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 스웨덴에서 ‘복지’보다 더 중요한 건?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복지’보다 더 중요한 건?
  • 이석원 기자
  • 승인 2017.06.27 13: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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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기획>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살아보기-7회 / 이석원

오늘은 스웨덴의 가장 중요한 날이면서, 스웨덴 사람들이 가장 행복해하는 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너른 들에 푸른 풀밭이 펼쳐진 스톡홀름 나카(Nacka) 지역 뉘켈빌켄(Nyckelvilken) 들판의 평화로움이 오늘은 소란스러움에 자리를 비켜줬다. 들판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부터 이미 경찰들이 나와 차량을 통제한다. 안쪽 주차 공간은 가득 차 있다는 얘기다.

차에서 내려 긴 오솔길을 걷는 가족들의 발걸음이 가볍다. 지금 얼마나 행복하고 신나는지 그들의 얼굴과 발걸음, 그리고 손에 가득 든 물건들에서 그대로 묻어난다. 간간히 전통 의상을 차려입은 어른과 아이들도 눈에 뛴다. 머리에는 곱게 만든 화관이 올려있고, 손에는 피크닉 바구니가 흥겹게 대롱거린다.

 

▲ 미드솜마르 일광욕 - 미드솜마르가 열리는 주변에는 푸른 풀밭에 자리를 깔고 마음껏 태양을 즐기는 사람들로 붐빈다.

 

하지 축제인 미드솜마르(Midsommar)는 고대 스웨덴 농경 사회 풍습과 그리스도교가 어우러진 전통이다. 고대 북유럽 농경 사회에서 낮은 대단히 중요했다. 그래서 낮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을 기념하며 전통적인 축제를 지낸 것인데, 공교롭게도 이날은 예수 탄생 꼭 6개월 전인 세례자 요한의 축일 즈음이기도 하다. 그래서 스웨덴에서는 6월 셋째 주 토요일을 미드솜마르로 지낸다. 지금의 미드솜마르에는 바이킹 시대보다도 더 이전 스웨덴이 농경 사회이던 시절의 전통 신앙과 그리스도교 신앙이 혼합된 모습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전통적으로 북유럽권에서는 하지 때 마법의 기운이 가장 강하다고 여긴다. 스웨덴에서도 그날은 밤새도록 잠자지 않고 신비로운 마술을 경험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스웨덴의 소녀들은 이날 ‘꿈죽’이라는 뜻의 ‘드룀그룃(Drömgröt)을 먹으면 꿈에 미래의 남편이 모습을 보여준다고 믿었다. 또 맑고 성스러운 샘에 얼굴을 비추면 자신의 얼굴이 아닌 미래의 남편의 얼굴이 비친다고도 믿었다고 한다.

이날은 마을의 넓은 들판 한복판에 ‘5월 기둥’이라는 뜻의 ‘마이스통(Majstång)’이라고 불리는 높이 15m 짜리 기둥을 세운다. 이미 지난 밤 마을의 남자들과 여자들은 이 기둥을 자작나무 잔 줄기와 들판을 가득 메운 꽃들로 장식한다. 유럽 일대에서 긴 겨울을 지내고 다시 살아난 초목을 기념해 만든 메이폴(Maypole)에서 유래된 말인데, 6월에 하지 축제를 하는 스웨덴에서도 그냥 마이스통이라고 부른다. 미드솜마르에 세우는 기둥이라고 해서 미드솜마르스통(Midsommarstång)이라고도 부른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이 미드솜마르스통을 중심으로 온 마을 사람들이 한꺼번에 둥근 원을 그리며 춤을 추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게 ‘스모 그로도르나(små grodorna)’라고 불리는 우스꽝스러운 춤이다. 작은 개구리라는 뜻의 이 춤은, 귀와 꼬리가 없는 개구리 모숩을 재밌게 표현한 노래와 함께 춘다. 남자와 여자, 애와 어른, 노인 할 것 없이 수백 명의 사람들이 미드솜마르스통을 가운데 놓고 빙 둘러서 춤을 추는 모습은 재밌으면서도 묘한 일체감을 느끼게 한다. 아직까지도 사회주의적 성격이 강한 편이 스웨덴 사람들이 오래된 전통과 어우러져 무질서한 듯 정돈된 일체감을 보여준다.

