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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복판 아주 오래된 시장엔 먹깨비들이 있다

<탐방> 서울중앙시장과 신당창작아케이드 정다은 기자lpanda157@naver.coml승인2017.06.19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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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땅에 단비가 내린다. 농민들의 애타는 마음을 아는지 하루만 온다던 비가 이틀째 온다. 때 이르게 기승을 부리던 더위도 주춤해졌다. 반팔을 입고 다니던 사람들도 얇은 겉옷을 하나씩 걸쳤다. 세찬 바람이 우산을 덩실덩실 춤추게 한다.

촉촉하게 젖은 땅을 밟으며 걸어본다. 이어폰에선 tamia의 ‘officially missing you’가 흘러나온다. 비 오는 날과 딱 어울리는 명불허전 노래다.

 

 

얼마 안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서울에 중심에 있는 가장 큰 시장 ‘서울중앙시장’이다.

시장이 있는 황학동 일대는 조선시대 사대문 중 동대문의 바깥에 위치했다. 당시 종로를 중심으로 하는 한양의 시민들이 소비하는 땔감이나 채소 등을 가까운 나루인 뚝섬과 주변의 왕십리에서 집산, 공급하는 형태로 시장이 발달했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신당동공설시장이었다, 1945년 해방으로 일본이 물러나자 1946년 성동시장이 들어섰다. 당시 성동시장은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보다 더 점포가 많았다. 서울에서 가장 규모가 컸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곡물시장으로 번영했다. 한때 서울 시민들이 소비하는 양곡의 80%를 거래할 정도였다.

 

 

한때는 나전칠기가 시장을 대표하는 상품이 되기도 했다. 정부의 쌀값 안정화 정책에 따른 정부미 방출로 양곡시장이 약화되면서다. 1980년대 후반 마장로가 개통됐다. 그 주변으로 주방기구와 가구를 파는 점포가 생겨났다. 때마침 외식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점포수가 급속히 늘어났다. 중앙시장은 양곡시장에서 주방기구·가구 시장으로 탈바꿈했다. 오늘날 서울중앙시장은 닭과 돼지의 부산물을 중심으로 여러 물품들을 취급하고 있다. 2009년에는 지하에 예술가들의 공간인 신당창작아케이드가 들어서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가까운 역은 신당역이다. 신설동에서 출발했다. 슬슬 걸어서 15분도 안 걸린다. 신당역쪽 시장 입구의 반대편 황학동 벼룩시장 쪽 입구로 들어갔다. 처음부터 순서대로 봐야 시장을 완벽히 본 느낌이랄까.

 

 

비가 와서 그런지 평일 오후 3시, 왕래하는 손님이 많이 없다. 여유롭게 앉아있는 상인들. 입구 쪽은 먹거리 점포가 많아 드문드문 손님이 보인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중앙에 떡하니 놓인 옥수수, 호떡, 꽈배기들이 발길을 잡는다. 특히나 거의 얼굴크기만한 호떡이 기름에 자글자글…. “이모 호떡 하나만 주세요~!”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뜨거운 호떡을 호호 불어가며 먹는다. 겉은 바삭, 속은 달콤한 게 기분이 좋아진다. 그 큰 호떡을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시장 골목 양쪽으로는 칼국수집과 국밥집이 많다. 원래는 시장상인들을 위한 가게였으나 근처 주민들이나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이나 출퇴근길에 들러 끼니를 해결하고 가기도 한다. 저렴한 가격이니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밥집 외에도 치킨, 장어, 회를 파는 가게들이 쭉 늘어서있다. 일단 가격에 놀란다. 산낙지 5마리에 1만원, 왕족발도 1만원, 미니족발은 3000원. 포장도 가능하고 먹고 갈 수 있는 곳도 많다. 횟집 앞에 설치돼있는 수조에는 해삼, 멍게, 개불 등이 싱싱하다.

 

 

시장은 코너별로 나눠져 있다. 보리밥, 의류, 미곡부, 닭부산물, 해산물 등. 닭부산물, 해산물 코너 빼고는 거의 문을 닫은 듯하다. 돼지, 닭 부산물이 이곳의 특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마장동 우시장이 가까운 것도 이유일 게다. 중앙시장 뒤편에는 그 유명한 왕십리 곱창집들이 즐비하다.

