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컨택트’ / 김혜영

 

“세상에, 취향저격하는 영화가 나왔어!”

늦은 겨울, 극장을 나오며 언니를 붙들고 온갖 호들갑을 떨어댔다. 신학과 국어국문학을 복수전공하는 학생에게 영화 ‘컨택트’는 ‘취향저격’ 그 자체이기 때문이었다. 외계인이 나오는 SF 영화가 뼛속까지 인문학도인 사람을 ‘저격’하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어느 날 열두 개의 UFO가 전 세계 곳곳에 등장한다. 저명한 언어학자 루이스는 과학박사 이안과 함께 외계생물체와 만나게 되는데, 그들이 제일 먼저 하는 것은 뜬금없게도 자기소개다. 자신들의 이름을 열심히 설명하고 그들에게 헵타포드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뜨거운 감상에 젖는다. 그들이 왜 지구에 왔는지를 알아내려면 소통을 해야 하고,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언어를 가르쳐야하기 때문이란다. 결국, 지구의 운명은 핵무기가 아닌 소통에 달린 것이다.

 

▲ 영화 '컨텍트' 스틸 컷

 

루이스는 헵타포드에게 열심히 영어를 가르치면서 동시에 그들의 언어를 공부하기 시작한다. 단순한 상형문자처럼 보이는 한 동그란 문자가 알고 보니 문장일 정도로 그들의 언어는 진보적이다. 동그란 원을 이루는 수많은 선들의 배합을 수학적으로 연구하는 이안의 도움까지 더해, 루이스는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게 된다. 마침내 그들이 지구에 온 목적과 인간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모두 받게 된다. 그건 바로, ‘선물’과 ‘제로섬게임’ 개념이다.

‘선물’은 루이스가 헵타포드에게서 언어를 선물로 받은 것을 의미한다. 언어는 사고를 결정하기 때문에 루이스는 그들의 사고방식마저 습득하게 되고, 미래를 볼 수 있게 된다. 이제 ‘제로섬게임’이 등장할 차례다. 미래에 인간의 도움이 필요하게 될 헵타포드가 먼저 인간에게 선물을 주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제로섬게임을 제안한 것이다. 자, 그럼 나도 여러분에게 제로섬게임을 제안하겠다. 여러분은 내 글을 앞으로도 계속 읽어주시면 되고, 나는 도대체 이 영화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찬찬히 뜯어보겠다.
 

언어가 사고를 결정한다

언어와 언어학을 다룰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언어와 사고의 관계다. 크게 언어상대성 가설, 사피어 워프 가설, 언어결정론으로 볼 수 있는데, 지난 학기에 들었던 강의와 네이버 사전을 이용해 설명하려한다.

언어상대성이란 사고가 언어를 결정짓는다는 가설이다. ‘언어는 인간 정신의 특유한 발산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는 것을 뜻한다.’ 즉, 인간이 자연스럽게 내뱉는 것이 언어이며, 사고가 언어를 지배하고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언어결정론은 언어가 인지와 사고를 결정한다는 이론적 관점이다. 우리는 카키색이라는 언어를 배워야 카키색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사피어 워프 이론은 언어 결정론이 발전된 형태이다. ‘언어란 인간들 간의 의사소통을 위한 단순한 요구 이상의 것이며, 우리는 언어를 배우는 데 있어서 사회실재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해석하는 틀을 배워야 한다.’ 언어가 사고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영화는 여기서 시작했을 것이다. 외계생물체와 인간은 언어가 달라 사고방식이 다르고, 미래를 보는 시각의 존재 유무마저 나뉘게 된다. 어떤 언어를 가진 존재는 현재만 보고, 또 어떤 언어를 가진 존재는 미래까지 내다볼 수 있다. 명제를 뒤바꿔 생각해보면, 인간은 지금의 언어 때문에 특정 사고에 한정되어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신학생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한계성에 맞닥뜨렸고, 신이 인간의 사고 외부에 존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신은 언어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사고도 자유롭고 결국 시간과 공간을 포함한 모든 것에 전지전능한 것이겠지. 와, 사피어 워프 가설로 신학을 논할 수 있구나!
 

시간은 선물의 개념이다

일상의 권태에 빠진 사람이 인스타그램에 올릴 법한 문구가 있다. ‘현재’는 영어로 ‘present’라는 것이다. 현재, 즉, 우리에게 지금 주어진 시간은 선물이라는 뜻이 괜히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 현재가 중요하지. 현재를 열심히 살아가야지.

훗날 인류에게 도움을 받고 싶은 외계생물체가 선택한 전략적 선물은 바로 미래를 내다보는 눈이다. 인간보다 더 발전된 언어와 과학을 가진 그들이 준 선물이 최첨단 핵무기도, 과학 기술도 아닌 미래를 보는 방법인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는 흔히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면 내일 치를 시험의 답을 확인한다던지 로또 번호를 알아낸다는 상상을 한다. 그러나 미래를 알 수 있다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정도의 일상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사고 자체가 급격하게 변화하며 인간과 사회 모두 역사에 남는 진화를 겪을 것이고, 우리는 선(善)을 추구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의 죽음을 알 수 있다면, 나의 악행이 낳을 나비효과를 미리 알 수 있다면 선과 정직을 추구하게 되지 않을까.

