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광장시장을 가다

 

비 온다는 기상청의 예보를 무시하듯 하늘이 깨끗하다. 아니 뜨겁다. 따갑다. 너~무 덥다. 이제 여름의 문턱에 조금 가까워졌을 뿐인데…. 하루 중 제일 덥고 졸린 오후 2시. 점심을 먹고 무거운 눈꺼풀을 이겨내고자 일어났다. 한 5분 걸었는데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기상청의 비 소식은 내 몸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의미했는지도. 전철을 타고 종로 5가역에서 내렸다. 그렇다. 100년 전통, 대한민국 최초의 상설시장 ‘광장시장’에 왔다.

 

 

종로4가와 예지동 일대에 자리 잡은 ‘배오개(이현梨峴)시장’은 조선후기 서울의 3대 시장으로 손꼽혔다. 1905년 한성부에서 시장 개설 허가를 낼 당시 동대문시장으로 명칭을 정했으나 1960년대 이후 ‘광장시장’으로 불렸다.

원래, 이 시장은 광교(너른 다리)와 장교(긴 다리) 사이를 복개해 만들려고 했기 때문에 그 다리 이름의 첫머리를 따서 ‘너르고 긴’ 이라는 뜻의 ‘광장(廣長)’이라 이름 지었다. 하지만 당시 토목 기술로는 큰 비를 견디지 못해 그곳에 있지 못하고 배오개로 터를 다시 잡았다. 그리고 배오개로 이사 온 후에도 이전 이름의 한글 발음은 그대로 둔 채 ‘널리 모아 간직한다’는 뜻을 새로 담아 현재의 ‘광장(廣長)시장’이 되었다.

요즘 SNS나 텔레비전에선 광장시장이 아주 핫하다. 그 중 제일 이목이 쏠리는 건 당연 먹거리. 광장시장, 하면 많은 이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몇 가지 음식이 있다. 녹두빈대떡, 마약김밥, 육회, 대구탕, 순대 등등. 음식의 종류도 다양하지만 값 또한 저렴해 한 끼 가격으로 여러가지 음식을 즐길 수 있다.

 

 

광장시장 입구에 들어섰다. 더운 날이기도 했지만 여긴 한 여름 사우나에 들어온 기분이다. 옷 등을 파는 가게가 있는 곳은 시원하지만 먹자골목 쪽은 뜨겁다. 요리기구에서 나오는 열기 때문이다. 숨이 턱턱 막힐 정도다. 이런데서 어떻게 식사를 할까…라는 생각도 잠시 걸음을 멈춘다. 붉은 조명을 온몸으로 받고 있는 앙증맞은 마약김밥, 잡아달라고 손 내미는 듯한 붉은 닭발, 윤기 흐르는 탱글탱글한 족발, 기름기 좔좔 빈대떡…. 방금 점심을 먹고 나왔는데. 뱃속에 차마 소화되지 못한 음식들이 들어올 자리 있다며 비켜주는 느낌이다.

나대는 배를 움켜쥐고 이동한다. 평일 낮인데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도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 중 3분의 1은 외국인 관광객들. 투박한 시장 먹거리 코너 테이블에 건장한 외국 남자 두 명이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그들 앞엔 닭발이 발가락을 쭈욱 뻗고, 족발이 자태를 뽐내고, 순대가 핏빛을 띈 채 잔뜩 쌓여있다. 자신들이 시킨 음식이 어떠한 자태로 나올지 긴장으로 상기된 얼굴이다.

 

 

좀 더 들어가니 광장시장의 명물답게 정중앙에 빈대떡집이 몰려있다. 자글자글한 기름소리, 냄새. 그 열기 덕에 시장은 더욱 핫해진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뻘뻘 나는데 빈대떡을 쉴 새 없이 부치는 아주머니들, 정말 대단하다.

빈대떡집에서 왼쪽으로 꺾었다. 먹자골목이 이어졌다. 입구 쪽과 달리 이곳엔 나물들이 즐비하다. 비빔밥집이다. 사람들이 오밀조밀 앉아있다. 어깨에 어깨를 맞대고 끼어 앉아 한 그릇씩 열심히 비빈다. 생각보다 여자 손님들이 많다. 회사원으로 보이는 이들도 뒤늦은 점심식사를 한다. 혼자 오신 할아버지는 기름에 잘 부쳐진 전에 무더위를 식혀줄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을 걸치신다.

