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연의 아주머니

세상에서 내가 하는 음식이 가장 맛있다고 말하는 남편이 밉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건 소문난 맛집에서 파는 스테이크나 부대찌개, 해물찜이나 연어초밥이다. 대체 왜 류승연표 요리에 그토록 열광을 하는지…. 나는 불만이 한 가득이다.

아내의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남편이 얼마나 고마운 건데 그러냐며 나무라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반찬 투정하는 남편보단 맛있게 먹어주는 남편이 고맙긴 하다. 하지만 맛있게 먹어주는 그 밑바탕에 ‘집밥’을 고집하는 남편이 있다는 게 문제다. 집밥, 집밥, 집밥…. 가정주부로 살면서 꼴도 보기 싫은 게 집밥이 되어버렸다.

살림을 시작한 지 11년. 사실상 아이들을 출산하기 전까진 소꿉장난이나 다름없었고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가정주부의 길에 들어섰다고 하면 이제 살림하는 주부가 된 지도 어언 8년을 꽉 채워간다.

 

▲ 일러스트=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

 

8년이면 강산도 거~의 변할만한 시간이고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됐어도 이미 되었을만한 시간인데 이놈의 살림은 해도 해도 큰 발전이 없고 흥미도 일지 않는다. 한 발 더 나아가 나는 살림하는 시간이 너무나 아깝다. 매일을 살기 위해서 꼭 해야만 하는 일이지만 살림처럼 쓸데없는 일도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집안을 정리하고 청소기를 돌린다. 설거지를 하고 요리도 한다.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널고 갠다. 여기에 소요되는 시간이 대체 얼마야. 노동력은 또 어떻고! 문제는 긴 시간과 고된 노동력이 허공에 날아가기라도 한 것처럼 매일매일 같은 일을 또 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게 완벽히 정리된 집을 구경할 수 있는 건 오전뿐이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 있는. 밤에 잠들 때가 되면 집안은 다시 폭탄 맞은 꼴로 변한다. 반복되는 허무한 노동에 지친 나는 살림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나고만 싶다. 살림 그 자체에서 행복을 느끼는 여자들도 있겠지만 스스로가 그렇지 않을 바엔 살림에 들이는 시간과 노동력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낫다.

가장 좋은 방법은 살림을 대신 해주는 ‘이모님’을 구하는 것이지만 그럴만한 경제적 여력이 없으므로 패스. 다음으로는 남편과 자식을 적극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나는 이 방법을 사용한다. 내가 집안 정리를 하는 대신 청소기는 남편이 돌리도록 유도한다. 집안 정리를 먼저 한 뒤 곧바로 청소기를 돌리지 않고 설거지나 빨래 등 다른 일에 착수한다. 그러면 소파에서 쉬고 있던 남편이 눈치를 보다가 슬슬 일어나 청소기 코드를 꼽는다. 큭큭. 내가 노린 바다. 물론 이 때도 노하우가 있다. 집안 정리를 마친 뒤 즐거운 모습으로 설거지를 하러 가면 안 된다. 화를 내진 않지만 왠지 모를 차가운 냉기를 풀풀 풍겨야 하고, 이따금씩 몸이 고되다는 걸 알려주는 한숨도 푹푹 내쉬어야 한다. 그래야 소파와 한 몸이 되어있던 남편이 꿈틀거리며 일어나 청소기를 잡는다.

딸도 할 일이 있다. 이제 2학년이 되었으니 자기 책상과 침대는 스스로 정리해야 한다. 특히 읽고 나서 여기저기 널려놓은 책은 반드시 자기 손으로 제자리에 꼽아놔야 한다. 그럼 아들은 뭐하냐고? 더 어지르지만 않아도 고맙다. 내가 청소하고 있는 동안 물놀이를 해서 옷을 적신다든지 집안 곳곳에 응가를 해 놓는다든지 등의 사고만 안 쳐도 감사하다.

다음 타자인 설거지. 나는 우리 집에 있는 가전제품 중 가장 사랑하는 1순위가 식기세척기다. 한 친구는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마음이 진정된다고 하던데 나는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왠지 모를 화가 막 치민다.

사실 이유는 알고 있다. 대학교에 입학하자 엄마는 이제 나도 집안일을 도우라며 설거지를 맡겼다. 여동생이 대학생이 될 때까지 5년 간 집안 설거지는 내 몫이었는데 그 때 받은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했다. 나는 매우 활기차고 열정적인 대학생이어서 언제나 통금시간인 자정에 맞춰 집에 들어왔는데 내게 책임감을 가르치려던 엄마는 일절 봐주는 법이 없었다. 몸이 녹초가 되거나 술에 취해 헤롱거려도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를 해야만 잠을 잘 수 있었다. 너무 힘들어 그냥 잠들어 버린 날은 새벽 일찍 엄마의 고함 소리에 잠을 깨야 했다. 빨리 일어나서 설거지하라는 엄마의 외침. 그러다보니 이 세상에서 가장 싫은 일이 설거지가 되어버렸다. 단 5년간 설거지를 했을 뿐이었는데 마흔을 넘은 지금까지도 설거지는 정말 싫다.

