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범의 영화 톺아보기> ‘불한당: 나쁜 남자들의 세계’

 

▲ 영화 ‘불한당: 나쁜 남자들의 세계’ 포스터

국내 영화 시장의 트렌드는 정말 빠르다. 그리고 편승하는 분위기가 무척 강하다. ‘리드오프’ 흥행작이 이끄는 현상이 나오면 최소한 이듬해 영화 시장까지는 이 같은 분위기가 이어진다. ‘감옥’이란 한정된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수컷들의 세력 다툼은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구성하든 마초 감성을 자극할 수밖에 없다. ‘남자’ 그리고 ‘힘’ 이 두 가지 콘셉트만 가지고도 흥행 시장에서 반은 먹고 들어가게 된다. 최근 감옥을 배경으로 한 남자들의 세계를 그린 영화가 쏟아지는 것도 무관하지는 않다. 물론 예전부터 이런 스타일의 이야기와 트렌드는 강하게 존재해 왔으니. 하지만 ‘불한당: 나쁜 남자들의 세계’는 ‘느와르’란 장르 속에서 조금은 다른 길을 택했다. 같으면서 다른 이 남자들의 세계는 마초들의 본능을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자극했다.

영화 속 스토리는 힘을 가진 자 재호(설경구)와 그 힘을 닮은 자 현수(임시완)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교도소에는 두 가지 인간이 존재한다. ‘건드려도 되는 자’ 그리고 ‘건드리면 안 되는 자’. 현수는 후자에 속해야 하는 인물이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눈치다. 그 눈치는 재호를 향하고 있다. 재호는 교도소 안 두 가지 유형 사람들의 기준을 정하는 절대 권력자다.

재호는 현수의 행동에 의도가 있음을 눈치 챈다. 정글에서 살아가는 절대자이지만 힘의 논리와 그 논리의 무자비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 자신의 목을 물어뜯을지 모를 또 다른 권력 도전자로 현수를 눈여겨봤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의심은 단 한 번으로 해소가 된다. 재호가 또 다른 권력 도전자의 기습을 받지만 이를 현수가 몸을 던져 막아 준 것이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친형제 이상의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재호의 비호 아래 현수는 점차 ‘건드리면 안 되는 자’에서 그 기준을 정하는 사람의 힘을 가져가게 된다. 힘을 원하는 듯한 현수의 모습은 재호의 눈에 자신을 닮은 듯 친근하고 정겹다.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관객들의 눈에는 비춰질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의 관계는 무언가 알 수 없는 ‘그것’이 있음을 말이다. 그 지점은 예상 밖의 포인트에서 도드라진다. 현수의 정체와 재호의 대처는 기존 영화 공식이 갖고 있던 전형성을 벗어난 지점을 보여준다. 남자들의 의리 이른바 ‘브로맨스’로 흘러가던 이야기는 이 지점에서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 하다가 전혀 예상도 못했던 ‘듣도 보도 못했던’ 관계를 말하게 된다.

출소 후 재호가 몸담은 조직에 들어가게 된 현수. 그런 현수를 친동생처럼 여기는 재호. 재호의 조직 두목(이경영)과 재호의 친구이자 두목의 조카(김희원)가 뒤얽히게 되는 복잡한 관계는 마초의 본능인 힘의 논리를 정확하게 꿰뚫으며 강렬한 힘을 발휘한다.

 

▲ 영화 ‘불한당: 나쁜 남자들의 세계’ 스틸 컷

 

사실 이 영화의 강력한 매력이자 반대로 가장 큰 약점으로 치부되는 ‘언더커버’(잠복근무) 콘셉트는 스포일러에 해당할 정도로 스토리 변환의 열쇠다. 이미 관객들은 홍콩 느와르의 걸작 ‘무간도’, 황정민-이정재 콤비의 수작 ‘신세계’를 통해 경험했다. 어디서 봤음직한 이런 이야기가 그럼에도 발췌되고 반복되는 것은 그만큼 이야기 속에서 여러 형태로 변화가 가능한 여백이 크기 때문이다.

연출을 맡은 변성현 감독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느와르 영화 특히 기존 ‘언더커버’ 스토리에 의문점을 두었다는 생각을 전한 바 있다. “만약 내가 저 상황이라면?”이란 질문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지금의 ‘불한당’으로 탄생됐다. 그만큼 이번 스토리는 전에 없는 새로운 이야기를 그려낸다.

기존 ‘언더커버’ 스토리는 정체를 감춘 채 활동하는 경찰이 자신의 신분이 드러날 것을 대비하는 과정 속의 강한 긴장감이 장치였다. 하지만 변 감독은 이 지점에서 한 발 더 나아갔다. 그 지점은 이 영화의 스포일러를 열쇠로 한 재호와 현수의 기괴한 로맨스 관계로 그려졌다.

그럼 여기서 발생되는 궁금증 하나. 재호가 왜 현수에게 그토록 동질감을 느끼게 된 걸까. 현수 역시 재호의 그런 관심에 흡수돼갈까. 두 사람에겐 서로가 알지 못했지만 결국에는 고백을 통해 드러난 ‘어머니’란 공통점이 존재한다.

교도소에서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접한 현수의 아픔에 재호가 공감하는 장면은 의외였다. 무자비한 절대 권력자 재호의 모습이 흔들리는 최초의 순간이다. 세상에 의지할 곳 없는 현수의 마음이 급격하게 흔들리게 되는 순간도 바로 이 지점이다. 재호의 흔들림도 이유는 분명하다. 어릴 적 고아원에서 자란 그에게 부모는 아픔이다. 가난의 고통 속에서 자신을 죽이려 했던 어머니에 대한 트라우마는 결국 “사람을 믿는 게 아니라 상황을 믿어야 한다”는 신념을 만들어버렸다.

결국 ‘불한당’은 공통의 트라우마를 지닌 두 남자가 만들어 낸 일종의 러브스토리와도 맞닿아 있다. 설경구와 임시완 두 사람은 영화 속 ‘브로맨스’에 대해 ‘사랑’이란 단어를 썼다. 퀴어 코드를 연상시킬 정도의 이들의 관계는 ‘불한당’이 좀처럼 본 적 없는 색다른 느와르의 탄생과도 맞닿아 있음을 전했다. 연출과 시나리오를 함께 한 변성현 감독조차 ‘로미오와 줄리엣’을 생각하며 이번 영화를 쓰고 만들었다고 할 정도였으니.

한때 충무로 최고의 흥행 블루칩이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충무로 ‘최악의 거품주’로 떨어졌던 설경구의 연기는 ‘확실한’ 내공을 발휘한다. 스토리 전체의 리듬을 조율하고 분위기를 이끌며 때로는 들숨과 날숨의 포인트까지 잡아낸다. ‘명품의 귀환’을 충무로 영화 시장에 알린 것이다.

아이돌 그룹 멤버 출신에서 ‘연기돌’로 거듭난 임시완은 미완의 기대주였지만 이번 영화를 통해 마초 근성 물씬 풍기는 남자의 면모를 과시했다. 일부 배역의 미스캐스팅 지적도 분명하지만 임시완 본인에게 이번 영화는 확실하게 변곡점이 됐다. 이 영화의 유일한 흠집이 연출을 맡은 변성현 감독의 ‘SNS막말 논란’ 단 하나란 것이 더욱 아쉬움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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