다시 중앙 쪽으로 발을 옮겼다. 빈대떡집을 기준으로 오른쪽 골목은 수입식품을 파는 곳이 많다. 과자나 영양보충제, 커피 등등. 아주머니들에게 인기가 많아 보인다. 가만히 서서 구경만 해도 눈이 즐거울 정도로 알록달록하다.

 

 

직진해서 더 깊숙이 들어간다. 야채, 채소, 젓갈류를 판다. 젓갈집에는 중국인 아주머니들이 모여 시식을 하고 있다. 인기가 많다. 외국 사람들도 이렇게 젓갈에 관심이 많다니 신기하다. 비릴 텐데….

우측으로 아주 좁은 골목길이 나온다. 이곳이 바로 육회골목이다. 텔레비전에서도 많이 나오고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광장시장의 명물 육회다. 평일 대낮이라 그런지 아직은 한산하다. 생간과 천엽 등은 셀프로 갖다 먹을 수 있게 해놓았다. 육회, 생간, 천엽…. 캬∼ 딱 소주 안주다. 자꾸만 입에 고이는 침을 꿀꺽 삼키고 발걸음을 옮긴다.

육회 골목을 돌아 나와 중앙길로 더 들어가니 먹거리는 줄고 원단, 의류 가게들이 눈에 띈다. ‘만남의 광장’에서부터는 거의가 원단, 의류 가게들이다. 수입 구제 상가도 있다.

한국전쟁이라는 아픈 역사를 광장시장도 피해갈 수 없었다. 전쟁 중 시장 일부가 파손되고, 이후 피난민들이 생필품과 군수품을 이곳에서 거래하며 시장이 다시 활성화됐다. 이것이 한국 수입 구제 시장의 시초가 된 것이다.

 

 

1983년 통행금지가 해제되고 동대문 시장은 새벽 도매시장은 물론, 대형 쇼핑몰 중심의 소매시장을 병행해 패션 상품을 중심으로 쇼핑과 관광의 거리로 각광받았다. 반면 광장시장은 한복, 침구 같은 혼수품이 주를 이루는 것으로 인식돼 젊은이들에게는 생소한 공간으로 여겨졌다. 수입 구제 상가는 독특한 구제 패션 아이템으로 마니아들의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대량 생산하는 기성품에서는 맛볼 수 없는 독특한 디자인과 느낌을 가진, 세상에서 딱 하나밖에 없는 빈티지 제품이다.

구제 상가에서 지인이 일을 하고 있다. 상가 매장에선 대부분 이십대 초중반 젊은이들이 일을 하고 있다. 그만큼 젊은 층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는 얘기다. 브랜드 옷을 구제라는 이름으로 만원 꼴에 파니 마니아층이 생길 수밖에. 상가 안에는 정말 옷 잘 입는 ‘패피’(패션피플)들이 넘쳐났다.

 

 

지인이 맛집을 알려준다며 안내한 곳은 최근 한참 뜨고 있는 누드김밥 집이다. 김밥을 제대로 말 줄 몰라 마음대로 말면서 더욱 유명해진 집이다. ‘백종원의 3대천왕’에도 나왔다. 누드김밥 한 줄에 고작 1500원이다. 거기에 참치를 올려주고 잡채까지 곁들여 나온다. 우리가 갔을 땐 잡채가 떨어져 김밥으로 만족해야했다. 미안하다며 이모가 꼬마김밥을 하나씩 입에 넣어주신다. 캬~ 시장 인심. 물 한잔으로 땀을 식히고 있으니 금세 김밥이 나왔다. 정말 투박하고 맛깔나게 생겼다. 도대체 이게 얼마나 대단하기에 텔레비전에서도, SNS에서도 그렇게 화제를 모을까. 값도 값이지만 한 개 먹는 순간 입에 가득 차는 재료들. 한 개만 먹어도 한 접시 요리를 먹은 듯 입안 가득히 만족감이 몰려온다. 지인 역시 점심을 먹고 왔다면서도 한 줄을 금세 뚝딱 해치운다. 다 먹고 두 줄을 더 포장해달라고 했다.

빵빵해진 배를 어루만지며 시장에서 나왔다. 먹자골목에서 흘렸던 땀은 김밥을 먹으면서 사그라 들었다. 그래도 날씨는 뜨겁다. 광장시장은 이 더위보다 더 뜨거운 상인들의 열정으로 가득하다. 그 열기 속에도 손님이 즐비한 것을 보면 뭐 더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100년 전통의 광장시장이 지금보다 더 발전되고, 다양한 음식과 제품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왕래하는 활발한 명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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