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청년은 꽃을, 봄을 좋아하는 걸까?
왜 청년은 꽃을, 봄을 좋아하는 걸까?
  • 김혜영 기자
  • 승인 2017.04.22 1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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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김혜영

 

필자는 3학년이 되자마자 호기롭게 휴학계를 던졌다. 수능이 끝난 이후로 삼일 이상 쉬어본 적이 몇 번 없는데, 이제서야 깨달은 것이 꽤나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이 많아 방학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다. 얻은 것도 많지만 놓친 것도 너무나 많았다. 내 자신과 가족을 돌보지 못했고, 건강관리를 하지 못했고, 좋아하던 스케치북과 바이올린에 먼지가 쌓여있었다. 스스로에게 안부를 물어야할 것 같았다.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 걸까.’

부모님을 설득한 후 휴학 버튼을 눌렀다. 며칠을 망설였는데, 휴학처리는 단 몇 초 만에 이루어졌다. 일사천리로 일주일에 두 번씩 하던 과외를 한번으로 줄이고, 책임감을 요하는 학생회나 동아리는 모두 그만두었다. 영화 ‘해리포터’의 도비가 집요정으로부터 해방됐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어색하기도 하고,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 된 것만 같다. 봄꽃은 축하파티라도 여는 듯 꽃망울을 터뜨리고, 어색하고 적막한 공기를 싱그러운 향기로 채운다. 여전히 취업과 생계에 대한 압박감은 존재하지만, 마음껏 쉬어도 되는 봄 소풍을 떠나보련다.

 

 

고등학생 때는 학교 캠퍼스에 작은 동산이 하나 있었다. 팔각정을 둘러싸는 벚꽃이 동네 명물이라 벚꽃축제라는 것도 했었다. 아마 산책할 수 있는 캠퍼스가 없었다면 입시에 실패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연은 필자에게 소중한 의미였다. 항상 먼지와 곰팡이가 가득한 건물 안에서 햇빛도 없이 공부했기 때문에, 쉬는 시간에 흙을 밟고 나무를 보는 것이 필수적이었던 것이다. 대학생이 된 지금, 더 넓고 아름다운 캠퍼스를 누비지만 이상하게도 자연과 함께하는 기분은 들지 않는다. 군데군데 핀 꽃이 예쁘지만 여기저기 개발된 모습이 삭막할 뿐이다. 하필 만개한 벚꽃 아래 꽃놀이도 항상 중간고사와 겹쳐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번엔, 결심했다. 벚꽃이 끝없이 펼쳐진 곳으로 가서 하루 종일 자연을 즐기다 오리라.

연인이 여의도, 석촌호수, 서울대공원의 세 선택지를 가지고 왔다. 필자는 바로 “여의도!”를 외쳤다. 자연적인 강과 나무, 거기다 국회의원들의 근무지가 아닌가.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생 처음 가본 여의도는 정말 벚꽃이 끝없이 펼쳐져있었고 웃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추억이 가득 담긴 번데기나 떡꼬치 같은 먹거리도 즐비하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악기를 연주하는 이들도 있었다. 폭죽과 행사가 없는 진짜 ‘축제’의 느낌이랄까.

눈에 띄는 것은 외국인이나 가족 단위의 사람들도 있었지만 평일의 이른 시간이다 보니 청년이 가장 많았다는 점이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 혹은 중년들이 모인 동호회는 꽃보다 단풍에 더 관심이 많았다. 특히 여행과 자연을 좋아하는 부모님 덕에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자랐는데, 꽃놀이라는 것을 해본 적은 없었다. 우연히 길을 가다 핀 꽃을 보고 사진 몇 장만 찍는 정도였다.

 

 

왜 청년이 꽃을, 그리고 봄을 좋아할까. 메신저 프로필이나 SNS를 봐도 유독 청년들은 하나같이 봄과 꽃을 찬미하는 내용이 가득하고, 누가 더 예쁘게 벚꽃과 사진을 찍는지 소리 없는 경쟁을 벌인다. 봄 캐럴(크리스마스 캐럴처럼 봄에 듣는 음악)이나 배달 음식, 피크닉 패션과 용품 등 봄과 관련된 산업도 대부분 청년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모르는 사람과 서로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고, 누군가 사진을 찍으면 비켜주고 기다려주면서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 알 수 없는 유대감을 느꼈다. 카메라에 젬병인 연인에게 사진 좀 찍어달라는 부탁이 오면, 필자가 대신 나서서 찍어줄 정도로 그들의 꽃놀이를 아름답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유독 청년에게 그랬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연애도 하고, 전국일주도 하고, 기타도 배우고…아니,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하면서 잠이나 실컷 자야지.’

수험생시절엔 충족되지 못한 모든 욕망을 대학생 때로 미루며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그러나 대학생이 되어도 여전히 시간은 한정적이고 해야 하는 일은 늘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강의실에서 느낄 수 없는 해방감을 찾아 들어간 밴드 동아리와 학생회는 늘 인력난에 시달려 해야 하는 일이 많고, 전공시험 전날 내 공부는 미뤄둔 채 중학생 과외 학생의 시험공부를 봐주며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가기 일쑤다. 시험점수 하나 확인하려 교수에게 온갖 사탕발림의 메일을 보내면서, 부모님에게는 생활비가 부족하다는 문자나 겨우 보내기도 한다. 모두가 이렇다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필자 주위의 대부분의 대학생은 보통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다시, 그래도 봄이 왔다. 이번 겨울도 잘 버텨냈고 또 봄을 맞이했다고 꽃이 폭죽을 터뜨린다. 아, 이제야 청년이 봄에 열광하는 이유를, 꽃만 피어도 웃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꽃향기에 취해 모든 것을 잊고, 고운 꽃에 그리운 엄마의 얼굴을 떠올리고, 기타소리와 웃음소리에 잠시 마음을 맡겨도 괜찮은 계절이기 때문인가 보다. 치열한 여름이 오기 전에, 잠시 쉴 수 있는 계절이기 때문인가 보다. 금방 피어 떨어져버리는 신기루에 취해 시험공부 대신 꽃놀이 좀 하고 왔다고 뭐라 하는 이는 없으니까.

 

사랑하는 연인들이 많군요 알 수 없는 친구들이 많아요

흩날리는 벚꽃 잎이 많군요 좋아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 벚꽃엔딩(버스커버스커) 中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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