고, 노래 한 곡 더 부르고 화장실에 갔다 나오는데 A의원이 복도에서 기다리다 나를 붙잡는다. 늦었으니 택시타고 가라며 5만원을 건넨다. 평소에 나를 아껴서 특별히 나만 주는 거란다. 기자들 월급 자기도 뻔히 안다며 오늘 밤 택시비라도 절약하라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란다. ‘아~ 이런 식으로 기자들 모두에게 택시비를 돌렸구나.’

기자생활하면서 돈이라는 걸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아봤다. 명절이면 집으로 선물세트는 많이 배달돼왔지만 돈을 주는 정치인은 없었다. 돈은 받는 쪽이나 주는 쪽이나 큰일이 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큰일이 나는 일을 그녀는 해냈다. 그녀가 몸통일 거라 생각하는 이유는 국회의원들과 수많은 술자리를 가져봤지만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택시비 명목으로 돈이 오가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딱 그녀와 식사를 한 그 날에만 택시비라는 명목으로 기자들에게 돈이 돌았다.

그리고 A의원. 당시 그는 의원도 아니었고 기자들에게 택시비를 뿌릴만한 경제력이 없었다. 모시는 주군을 위해 개인 사비를 털만한 형편이 아니었다. 누군가로부터 받아서 전달을 했을 텐데 그 누군가가 누구였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하나다.

아마도 그것이 그녀가 배운 그 시절의 정치 방식이었을 거다. 그리고 달라진 시대의 흐름을 못 읽고 그 방식 그대로 정치를 하다가 현재의 이 사단을 불러오게 된 것일 게다.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나도 모르겠다. 검찰수사가 본격화되고 죄가 입증이 되면 그녀는 구치소에 가게 되는 걸까? 아니면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처럼 어느 한적한 산 속에 유배를 가 죗값을 치르게 되는 걸까?

앞날이 어찌될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녀가 이제 그만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내려놓길 바란다. 끝까지 이를 앙다물고 다시 한 번 일어설 그 언젠가의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며 남은 생의 에너지를 쏟아 붓지 않길 바란다.

그러는 대신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누릴 수 있는 인생의 소소한 행복들을 느껴가며 조용하고 평화롭게 말년을 보내기를 바란다. 그녀를 좋아해서가 아니다. 괴물이 되어버린 그녀에게 연민이 느껴져서다.

잠을 자야 하는데 자꾸만 그녀의 얼굴이 떠오른다.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싱긋 웃던 모습, 그 모습에 열광하며 오열하는 지지자들. 탄핵선고 날 집회에서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을 당한 사건은 그들에게 아무 의미도 없나보다.

마치 어두운 수렁에서 갓 올라온 괴물이라도 된 것처럼 싱긋 웃는 그 모습을 보며 마음이 착잡했던 건 나뿐 만은 아니었으리라. 이 나라와 국민들 걱정에 한숨이 나오는 것 역시 나 뿐만은 아니리라. 좋아하지도 않는 술 한 잔이 간절히 생각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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