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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색깔, 그 맛, 그 향기…그가 아내를 유혹한다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자연 그 자체가 되고자 하는 남자 박시도 이야기-네번째 김수복 기자lmaster@weeklyseoul.netl승인2017.06.16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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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차 전문가 박시도씨가 있는 곳에는 항상 사람이 있다. 그는 사람을 많이 불러들인다. 산중 독거를 결심하고 산속으로 들어가긴 했지만 도사 같은 게 되고자 함이 아니었다. 사람다운 사람의 삶을 살아보고자 함일 뿐이었다. 어쩔 것인가. 도시에서의 삶은 지나치게 빡빡하고 돈도 많이 요구하고 말도 많아서 신물이 났다. 그래서 산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사람은 그립다. 이 사람도 그립고 저 사람도 그립고, 아는 사람도 그립고 모르는 사람도 그립다.

유행가 가사에 외로울 땐 전화를 하라고 했듯이, 그는 누군가 사람이 그리우면 전화를 건다. 전화기에 대고 느닷없이 야생 동물 소리를 내기도 하고, 웃는 소리를 내기도 하고 우는 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러면 며칠 뒤에 사람이 온다. 아는 사람도 오고 모르는 사람도 온다. 어떤 때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 혼자서 혹은 두세 명이 주소와 약도만 들고 찾아오기도 한다. 그는 찾아온 사람이 누구건 일단 차 대접을 하고, 몇 마디 얘기를 나누고, 그리고 지시를 한다.

 

▲ 차에 미친 부부의 한때
▲ 첫 차 시음하던 날

 

“차를 만드세요. 직접 따서 직접 만들어보세요.”

그는 웃는 얼굴로 가볍게 한 마디를 하지만, 그러나 이 한 마디는 가볍지가 않다. 사양할 수 없는, 거부할 수 없는,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그 무슨 거대한 족쇄 같은 무게감이 그 가벼운 한 마디 속에 들어있는 것이어서, 사람들은 마치 장군의 지시를 받은 병사들처럼 차 밭으로 들어가서 찻잎을 따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실제로 손수 차를 만들어 가지고 가는 것은 아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길면 두세 시간 정도, 짧으면 한 시간이나 삼십여 분만에 “아이고 나는 못 하겠네”하고 포기해 버린다.

차 만들기는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사람이 하는 일 치고 사람이 못할 일이 무엇 있겠는가 하는 정도의 생각, 마음가짐만 있으면 된다. 이를테면 수학을 전혀 몰랐던 사람이 우연한 계기로 수학을 접하고 호기심에 끌려 수학의 원리를 터득해서 마침내 수학박사가 되기도 하듯이, 차 만들기를 전혀 몰랐던 사람도 강렬한 호기심만 있으면 누구나 언제라도 차 만들기의 ‘달인’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육체의 고단함은 각오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차 만들기를 아주 높은 차원의 우아함 내지 고상함으로 지레짐작하고 한 걸음쯤 떨어져서 마치 꿈이라도 꾸는 표정을 지어보이기도 한다. 나도 한때는 그랬다. 차라면 그저 국화차 만드는 것밖에 몰랐던 시절에, 선운사 입구에서 식당을 하는 선배가 전통 수제차 만드는 사람 박시도씨가 사람을 구한다고 소개해 줬을 때, 그때 그 시절에 나는 아 그것 참 근사하겠다, 하는 오직 그 한 가지 호기심만으로 그 일을 하겠다고 나섰더랬다.

물 위에 떠 있는 백조가 우아하다는 생각만 할 뿐 그 우아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백조는 엄청난 노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미처 해보지 못하는 뭐 그런 형국이었다고나 할까. 차 만들기는 근사한 게 아니라 노동이라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았다. 노동 중에서도 강도가 아주 높은 상노동이었다. 땀을 비 오듯이 쏟아야 하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이고, 온 몸의 근육은 덜덜 떨리고, 갈비뼈가 욱신거리는가 하면, 손목이며 팔목 등의 관절은 금방 탈골이라도 돼버릴 것처럼 덜렁거린다는 느낌인데 그 와중에서도 맹독성 뱀에 물릴 수 있다는 각오까지도 하고 있어야만 한다.

 

▲ 선운골의 차 밭
▲ 차 밭 관리는 강도높은 노동이다.