중앙시장은 다른 시장들과 달리 굉장히 큰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점포가 많지 않아 통행로가 굉장히 여유롭다. 지붕도 있어서 비가 내려도 장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현대식으로 깔끔하게 잘 꾸며져 있다. 여타 재래시장의 북적북적하고 정신없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종종 학생들끼리 다니는 게 눈에 뜨인다. 허기진 배를 채우러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가격이 저렴한 편이니 돈 없는 학생들도 자주 들르는 모양이다.

시장을 둘러보고 지하상가로 내려간다. 신당지하상가(아케이드)다. 신당지하상가는 서울시에서 도심의 교통 체증 해소와 보행자의 편의를 위해 1971년 9월 중앙시장 지하에 왕십리 중앙시장 지하상가라는 이름으로 조성한 것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99개의 점포가 개설되어 한복과 이불, 수입식료품, 양장점 등 주로 포목점 위주로 크게 번영했다.

그러나 좋지 않은 변화가 찾아왔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지하철 2호선의 개통으로 사람들의 동선에 변화가 생겼다. 신당역과 연결되지 않은 지하상가는 외면당했고, 여기에 한복 소비의 급감, 대형마트의 등장으로 소비 패턴이 변하면서 쇠퇴하기 시작해 2000년대까지 계속 침체가 이어졌다.

서울시가 임대료를 인하하고 위탁 경영자를 찾았지만 나타나지 않자 2009년에는 지하상가를 리모델링해서 매장 면적을 넓히고 대형화해서 상권에 변화를 주려고 했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2009년에 신당지하상가는 52개의 점포가 주인을 잃고 비어 있었다.

이에 서울시는 예술공장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빈 점포를 손질해서 공동 작업용 가마와 같은 설비를 제공하고 도자, 섬유, 금속, 유리, 종이, 칠, 판화, 사진, 영상 등을 다루는 예술가들을 끌어들여 서로 교류하며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형시켰다. 이를 통해 창작 공방이 40곳, 전시실 1곳, 공동 작업장 1곳이 생겨났다. 이름도 신당창작아케이드로 바꾸었다.

 

 

신당창작아케이드는 기존의 신당지하상가의 점포들과 함께 ‘시장, 예술을 만나다’와 같은 전시나 ‘공공미술 프로젝트-시장 골목 살리기’ 등을 진행하며 새로운 공간으로 변형시키고, 시민 체험 프로그램 등을 만들어 주민들과 함께 예술과 시장을 잇는 기획을 하고 있다. 또한 중앙시장, 주방기구·가구 거리와 연계해서 문화 관광 코스로 활용하고 있다.

지하로 내려가니 마치 대학교 동아리방에 들어온 느낌이다. 작은 공방들이 쭈욱 이어져있다. 통로에서 가게 안을 볼 수 있도록 통유리로 되어있는데 가려놓은 곳이 많았다. 아기자기한 작품들이 살짝살짝 보였다. 깔끔하고 조용해 마치 전시회장을 돌아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북적북적한 바로 위 시장과 달리 조용했다. 조금씩 보이는 작품들을 구경하면서 걷기에 다.

데이트 코스로도 좋을 것 같다. 보리밥 골목이나 곱창 골목에서 식사를 하고 지하상가를 구경한 뒤 살짝 꺼진 배를 시장에서 요깃거리로 채우고, 중앙시장 주변에 크게 형성돼있는 주방․가구 거리를 거닐며 구경하는 것이다.

 

 

2015년부터 문화관광형 시장육성사업 대상으로 선정되면서 인근에 관광 코스와 연계해 볼거리, 먹거리를 체험할 수 있는 관광형 시장상품을 선보였다. 그 중에 하나가 ‘먹깨비투어’다. 먹깨비투어는 시작지점인 보리밥 골목부터 황학동 벼룩시장을 거쳐 신당창작아케이드, 서울중앙시장까지 전부 거치는 코스다. 약 1시간 30분정도 진행된다. 좀 더 구석구석 보고 싶을 때는 이 먹깨비투어를 신청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과거 동대문시장, 남대문시장과 더불어 서울 3대 전통시장이었다는 중앙시장.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먹깨비투어처럼 이런 시장형 관광상품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전통시장이 다시 과거의 활기를 되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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