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김영호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1회

 

농촌이, 농업이, 농민이 위기다. ‘농자’(農者)는 실종되고 ‘치자’(治者) 농정만 만연하다. 농업경쟁력은 악화될 대로 악화됐다. 과거 군사정권의 수출경제 산업화 우선 정책으로 외면당하기 시작했던 농업이 수십년이 지난 지금 극한으로 내몰렸다. 대자본가와 결탁한 농정관료들은 농민요구와 다른 불합리한 정책을 남발해 농업을 악화시켰다. 국민들도 농업문제에 관심이 적다.

 

▲ 김영호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과거 정부들의 농업관련 국제협상의 잇따른 실패로 농민들이 모든 고통을 떠안고 있다. 우루과이 라운드(Uruguay Round)와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에서 잇따라 맺은 불공정한 협약들의 결과다. ‘의무수입쿼터’ 덫에 걸려 들여오는 쌀은 가격 폭락사태로 직결된다. 농사를 지어봤자 원가도 건지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정부에 강력히 항의를 해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무자비한 폭력진압과 죽음뿐이다. 지난 박근혜 정권 때의 물대포는 농업말살의 상징이 되었다. 2005년 노무현 정권 때도 마찬가지였다. 역대 대통령들은 농정공약을 약속했지만 말뿐이었다.

“신자유주의 자본가와 영합한 정권의 탐욕에 농업은 늘 소외당했다. 과거 DJ-노무현 정권도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문제를 더 심화시켰다. 한국 농업의 위기는 ‘우루과이 라운드’와 ‘WTO’가 발단이다. 매년 의무적으로 들여와야 하는 40만톤 이상의 쌀이 쌀값 폭락을 불렀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김영호 의장을 만난 이유다. 서울 용산구의 전농 사무실에서 만난 김 의장은 “쌀은 한국인의 주식인데 지금 실정을 보면 미국산 밥쌀이 마구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며 “지난 박근혜 정권이 미국의 이익을 위해 쌀 시장을 전면 개방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밥쌀 수입은 무능한 박근혜 정권의 부도덕성과 폭력성을 드러낸 것으로 한국을 미국의 농업종속국으로까지 만들어버린 사건이라는 것이다. 밥쌀 수입 입찰은 지난 5월 8일 새정부 출범을 이틀 앞두고도 사단이 발생했다. 농식품부 산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TRQ 쌀 (2차) 구매 입찰 공고를 내면서 총 6만5000톤을 수입하는데 그 중 밥쌀 2만5000톤을 수입하겠다고 기습 공고한 것이다.

“밥쌀용 쌀 수입은 2014년까지는 국제협약에 의해 의무였지만 2015년부터는 의무가 종료된 것으로 굳이 살 필요가 없다. 3년 전부터 재고 때문에 쌀값이 폭락하는 상황에서 수입되는 밥쌀은 쌀값 폭락을 더욱 부채질했고 정부와 농민들에게 많은 경제적 손해를 가져왔다.”

김 의장은 “교묘하게도 공고는 새정부 출범 이틀 전에 하고 입찰은 5월 16일에 함으로써 새정부가 밥쌀 수입을 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만들어 놨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2015년부터 쌀 관세화로 전환하면서 쌀 전면개방이 시행되고 있고, 저율관세할당(TRQ)으로 매년 40만8000톤을 수입하는 처지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는 TRQ 쌀 중에서 밥쌀용 쌀을 수입해온 것이다.

김 의장으로부터 쌀 문제와 위기의 농촌 현실, 남북한 농업교류, GM 벼, 핵발전소, 새 정부의 농정공약 문제 등을 들어봤다. 김 의장은 본향인 충남 예산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이기도 하다. 다음은 심층인터뷰 전문이다.

 

 

- 오랫동안 참 힘든 날들이었다. 농민들도 마찬가지일 텐데, 우선 새 정부에 당부하고 싶은 얘기부터 들려달라.