이미 현재를 선물 받은 인간이 미래까지 선물 받으면 어떻게 될까? 상상에 꼬리를 물며 영화 이후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진다.
 

운명론적인 사상과 사랑

루이스는 헵타포드 덕분에 미래를 보고 남편과의 이별과 아이와의 사별을 모두 알게 된다. 그러나 그 모든 비극을 알면서도 남편이 될 이안과 사랑을 시작하며 그 길로 가게 된다. 결국 정해진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는 운명론적인 사고와 더불어, 알면서도 빠지게 되는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지점이다. 이안은 마지막에 이런 대사를 한다.

“나는 평생 별을 보며 살았어. 그런데 가장 놀라운 건 그들(헵타포드)을 만난 것이 아니야. 바로 당신을 만난 것이지.”

별이 좋아서 잠도 못 자고 평생을 연구하며 살았을 저명한 학자가 인생 최고 경험인 외계생물체를 만난 것보다 인간 여자 한 명을 만난 것이 더 놀랍단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말이 납득이 가는 건, 그것이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끔찍한 아픔을 겪으며 헤어질 것을 알면서도 선택하게 만드는, 가장 놀랍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필자는 신학을 배울 때 신을 사랑에서 찾았다. 감정인지 무엇인지 실체를 알 수 없지만 강력한 이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 혹은 자연 발생적인 것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인생을 뒤흔들고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로 만드는 이 아름답고 강력한 사랑은 신이 인간에게 준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필자에게 사랑은, 신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신비롭고 강력하다.
 

인류는 화합해야한다

헵타포드가 왜 그 열두 지역에 왔는지는 어떤 학자도 밝히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 국가가 아닌 여러 국가에 방문한 것은 분명한 의도가 있을 것이다. 물론 신학생은 여기서 예수의 열두 제자를 떠올렸다. 제자가 왜 열두 명인지를 설명하는 설중에, 일 년이 열두 달이기 때문에 제사를 지낼 때 매달 한 부족이 대표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즉 ‘12’라는 숫자는 일 년을 뜻하는 것으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각설하고, 각 국가들은 통신을 통해 교류하며 외계생물체가 불러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쓴다. 그러나 헵타포드로부터 '무기'라는 단어가 등장하자 평화에 위협을 느끼고 통신을 끊어버린다. 급기야 몇 나라는 외계생물체와의 전쟁을 선언한다. 이때 헵타포드를 통해 미래를 본 루이스는 화합을 깬 중국에 전화를 걸어 세계의 소통을 이뤄내고 평화를 지켜낸다.

영화를 보는 동안 인상 깊었던 것도 인류는 단일 리더가 없고 외계생물체 앞에서도 서로를 견제하며 적국이 전쟁을 통해 망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그러한 마인드를 가진 세계의 리더들은 물론, 자극적인 뉴스를 듣고 폭탄을 설치한 군인들, 위협을 느끼고 생필품을 사재기하며 범죄행각을 벌이는 시민들 모두 전 인류의 평화와 화합을 위해 노력해야한다는 메시지를 받은 것은 아닐까.
 

보는 것, 아는 것이 진리의 전부? 착각 말아야

영화 초반에 인간이 외계 생물체의 정체를 알아내겠다는 오만함, 그리고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계를 치고 '컨택'했을 때, 인간은 헵타포드의 모습을 다 보지는 못한다. 그들의 하체만 보고 다리가 7개라며 칠지류라는 뜻의 이름까지 붙인다. 그러나 루이스가 그들의 언어를 습득하고 그들의 방식대로 사고했을 때, 진정한 소통을 이루어내고 그들의 온전한 모습을 본다. 상체까지 다 보게 된 것이다.

인간이 물체의 한 면만 보고 지은 이름인 '헵타포드'. 그 이름을 통해 한 면만 보는 인간의 한계와 오만함을 알 수 있다. 또 루이스를 통해 다른 사람들도 그들의 방식대로 사고하면서

인간이 알던 것들이 무너지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따라 빛보다 빠른 것이 존재한다는 충격에 빠지기도 한다. 시각적으로 보는 것과 지식적으로 아는 것에 집착하는, 근대적 사고에 머무른 인간의 오만함과 어리석음을 꼬집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컨택트’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덟 부문이나 지명되었다는 소식에 별 생각 없이 예매했던 영화다. 게다가 보고 싶은 영화는 절대 예고편을 보지 않는 습관이 있어 외계생물체가 등장하는 SF라는 점만 알고 감상했다. 그런데 이게 웬 걸. 싸우고 부수는 영화가 아니라 언어와 사고, 그리고 관계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루는 인문학 영화였다. 헵타포드가 루이스에게 준 메시지는 결국 감독이 관객에게 주려는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신학과 국어국문학을 복수전공하는 한 학생은 머리와 가슴을 든든히 배불리고 평화롭게 극장을 나왔다.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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