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주자(朱子)는 『예기(禮記)』라는 책에서 『중용(中庸)』과 『대학(大學)』이라는 편을 분리하여 『논어』·『맹자』와 함께 『사서(四書)』라는 이름의 집주(集註)와 장구(章句)로 저술해 냈는데, 그 책이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가장 중요한 교과서로 활용되었습니다. 『중용장구』라는 책의 서문은 주자의 글인데, 학자가 연구하고 공부하는 노력이 어느 정도에 이르러야 새롭고 의미 깊은 학설이 창조되는가를 명쾌하게 보여주는 대목이 나옵니다.

“나는 어린 시절 일찍이 중용 책을 읽었다. 그런데 의심스러운 곳이 있어서 반복하여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지 여러 해가 되자 어느 날 아침 어느 순간 언뜻 해석의 요령을 얻어낸 것 같았다.(熹自蚤歲 卽嘗受讀 而竊疑之 沈潛反復 蓋亦有年 一旦 恍然似有得其要領者)”라고 말하여, 의심을 품고 계속하여 사색에 잠기고 또 잠겨 진리를 찾아내고야 말겠다고 몇 년을 노력한 끝에, 어떤 진리의 실마리를 어느 순간에 찾아낸 것 같은 마음이 왔을 때에야 그런 내용을 종합해서 『중용』을 해석해낼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진리는 그렇게 해서 찾아내고 창조됩니다. 그렇게 하는 일이 학자의 길이고 창조의 길입니다. 다산도 학문하고 연구하는 길을 여러 곳에서 설파했습니다.

“수 년 이래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색에 잠기고 산대를 붙잡고 댓가지를 줄지어 놓고 심혈(心血)을 거듭 기울였더니, 하루아침에 영대(靈臺)에 빛이 남을 문득 깨달았다(數年以來 蚤夜思索 握算列籌 積費心血 一朝忽覺靈臺有光:정약전에게 보낸 편지)”라고 말하여 몇 년 동안 아침에서 밤까지 사색에 잠기고 심혈을 거듭 바친 어느 날 아침 문득 영감이 떠오르며 알아내고 싶은 진리를 터득할 수 있었다는 내용입니다.

▲ 박석무

다산은 또 말합니다.
“수천 년 동안의 흐릿하고 깜깜하여 밝혀질 수 없는 학문을 하루아침에 환하게 몽매함을 밝혀내면 어떤 유쾌함이 그와 같으며 어떤 즐거움이 그와 같겠는가?(數千年湮晦不明之學 一朝 洞若發矇 何快如之 何樂如之:중용자잠 권1.9)”라고 말하여 알아내기 어렵고 해석하기 곤란한 부분을 사색에 침잠하여 끝내 그 부분의 의문점을 해결해낸다면 세상에 어디 그런 유쾌함과 즐거움이 있겠느냐는 다산의 이야기에서 창의적인 학문연구의 즐거움을 우리는 알아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학자는 학문연구에 몸과 마음을 바치는 사람입니다.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있다면 몇 년이고 사색에 침잠하여 반복해서 심혈을 기울이면 끝내는 어느 순간에 영감이 떠올라 명쾌하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학자들이 학문에 전심전력을 기울일 때에야 그 나라의 학술이 발전하고, 학술이 제대로 발전해야 노벨 학술상의 수상자도 나오기 마련입니다. 아직 노벨학술상을 받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우리나라, 진정한 연구와 사색이 너무 부족한 오늘, 언론 보도에는 논문표절이라는 단어만 수없이 회자되고 있으니, 이 나라의 학문은 언제쯤 제대로 갈 길을 찾을 수 있을까요. 창의성 없는 학문, 남의 논문이나 표절하여 연구업적으로 제시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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