애들 어릴 때 설거지 문제를 놓고 남편과 매일 싸우다가 구입하게 된 식기세척기. 식기세척기는 내 구세주였다. 식기를 물로 헹궈 칸칸이 꽂아놓고 전용세제를 넣기만 하면 지가 알아서 윙윙대며 설거지를 했다. 이런 세상도 있구나. 나는 식기세척기 찬양론자가 되어서 주변의 모든 가정주부들에게 식기세척기 사용을 권했다.

하지만 우리집에 있는 건 6인용이라 냄비나 프라이팬, 큰 접시 등은 손 설거지를 해야 한다. 이다음에 주방이 넓은 집으로 이사 가면 그 때는 12인용 식기세척기를 사리라 다짐한다. 커다란 식기세척기 안에 냄비도 프라이팬도 다 집어넣고 돌려버릴 테다.

다음으로 빨래. 빨래는 어쩔 수 없다. 세탁기가 해주는 만큼 널고 개는 건 내 몫이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개는 건 남편 몫. 갠 옷을 옷장에 넣는 건 딸의 몫.

얼마 전 남동생 집에 갔더니 세탁기가 두 대다. 왜 두 개나 있냐고 물어보니 하나는 건조기란다. 우리 엄마가 선물했단다. 헐. 나나 하나 사주지. 어쨌든 속사정을 모르는 올케는 건조기의 장점을 세세히 설명한다. 음. 탐난다. 보면 볼수록 갖고 싶다. 건조기. 너란 녀석. 나도 사야겠다. 그런데 얼추 100만원이다. 비상경제체제인 올해는 일단 패쓰. 내년에 고려해 보는 걸로.

마지막 남은 살림의 정점이 바로 요리다. 요리, 요리, 요리. 가장 많은 노동시간을 요하는 살림의 끝판왕이다. 요리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 아직도 내가 요리에 능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갖은 양념’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뭘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 감이 잡히면 그 때가 요리에 능숙해진 시점이라 생각한다.

내 요리는 한결같다. 큰 것을 잘하고 작은 것을 못한다. 양념의 종류와 비율을 모르니 각종 밑반찬은 하는 법을 모른다. 나물 무침도 어묵 볶음도 해 본 적이 없다. 대신 찌개, 찜, 전골, 구이, 조림 등의 큰 요리들은 잘한다. 그것도 꽤 먹을 만하게 하나보다.

내가 살면서 만난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요리를 잘하는 시어머니를 앞에 두고 남편은 “난 이제 엄마보다 승연이가 해 준 요리들이 더 맛있어. 엄마 요리는 이제 맛이 없다니깐”이라고 말한다. 그 입 다물라고 외칠 틈도 없다. 이미 어머니의 표정은 빈정이 상했다. 대체 철도 없고 눈치도 없는 이 남자를 어째야 하나요? 내 요리를 좋아해주는 남편이 고맙지가 않은 이유는 그렇게 찬사를 퍼부으면서 나를 전용 요리사라도 된 듯 부려먹기 때문이다. 외식을 안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더 자주 했으면 하는 내게 남편은 언제나 “집에서 먹는 게 더 맛있다”며 집밥을 은근히 강요한다.

하다못해 내가 삶아주는 달걀이 맛있다는 이유로 달걀 삶기 등의 작은 일도 내가 해줘야 한다. 단지 냄비에 달걀과 찬물을 넣고 가스레인지만 켜면 되는데 말이다. 라면도 내가 끓여줘야 맛있기 때문에 언제나 내가 끓여서 내놔야 한다.

최근 남편이 100일 간의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남편이 다이어트에 나서면 그 때부터 나는 괴로워진다. 3년 전 남편이 처음으로 다이어트를 시작했을 때 남편은 아내인 내가 식이요법을 도와줘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삼시 세끼를 닭 가슴살과 각종 야채, 연어 스테이크나 쇠고기 스테이크 등을 해서 갖다 바쳤다. 애들 먹일 요리 따로 하고 남편 먹을 요리 따로 하니 나는 하루 종일 부엌에서 빠져나올 틈이 없었다.

이번에도 또 그럴까봐 시작도 하기 전부터 겁이 난다. 결국 나는 남편을 꼬드기기 시작했다. 삼시 세 끼 단백질과 야채를 먹는 식이요법을 해봤지만 결국 요요가 오지 않았냐며 이번엔 1일 1식에 한 번 도전해 보자고 권했다. 살살 달래니 슬슬 넘어온다. 오케이. 1일 1식 낙찰. 이제 앞으로 100일 간은 매일 저녁만 차리면 된다.

아마 이 세상엔 살림에 흥미를 느끼고 잘하는 ‘살림의 여왕’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아마 대다수의 경우 ‘살림의 여왕’들은 좋은 엄마이자 좋은 아내이기도 하겠지. 하지만 가정주부가 꼭 살림을 잘해야만 한다는 법이 있는 건 아니다. 살림에 흥미가 없다고 나쁜 아내이거나 나쁜 엄마란 법도 없고.

살림이 곧 노동이라 인식되는 여자들은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문명의 이기를 이용할 수 있는 부분은 이용하고(식기세척기부터 사시라!) 남편과 자식을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은 활용하면서 살림이라는 고난을 헤쳐 나갈 수밖에 없다. 살림을 해주는 로봇이 일상화되기 전까진 말이다.

<주부, '아주머니'는 아직은 주인공이 아니지만 머지않아 니가 세상의 주인공이 될 얘기를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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