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을 아십니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을 아십니까?
  • 이석원 기자
  • 승인 2017.05.18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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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기획>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살아보기: 2회 / 이석원

 

스웨덴 국민들은 세계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3년 OECD 국제성인역량조사 자료에 따르면, 스웨덴의 연평균 독서율(15세 이상 국민 중 1년에 책 1권 이상을 읽는 사람의 비율)은 90%(EU 평균 68%, 한국 73%)로 세계 1위다.

그런 스웨덴 사람들의 독서량을 뒷받침하는 것은 공공 도서관이다. 스웨덴 전역에는 300여개의 공공 도서관과 1000여개의 공공 도서관의 분관이 있다. 스웨덴 인구가 우리의 5분의 1인 점을 감안하면 꽤 많다. 그래서 스웨덴의 공공 도서관 이용률(15세 이상 국민 중 1년에 1회 이상 공공도서관에 간 사람의 비율)은 74%(EU 평균 31%. 한국 32%)로 이 또한 세계 1위다.

 

▲ 스톡홀름 시립 도서관 전경: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스톡홀름 시립 도서관. 스웨덴의 대표적인 건축가인 군나르 아스플룬드가 설계한 건물로 네모난 상자 위로 원통이 솟아있는 모양이다.

 

결국 스웨덴 사람들의 독서는 공공 도서관에서 주로 이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 중심에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스톡홀름 시립 도서관(Stockholm Stadsbibliotek)이 있다. 스웨덴 건축가 군나르 아스플룬드가 1928년 신고전주의와 모더니즘을 혼합해 만든, 그야말로 공공 도서관을 예술의 경지에 올려놓은 건축물이다.

건물의 파사드를 통과하면 등장하는 계단. 그 계단의 끝에서 보이는 광경은 슬슬 심장 박동 수치를 올린다. 그리고 계단을 올라서서 맞닥뜨리는 것은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 속 우주의 공간을 처음 접했을 때의 비현실감이다. 마크 어빙과 피터 ST는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 1001’이라는 책에서 이 도서관 열람실을 ‘연마 끝에 순수한 기하학의 경지에 오른 주지주의의 저장소로 오르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거대한 우주 한복판에 서 있는 듯, 나를 중심으로 수백만 권 책의 별들이 공전하는 환상, 그런 비현실의 공간이다. 당나라 시인 이백이 얘기한 도원경(桃源境),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은 비단 깊은 산, 위대한 자연에만 있지 않다. 원통의 한 가운데 점처럼 서 있으면 360도를 삥 둘러싼 지식의 초자연 속에서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야트막한 제어불능의 신음인지 탄성인지를 뱉게 된다.

이 환상적인 공간은 스톡홀름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곳이다. 매일 오후 퇴근 시간 무렵이면 다양한 복장의, 다양한 연령의 시민들은 아무 절차도 감시도 받지 않는 이곳에 와서 한 두 시간 동안 자유롭게 책을 읽다가 간다. 바쁜 일상에 지쳤던 사람들이 가장 편하게 삶의 쉼표를 찍는 공간으로 이곳을 꼽는 것이다.

 

▲ 스톡홀름 시립 도서관 열람실: 원통의 열람실은 다시 3층의 구조로 이뤄져 있는데, 360도를 삥 둘러 꽂혀 있는 장서들은 처음 보는 이들에게는 탄성을 자아내게 하고, 자주 온 사람들에게는 평안함을 준다.

 

