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일꾼> 최충언 칼럼

남루한 옷차림이나 외견상 보이는 신체장애로 인해 식당에서 쫓겨난다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것도 손에 단돈 천 원을 쥐어주고서 쫓아낸다면? 신학교 휴학 중에 청소부로 일했던 어느 신부가 기도하고 싶어 성당을 찾았다가 성당지기에게 쫓겨났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을 떠나서 인간에 대한 예의 없음과 일상적 차별에 분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요즘 주말을 장애인 삼총사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다. 발달장애를 가진 ‘느리게 자라는 아이’인 균도와 선천성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정민이 그리고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뇌병변 장애를 가진 래성이가 그 주인공들이다. 우리는 같이 모이는 것을 ‘뭉친다’고 표현한다.

지난 주말에도 우리는 뭉쳤다. 점심은 진주냉면집에서 먹고 우리는 극장으로 갔다. 일행은 모두 여덟 명이었다. <캐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를 재미있게 관람했다. 균도가 집중해서 보는 모습이 귀여웠다. 여럿이 뭉칠 때, 메뉴 선택은 언제나 어렵다.

 

▲ 사진출처=pixabay.com

 

우리 일행이 찾아간 곳은 식탁이 여섯 개 밖에 되지 않는 조금은 허름한 분식집이었다. 김치말이 김밥이 특이해서 종종 찾던 곳이다. 김밥에 시래기국 한 그릇이면 포만감을 느끼고 가성비가 좋은 곳이다. 균도와 내가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았고, 아내와 정민이가 뒤따라 들어왔고 나머지 네 명은 분식집 밖에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분식집에서 일하던 아주머니가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뇌성마비 2급 장애인인 정민이 손에 쥐어 주고는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너무 황당한 일이 순식간에 일어나 버렸다.

정민이는 뇌성마비로 얼굴과 상지의 근육에 강직이 심하다. 나는 얼떨결에 천 원짜리 지폐를 손에 쥐게 된 정민의 분노와 슬픔이 밴 눈을 쉽게 잊지 못한다. 균도아빠와 아내가 거칠게 항의를 했다. 아내는 항의하면서 급기야 울음을 터뜨렸다. 다르다는 것이 틀리거나 나쁘거나 혐오스러운 것은 아니지 않느냐? 우리 돈 내고 밥 먹으러 왔는데 이게 무슨 짓이냐? 화도 나고 슬프기도 하고 한심스럽기조차 했다.

정민이는 나와 띠 동갑이고 열두 살 아래다. 대학교에서 국문학을,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석사학위가 두 개나 된다. 그렇지만 현실의 삶은 녹록하지가 않다. 촛불 정국에서 불편한 몸으로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우리와 같이 끝까지 행진을 했던 정민이다. “하루 이틀 겪는 일도 아닌데요, 뭐.” 하면서 정민이가 결국 아내의 손을 끌고 분식점을 나왔다.

낮부터 뭉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우리의 기분은 엉망이 되어버렸지만, 이건 하나의 ‘사건’이었다. 차별과 무시에 관한 좋은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비단 이런 차별이 장애인에게만 국한될까? 장애인, 홈리스,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성소수자, 가난한 이웃들, 제3세계... 우리가 알게 모르게 말로써 차별을 하게 되는 경우가 꽤 많다.

 

외국인노동자...이주노동자
'불법' 체류자...미등록 이주노동자 

현대는 ‘이동의 시대’라고 말한다. 지구촌은 상품과 자본이 국경을 넘나든다. 값싼 노동력을 찾는 자본의 운동은 대규모의 이주노동자를 만들어낸다. 거리를 걸어 다니거나 지하철에서도 흔히 나와 다른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과 마주친다. 80년대 중반부터 유입되기 시작한 이주노동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근로조건이 열악한 3D 업종을 비롯한 중소, 영세 사업장은 그들이 없으면 가동이 어려울 정도다. 이주노동자들은 국내 노동인력 중 무시하지 못할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을 부를 때, ‘외국인 노동자’ ‘불법 체류자’라는 말을 쓴다. 이 두 용어는 차별과 무시의 뜻이 숨어있는 것 같아 탐탁지 않다.