1년을 기다려 이날이 되면 스웨덴 사람들은 예외 없이 절인 청어인 해링(Herring)과 여러 방법으로 요리한 연어를 먹고, 밤을 새워 그들의 전통 술인 스납스(Snaps 아콰비트라고도 불리는 감자를 주원료로 한 스웨덴의 대표적인 독주. 도수가 45도에 이른다)를 마신다. 봄이 시작됐음을 기념하는 4월 30일 ‘발보리(Valborg)’와 더불어 술 취하는 것에 예민한 스웨덴 사람들이 마음 놓고 술에 취할 수 있는 날이다.

 

▲ 미드솜마르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춤. 작은 개구리 춤은 우스꽝스러운 동작에도 불구하고 스웨덴의 남녀노소가 가장 사랑하는 춤이다. 단 일년에 단 하루만.

 

세계에서 복지 시스템이 가장 뛰어난, 시민들의 삶이 가장 합리적이고 유익한 국가인 스웨덴이 이토록 하지 축제에 몰두하는 것은 순전히 햇빛 때문이다. 10월부터 다음 해 5월까지 가을과 겨울과 봄 동안 스웨덴에서는 맑은 날씨도 드물다. 또 그 기간에는 낮에도 해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짧다. 10월이 되면 오전 8시가 넘어야 해가 뜬 후 오후 4시면 해가 진다. 겨울이 되면 아예 하루 중 해가 떠 있는 시간이 대여섯 시간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 기간 사람들은 급격히 우울해지고, 관련해서 우울증 환자가 급증하기도 한다. 지금이야 그 자리를 한국 등 다른 나라에게 넘겨주고 순위가 멀찌감치 멀어지긴 했지만 10여년 전만해도 스웨덴이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았던 이유 중 하나도 일조량과 관계가 있다. 그래서 스웨덴에서는 ‘스웨덴의 환상적인 복지 정책도 고치지 못하는 것이 햇빛 부족’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러다보니 6월에 들어 날씨가 맑고, 해가 길어지면서 스웨덴 사람들은 찬란한 태양에 흥분하지 않을 수 없다.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고 있음에도 햇빛이 비치는 풀밭과 바위 위에는 일광욕을 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벌써부터 백야의 조짐이 시작돼 새벽 3시 조금 넘으면 해가 뜨고 밤 11시가 가까워야 해가 지니 이들이 그 풍부한 태양을 보면 흥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스웨덴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정치인으로 꼽히는 올로프 팔메 전 총리는 과거 총리 재임 때 한 외국 정상과 피카를 하며 “스웨덴 사람들은 스웨덴의 복지 시스템 보다 6월 말 하지 축제를 더 사랑한다”고 말해 상대방을 어리둥절하게 했다는 일화도 있다.

스웨덴에서 평생 열심히 일하고 은퇴한 후 연금을 받으며 사는 사람들은 스페인 말라가나 이탈리아 소렌토 등에 작은 별장을 가지려고 한다. 일 년 내내 작렬하는 지중해의 태양을 가지고 싶어서다. 실제로 말라가에 가면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외국인이 스웨덴 사람들이고, 스페인어를 모르고 스웨덴어만 해도 사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지중해의 태양을 가져오지 못하니 지중해의 태양 아래 산다는 것이다.

스웨덴의 복지 시스템도 어쩌지 못하는 스웨덴 사람들의 햇빛 사랑.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 또한 스웨덴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복지 시스템이 없다면 이토록 여유로운 6월의 하지 축제를 즐길 수 없을 것이다.

<이석원 님은 한국에서 언론인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스웨덴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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