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태국에서 살아보기, 사랑하기-14회

 

 

- 특별한 날에는 스테이크를 먹자

시골 깊숙한 곳에서 어디 쉽게 이동도 못하며 지냈기에 먹는 것으로 고생한 적이 몇 번 있다. 몸이 아픈 적도 몇 번 있는데다가, 마을 슈퍼나 편의점 음식, 또는 집 앞 시장에서 음식을 사다가 먹어야 하는데 가끔 이런 것들이 몸에 탈을 일으키곤 했던 것이다. 그래서 같이 일하는 학교 선생님들이 내가 먹는 것에 신경을 많이 써주기도 했다. 자주 읍내에 데려가 식사를 같이 하기도 하고, 마을에선 도저히 접해볼 수도 없는 패스트푸드점을 갈 때도 있었다.

선생님들과 많은 현지 음식을 먹어보았지만, 늘 어떤 특별한 일이 있을 때면 스테이크를 먹자고 하시곤 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스테이크와는 많이 다르다. 주로 돼지고기 구이가 많고, 소고기 스테이크도 있지만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파는 두툼하고 육즙이 흘러나오는 그런 스테이크가 아니다. 얇게 저민 고기를 구운 것에 달콤한 소스를 듬뿍 뿌려놓은 것이 바로 내가 사는 마을의 스테이크다. 거기에 감자튀김과 채소 약간 곁들여 나오는 정도인데, 먹을 것으로 고생할 때에는 그것도 감사해서 눈 감추듯 먹어치우곤 했다.

 

 

잘 먹는 내 모습을 보며 다른 선생님들은 더 먹으라고, 일부러 메뉴판을 내 앞으로 가져다 놓아주는데, 더 시켜 먹기도 염치가 없어 한 접시에 만족하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같이 식사를 할 때면 굳이 선생님들이 계산을 다 해버리는 경우가 많았고, 이따금씩 내가 내겠다고 실랑이를 벌이더라도 잘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점을 알고 있는데다가, 이 마을에서 이런 스테이크는 결코 저렴한 음식이 아니다. 부족하다고 몇 접시씩 먹어치우다 보면, 나야 감당할 수 있겠지만 같이 자리하는 선생님들에겐 부담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스테이크를 먹고 다음날 출근을 하면, 이번에는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 수업을 들어가기만 하면 어떻게 알았는지, “선생님, 어제 스테이크 먹었어요? 어디 가서 먹었어요? 맛있었어요?” 하고 하나하나 물어본다. 아이들의 부러워하는 눈망울을 보면서 어느새 이 마을에서 선생이 되어버린 나는 난처하기만 하다. 다음에 너희들과도 스테이크를 먹으러 가자하면서 겨우 달래놓고 수업을 하다보면, 선생인 나의 약속은 이처럼 가볍고 의미 없을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수업이 끝난 다음에 점심시간이 되고, 아이들이 밥 하나에 반찬 하나씩 집에서 싸온 것들을 나눠먹는 사이에서 나도 밥을 꾸역꾸역 먹어가면서, 그 눈망울로 스테이크를 말하던 것이 자꾸 떠올랐다. 내게는 이곳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먹는 스테이크가 이 아이들에게는 특별한 날에 먹을 특별한 식사다.

 

 

약속을 한 내가 부끄러워, 아이들과 방과 후에 보기로 했다. 어딜 움직일만한 교통수단이 전혀 없었으므로 아이들이 몰고 온 오토바이를 얻어 타고 움직이기로 했다. 물론 아이들의 오토바이에 올라탄다는 것은 위험한 행동이다. 또 아무 아이들의 뒤에 아무렇게나 올라탄다는 것은 내가 발 디디고 선 이 나라의 전통과 예절에 어긋나는 행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전통, 예절, 그리고 나를 막아선 규칙 따위들이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일까. 지금 아니면 이 아이들과 스테이크를 먹으러 갈 수가 없다. 오늘 같이 특별한 날에, 아이들에게 스테이크 하나 사주지 못하는 선생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일까.