우리는 별 생각 없이 ‘외국인 노동자’라는 말을 쓴다. ‘외국인’ 노동자라는 표현 자체가 이미 내국인과 외국인으로 나누어 국적으로 차별하는 뜻을 담고 있다. 그래서 국제사회에서는 ‘이주노동자’ 라는 말을 쓰기를 권한다. 요즘처럼 인구 이동과 이주가 흔한 세계화 시대에는 누구나 자신이 살던 고향을 떠나 다른 나라로 이주노동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적이나 인종에 따른 차별을 철폐하고 평등하게 살아보려는 노력을 많이 한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피부색과 가난한 나라 사람들에 대한 차별이 심하다. 하얀 피부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호의를 보이고, 검은 피부나 갈색피부를 가진 사람들은 깔보는 경향이 있다.

허가된 사업장을 벗어나거나, 허가된 체류기간을 넘긴 이주노동자를 ‘불법 체류자’라고 흔히들 말한다. 불법이라는 말은 마치 이들이 무슨 범죄를 저지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 까닭은 이주노동자들이 출입국상의 체류기간을 어긴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타국의 일터에서 하는 노동의 삶 자체가 불법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그들을 단지 노동자로 등록되지 않았다는 의미로 ‘미등록 이주노동자’라고 부른다.

 

▲ 사진출처=pixabay.com

 

‘깡패적 차별’과 ‘일상적 차별'

우리가 들어갔던 분식점의 종업원도 본시 그런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장애를 빙자하여 돈을 구걸하러 오는 사람들도 자주 접했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당하는 쪽은 황당함을 넘어 화가 난다. 무지는 죄라는 말도 있지만, 장애인에 대한 몰지각이 타인의 가슴에 생채기를 남겼다. 자기도 모르게 일상적 차별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어디선가 읽은 ‘깡패적 차별’과 ‘일상적 차별’을 명쾌하게 구분한 글이 생각났다.

‘깡패적 차별’은 폭력적이지만 명시적이어서 그 소재가 분명하다. 차별자 집단의 소수 내지 극소수에 의해 자행되는 것이 보통이다. 폭력 자체의 범죄성으로 인하여 차별자는 집단의 다른 성원들로부터 비난받고 윤리적으로 고립된다. 반면에, ‘일상적 차별’은 대개가 비폭력이지만, 은근하고 뿌리가 깊으며 더욱 끈질기다. 차별자 집단의 문화를 내면화한 성원 다수에 의해 자행된다. 차별자 집단이 당연시하는 문화적 가치의 표현이기 때문에 차별자 자신도 그것이 차별인지조차 의식하지 못하며 죄의식도 느끼지 못한다.

우리사회의 폐쇄적 민족주의와 인종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은 지금도 유효하다. 차별이 끈질기다는 면에서 보면, 일상적 차별이 깡패적 차별보다 더 무서울지도 모른다. 참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이다. 일상적 차별이란 말은 곰곰이 되새겨 성찰할 일이다.

결국 우리는 분식집을 나와 건너편 족발 집에 갔다. 냉채족발과 장애인에 대한 우리들의 비딱한 시선을 안주삼아 술을 마셨다. 정민이는 그날 좀 과음을 했다. 사실 근육 강직이 있는 장애인들은 술을 많이 마시는 경향이 있다. 알코올이 근육을 이완시켜 주기 때문이다.

균도아빠는 정민이 보고 ‘천 원짜리’라고 놀렸다. 뇌성마비와 달리 발달장애인은 외양이 정상으로 보이기 때문에 균도는 천 원도 받지 못했다고 말해 좌중을 웃겼다. 나는 정민이에게 ‘퇴계선생’이란 별명을 붙였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를 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루카 14, 13-14)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를 저는 이들, 눈먼 이들은 당시 죄인들로 여겨졌던 사람들이다. 성경은 이런 사람들을 초대하라고 한다. 우리는 아프고, 고통 받고, 권리가 침해될 소지가 가장 큰 사람들에게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하리라.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사랑의 본질은 끊임없이 자신을 베푸는 것이다.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서라도 서로 사랑하며 연대하자. 많은 인간들이 겪는 불행을 보고 막연한 동정심이나 피상적인 근심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공동선에 투신하겠다는 강력하고 항속적인 결의가 바로 연대성이므로. 장애 해방의 길이 참 멀다. 그러나 가야할 길이기에 소걸음으로라도 함께 가자.

<외과의사. ‘달동네 병원에는 바다가 있다’ ‘단팥빵-어느 외과의사의 하루’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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