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임금, 어두운 임금
밝은 임금, 어두운 임금
  •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 승인 2017.05.29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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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 박석무

절대군주 시절이던 조선왕조의 역사를 검토해보면 밝은 임금과 어두운 임금의 차이 때문에 역사의 전진과 후퇴가 명확하게 들어납니다. 현재 대한민국 헌법에 근거한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 때문에 대통령 한 사람의 밝음과 어두움에 국가의 명운이 걸려 있음을 요즘의 국민들은 유독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어둡던 대통령이 파면당하고 새롭게 태어난 대통령이 밝음을 보여주면서 이렇게만 계속한다면 나라다운 나라가 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어둡던 대통령에 대한 폄하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다산의 책 『혼돈록(餛飩錄)』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꼭 기억해두어야 할 내용이 꽤 많습니다. 근래에 번역본이 나왔는데 번역본 113조의 「송덕상(宋德相)」이라는 항목에는 바르고 옳은 생각 때문에 벼슬에서 잘려 8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낙척생활을 해야 했던 번암 채제공(蔡濟恭)에 대한 이야기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길고 긴 이야기지만 요약하면 정조대왕 초년 홍국영이라는 세도가가 권력을 쥐고 횡포를 부리던 이야기의 한 토막입니다. 왕세손 시절에 위태롭고 불안하던 세손의 지위를 보호하여, 영조가 세상을 떠난 뒤 왕위에 오르기까지 정조에게 가장 큰 공이 있던 사람은 홍국영이었습니다. 왕위에 오르고도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는 왕위의 안정을 찾지 못해 불안해하던 시절이어서 큰 권력을 홍국영에게 넘겨주었지만 홍국영은 그런 권력을 남용하면서 별별 짓을 다하다 끝내 패망하고 맙니다.

그러던 시절, 홍국영은 자신의 누이를 정조의 후궁으로 들여보내 영세토록 권력을 쥐려는 야심을 품었는데 후궁으로 들어간 홍씨 여인이 병사하고 말았습니다. 이 때 홍국영에게 잘보이려던 송덕상이라는 문신이 “원빈(元嬪:홍씨)이 훙서(薨逝)하셨으니 종묘사직은 의탁할 데가 없도다”라는 표현으로 후궁인 원빈(홍씨)의 죽음이 정비인 중전의 죽음에 비유하여 나라의 장래가 위태롭다는 극도로 존숭하는 표현을 사용하여 홍국영에게 아부의 신호를 보낸 것입니다. 이 글을 보았던 채제공이 혼잣말로 ‘글의 서두가 참으로 괴이하구나! 후궁 한 사람이 죽었는데 왜 종묘사직이 위태롭단 말인가. 4백년 종묘사직을 일개 후궁에게 맡겼단 말인가  참으로 괴이하다’라고 말을 했는데 그 말이 새어나가 홍국영이 듣고는 곧장 정조에게 달려가 온갖 죄목으로 엮어 큰 처벌을 하자고 주장했다는 겁니다. 이 일로 채제공은 8년의 낙척생활을 했고 홍국영의 패망 이후에야 임금의 특별 명령으로 형조판서에 올랐다는 것입니다.
 
채제공을 판서로 임명하고 임금 곁에 있을 때 임금이 자초지종을 말하면서 “그 때 내가 곡진하게 말하여 홍국영을 진정시키지 않았다면 큰 화를 면치 못했을 거요”라고 말했다는 겁니다. 만약 정조가 우둔한 군주여서 홍국영의 분풀이에 말려들었다면 채제공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을지 예측하기 어려운 때였습니다. 그러나 정조의 현명한 판단으로 채제공은 재등용되어 영의정까지 오르며 정조와 다산, 그들과 함께 위대한 정조치세를 이룩해 냈습니다. 현명한 군주만이 옳고 바른 정치를 하게 됨을 이런데서 알 수 있습니다. 새 대통령도 제발 밝게만 하여 좋은 세상 만들어주기를 고대합니다.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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