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꾸밈새
‘1978년 5월17일’! 곡성 고달면 수월리 김순남 할매네한테는 그날이 이 집을 짓는 대역사에 마침표를 찍었던 날이었다. 어느 신문에도 어느 방송에도 나오지 않았지만, 김순남 할매의 연대기에 굵은 획으로 씌어진 뉴스는 그것이다.
이 집 마당에 처음 들어선 이라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이 집의 역사. 지붕 한가운데 공력 들여 만들어 올린 봉황 모양의 함석장식에 각별히 연도와 날짜를 덧붙여 새겼다. 40년이란 긴긴 세월을 풍찬노숙하는 동안 낡고 녹슬었지만 마침내 집짓기라는 대역사를 이뤘던 날의 묵직한 기쁨을 증거하기에 아무 부족함 없다.
“우리집이 대목집이여. 대목이 만들았제. 유재 살았던 ‘탑샌떡’네 영감이 집 짓는 기술이 있었어. ‘김대목’이라고 불렀제. 우리집도 그 냥반이 지서줬어. 그것 안헌다고 아무도 암말 안헐 것인디. 공력을 딜여 맨들았어. 몬차 이녁 맘에 들게 헐라고 그랬겄제. 조깨라도 더 이삐라고 맨들았겄제.”
‘김대목’은 가고 없어도, 그의 손길과 마음이 담긴 선물은 이곳에, 이 지붕 위에 여전히 남아 있다.
동네마다 그런 ‘대목’ 혹은 ‘쟁이’들이 ‘이웃’이란 이름으로 존재했다.
‘몬차 자기 맘에 들게 헐라고’ 혹은 ‘조깨라도 더 이삐라고’, 그이들이 정성과 솜씨를 한데 부린 지붕 장식들은 세월 흘러도 빛 바랜 채로 녹슨 채로 유정하다.
<아랫녘에서는 여태껏/ 빗물을 풀어 쓴다./ 지붕으로 받은 빗물을/ 고샅길에 모아서/ 고샅길에 흐르는 빗물을/ 고래실에 모아서/ 차례차례 풀어 쓴다./ 고래실 무논에서 풀려가는 빗물은/ 물꼬를 넘어 논배미로 갈려 간다./ 논배미에서 논배미로 갈려 간다./ 갈려 가면서 너비를 만든다.>(이병훈, ‘논갈이 2’ 중)
마침내 논배미로 흘러들어, 산다는 것의 ‘너비’를 만드는 그 장대한 빗방울의 역사는 처마 아래 깃든 양철새 한 마리에서 시작되노니.
수더분하고 어리숙한 모양새라 더욱 이무러운 솜씨가 있는가 하면, 종이를 접고 오리기라도 한 것처럼 자유자재하고 활달하고 정교한 손길도 만나게 된다. 그리 솜씨 좋았던 함석쟁이들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세월 흘러 세상은 변했지만, 그이들이 지붕에 올린 새들은 여전히 처음 앉은 그 자리에서 맡은 바 소임에 충직하다.
함석이나 양철로 물골을 만든 빗물받이 장치는 고택이나 전통 한옥에는 없었던 것으로,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등장했다. 추녀가 짧은 목조가옥인 일본 집들은 목재가 썩지 않도록 빗물받이가 필수였지만, 우리 건축에는 애초에 긴요한 존재가 아니었다.
유럽의 성당이나 교회 같은 고딕건축에서 빗물받이 역할을 하는 가고일(gargoyle)이 악한 것들을 밖으로 내보내는 의미를 강조해 대개 무서운 괴물의 형상을 취하고 있는 데 반해 우리네 살림집에서 만나는 빗물받이 새는 순진하고 순박한 표정이 친근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인다. 서로 닮은 꼴 같지만 들여다보면 서로 다른 솜씨와 개성.
동네마다 이름없는 장인들의 솜씨가 지붕 꼭대기에서 빛난다. 지붕 아래 깃든 삶들에 건네는 축원처럼.
글 남인희·남신희 기자 사진 박갑철·남인희·남신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