뿐만 아니라 책 대출도 상당히 자유롭다. 스톡홀름 시민은 물론 단순한 여행자들도 여권 등의 간단한 신분 확인만 하면 자유롭게 책을 빌릴 수 있다. 반납은 굳이 이곳으로 다시 와야 하는 것도 아니다. 시내 곳곳에 공공 도서관의 책을 반납하는 곳이 있다. 시립 도서관 분원은 물론 지하철역에도 책 반납을 위한 공간이 있어서 그곳에 반납하면 된다. 이 모든 것은 철저히 신뢰에 기반을 두고 있다. 1990년 대 초반 스톡홀름 대학교에서 유학하던 한 한국인은 당시 이곳에서 빌린 책을 깜빡하고 미처 반납하지 못했다. 그는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2011년 스웨덴을 여행하면서 그 책을 스톡홀름 시립 도서관에 반납했다. 단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스톡홀름에서 기차를 타고 북쪽으로 40여분 가면 나오는 도시 웁살라(Uppsala). 웁살라는 스웨덴의 국부로 일컬어지는 구스타브 1세 바사왕이 1523년 덴마크로부터 스웨덴의 국권을 되찾아 오기 전까지 스웨덴의 수도였다. 그리 크지는 않지만 피리스 강을 젖줄 삼아 발전해온 웁살라는 15세기 중엽 완성된 웁살라 대성당을 중심으로 한 종교성이 강한 도시였지만, 1477년 이 성당을 근거로 한 웁살라 대학교가 설립되면서 대학 도시로 변모했다. 북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인 웁살라 대학은 ‘식물 분류법’을 정립한 칼 폰 린네를 배출한 것을 비롯해 지금까지 모두 12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학교다.

한국의 유학생이나 교환학생도 적지 않은 웁살라 대학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공간은 웁살라 대학교 중앙 도서관인 ‘카롤리나 레디비바(Carolina Rediviva)’다. 15세기부터 내려오는 고서적 수만 권을 포함한 500만 권의 장서를 소장한 이곳은 프랑스의 지성 미셸 푸코가 역작 ‘광기의 역사’를 집필한 곳으로 유명한데, 그런 유명한 지성인이 아니더라도 도서관 안팎에서 웁살라 시민들이 가장 많은 책을 읽으며 한가로운 일상을 보내는 공간으로 더 유명하다.

 

▲ 웁살라 카롤리나 레디비바: 웁살라 대학교의 중앙 도서관인 카롤리나 레디비바. 이곳에는 4세기에 고트어로 번역된 성경의 4대 복음서의 유일한 필사본이 소장돼 있다. 다만 열람실 안은 사진 촬영이 안된다.

 

카롤리나 레디비바도 이 학교의 학생들은 물론 웁살라 시민들 모두, 뿐만 아니라 웁살라를 방문한 여행자에게도 개방된 공간이다. 마음껏 책도 빌릴 수 있다. 물론 제대로 반납이 이뤄진다. 혹여 웁살라 사람에게 “그러다가 책을 반납하지 않고 그냥 가져가면 어떻게 하냐?”고 질문이라도 하면 질문한 사람이 이상해진다. 그들은 “자기 책이 아닌데 왜 가지고 있어?”라고 되묻는다. 그 이상의 설명은 없이. 카롤리나 레디비바의 한 사서에게도 비슷한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날 어떻게 믿고 여권만 확인하고 책을 빌려주냐? 내가 책을 반납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으니 “그 정도로 가난하신 것 같지는 않은데요”라고 하며 웃는다. 질문한 사람이 겸연쩍어 지는 것이다.

스웨덴에는 크고 작은 서점이 여럿 있다. 한국의 교보문고 정도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스톡홀름 중심가에도 대형 서점이 있고, 서울의 연남동 분위기 가득한 소포(SOFO) 지구 등에도 크고 작은 서점들이 많다. 그러나 1인당 국민소득(GNI) 5만 달러의 스웨덴 사람들은 서점에서 책을 사서 보기보다 공공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는 것을 더 즐긴다. 스웨덴 정부의 복지 예산 중 상당부분은 이런 공공복지로 지출되기도 한다. 즉 세금을 내는 사람들이 그 세금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는 기회는 교육이나 의료, 노후 등 굵직하고 거창한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공공복지의 단면들은 결국 스웨덴 사람들의 엄청난 독서량, 그리고 그에서 비롯된 ‘똑똑한 시민’ 만들기로 이뤄지는 것이다. 그래서 스웨덴 사람들은 과감하게 자신들의 독서 사랑을 과시한다. 답답한 집안에서보다 밖에서 책 읽기를 즐기면서. 도심 속 그 많은 공원들, 카페들, 그리고 지하철과 버스 안. 스웨덴 사람들이 공공 도서관과 함께 책 읽기 좋아하는 공간들이다. 그리고 그런 사회적 분위기는 스웨덴을 세계에서 가장 지성적인 이미지의 나라로 만들어줬다. 

<이석원 님은 한국에서 언론인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스웨덴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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