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구혜리의 ‘생생 인턴 체험기’-5회

 

신입 인턴으로 입사 첫 날 ‘위클리서울’ 편집장님께 인턴기를 연재하겠노라 언약했으나 지키지 않았다, 지킬 수 없었다. 6개월이란 짧지 않은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스쳐갔다. 그러나 결코 필자는 이 시간들이 짧다고 느끼지 못했는데 찰나의 그 나날 속에서조차 내 영혼의 일부 역시 동일한 속도로 육체를 스쳐갔기 때문이다. 어찌됐건 6개월가량의 긴 노고를 마쳤고, 사회를 배웠다. 사람을 배웠다. 돌이켜 인턴 여섯 달의 날들을 되짚고자 하면 당시의 부분적인 기쁨이나 부분적인 서러움들이 희석되어 버렸으나 이제와 그곳에서 나의, 수많은 현재 속에 고군분투하는 사람들 속에 함께였던 나의 이야기를 써본다. 이번 이야기는 인턴 동료로 만나 친구가 된 수연이와 떠난 일본 여행기다.

 

 

인턴 동료로 만난 수연은 어느새 회사 밖에서도 반갑게 맞을 수 있는 친구가 되었다. 3박 4일이라는 짧은 시간이나마 낯선 환경과 새로운 경험에서 한 번의 다툼도 없이 다녀온 친구와의 첫 여행에 무척 자부심을 느끼며….

그녀의 첫 월급날 우리는 함께 오키나와로 가는 항공권을 샀다. 그녀는 이 여행을 위해 무려 한 달을 운전면허 시험에 매달렸는데, 안타깝게도 도로주행에서 두 차례 낙방하였다. 하여 나는 온전히 운전수를 떠맡게 되었는데 항공사에서 제공하는 1일 무료 제휴 서비스를 받아가며 태평하게 렌터카를 예약해버렸던 것이다.

인천국제공항으로 떠나는 당일, 오키나와에서 운전을 하기 위해 국제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아야했다. 부랴부랴 여권용 사진을 찍고 지구대와 경찰서를 착각하여 헤맨 끝에 마포경찰서에서 면허증을 받아 공항에서 포켓 와이파이를 수령하고 미리 예약한 엔화를 환전했다. 이 모든 것이 해가 정오에서 떨어질 때쯤 시작하여 마무리된 일인데, 당연히 시간이 촉박해 면세점 구경은커녕 비행기도 못 탈 뻔 했다.

 

 

즉흥적으로 구매한 항공권은 왕복 12만 원의 일본 저가항공 피치에어로 분홍분홍한 이미지만큼이나 귀여운 제휴 서비스를 제공했다. 렌터카도 하루 무료 쿠폰을 적용해서 3일 총 6만 원에 계산할 수 있었고 면세 할인, 관광 할인 등을 제공했다. 나는 모바일-인터넷을 헤엄치며 할인 상품을 낚는 전문꾼이었던 반면 계획 관광에는 흥미가 없었고, 수연은 첫 해외여행이라 미리 찜해둔 ‘관광 필수 코스’가 있었다. 자칫 자유여행자는 혼자만의 휴가를 만끽하다 정작 아무것도 보고 오지 못하고 오는 수가 있는데 그 편에서 수연의 필수 코스가 있었기에 그녀가 “어디 가자!” 라고 하면 나는 “그래그래” 하며 놓칠 뻔 했던 숨은 명소들에 감탄할 수 있었다. 반면 수연은 첫 해외여행에서 당할 수 있는 ‘호갱’짓을 피할 수 있었고 즉흥 선택의 재미를 맛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분명 서로가 서로에게 다른 객체였지만 함께일 때 주체로서 시너지를 낼 수 있었다.

수연이 손꼽은 관광명소는 만좌모, 츄라우미 수족관, 아메리칸 빌리지, 국제거리, 선셋비치였다. 일본에 도착했을 땐 이미 해가 저문 뒤였다. 공항을 기점으로 국제거리를 지나 슈리성까지 작은 모노레일이 연결돼 있다. 인천 2호선 지하철만한 규모의 이 작은 대중교통은 성인 편도에 300엔(약 3000원), 1일권 700엔(약 7000원)에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수단으로는 오키나와 전체 중 1/4 정도밖에 다닐 수 없고 그 이후의 지역은 차가 있어야 편하기 때문에 그토록 렌터카를 고집했던 것이다.

 

 

오키나와의 첫 얼굴은 공항 인근의 관광지인 밤의 국제거리로 시작되었다. 밤하늘이 무색하게 반짝이는 불빛과 화려한 호객소리에 신이 났다. “귀여워!” 일본은 역시 일본, 귀여웠다. 낯선 건물 모양새, 하물며 택시나 신호등의 생김새마저 귀엽고 신기했다. 국제거리 내 포장마차 거리도 가볼만 하다. 간절히 기다리던 맥주 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첫 발을 들인 게스트 하우스는 운이 좋게 우리 둘이 함께 쓰는 2인실. “tooth brush”를 말하려다 혀가 꼬여 “teeth bruth”라고 하는 바람에 다른 외국인을 빵 터지게 하고 수연과 서로의 민낯을 보며 잠이 들었다.

이튿날 오후 3일 일정의 기둥을 세웠다. 경제성이고 뭐고 우선 후퇴 경로가 아닌 선에서 가고 싶은 주요 관광지는 꼭 가보자는 것이 주축이었고 그 첫 번째는 만좌모였다. 드라마 ‘최고의 사랑’의 배경지로 등장해 유명해진 곳이기도 했다. 차가 필요했다.

