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류승연의 ‘아주머니’

 

오늘은 딸래미 자랑을 좀 해야겠다. 신학기 학부모 상담을 다녀왔는데 “공부 잘해요” “똑똑해요” 등과는 비교도 안 될 엄청난 칭찬을 듣고 왔기 때문이다. 곱씹을수록 마음이 흐뭇한 게 생각만으로도 웃음이 실실 난다. 이대로만 커주면 소원이 없을 텐데.

딸의 담임선생님은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40대 여자 분이다. 이틀 전 열린 공개수업 때 보니 호탕하면서도 털털한 매력이 있는 분이다.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다 선생님이 말한다. “음…. 수인이는 튀어요.” 순간적으로 가슴이 철렁. 우리 딸이 튄다고? 왜? 뭣 때문에? 수업 중에 선생님 말 안 듣고 친구랑 떠드나? 별별 생각이 다 들 때쯤 선생님이 말한다.

 

 

“아~ 나쁘게 튀는 게 아니라요. 아직 본 지 20일 밖에 안 돼서 뭐라 딱 개념이 잡히는 건 아닌데…. 아무튼 애가 반짝반짝 거려요. 다른 애들하고 좀 달라요.”

반짝반짝? 작년에 돌아가신 할머니의 말이 떠오른다. “승연이 너는 내 보물이었어야~.” 할머니의 유언 같던 그 말 이후 나는 내 딸에게도 같은 말을 하곤 했다. “수인이는 엄마의 보물이야.” 그랬더니 정말 보물이 되었나보다. 반짝반짝이라니.

그러면서 장래 희망이 뭐냐고 묻는다. 1학년 때는 개그맨이 돼서 개그콘서트에 나가는 것이었는데 ‘박근혜 사태’를 겪으며 촛불집회에 한 번 데려갔더니 그 다음부턴 정치부 기자나 검사가 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검사요?” 선생님이 쿡~ 하며 웃더니 “(야무져서) 아마 잘할 거예요. 잘 키워보세요. 기대하셔도 될 거예요. 애가 총명해요.”

아이가 똑똑하다거나 공부를 잘한다는 칭찬을 들었으면 이렇게까지 기쁘진 않았을 거다. ‘반짝반짝’ ‘총명’. 그런 것들이 우리 딸을 표현하는 단어로 쓰여졌다는 데 감동을 받았다. 고마운 우리 딸. 잘 커줘서 기특한 우리 딸. 선생님이 우리 딸을 표현할 때 ‘반짝반짝’ ‘총명’ 등의 단어를 썼다면, 내가 우리 딸을 설명할 때는 언제나 ‘2인자’라는 표현을 쓴다. 장애를 가진 쌍둥이 동생 때문에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려나야 했기 때문이다.

쌍둥이기에 더더욱 사랑과 관심을 똑같이 줘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막상 현실에서는 손이 많이 가는 동생에게 모든 걸 먼저 해주곤 했다. 그러다보니 딸은 동생에 대한 양보가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고 부모의 사랑조차도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내가 경각심을 가지게 된 건 딸이 7살이 되고 나서였다. 유치원 선생님과 학부모 상담을 하는데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무엇이든 먼저 양보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살아온 아이. 집에서의 태도가 밖에서까지 이어져 친구 관계에서도 제 것을 챙길 줄 모르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어머니~ 그렇게 모든 걸 자꾸 양보만 하면요. 언젠가 수인이는 자기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돼요. 수인이만의 것을 지켜주세요.”

정신이 번쩍!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한 달 넘게 온 집안을 뒤집어엎어 딸의 방을 만들어 준 건 그 때문이었다. 동생이 침범할 수 없는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아니, 만들어야 했다.

아들과 같은 학교에 입학시키지 않고 다른 학교에 보낸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학교에서만이라도 동생과 상관없는 자신만의 인생을 살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들의 초등학교 1학년 생활이 너무나 버라이어티해서 딸의 학교생활에는 많은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다행히 딸은 동생을 돌봐야 하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는지 숙제도 공부도 모든 걸 혼자서 잘 하는 아이로 커 나갔다.

그러다 2학기의 어느 날, 딸이 우수수 틀린 수학시험지를 가지고 왔다. 더하기식과 빼기식을 서로 바꾸는 부분이 이해가 안 되었던 것이다. 옆에서 방해하는 아들을 뿌리쳐가며 딸이 이해 못하는 부분을 가르쳤다. 십 분? 아니 오 분? 그 몇 분을 투자해 딸의 공부를 봐주니 아이가 완벽히 이해를 하고 좋아라 한다.

“아~ 그동안 난 그 십 분을 못 내서 우리 딸이 모든 걸 혼자 하게 만들었구나.”

마침 그 때 쯤 장애아들의 육아일기를 쓰는 한 매체에 딸의 이야기를 썼다. 2인자로 살아가는 비장애 형제자매의 아픔에 대한 이야기가 주제였다. 엄청난 댓글이 달렸는데 그 글들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이제는 성인이 된, 장애 형제를 둔 비장애 형제자매들의 댓글이 가슴에 비수가 되어 박혔다. 장애 형제와 똑같은 관심을 받고 자란 이들은 오히려 장애 형제의 뒤를 든든히 봐주는 듬직한 성인으로 자라 있었다. 하지만 부모가 장애 형제에게만 매달렸던 이들은 나이가 들어 스스로도 부모가 된 지금에까지 자신의 부모를 원망하고 있었다.