 

내가 워낙 초보자라서 그런가 했는데 그것만도 아니었다. 경력이 삼십여 년에 가까운 박시도씨 본인도 툭하면 어디가 아프다, 쑤신다, 결린다, 등등 비명 소리를 절로 쏟아낸다. 보성이나 하동처럼 정비가 잘 된 차 밭에서의 일은 그렇게까지 사람을 힘들게 하지 않겠지만, 선운사 일대의 자갈투성이 비탈에서 십여 년 가까이 방치돼 있었던 차 밭에서의 작업은 넘어지고 자빠지고 엉덩방아를 찧고 등등 잠시 잠깐도 편안할 시간이 없다.

일이 그 지경이면 수입이라도 남달리 출중한 데가 있어야 할 텐도 그것도 아니다. 수입은 형편이 없어도 한참 없으면서 일만 힘들면 내가 어쩌다 이 짓을 시작했나, 하는 한탄이라도 부지불식간에 털어놓기도 하는 게 사람이련만, 박시도씨는 아파도 좋고 쑤셔도 좋고 결려도 좋고 다리가 부러져도 좋고 그저 좋기만 하다는 표정이다. 문자 그대로 골병이 들어서 어디 하나 성한 데가 없는 몸뚱이를 끌고 다니면서도 그는 이 세상에 차가 있는 한 슬퍼할 이유가 없고 우울해야 할 이유 또한 없다는 식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흔해빠진 표현을 빌리자면 차에 미쳐버린, 차를 위해 태어나서 차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인 셈이다.

그런 그가 순창의 야생차를 강경 마을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맡기고 고창의 선운산 골짜기로 들어왔다. 한때는 번성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작업을 포기하고 방치된 지도 한참인 선운골 차 밭을 선운사 측에서 박시도씨에게 관리를 부탁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위탁 관리인 셈이다. 그렇다고 관리비를 따로 지불하는 것도 아니다. 엉망진창이 돼서 보기에도 안 좋은 차 밭을 예쁘게 다듬어주되 거기서 나오는 차 잎을 죄다 임의로 사용한다는 조건일 뿐이다.

어쨌든 그가 선운사의 차 밭 관리를 맡게 되면서 고창에 몇 개인가의 일자리가 새로 생겼다. 순수한 야생차는 따로 관리할 필요도 없이 때가 되어 잎이나 따면 되지만, 본격적으로 심고 다듬어 왔던 차 밭은 잡목이 없어서 멋대로 마구 자라기 때문에 전지도 해줘야 하고 잡풀도 제거해야 한다. 무엇보다 찻잎을 딸 때 필요한 아주머니들의 숫자가 장난이 아니다. 순창의 야생차는 많아야 네다섯 명이요, 보통은 두세 명이서도 충분히 해낼 수 있지만 고창의 차 밭은 보통이 십여 명이요, 많을 때는 이십여 명에 이른다. 이 많은 사람들의 인건비를 어떻게 할 것인가.

 

▲ 매년 임대하는 몽골텐트

 

차를 팔아서 인건비를 충당하면 된다고, 뚫린 입이라고 말은 쉽게 그렇게 하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일 뿐이다. 인구 육만여 명밖에 안 되는 고창 읍내에만도 커피 전문점이 이십여 개에 이를 정도로 온 세상을 장악하고 있는 커피의 장벽을 뚫을 만한 힘이 전통 수제차에는 없다. 그것을 빤히 알면서도 그는 선운사 측의 제안을 덜컥 받아들이고 말았다. 그런 무모한 결정을 가능하게 한 것은 당연하게도 차에 대한 극도의 관심과 애정이지만, 무조건 믿고 이해하고 밀어주는 아내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다면 그 또한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얘기이다.

대학 때 암벽등반을 나섰다가 우연히 차에 미쳐 있는 남자를 만나 결혼에까지 이른 박시도씨의 아내 정정숙씨는 이제 남편 못지않은 차 전문가가 되었다. 그녀는 대학원에서 미생물학 등 차와 관련된 공부를 아예 본격적으로 해버렸다. 그리고 자신의 그런 공부를 여기저기 다니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거기서 받는 소액의 강의료를 모아 인건비를 해결한다. 그러니까 박시도씨는 아내의 등골을 빼서 먹고산다기보다 자신의 관심사에 필요한 비용을 해결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 시도씨가 차는 진짜로 잘 만드는데 말이에요.”

