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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

<연재>강진수의 ‘서울, 김수영을 읽다'- 7회 강진수 기자lrkdwlstn96@naver.coml승인2017.06.15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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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사진=pixabay.com

 

(엽서 하나)

우리는 수많은 시들 속에서 김수영을 보았다. 무엇을 보았는가. 그것은 사랑인지 아닌지 모를 차가운 감성, 위악적이고 낯설기만 한 감성. 김수영의 스케치는 온통 회색빛인 것 마냥, 온통 잿빛의 석탄으로 그려진 것 마냥 무던하고 자조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봐 온 시들은 김수영의 겉껍데기에 불과한 것이 틀림없다. 김수영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사랑을 자기 방식으로 열변했는지에 대해 엽서를 띄우고자 한다.

 

 

▲ 시인 김수영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 도시의 끝에
사그러져 가는 라디오의 재갈거리는 소리가
사랑처럼 들리고 그 소리가 지워지는
강이 흐르고 그 강 건너에 사랑하는
암흑이 있고 삼월을 바라보는 마른 나무들이
사랑의 봉오리를 준비하고 그 봉오리의
속삭임이 안개처럼 이는 저쪽에 쪽빛
산이

사랑의 기차가 지나갈 대마다 우리들의
슬픔처럼 자라나고 도야지우리의 밥찌끼
같은 서울의 등불을 무시한다
이제 가시밭, 넝쿨장미의 기나긴 가시가지
까지도 사랑이다

왜 이렇게 벅차게 사랑의 숲은 밀려닥치느냐
사랑의 음식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 때까지

난로 위에 끓어오르는 주전자의 물이 아슬
아슬하게 넘지 않는 것처럼 사랑의 절도는
열렬하다
간단도 사랑
이 방에서 저 방으로 할머니가 계신 방에서
심부름하는 놈이 있는 방까지 죽음 같은
암흑 속을 고양이의 반짝거리는 푸른 눈망울처럼
사랑이 이어져가는 밤을 안다
그리고 이 사랑을 만드는 기술을 안다
눈을 떴다 감는 기술 - 불란서 혁명의 시술
최근 우리들이 4.19에서 배운 기술
그러나 이제 우리들은 소리 내어 외치지 않는다

복사씨와 살구씨와 곶감씨의 아름다운 단단함이여
고요함과 사랑이 이루어놓은 폭풍의 간악한
신념이여
봄베이도 뉴욕도 서울도 마찬가지다
신념보다도 더 큰
내가 묻혀 사는 사랑의 위대한 도시에 비하면
너는 개미이냐

아들아 너에게 광신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랑을 알 때까지 자라라
인류의 종언의 날에
너의 술을 다 마시고 난 날에
미대륙에서 석유가 고갈되는 날에
그렇게 먼 날까지 가기 전에 너의 가슴에
새겨둘 말을 너는 도시의 피로에서
배울 거다
이 단단한 고요함을 배울 거다
복사씨가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거다!
복사씨와 살구씨가
한번은 이렇게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
그리고 그것은 아버지 같은 잘못된 시간의
그릇된 명상이 아닐 거다

- ‘사랑의 변주곡’, 김수영.

 

 

단단한 고요함에서 폭발하는 씨앗의 사랑을 보라. 그것이 가져다주는 비애와 아련함을 보라. 그리고 사랑하는 자세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뇌하는 시인의 모습을 지켜보라. 얼마나 많은 방식의 사랑에 대해 김수영은 논하고 고민하고 있는가. 그리고 사랑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피어나는 욕망 한 가운데에서 그 뜨거운 사랑을 찾는 시인의 모습이 얼마나 일관되는가. 사실 가장 솔직한 모습으로 사랑하는 시인은 그 차갑고 냉소적인 김수영의 얼굴일지도 모른다.

 

(엽서 둘)

▲ 자료사진=pixabay.com

비가 오고 있다
여보
움직이는 비애를 알고 있느냐

명령하고 결의하고
<평범하게 되려는 일> 가운데에
해초처럼 움직이는
바람에 나부껴서 밤을 모르고
언제나 새벽만을 향하고 있는
투명한 움직임의 비애를 알고 있느냐
여보
움직이는 비애를 알고 있느냐

순간이 순간을 죽이는 것이 현대
현대가 현대를 죽이는 <종교>
현대의 종교는 <출발>에서 죽는 영예(榮譽)
그 누구의 시처럼

그러나 여보
    비 오는 날의 마음의 그림자를
    사랑하라
    너의 벽에 비치는 너의 머리를
    사랑하라

비가 오고 있다
움직이는 비애여

결의하는 비애
변혁하는 비애……
현대의 자살
그러나 오늘은 비가 너 대신 움직이고 있다
무수한 너의 <종교>를 보라

계사(鷄舍) 위에 울리는 곡괭이 소리
동물의 교향곡
잠을 자면서 머리를 식히는 사색가
―모든 곳에 너무나 많은 움직임이 있다

여보
비는 움직임을 제(制)하는 결의
움직이는 휴식
여보
그래도 무엇인가가 보이지 않느냐
그래서 비가 오고 있는데!

- ‘비’, 김수영.

 

 

비가 오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느냐. 사랑하는 것이, 그 움직이는 휴식, 움직이는 비애를 알고 있느냐. 김수영이 던지는 물음들은 기하학적이어서 그 모양새가 있다. 어떤 물음은 날카롭게 각이 져 있고 어떤 물음은 둥글고 무디다. 비가 와서, 사랑을 해서, 우리의 물음은 때론 무디다가도 날카롭다.

비가 오는 것도, 사랑을 하는 것도,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더욱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부지런하게. 우리의 물음도 더 다양한 모양새를 다듬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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