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난 벼룩에게도 찬란한 봄날은 왔다
쫓겨난 벼룩에게도 찬란한 봄날은 왔다
  • 정다은 기자
  • 승인 2017.04.05 15: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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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동묘벼룩시장의 봄날

 

날씨가 따뜻합니다. 청계천변의 버들강아지들이 활짝 피어났습니다. 손톱보다 작은 크기의 앙증맞은 봄까치꽃이 군락을 이뤄 전성기를 과시합니다. 목련도 개나리도 활짝 피었습니다. 물은 힘차게 흐르고 청계천 산책로는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합니다. 사람들의 표정도 옷차림도 가볍습니다. 청둥오리 부부도 왜가리도 백로도 일광욕을 즐깁니다. 미세먼지만 아니라면 정말 ‘끝내주는’ 봄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인근에 색다른 봄날을 만끽해볼 수 있는 벼룩시장이 있습니다. 약 15여년 전 청계천에서 쫓겨난 상인들이 들어와 동묘를 중심으로 하나둘씩 자리 잡기 시작한 동묘벼룩시장입니다. 지금은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연일 대성황을 이룹니다. 쫓겨난 벼룩의 찬란한 봄날입니다.

 

 

동묘는 사실 묘가 아닙니다. 서울에 사는 분들도 모르기 십상인데요, 잠깐 소개해봅니다. 동묘(東廟)는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관우의 위폐를 `모신` 곳입니다. 왜 다른 나라의 장수 위폐를 우리나라 수도의 한복판에 모시냐구요?? 그건 저도 의문입니다. 동묘 안에 있는 안내표지판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 왜적을 물리친 명나라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때 관우 혼령이 전장에 나타나 왜적을 물리치는데 일조를 했다는 군요. 당시 명나라 왕이 직접 관우의 위폐를 써서 조선에 보냈고 조정에서 이를 보존하기 위해 동묘를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죠. 굴욕의 역사를 보는 것 같아서요.

어쨌든 그런 곳에 상인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일대에서 이미 영업을 하고 있던 가게들도 합류하기 시작했습니다. 식당을 했던 곳이 골동품점으로 바뀌고, 전자제품을 팔았던 가게는 TV 대신 오래된 책들을 들여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바로 인근에 있는 서울풍물시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됐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 바로 중고옷, 그러니까 구제옷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제품을 파는 가게들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종합 벼룩시장으로서의 제 모습을 갖게 됐습니다.

물론 아직까진 옷을 파는 가게들이 제일 많습니다. 길거리 이곳저곳에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옷들. 상인들은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고 이에 부응하듯 행인들은 앞다퉈 몰려들어 사갈 옷들을 고르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자, 사세요. 자, 옷이 무조건 하나에 1000원!!"

이곳에선 이런 외침소리가 온종일 계속됩니다. 초기엔 주로 노점상이었는데 지금은 점포 안으로 많이 옮겼습니다. 서울 변두리에서 옷가게를 하는 이들도 이곳의 주 고객이랍니다. 커다란 가방을 들고 와서 옷들을 쓸어 담는 이들이 대부분 그런 경우라 생각됩니다.

 

중고가방을 전문으로 파는 곳도 있습니다. 소가죽으로 된 그럴싸한 모양의 가방이 2000원, 악어가죽으로 만들어졌다는 게 기껏 1만원이니 정말 싸죠.

그 뿐 아닙니다. 없는 게 없습니다. 말 그대로 벼룩시장이죠. 청자와 벼루 등 골동품들은 물론이고 오래된 책들, 지금은 어디서 구경하기조차 힘들 법한 낡은 라디오와 전축, 캠핑용품, 자전거, 낚시용품, 전동공구 등등 이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말그대로 없는 것 빼고는 다 있습니다.

오래된 LP 판과 시계를 파는 할아버지도 계시는 군요. 성인용 비디오와 건강식품을 파는 젊은 여자, 카메라와 각종 액세서리를 파는 40대 남자, 사람 몸통만한 굵기의 칡뿌리를 리어카 위에 올려놓고 칡즙을 짜서 파는 아주머니도 있습니다. 방금 짜낸 진한 칡즙이 한 잔에 1500원입니다.

청계천변에서 시작된 벼룩시장은 동묘 정문과 담장을 지나 동묘에서 신설동 로터리로 이어지는 대로변까지 계속됩니다. 그리고 일대의 골목골목까지 전부 진출해있습니다.

 

 

그리고 또 빼놓을 수 없는 게 있습니다. 바로 벼룩시장의 감초라고 할 수 있는 먹거리입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늘어날수록 간단한 토스트와 커피, 음료를 파는 노점에서부터 막걸리와 부침개, 해장국 등을 파는 식당까지 먹을거리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영양 오리알을 파는 포장마차도 보입니다. 부추 부침개가 한 장에 2000원이군요. 소주와 막걸리도 2000원. 잔술은 1000원입니다. 벼룩시장 나들이를 나왔던 몇몇의 중년 남자들이 파라솔 아래 놓여있는 의자에 앉아 막걸리 잔을 기울입니다. 대낮인데도 얼굴이 불콰하군요. 뭐 사람 사는 거 별거 있겠습니까. 마시고 싶으면 마시고 먹고 싶으면 먹고…. 그렇게 그렇게 즐기며 사는 거지요.

초콜릿과 과자, 음료와 양주, 고량주 등을 파는 가게들도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다른 곳보다 훨씬 싼데다 종류도 다양합니다. 외국산 과자들이 무더기로 쌓여있습니다. 의외로 어르신들이 많이 구입하는 모습입니다. 손주들이라도 갖다 주려나 봅니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의 층도 확연히 바뀌었습니다. 이전엔 주로 어르신들이 소일거리로 구경삼아 찾았는데 지금은 교복을 입은 중고교생부터 대학생 등 젊은 층들이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여학생들도 많습니다. 옷을 사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종류도 다양한데다 싸기 때문에 일부러 발품을 팔아 이곳까지 온 모양입니다. 동대문시장이 가까워서인지 외국인들도 자주 모습을 보입니다. 사람들 틈에 끼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골동품을 바라보는 모습이 이채롭습니다.

상인들 말에 의하면 특히 토요일과 일요일, 공휴일에는 그야말로 발걸음 떼기가 힘들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하는 군요. 색다른 봄기운을 느껴보고 싶으시다면 한번 들러 봐도 좋을 듯합니다. 동묘벼룩시장, 이제 서울의 새로운 명소로 확고히 자리 잡은 듯합니다. 지하철 동묘역 바로 인근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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