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태국에서 살아보기, 사랑하기-16회

 


촉 디, 레우 꺼 촌 께우.

해가 저문 람빵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맛있는 것을 먹이기로 했다. 대회 전날 저녁을 잘 먹어두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아이들을 데려간 곳은 ‘무커타’라는 고기구이를 파는 집. 소고기와 돼지고기, 온갖 해산물들이 뷔페처럼 늘어져 있고 각자 접시에 담아가 화롯불에 구우면 된다. 데려가자마자 아이들이 신나서 접시를 서로 주고받는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기를 보면서 아이들이 생긋생긋 웃고 있으니 종일 대회 걱정으로 긴장되었던 분위기가 금세 풀어진다. 선생님, 더 많이 드세요, 라면서 접시를 내미는 아이들의 장난기 가득한 얼굴에 나는 배를 쓰다듬으며 더 이상 먹을 수 없다고 반복한다.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진즉에 사 먹이지 않았었다니.

 

 

저녁 식사를 마치고 각자의 숙소로 돌아가는 시간, 나는 클로드 선생이 운전하는 오토바이를 타고, 아이들은 승합차를 타고 이동한다. 방에 돌아간 지 얼마 안 있어, 오토바이를 타고 내 방으로 몰려드는 세 명의 아이들. 내일 대회가 있을 아이들을 위해, 막간의 연습을 시키려고 클로드와 나는 아이들을 우리의 숙소로 부른 것이다. 다시 긴장으로 굳어지는 얼굴들. 노래를 핸드폰으로 큼지막하게 틀어놓고, 아이들이 노래 부르는 것을 의자에 앉아 가만히 지켜본다. 그간 오랫동안 노래를 부르겠다고 연습을 했고 연습을 시켰더랬다. 대회 오기 직전,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무대를 꾸며 아이들이 그 위에서 노래를 부를 때에도 선생이 된 마음은 사시나무처럼 떨렸더랬다. 마지막 연습을 시키는 때에도 그 가슴은 진정이 되질 않는다. 이젠 아이의 노래가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더라도 어쩔 수 없다. 잘 했으니 가서, 푹 쉬라고. 목 상태가 안 좋거든 따뜻한 차라도 한 잔 하면서 푹 쉬라고 인사를 건네준다. 내일 최선만 다 하자. 그렇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 촉 디, 행운을 빈다.

 

 

아이들을 하나 둘 잠자리에 돌려보내고 나니, 함께 출장을 온 콴 선생이 맥주를 사들고 들어온다. 그렇게 람빵에서의 밤사이에 술자리가 열렸다. 나와 클로드 선생이 머무는 집의 호스트인 삭 아저씨의 초대로 콴 선생이 술을 사들고 온 것이다. 그제야 집 주인과 인사를 나누고 이런저런 안주들이 상에 차려졌다. 온갖 태국어가 난무하는 술상에서 나는 전부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고개를 끄덕거리며 어설프게 술잔을 들었다 놓곤 했다. 삭 아저씨와 서로 이름을 나누고 술잔을 주고받으며 어쩌다가 이곳에서 선생 일을 하게 되었는지, 한국은 어떤 나라이며 지금까지 봐온 태국의 모습은 어떠했는지를 짧은 태국어로 겨우 겨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삭 아저씨는 시멘트 공장에서 일하는 공장장이었고 내가 자신의 집을 찾아와줘서 고맙다고 정중하게 인사했다. 집은 크고 넓지는 않았지만, 안락한 가구들로 잘 꾸며져 있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온 선생이 아이들을 대회에 데리고 나왔다는 것에 신기해하며, 촉 디. 행운을 빈다고, 그리고 촌 께우. 내게 건배를 권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하루를 마무리하며 그들의 행운을 빌어주었고, 내게 건배를 권하는 이들은 나에게 맥주 한 잔과 함께 또 다른 행운을 빌어준다.

그렇게 행운은 물고 물리면서 주고받는 것이다. 소박한 술자리에서, 무엇보다 아이들이 다음날 대회에서 잘 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우리는 모두 이 자리에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축하하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이곳까지 함께 왔다. 그래서 행복하다. 이렇게 보면 참 행복이라는 것은 별 것 없는 듯이 느껴진다.

행운이라는 것, 행복이라는 것, 모두 이 자리에 가라앉아 있다. 촉 디, 레우꺼 촌 께우.
 