아이들과 식사를 마치고 나니 땅거미가 지고 금방 어둑어둑해졌다. 야시장을 잠깐 돌면서 이런저런 장난을 치고 편의점에 가서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다시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규칙대로라면 전혀 여유로워서는 안 될 시간,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시간. 그러나 우리의 특별한 날은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아야 한다. 오토바이에 올라 한참 드넓은 논과 풀숲 사이를 지나는데, 그 위로는 별이 뿌옇게 떠있다.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에 별들만이 뿌옇게 떠있다.

앞에 운전하던 아이가 내게 한국으로 돌아가면 태국에 언제쯤 다시 오느냐고 물었다.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 다시 오지 않는 것이 너희에게 더 좋을 수도 있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삼키고 나니 눈앞이 뿌옇게 일었다. 별이 떨어진다. 볼에 자국을 남기면서 별이 우수수 떨어진다. 아이들에게 특별한 날에는 스테이크를 사줄 수 있는 선생이 되고 싶었다.

 

 

 

- 고추가 익는 앞뜰

아이들의 집을 다시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방문할 집의 목록을 정리하고 이것저것 가져다 줄 것들을 샀다. 이불, 생수, 약품과 휴지, 조금의 식품 등등. 그것들을 차에 가득 싣고, 한참 지평선을 바라보고 가야 아이들의 기울어진 집이 보인다. 온갖 벌레가 들끓고 수돗물도 제대로 안 되어 있으며, 천장이 부서지고 전기도 드문드문 들어오는 집.

집 안을 좀 살펴도 되겠냐고 동의를 구하자, 아이가 따라 들어오라고 한다. 카메라 하나를 들고 비걱거리는 바닥과 계단을 지나 방으로 들어가자, 온갖 물건들이 쏟아져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모습이 눈에 선연하게 들어온다. 아이가 당황하면서 서둘러 바닥의 물건들을 치우기 시작한다. 나는 아이에게 괜찮다고, 조금 어지러워도 괜찮다고. 너무 많은 사진을 찍으면 아이가 금방 또 부끄러워할까, 찍는 둥 마는 둥 화각도 잡지 않고 셔터를 몰래 누른다.

 

 

잠을 자는 쪽으로 들어가 보니, 낡아빠진 이불과 베개, 곳곳에 못질이 덜 된 바닥을 뒤로 하고 가장 잘 보이는 벽면에 메달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아이에게 이 메달이 누구의 것이냐고 물으니 자신이 학교에서 받아온 것이라고 조그맣게 이야기한다. 잘했구나. 충분히 잘해왔구나. 앞으로도 잘해낼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이런 것이 전부다. 아이에게 나는 위대한 비전을 전해주러 온 사람이 아니라, 하찮고 보잘 것 없는 위로를 전해주러 온 사람이다. 그 위로는 밥도 돈도 되지 않지만, 필요할 때가 있다고 나는 확신할 수 있다. 자신이 걸어온 길이 어떠했든, 그 모든 것을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이 가장 필요하다.

 

 

아이의 집 앞뜰에는 고추가 익어간다. 마침 덥지도 않고 따뜻한 햇살이 고추를 내리쬔다. 나도 그런 햇살이 되고 싶었다. 햇살이 고추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겠는가. 그저 비추고 서있기만 해도 고추는 알아서 익는다. 문득 아이 할머니의 주름진 발이 앞뜰에 훤히 비춰진다. 동료 하나가 셔터를 누르라고 한다. 할머니의 주름과 아이의 메달을 기록하는 것 말고 나는 무엇을 하는가.

나는 햇살이고 싶은데 사람들은 내게 단비가 되라 하네. 단비도 좋지만, 가끔은 떨어지는 빗방울보다도 따스해지고 싶은데. 논바닥에 떨어지는 단비만 되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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