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강진수의 ‘서울, 김수영을 읽다'- 4회

 

(엽서 하나)

찌질의 역사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그것의 역사는 너무도 깊어 내가 어루만질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누구나, 누구의 찌질함에게나 역사가 있다. 속된 말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가장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는 아무리 속되더라도 그 말을 쓰지 않으면 그 뜻을 전할 수 없을 때다. 가끔 글이 가공되어 당신에게로 가는 도중에, 나의 속된 말버릇들이 깔끔하게 고쳐져 전해질 때, 나는 말할 수 없는 절망에 빠진다. 그런 과정이 없다면, 우리는 서로 우리의 찌질함을 전달할 수 없다. 우리의 찌질한 감정들을 담아내기에는, 글과 말은 비루먹을 감옥과도 같았다.
 

▲ 시인 김수영

이혼 취소

당신이 내린 결단이 이렇게 좋군
나하고 별거를 하기로 작정한 이틀째 되는 날
당신은 나와의 이혼을 결정하고
내 친구의 미망인의 빚보를 선 것을
물어주기로 한 것이 이렇게 좋군
집문서를 넣고 6부 이자로 10만 원을
물어주기로 한 것이 이렇게 좋군

10만 원 중에서 5만 원만 줄까 3만 원만 줄까
하고 망설였지 당신보다도 내가 더 망설였지
5만 원을 무이자로 돌려보려고
피를 안 흘리려고 생전 처음으로 돈 가진 친구한테
정식으로 돈을 꾸러 가서 안 됐지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고 저것을 하고 이것을
하고 피를 안 흘리려고
피를 흘리되 조금 쉽게 흐릴려고
저것을 하고 이짓을 하고 저짓을 하고
이것을 하고

그러다가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 대학에 다니는
나이 어린 친구한테서 편지를 받았지
그 편지 안에 적힌 블레이크의 시를 감동을 하고
읽었지 “Sooner murder an infant in its 
cradle than nurse unacted desire”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알았지 그러나 완성하진 못했지

이것을 지금 완성했다 아내여 우리는 이겼다
우리는 블레이크의 시를 완성했다 우리는
이제 차디찬 사람들을 경멸할 수 있다
어제 국회의장 공관의 칵테일 파티에 참석한
천사 같은 여류작가의 냉철한 지성적인
눈동자는 거짓말이다
그 눈동자는 피를 흘리고 있지 않다
선이 아닌 모든 것이 악이다 신의 지대(地帶)에는
중립이 없다
아내여 화해하자 그대가 흘리는 피에 나도
참가하게 해다오 그러기 위해서만
이혼을 취소하자

* 주 : 영문으로 쓴 블레이크의 시를 나는 이렇게 서투르게 의역했다. <상대방이 원수같이 보일 때 비로소 자신이 선(善)의 입구에 와 있는 줄 알아라.> (원주)

** 주의 주 : 상대방은 곧 미망인이다. (원주)
 

가장 찌질한 것은, 내가 정 들고 사랑했던 것들에 대한 감정이다. 그것들에 서투르게 주석을 달아놓은 김수영을 보라. 화해하자고, 그대가 흘리는 피를 함께 흘리기 위해, 서로를 떠나는 것만을 취소하자고 손을 흔드는 저 찌질한 시인을 보라. 친구의 미망인의 빚보를 선 것을 피 흘린 돈으로 갚고, 그는 그것을 망설이다가 또 망설이다가 아내를 우산으로 두드려 패고. 그것이 벌이 딸려 있는 죄인 것을 알고 또 화해하자고 손을 흔들 시인이 얼마나 비참하고도 찌질하고 말았는가.

 

(엽서 둘)

죄와 벌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살인을 한다

그러나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
우리들의 옆에서는
어린 놈이 울었고
비 오는 거리에는
40명가량의 취객들이
모여들었고
집에 돌아와서
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이
아는 사람이
이 캄캄한 범행의 현장을
보았는가 하는 일이었다
―아니 그보다도 먼저
아까운 것이
지우산*을 현장에 버리고 온 일이었다

*종이우산을 뜻 한다
 

하나의 엽서로는 도저히 그 찌질함을 적어낼 수가 없었다. 엽서를 두 장 적어 보내는 것은, 시를 두 편 적어 당신에게로 떠나보내는 것은, 나의 모습들이 기억나기 때문이다. 두 갈래로 찢어 놓아야만 기억할 수 없듯이. 그래서 한 쪽은 숨겨 놓아야만 내가 살아갈 수 있듯이.

그러고도 지우산 하나를 버리고 온 일에 대해 아까워하듯이. 찌질한 마음이야 그 역사가 얕고도 깊어, 지금까지 이르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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