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류승연의 ‘아주머니’

 

성은 어디까지 오픈되어야 하는 걸까? 적절한 수위는 어디까지일까? 부모에게 성상담을 해본 적 없던 우리 세대가 유치원 때부터 성교육을 받는 요즘 세대 아이들을 키우자니 당황할 때가 많다. 느닷없이 훅 치고 들어오는 어린 자녀의 질문에 진땀을 뻘뻘 흘린다.

“그런데 엄마, 엄마랑 아빠는 성관계 할 때 옷을 벗고 했어? 아니면 입고 했어?”

앞 뒤 설명도 없다. 저녁 반찬 뭐냐고 묻는 것과 같은 톤으로 툭 던진 질문.

“뭐… 뭐라고? 그게 왜 궁금해? 몰라. 그런 것까진 알 필요 없어.” 당황한 나머지 질문을 봉쇄해 버렸지만 한 번 궁금증이 일기 시작한 딸의 호기심을 막을 방법이 없다.

 

 

알려달라고 조르는 딸. 하는 수 없이 성관계란 무엇인가, 임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복습부터 다시 시작한다. 초등학교 2학년인 딸은 잘 알고 있다. 아빠의 정액이 ‘꼬추’를 타고 엄마의 ‘성기’로 들어가 ‘발사’되고 나서 엄마 몸속의 난자와 만나면 임신이 된다고 한다. 그러는 행동을 성관계라 한단다.

“잘 알고 있네. 아빠 ‘꼬추’가 엄마 ‘성기’로 들어오려면 옷을 입어야겠어? 벗어야겠어?”

“당연히 벗어야지.” “그래. 됐네. 벗어야지.” 그런데 여전히 답답해하는 딸.

“아니, 내 얘기는 그게 아니라 밑에는 벗는데 위에도 벗고 했냐고. 아니면 입고 했냐고.”

“……그건……. 니 맘이야. 입고 싶으면 입고 벗고 싶으면 벗어. 하는 사람 마음이야!”

그제서야 원하는 답변을 얻은 딸은 자기 방으로 돌아간다. 내 멘탈은 탈탈 털려 버렸다.

딸이 처음으로 성교육을 받은 건 유치원 때였다. 어린이집 시절에는 “내 몸을 남이 만지면 안 돼요”라는 교육을 받았고, 유치원에 들어가자 “남자가 ‘아기 씨’를 여자 몸속에 있는 ‘아기 화분’에 준다”고 배웠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는 스스로 배워나갔다. 같은 반의 어떤 남자 아이는 벌써 ‘SEX’라는 단어를 알고 그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책을 통해서도 배웠다. 딸은 초등학생들의 백과사전인 ‘WHY’ 시리즈를 아주 열심히 보는데 ‘사춘기와 성’편을 보면서 보다 더 과학적이고 사실적인 접근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 쯤 되니 더 이상 간과할 수만은 없어 1학년을 마쳐가는 어느 날 딸을 붙잡고 한 시간 동안 둘이서 ‘여자의 대화’를 나눴다.

생리, 성관계, 임신, 출산 등에 관해 사실적이고도 진지한 대화가 오갔다. 중학교에 입학할 때까지도 키스를 통해 남성의 정액이 여성의 몸으로 들어간다고 알고 있던 나로서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성교육을 한다는 게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하지만 결코 이르다고 말할 수는 없었던 게 엄마가 남사스럽다고 입을 다물고 있어도 아이는 다른 경로를 통해 성적인 것들을 배워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럴 바엔 부모를 통해서 바르게 배우는 게 나았다.

무엇보다 딸과 어릴 때부터 성에 관해 대화를 나눈다는 점이 의미가 있었다. 자녀가 부모에게 성에 관한 상담을 할 수 없게 되면 그게 더 문제다.

내가 그랬다. 6학년 때 처음으로 생리를 시작했는데 당황했던 난 생리혈이 묻은 팬티를 옷장 속에 숨겨놓고 엄마의 생리대를 훔쳐 차고 학교엘 갔다. 부모와 성에 관한 얘기를 나눈다는 건 아주 창피한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결혼을 하기 전까지도 성에 관련한 모든 것을 엄마에게 숨겼다.

심지어 결혼식을 일주일 앞두고 짐 정리 때문에 신혼집에 가서 하루 자고 다음 날 곧바로 출근하겠다고 하자 엄마는 “김 서방이랑 첫날밤 치르면 안 된다. 일주일만 더 기다려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김 서방과의 첫날밤은 이미 2년 전에 치른 데다, 내 인생의 첫 남자도 아니었다는 얘기를 꺼낸 건 출산을 하고 나서였다. 깜짝 놀란 엄마는 “오메~ 오메~”만을 연발했고, 나는 나만 ‘발랑 까진 년’이 되기 싫어 당시 연애 중이던, 모범생인 여동생까지 물고 늘어져 버렸다. “엄마, 지연이도 저번에 캐나다 갔을 때 남자친구랑 하고 왔대.”