 

 

공항 인근을 떠나기 전 미리 예약해둔 렌터카센터로 향했다. 국제운전면허증을 꺼내는 내 모습이 마치 새해 새벽의 술집에서 신분증을 꺼내는 갓 탈(脫)미성년자 같아 보였다. 한국인 직원의 인도에 따라 주의사항을 듣는데 “한국과 무조건 반대! 무조건 왼쪽!”을 네다섯 번은 들은 것 같다. 다행인 것은 아직 내가 한국에서의 운전도 익숙지 않아 왼쪽 오른쪽 습관이 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거고 저거고 초보기 때문에 좌측 도로, 우측 운전대에 도리어 편안함을 느끼기까지 했다. “여기서 사시는 거예요?” “그러려구요! 온 지 얼마 안됐어요.” 오키나와에서 일하는 한국인 직원의 해외취업 성공 사례에 박수치며 수연도 나도 찡한 부러움을 느꼈다. 여동생 같은 아이들을 만난 동포는 “다른 직원들이 한국말을 못 알아들으니까 하는 말인데, 주유는 한두 블록 전에 주유소에서 채우세요. 모르거나 잊었다가 여기서 채우면 훨씬 비싸거든요”라는 꿀팁도 아끼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서툴지만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일본인 직원의 부름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꼼꼼히 차량 상태를 체크하고 운전석에 앉았다. 아차, 덜컥 운전대를 잡으니 이제야 오만가지 걱정이 든다. “나 살아서 운전할 수 있을까?” 듣던 수연은 이제 와서 그러면 어떡하느냐고 어깨를 흔들며 덜덜 거렸다.

 

 

그러나 우리는 성공적으로 참 잘 다녔다. 하루가 아깝지 않게 만좌모로, 츄라우미 수족관으로 쌩쌩 잘만 다녔다. 만좌모는 코끼리 모양의 바위섬이 있는 아름다운 해안절벽인데, 겨울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따뜻한 남해 날씨를 받으며 원피스 차림으로 기념사진을 수도 없이 찍었다. 에메랄드빛 바다를 배경으로 한겨울 우리들은 어느 때보다 따뜻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따뜻한 날씨와 아름다운 해안도로. 오키나와가 ‘일본의 제주도’라고 하는 이유 중에 하나다. 하지만 명백한 해외여행으로서 오키나와와 제주도의 차이점을 찾는다면 역시 언어가 아닐까? 한국어는 물론이거니와 일본은 지극히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 이것은 초등생(빠르면 유치원생) 때부터 조기 영어교육에 열성인 한국사회와 달리 소수 엘리트의 통번역이 성공적으로 구축되어 있어 영어교육에 대한 집착이 크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웬만한 관광지, 호스텔조차 영어 사용을 꺼려했다. 하지만 덕분에 잊고 지내던 기본적인 일본어 회화 실력을 써먹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고 그것이 나름 뿌듯하기도 했다. 특히 “ㅇㅇㅇ 아리마스까?(있습니까?)” 하나면 눈칫밥 백단으로 만사형통이다. 또 요즘엔 통번역 어플리케이션이 잘 돼있어서 (특히 파x고) 세계 어느 나라를 다니든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하다하다 안되면 핸드폰을 꺼내면 되니까. 하지만 기술의 발전은 때때로 두려움이 되기도 한다. 이대로 언젠가 편안함에 익숙해져 배움의 기쁨을 잊고 이를 게을리 하게 될까봐. 발전은, 그대로 퇴보가 아닐까.

 

 

두 번째로 찾아간 곳은 푸른 생명의 아름다움을 가득 담은 츄라우미 수족관이었다. 여기는 수연의 정보력이 발휘됐다. 기대가 컸던 건지 그녀는 철저한 사전조사를 행하고 왔는데, 덕분에 저렴한 가격으로 좋은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온라인 쇼핑몰이나 제휴 할인도 많지만, 오키나와 여행을 계획하는 분들이라면 ‘쿄다 휴게소’에 들러 수족관을 방문해보길 추천한다. (휴게소 매점 내 입장권 판매 : 원가 1850엔 → 할인 1600엔) 또 오후 4시 이후 입장료는 1290엔인데, 할인된 티켓을 구매했어도 원가 1850엔에서 차액만큼 환불해준다. (이득!) 마지막으로 요즘 유행하는 포켓몬GO 게임을 통해 츄라우미 수족관에서는 갸라도스나 샤미드가 출몰하기도 한다니 상시 게임을 켜두고 주목할 것~.

 

 

츄라우미 수족관이 세계에서 2번째로 큰 아쿠아리움이라는 사실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은 그곳에서 만난 소녀들이다. 츄라우미를 뜻하는 입구 간판에서 또래로 보이는 소녀들은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단체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 모습이 무척 사랑스러워 수연과 나도 선뜻 사진 촬영을 부탁했고 보답으로 그들의 모습 역시 찍어주었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감사하단 인사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까르륵 거리는 웃음소리 사이로 “사랑해요!” 한마디가 들려왔다. 어쩐지 간질거리는 흥을 몸속에 가두지 못해 “스끼!(나도 좋아해!)”라고 뒤돌아 대답해줬다. 한바탕 웃고 나서 이대로 헤어지는 것도 아쉬워 함께 사진을 찍자고 제안했고, 커다란 물고기 옆보다 값진 잊지 못할 기념사진을 남겼다. 여행이 끝난 후 ‘이건 이렇게 할 걸, 저것도 해볼 걸’ 하는 후회들은 사실 아주 사소한 행동들이 전부다. 그 외국인에게 인사해볼 걸, 이 말을 해주고 올걸, 전해주고 올 걸…. 여행은 흔치 않은 일상의 탈피니까 단 한 번이라도 스스로 입으로 몸으로 말하는 것이 좋다. 주저하다간 새로운 인연도 경험도 저 멀리 날아가 버리고 말테다. <기사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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