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5.18 진상규명 마지막 기회”
“올해가 5.18 진상규명 마지막 기회”
  • 가톨릭뉴스지금여기 정현진 기자
  • 승인 2017.03.23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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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뉴스지금여기> 인터뷰: 김양래 5.18재단 상임이사

 

“5.18민주화운동으로 공식화되고, 국가기념일로 정했지만, 광주 민간인 학살의 진상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인터뷰를 시작한 뒤, 5.18기념재단 김양래 상임이사의 첫 말마디였다. 그는 여러 이름으로 불리던 ‘5.18민주화운동’은 제 이름을 찾았고, 피해자와 희생자 가족들에 대한 보상과 예우가 갖춰졌지만, 그보다 중요한 ‘진상규명’은 여전히 완성되지 않았다며, “지금이 진상규명의 마지막 때”라고 말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3년 5월 13일 5.18을 ‘5.18민주화운동’이라고 규정했지만, 진상규명은 “평가는 역사에 맡기자”며 외면했고, 오히려 명칭에 가려 진실규명과 평가가 이뤄지지 않는 결과를 낳았다.

진상규명과 관련해 1988년 청문회가 열렸고,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숨은 사실이 밝혀졌다고 알려졌지만, 당시 집권여당이 청문회 보고서 내용에 동의하지 않아 채택되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과거사위원회도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다뤘지만, 4.3제주항쟁 등 다른 사건과 함께 다뤄지면서 그나마 일부라도 밝혀진 광주 사건은 우선순위에 밀려 충분한 조사가 이뤄지지 못했다. 그렇게 37년간 ‘5.18민주화운동’은 정부 공식 보고서도 없이, 왜곡과 폄훼의 대상이 되고 있다.

 

▲ 5.18기념재단 김양래 상임이사. 그는, "37년이 지난 지금까지 5.18민주화운동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올해는 조사와 분석을 통해 역사가 새로 쓰여지는 발판이어야 하고, 그래서 중요합니다. 진상규명을 위해 전반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에요. 정부 공식 보고서가 없고, 사실 관계의 일부만 밝힌 것에 불과한 상태에서 사건의 근본에 아직도 접근하지 못했습니다.”

김양래 상임이사는 2017년이 ‘5.18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을 마무리할 수 있는 마지막 시기이며 상당히 중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5월단체들이 진상규명을 위한 활동을 꾸준히 해왔지만, 이에 더해 올해 초 시민이 기증한 발칸포용 탄피 검증 작업이 진행되고, 역시 올해 초 기밀해제로 공개된 미중앙정보국(CIA) 기밀문서가 공개되면서 진상규명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올해 초 두 시민이 5.18기념재단에 기증한 발칸포용 탄피 6점은 1980년 5월 24일 당시 광주시 한두재와 봉선동 인근에서 주워 보관해온 것으로 헬기에서 탱크 등을 공격할 때 쓰는 것이다. 5.18 진상규명의 주요 지점이었던 민간인에 대한 헬기 사격 여부를 밝힐 수 있는 주요한 증거로 추정된다. 5.18 당시 헬기 투입에 대한 시민 증언과 군문서, 검찰 수사기록이 있지만, 지금까지 사격 여부를 밝히지 못했다. 기증된 탄피의 제원, 생산년도, 종류 등에 대해 현재 국과수가 분석 중이다.

또 미 중앙정보국 기록은 5.18 당시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설이 사실이 아님을 밝히는 주요한 증거다. 이 문서를 기증한 미국인 언론인 팀 셔록은 4월 1일 광주를 방문해 진실규명 작업에 참여할 계획이며, 이 과정을 통해 미국이 무력 사용을 승인 또는 방조했는지가 밝혀질 전망이다.

김양래 상임이사는 “그동안 군과 정부가 5.18에 대해 발표한 내용이 거짓이었다고 밝혀지고 있다”며, 가장 큰 것이 헬기 사격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헬기 사격을 명령한 사람이 있었다는 자료가 있지만 정작 조종사들은 “명령은 받았지만 쏘지 않았다거나 사람을 향해 쏘지 않았다”고 발뺌했다면서, “그러나 당시 수많은 광주 시민과 외국인 선교사, 조비오 신부 등은 5월 21일과 24일, 27일 등에 헬기 사격을 봤다고 증언했지만 무시됐다”고 설명했다.

헬기 사격의 증거로 드러난 것은 또 있다. 지난해 9월 구도청 앞 전일빌딩 총알 자국이다. 리모델링을 하기 위해 내외부 검식을 한 결과 전일빌딩 외부 35발, 외부 기둥 150여 발의 총알 자국이 발견됐다. 총탄을 감식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지난해 말 10층 건물이라는 점, 집중된 탄환의 흐름과 방향 등에 따라 “헬기 사격이 아니면 생길 수 없는 흔적”이라는 결과를 내놨다.

