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가 만사’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문재인 시대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전임인 박근혜 전 대통령의 낙마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회전문 인사와 ‘불통 정치’가 문제가 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인수위 시절부터 이른바 ‘강부자 인사’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인수위 시기가 없는 문재인 대통령의 초기 인사가 관심을 모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문 대통령은 취임 하자마자 전광석화처럼 인사를 단행했다. 그 상징성과 함께 대대적인 변화가 예고된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문 대통령의 초기 인사와 관련 그의 소통 스타일을 살펴봤다.

 

 

‘50대 인사들 약진 앞으로’.

문재인 정부를 이끌어갈 핵심 인사들이 속속 배치되고 있다. 정부 출범 첫날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가 발표되며 관심을 모았다.

이어서 둘째날에는 조국 민정수석, 조현옥 인사수석, 윤영찬 홍보수석이 임명됐다. 이 총리 후보자가 국회 인준을 받기 위해선 적잖은 시일이 걸리지만 그가 전남도지사를 역임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야당이 쉽게 공세를 퍼붓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호남 민심은 대선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아닌 문 대통령의 손을 들어줬다. 영남 텃밭이 흔들린 보수 진영에서도 칼을 빼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는 게 정치권의 분위기다. 문 대통령은 이 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준에 시간이 걸릴 것을 우려해 홍남기 미래부 1차관을 국무조정실장에 임명하는 등 철저한 인사 순서를 밟고 있다.

각 부처의 정책과 의견을 조율, 통할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국무조정실을 통해 부처 차관들과 함께 정부를 이끌어 가겠다는 포석으로 보인다.
 

‘호남 총리’ 전격 발탁

새 정부의 인사에 대해 우려가 없진 않지만 이념 공세와 대북 문제를 제외하곤 대체적으로 호의적인 분위기다.

일단 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비영남 출신을 총리로 기용하겠다는 약속은 지켜졌다. 신임 국정원장 후보자가 국정원 직원들의 정치 관여를 근절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점 등도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당초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지는 조기 대선인 만큼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꾸리지 못하는데 따른 시행착오가 많을 것이란 우려를 불식시키는 행보였다. 강행군이었던 대선이 끝난 뒤 곧바로 이뤄져야 하는 인사였던 만큼 걱정이 안팎으로 적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문 대통령은 ‘준비된 대통령, 든든한 대통령’이라는 선거 구호만큼이나 첫 단주를 무난히 끼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이 같은 행보엔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근에서 보좌했던 경험도 한 몫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바른정당 주호영 대표 권한대행은 임종석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준비된 대통령 후보라고 말해서 선거 때라 저런 말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면서 “막상 취임 직후부터 인사 발표가 나는 걸 보니 과연 준비된 대통령 후보라는 말이 허언이 아니었다는 점을 느끼고 있다”고 덕담했다.

인수위가 없음에도 주요 직위에 대한 인사를 빠르게 진행할 수 있는 것은 문 대통령의 국정경험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그는 대통령 비서실장과 민정수석, 당 대표 등을 거치면서 자신과 호흡을 맞출 사람들을 미리 선별해 놓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전임인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총리와 장관 후보자들이 인사청문회의 문턱에 걸려 줄줄이 낙마하면서 실패했던 사례들도 반면교사가 됐다.

대세론과 함께 정권 교체를 확신하고 일찌감찌 ‘실루엔 캐비넷’을 작성했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선거전 때 제기됐던 ‘친문 세력’의 패권 정치 논란도 자극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 취임 초기 ‘허니문’ 기간이긴 하지만 낙하산 인사만 자제한다면 인사에선 후한 점수를 받고 있다는 게 여권 관계자의 말이다. 실제 여론조사에서도 90% 가까운 응답자들이 큰 기대를 표시하고 있다.
 

‘깜짝 인사’에 눈길

청와대 수석 비서관들은 대부분 50대 초, 중반으로 젊게 꾸려졌다. 저마다 개혁에 무게중심을 뒀다는 게 주요 인선 설명이다.