 

아쉬워도 괜찮아

새벽부터 일어나서 아이들 아침먹일 것을 챙겨 승합차에 몸을 실었다. 기절하듯 차창에 기대어 졸면서 도착한 곳은 드디어 대회가 열릴 람빵의 한 대학 캠퍼스. 전국에서 차들이 몰려왔는지 대회장 근처에는 이미 온갖 자동차들로 줄지어 있고 주차장도 혼잡하기 그지없다. 입구에는 노점상들의 따끈한 음식들로부터 피어오르는 연기로 자욱하다. 분주한 대회장 한 가운데에 내린 나와 클로드 선생, 아이들은 일단 분야별로 다른 대회장을 찾아야만 했다. 내가 벤치에 아이들을 앉혀 밥을 먹이는 동안 클로드 선생은 대회 장소를 찾으러 나섰다. 아이들의 긴장은 한껏 더해졌는지, 아침을 영 먹는 둥 마는 둥 한다. 그러나 노래를 불러야 할 아이들이 밥을 거르면 곧 더 힘들어질 것을 알기에 억지로라도 먹인다. 먹어야지. 먹어야 힘을 내서 너희들이 연습한 만큼 할 수 있잖니.

태국 유일의 산악 지대인 만큼, 아침이지만 날씨가 서늘하다. 안개도 낀 길가에 앉아 있다간 아이들이 감기라도 걸리겠다 싶어 아무 건물이나 잡아 들어가니, 그 바로 근처가 우리가 가야할 대회장이었다. 그 이후로는 여느 선생들과 다를 바 없는 출장 업무다. 아이들이 대회장에 들어가 있는 동안, 추위에 떨면서 긴 줄에 늘어 서 아이들의 대회 등록을 기다리는 것이다. 한참을 기다려 등록을 마치면 다시 대회장에 들어가 아이들과 대기를 하는 동안, 한 쪽 귀퉁이에서 아이들의 목소리와 노래를 점검한다. 가사는 완벽히 외워졌는지, 목이 아프거나 소리가 갈라지지는 않는지. 목소리가 갈라지는 것 같다 싶으면 얼른 따뜻한 물을 공수해 와 아이들을 먹이고 다시 소리가 나오는지 확인한다. 거의 자식 뒷바라지하는 부모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다. 무엇보다 여기까지 우리가 온 목적은, 모두 아이에게 달려있는 것이다. 적어도 슬퍼하면서, 또는 억울해하면서 이 대회장을 나서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도 없다.

 

 

다른 지역에서 온 아이들을 보니, 내가 데려온 아이들 역시 꽤 긴장이 되는가 보다. 괜찮다, 괜찮다, 잘 할 거라고 어깨를 토닥여줘도 소용이 없다. 일부러 긴장을 풀어주려고 웃긴 표정으로 휴대폰 사진도 찍어보고 하지만 역시 소용이 없다. 얼마 뒤면 다시 굳어지는 얼굴들. 다른 아이들을 가리키면서, 쟤는 정말 잘 한대요, 예전에 소문을 들었어요, 하며 부럽고 한편으론 지지 않으려는 아이들의 눈빛에 마음이 불편하다. 아이들 모두가 그저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이 대회를 마무리 지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곳에도 치열한 경쟁과 승부가 있어야만 한다니. 그리고 이 대회가 아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성적으로 작용한다는 것도 참 슬픈 요소다. 축제가 될 수 없는 대회는 아이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곤 하는 것이다. 선생으로서 이런 대회에 아이들을 어쩔 수 없이 떠미는 심정은 결코 편안할 수 없다.

내 아이들의 순서는 뒤에서 스무 번째 정도였을 것이다. 오전에 열리는 대회의 참가자 수만 백 명이 넘었으니, 아주 지루하고도 긴장을 풀 수 없는 괴로운 시간들을 보내다가 아이들은 온통 체력이 빠져 자신의 무대에 섰다. 그리고 물론 전에 전혀 없던 실수들을 마구잡이로 보였다. 클로드 선생은 무대 뒤편에서 영 실망스러운 표정이었지만, 나는 생각보다 그렇지 않았다. 아쉽지만 잘했다. 지금 굳이 이기려 할 필요 없다. 여기까지 온 내 아이들만 해도 얼마나 나는 선생으로서 자랑스럽고 고마운가.

아쉬워도 괜찮아. 무대 위에 올라선 아이들을 보면서 그 말을 가장 하고 싶었고, 내려온 아이들에게 그 말을 해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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