▲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전농과 함께 문재인 새 정부의 출범을 환영한다. 6개월에 걸친 시민촛불혁명을 통해 이명박-박근혜 적폐정권 체제를 벗어났다. 과거 정권부터 우리나라 농업정책은 산업화와 수출드라이브 중심으로 성장해왔다. 여기에 신자유주의와 자본가들의 이익과 부합한 정권의 탐욕으로 농업은 외면 받았다. 정권마다 이런 기조를 이어왔다. 사실 이러한 것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를 더 악화시켰다. 수십 년 동안 우루과이라운드와 WTO 농업체제를 맞으면서 한국농업의 근본문제가 시작됐다. 농업육성보다 외국농산물을 사다먹으면 된다는 수입 정책이 이때부터 나왔다. 다른 나라에게 먹는 문제를 내맡긴 채, 사다 먹는 것에 익숙해져 버렸다. 사드 배치 등으로 외세에 의한 국방이 된 것처럼, 식량농업 문제도 주권을 놓아버렸다. 외교마저도 힘센 강대국에 매달려 똘마니 눈치 외교를 하고 있다. 이런 식의 농업식량정책은 즉각 폐기돼야 한다. 새 정부는 과거 정권이 답습해 온 외세농정이 아닌 자주적 농정개혁을 해줄 것을 당부한다. 전쟁무기는 없어도 살지만 식량이 없으면 곧 죽음이다. 식량안보가 중요한 이유다. 식량농업주권은 국민생명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다. 장차 남북농업교류의 문이 열리면 식량을 통한 외교협상회담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다.

 

 

- 최근 농식품부가 밥쌀 수입 입찰을 강행했다.

▲ 박근혜 잔여세력들과 미국 이익을 대변해 온 매판관료들이 기습적으로 강행했다. 그것도 새 정부 출범직전인 5월 8일 전자입찰 기습공고를 통해 일사천리로 해치워 버렸다. 넘치고 있는 쌀 창고가 또 다시 2만5000톤의 밥쌀로 더 넘쳐날 전망이다. 어쨌든 공은 문재인 정부로 넘겨졌다. ‘농민이 안심하고 농사짓는 나라를 만들겠다’던 새 정부가 시작부터 쌀 수입 문제에 봉착했다. 농민들은 새 정부의 즉각적인 수입폐기를 간절히 고대했다. 하지만 철회나 지연은 없었다. 밥쌀 수입은 역대 정권들의 대표적 농업적폐 산물이다. 2015년 박근혜 정권은 쌀 전면개방을 전격 시행했다. 그런 와중에 국제협약에서도 종료된 밥쌀용 쌀 수입마저 열어줬다. 폭락이라는 폭탄을 맞은 쌀값은 역대 최저인 30년 전 가격으로 뚝 떨어졌다. 농민들은 참담한 고통을 떠안아야 했다. 쌀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성장한다. 쌀 한 톨에는 밤낮으로 보살피는 농부의 땀과 수고가 배어있다. 그러나 관료들은 농민의 땀을 외면해 왔다. 철저히 미국의 이익을 위한 대변자 노릇만 하고 있다. 미국산 밥쌀수입이 바로 한국농정의 현주소다. 이에 맞서 전농은 밥쌀수입 구매입찰 하루 전인 15일, 청와대 인근 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밥쌀용 쌀 수입 중단요구와 함께 청원서를 청와대에 전달했다. 

 

 

-새 정부가 중단시킬 수 있는 일 아니었나.

▲ 그 권한은 농식품부 김재수 장관과 관료들이 쥐고 있다. 김관진 안보실장이 사드를 기습 배치한 것처럼 시간차 공격으로 감행했다. 그랬어도 새 정부는 움직이지 않았다. 신속한 중단이나 연기조치가 없었다. 좀 더 면밀하게 상황파악을 했어야 했는데 아쉬움이 크다. 천번만번 모든 것을 양보하더라도 정부가 그런 조치를 했어야 한다. 청와대에 청원서를 냈지만 아직까지 답이 없다. 관계자들로부터도 회신을 받지 못했다. 박근혜 정권의 매판자본 부역관료들이 무엇이 그렇게 급했는지 농민들 모르게 갑자기 추진한 배경이 의심스럽다. 대통령의 밥쌀공약은 다시 물 건너갔다. 과거 정권들도 그랬지만 문재인 대통령도 공약을 했었다. 지금이야말로 한국농업을 망친 무작위적 시장개방 농업정책의 기조를 바로 잡을 때다. 새로운 농정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 왔다고 본다.

<2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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