정정숙씨는 가끔 그런 식으로 푸념을 한다. 아니 그것은 푸념이라기보다 신세한탄이라 함이 옳은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남편이 제다법은 훌륭한데 적당한 시설이 없어서 고생한다. 마누라가 그런 시설 하나도 지어주지를 못하니 서글프다는 뭐 그런 얘기를 그녀는 그런 식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 덖음차 만들기 중

 

차 만들기란 뭐랄까, 단순하게 말하자면 시간과의 협상이다. 시간과의 끝없는 실랑이 내지는 탐색전이라 해도 말은 될 것이다. 어쨌든 날씨의 지배를 굉장히 많이 받는다. 제때 잎을 따야 하고, 제때 시들려야 하고, 제때 덖거나 비비기를 해서 제때 말려야만 한다. 말리는 문제도 간단하지가 않다. 어떤 과정에서는 즉시 건조시켜야 하고, 다른 어떤 과정에서는 서서히 말리다가 말리기를 중단하고 발효 상태를 봐가면서 다시 말려야 한다.

완전한 자연 상태에서는 이런 과정들을 뜻대로 해낼 수가 없다. 그래서 일정한 시설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무슨 엄청난 설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공기의 유입과 차단을 필요에 따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삼중 비닐하우스 하나면 족하다. 돈으로 치자면 공기업 임원들이 받아가는 연봉 중에 삼분의 일, 아니 오분의 일 정도면 아마 충분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런데 삼십여 년이 다 되도록 그만한 시설하우스 하나 없이 매년 대형 천막이나 임대해서 두 달쯤 쓰고 돌려주고 다시 때가 되면 또 빌려 쓰는 형국이니, 아내의 입장에서는 남편의 그런 꼴이 측은하고, 안타깝고, 서글프다 못해 끝내는 “마누라씩이나 돼서 그런 문제 하나도 해결을 못해주니 이게 뭐냐”하는 그런 자학적인 심사가 되곤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두 말이 필요 없는 행복이다. 행복 중에서도 엄청난 행복이라고 말해야 한다. 아내는 남편이 좋아하는 일을 마음으로나마 열심히 응원을 하고, 남편은 아내가 좋아하는 차를 매년 듬뿍 만들어서 공급을 해주니 이보다 더한 행복이 무엇이랴. 어쨌든 돈 문제는 복잡하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을 별 의미도 없이 위축시켜놓곤 한다.

“우리도 예전에, 형편이 지금보다 조금 나을 때, 그때는 매년 다신제를 모셨어요. 지금이야 이렇게. 조촐하게 시음이나 하고 말지만….”

돈과는 거의 무관하게 살아가는 것 같지만, 박시도씨도 가끔은 그렇게 풀기 없는 소리로 중얼거리듯이 말끝을 흐리기도 한다. 금년도 첫 차를 만들어서 시음하던 날이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시산제를 하고, 궁도를 하는 사람들이 과녁제를 지내듯이, 차가 좋아서 차에 미친 사람들도 매년 뭔가 의례가 있을 것 같다고 했더니 그는 특유의 눈웃음을 살살 치면서 부끄럽다는 듯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더니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 첫 차를 만들어놓고 자랑하기 위해

 

“일단 마누라에게 자랑부터 해야 해요.”

첫 차를 만들어서 첫 번째 우려냈으니 그 모양을 아내에게 보여주고 싶단다. 아니 그래야만 한단다. 그래야 아내가 집안일을 후딱 정리하고 내려온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아내를 유혹해 내고자 하는 것이다. 우려낸 차의 색깔과, 그 맛과, 그 향기가 오롯이 전해지는 사진을 찍어서 아내에게 보내면, 그러면 마음이 심하게 흔들린 아내는 고등학생 아들을 팔십대도 넘어 구십대에 들어가는 모친에게 맡기고 남편 곁으로 달려오게 돼 있다는 것이다.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사진을 멋지게 찍어야 한다고 요리조리 각도를 잡고 있는 박시도씨의 그 모습이 마치 청혼을 위해 몸을 가꾸는 남자 같다. 매년 매해 그 시기만 되면 아내를 유혹하고자 하는 남자, 그리고 매년 매해 그 시기만 되면 남편에게 유혹당해서 살림이고 뭐고 다 뒷전으로 미루고 달려오는 여자, 그들의 그런 일상이 한두 해도 아니고 이십여 년이라고 하니, 나로서는 그저 감탄이나 조용히 해볼 따름이다.

참고로 돈이 없어서 다신제는 생각도 못 한다는 얘기의 뜻을 그때는 모르면서도 아는 것처럼 고개나 끄덕거리고 말았지만, 며칠이나 지난 뒤에서야 겨우 이해할 수 있었다. 제라는 것은 단순히 그냥 절이나 몇 번 하고 마는 게 아니라 일종의 축제이고, 축제란 손님들을 초대해서 자신의 무엇인가를 널리 알리고자 함인 까닭에 그 비용이 만만치 않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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