진보 성향의 법학자를 민정수석으로 발탁한 것은 검찰 개혁에 대한 문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다. 임 비서실장은 이와 관련 “지난 정부에서 민정수석은 검찰 출신이 독점을 하면서 국정농단의 한 축으로 기능해왔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1인 시위를 하면서까지 ‘검찰 개혁’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조 신임 수석도 개혁 의지를 분명히 했다.

“검찰의 아주 막강한 권력을 제대로, 엄정하게 사용해왔는가에 대해서는 국민적 의문이 있다. 내년 지방선거 전까지 개혁을 마무리하고 싶다.”

첫 여성 인사수석 임명도 눈길을 끈다. 문 대통령이 공약했던 남녀 균형 내각의 신호탄으로 분석된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도 대국민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비문인사들의 대거 청와대 입성도 이전과는 다르다. 원조 친문들과 함께 다양한 인사들이 비서진을 구성하게 됐다. 문 대통령이 강조해왔던 ‘개혁’과 ‘탕평’의 의미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

비서실장과 민정수석, 국민소통수석이 모두 50대로 젊은 청와대의 면모도 드러났다. 박근혜 정부 첫 청와대 실장과 수석들의 평균 나이는 61세였다.

청와대 집사이자 실세로 불렸던 총무비서관에 정통 경제관료를 기용한 것도 이례적이다. 철저한 시스템과 원칙을 바탕으로 하겠다는 의지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이런 젊은 바람을 반영이라도 하듯 임 비서실장은 “대통령에게도 직언하겠다”며 새로운 바람을 예고했다.
 

‘탈권위’에 방점

문 후보의 초기 인선 키워드는 젊음과 개혁, 그리고 실용으로 요약된다.

이전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가 사정기관 출신, 높은 연령대로 이뤄졌던 것과 크게 대비된다. 문 대통령의 초기 청와대 인사는 젊고 개혁을 상징하는 인물을 등용해 실무형으로 배치한 게 주요 특징이다.

이런 의도가 가장 잘 반영된 첫 인사는 임 비서실장 임명이었다. 임 실장은 66년생으로 만 51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초대 비서실장이었던 허태열 전 실장은 45년생이었고 ‘왕실장’으로 불렸던 김기춘 전 실장은 39년생, 마지막 비서실장이었던 한광옥 전 실장은 42년생이었다. 그만큼 파격적인 인사라는 얘기다.

박근혜 정부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몰락했고 그 중심에 고연령의 김 전 실장이 있었다. 문 대통령은 젊고 진보적인 비서실장을 통해 청와대의 이미지 쇄신을 꾀한 것으로 분석된다.

문 대통령은 임 실장을 소개하며 “젊은 청와대, 역동적이고 탈권위적인, 그리고 군림하지 않는 청와대로 변화시킬 생각”이라고 말했다.

조 민정수석은 문 대통령의 ‘개혁’ 의지를 상징한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주요 인물 가운데 한 명이었다. 국민들의 분노가 큰 만큼 문 대통령은 선거 기간 검찰개혁을 강하게 약속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이를 위해 비검사 출신이자 진보 성향의 법학자인 조 수석을 카드로 꺼내들었다.

‘실용주의’는 조현옥 신임 인사수석과 윤영찬 신임 국민소통수석, 이정도 신임 총무비서관 임명에서 엿볼 수 있다. 최초의 여성 인사수석인 조 수석의 깜짝 기용은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고위 공직자 인사검증자문회의 위원과 균형인사비서관을 역임한 전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조 수석이 서울시에서 여성가족정책실장을 맡은 경력도 한 몫한 것으로 전해진다.

윤 수석은 정치부 기자 출신이자 네이버 부사장 등을 맡은 미디어 전문가라는 점이 높이 평가됐다. 이와 함께 이명박 정권의 실세였던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의 측근이었던 이 비서관을 청와대 인사와 재정을 총괄하는 총무비서관에 발탁한 것도 파격 인사다. 그만큼 권위보다는 실무형 인사를 중시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인사는 모든 것의 출발’이라는 게 정치의 속설이다. 첫단추에 성공한 문 대통령의 다음 행보가 어디로 이어질지 관심을 모은다. ‘불통’은 결국 대통령과 민심 사이에 ‘산성’을 쌓을 수 밖에 없다. 장미대선이 대한민국 정치사에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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