 

▲ 광주대교구는 매년 5.18을 맞아 남동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한다. (사진 제공 = 광주대교구 정평위)

 

김 상임이사는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그동안 군에서 주장한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군은 시민들에게 집단 발포한 것을 두고, 거센 저항으로 위협을 느껴 총을 쐈다고 자위권을 주장했고, 법원조차 살상행위를 정당방위로 인정했다”며, “그동안 수많은 이들이 죽고, 헬기 사격 등을 증언했지만 모두 무시됐다. 그러나 탄흔은 무시할 수 없고, 모든 증언은 증거 앞에 유효하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5월 18일 0시 계엄령 확대를 “내란”이라고 판결했다. 김 상임이사는 “그렇다면 시민들은 내란에 저항한 것이고, 내란을 일으킨 자들의 학살행위는 자위권, 정당방위가 아니라 이미 준비된 것”이라면서 “그런 사실과 처벌의 대상을 모두 규명해야 하고,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또 그는 이런 사실 외에도 지난 37년 동안 새롭게 밝혀진 내용이 많고, 군 발표 내용과 상당히 다르다면서, “이 모든 것을 토론, 구체적 물증, 증언, 자료를 검토해 바로잡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재단을 비롯해 유족회, 부상자회 등 5월 단체의 첫 목표는 정부의 진상규명 의지를 드러내고, 진상규명위를 설치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보고서로 연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5월 단체들은 차기 정부에서는 반드시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하고, “대선 후보들의 5.18 진상규명 공약, 국회 차원의 진상규명특별위원회 구성, 차기 정부의 국가 차원 진상조사, 국가 공인 보고서 채택, 암매장 및 행방불명자 발굴” 등을 요구하고 있다.

 

▲ 5.18기념재단에 걸린 그림. 절대공동체, 그날의 광주. ⓒ정현진 기자

 

한국교회, 5.18 당시 교회가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고 성찰해야

“교회가 그 엄청난 일을 해놓고 지금은 ‘그때는 누구나 그랬다’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여기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기억하고 되짚고, 기록하고, 목숨을 걸었던 그때보다 지금 더 잘 할 수 있도록 성찰해야죠. 성찰 없이 어떻게 전통과 역사가 이뤄지나요.”

김양래 상임이사는 5.18 진상규명의 과정과 역사를 새로 쓰는 과정에서 교회가 해야 할 몫이 있다면서, “당시 교회의 역할을 기억하고 계승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5.18민주화운동’에서 ‘광주’를 뺀 것은 광주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에서도 광주대교구만의 일이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가 기억하고 계승할 몫이 있다”고 강조했다.

당시 교회가 무엇을 했는지 모두 목격하고 활동에 참여했던 그는 5.18 당시부터 진상규명까지 교회의 역할은 지대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1980년 5월 27일 진압 이후, 가장 먼저 이름과 목숨, 교회 조직을 걸고 진실을 이야기했던 이들 중 하나가 교구 사제단이었고, 윤공희 대주교는 군부와 단 한번도 타협하지 않았다”며, “교회는 광주의 아픔과 함께했고, 자금이 생기면 가장 먼저 구속자와 유족을 돌보고, 석방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사제들은 실제로 맞고 고문을 당하며 고초를 겪었다.

1980년 5월 27일 진압이 끝난 직후, 광주대교구는 6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남동성당에서 구속자 석방과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특별 미사를 매주 월요일에 열었다. 이후 월례 미사로 전환한 미사는 1982년 12월 5일 구속자 석방까지 이어졌다. 또 1980년 11월에는 사형수 구명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고 14개 교구 주교와 성직자, 수도자 4000여 명의 이름으로 탄원서를 냈다.

윤공희 대주교는 5.18을 알리는 모든 활동을 지원했다. 비디오를 제작할 때는 자신의 비디오 기기를 처음 내놨고, 사진집을 만들 때는 주교관 지하를 내줬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평가를 역사에 맡기자”고 했을 때, 윤 대주교는 “진실규명 없이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고 맞섰다. 그리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오늘날까지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김양래 상임이사는, “역사는 반복되고 현재도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지혜는 과거로부터 찾아야 한다”며, “그리스도인은 기억의 힘으로 자기 쇄신을 이룬다. 기억의 전승과 기록의 힘, 그것을 통해 실제로 변화를 만들어 낸 현실의 역사로 쇄신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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