“내려놓자.” 아들에 대해 아주 조금이나마 마음을 내려놓기로 한 건 그 때부터였다. 죽을 똥을 싸서 키워봤자 장애아인 아들은 손톱만큼 자란단다. 하지만 장애인 자식에 들이는 노력의 반만 들여도 비장애아인 자식은 태산만큼 자랄 수 있단다.

포기를 한다는 게 아니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내려놓자는 것이다. 내려놓기로 했다. 아들을 일정 부분 내려놓으니 딸에게 관심을 쏟을 시간과 에너지가 모아졌다.

 

 

2학년 개학을 앞두고 봄방학 때 수학 문제집 두 권을 사서 푼 것도 변화라면 변화였다. 자식이 문제집을 푼다는 건 매일 엄마가 문제집을 채점한다는 것과 같은 얘기다. 딸에게 들이는 시간을 그만큼 더 낸다는 얘기다. 나는 아들에게 들였던 시간의 일정 부분을 딸에게 이양해 문제집을 채점하고 틀린 부분을 설명하고 응용문제를 내서 완전히 익히도록 도왔다.

그리고 딸과 더 많은 대화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솔직히 초등학교 2학년과 대화를 한다는 게 그렇게 재미가 있는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딸의 쫑알거림을 경청하고 있다.

남편에게도 경고장을 날렸다. “하나 있는 제대로 된 자식, 인생 망치기 싫으면 앞으로 딸에게 무조건 더 잘해”라고 못을 박았다. 그리고 아빠와 딸. 둘만의 데이트 시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계획을 세웠다.

주말이면 우리 가족은 항상 넷이서 여기저기 쏘다니는데 모처럼 내가 아들을 데리고 혼자서 키즈카페에 가기로 했다. 대신 남편은 딸과 극장에 가서 애니메이션을 보고 둘이서 맛난 밥을 먹고 오기로 했다.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오늘 데이트 어땠어?”라고 물으니 그냥 좋았다고 한다. 같이 영화를 보고, 패스트푸드점에 가서 햄버거를 먹고 왔단다. 왜 고작 햄버거를 사줬냐 했더니 딸이 먹자고 했단다.

딸도 좋았다 하기에 별 생각 없이 넘겼다가 며칠 뒤 딸의 핸드폰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빠와 둘이 영화를 본 날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는데 “태림아, 극장에 혼자 있는데 어두워서 무서워”라는 내용이 있었던 것이다.

딸에게 꼬치꼬치 캐물었더니 그제야 털어놓는데 아빠는 애니메이션이 재미없다고 같이 안 봤단다. 딸만 들여보내놓고 남편은 밖에서 책을 읽으며 기다렸던 것이다. 그게 무슨 데이트야! 나는 분노가 버럭 솟아올랐다. 햄버거도 아빠가 먹고 싶다고 해서 먹었단다.

그 날의 진실을 알게 된 후 남편에게 다다다다 잔소리폭탄을 퍼부어댔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며 노발대발했다. 남편은 별 생각 없이 그리 행동했다가 뒤늦게 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나 보다. 둘이서 또 영화를 보러 가자고 먼저 얘기를 꺼낸다.

“흥~! 이번엔 어떨지 지켜보겠어.” 아빠와의 두 번째 데이트는 대성공이었다. ‘미녀와 야수’를 봤는데 둘이서 치즈볼과 콜라를 사들고 극장 안에 함께 들어가 끝날 때까지 재미있게 잘 봤단다. 햄버거 말고 딸이 먹고 싶어 하는 거 무조건 다 사주고 오라고 신신당부해서 보냈는데 남편한테 전화가 걸려온다.

“수인이 요것이 회전초밥 먹고 싶단다.” 평소에도 생선을 좋아하는 우리 딸. 와사비를 뺀 연어, 참치, 새우, 게살 초밥 등을 올킬하고 왔단다. 나는 딸이 기특하기도 하고, 남편은 쌤통이라는 생각이 들어 쿡쿡 웃었다. 그 날 저녁 집에 돌아온 딸은 볼록 튀어나온 배를 두드리며 “엄마~ 오늘도 최고의 하루였어~”라고 행복해했다.

그렇게 엄마와 아빠가 조금씩 조금씩 자신에게 쏟는 관심의 폭을 넓혀나가자 딸은 부모도 모르는 사이 어느덧 반짝반짝 빛이 나게 되었나 보다.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라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이제부터는 우리 딸에게 ‘2인자’라는 말을 쓰지 말아야겠다고 다짐을 한다. 장애가 있건 없건, 손이 많이 가건 아니건, 자식은 모두 똑같은 자식이다. 1인자도 없고 2인자도 없다. 자식이라는 건 하나이건 둘이건 모두 반짝반짝한 내 보물들이다. 소중히, 아주 소중히 키워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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