어쨌든 그런 식의 관계는 결코 좋지 않다. 숨기는 게 있으면 정작 도움이 필요할 때조차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나는 딸에게 성교육을 하면서 세 가지를 신신당부했다.

성관계는 어른이 되고 난 이후인 스무 살 이후에 할 것.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지만 만일 그 전에라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강제적으로 하게 되는 일이 발생하면 반드시 엄마에게 알릴 것. 마지막으로 임신은 무조건 결혼을 한 다음에 할 것.

딸은 제법 진지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고 많은 생각을 한 듯도 했다. 그렇게 성에 관해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다보니 엄마아빠가 성관계 때 윗도리를 입고했는지 벗고 했는지를 물어보기에 이른 것이었다.

며칠 전 친구들을 만나 딸의 이야기를 했더니 다들 깜짝 놀란다. 20대에 결혼을 해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교에 입학한 자녀를 두고 있는 친구들인데 아이들과 성에 관해 이런 식의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단다. 성교육이라 해도 원론적인 수준에서만.

그러다보니 한 친구는 중학생인 아들이 아직도 야동을 안 봤을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아직도 애기란 말이야”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나머지 친구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해 버렸다.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을 키우는 친구가 작년 담임선생님과 면담하면서 들은 얘기를 해준다. 5학년만 되어도 일단 남자 아이들은 야동을 본 적이 있다고 생각하고 대하라 했단다. 그것이 요즘 현실이라고. 깜짝 놀란 우리들은 절규를 한다.

내 친구들이 자녀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성에 대해 무지해서 아이들과 성에 관한 대화를 나누지 않은 게 아니다. 그들 스스로도 어색해서다. 참 ‘바르게(?)’ 자란 내 친구들은 모두 현재의 남편과 처음으로 성관계를 했다. 연애를 안 해 본 것도 아니었다. 다만 성관계를 하는 데는 보수적이었다.

그러다보니 성적인 대화를 자연스럽게 나누는 것도 익숙하지 않았다. 함께 모이는 사총사 중에서 언제나 나만 ‘발랑 까진 년’이었다. 나조차도 결혼 전에 많은 남자를 두루 만나보지 않은 게 천추의 한인데 말이다.

친구들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남편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가끔 야외에 나갔다가 남편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내 가방을 달라고 할 때가 있다. 발기가 되어서 내 가방으로 자기 앞을 가려야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럴 때면 나는 타박을 한다. “대체 누굴 보고 발기가 된 거야? 저기 가슴 큰 저 여자야? 아니면 저기 짧은 치마 입은 저 여자?” 남편은 아니라고 그냥 지 혼자 발기가 된 거라고 잡아떼는데 뭔가 자극이 있으니 그랬겠지.

젊고 예쁜 처녀들이 많은 야외에서는 그렇다 치는데 왜 애들 데리고 소아과 가서까지 그럴 때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툴툴대자 친구들은 더더욱 경악을 한다. 어떻게 그러냐고.

“너희 남편들은 안 그래?”라고 묻자 다들 모른단다. 남편과 한 번도 그런 대화를 해본 적이 없단다. 상황을 보아하니 잠자리 할 때를 제외하곤 아예 남편들과도 성에 관한 대화는 나누지 않는 것 같다.

익숙하지 않아서다. 처음부터 성에 관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으니 이제 와서 남편과도 아이들과도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어색하고 창피하기만 하다. 가정에서 성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숨기게 된다. 내가 그랬듯이. 생리를 시작한 것을 숨기게 되고, 성인이 되어 첫 경험을 하고 나서도 부모가 모르게 꽁꽁 숨기는 게 일이 된다.

생각해 보니 대학생 때 첫 경험을 하고 난 뒤 한동안 방광염에 걸려 고생을 했었다. 지금에야 그것이 방광염이었다는 것도 알고 첫 경험자들이 흔히 겪는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됐는데 당시는 왜 그런지도 모르고 그냥 괴로운 채로 지냈다. 엄마한테 말할 수도 없었고 다 같이 성에 대해 무지한 친구들도 이유를 몰랐다. 혼자서 산부인과를 간다는 건 당시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고.

나는 내 딸이 그런 일들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 지켜야 할 것을 지키며 성에 관해 투명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필요한 순간에 엄마로서 도움을 줄 수가 있다. 빠르게 자라 나가는 아이를 지켜보는 즐거움이 있다. 딸 손을 잡고 첫 브라를 사러 갈 그날이 어서 오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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