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코 나는 이곳에서 살아봤구나
기어코 나는 이곳에서 살아봤구나
  • 강진수 기자
  • 승인 2017.06.27 16:5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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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태국에서 살아보기, 사랑하기-19회

마지막 인사

학교에 들어서자마자 아이들이 서로 수군거린다. 딱 보아도 아이들끼리 무엇을 꾸미는 모습이 선하다. 이번이 마지막 출근, 아이들도 모두 그것을 알고 있고 무엇을 꾸밀 지조차 대충 눈치가 간다. 그럼에도 일부러 모른 척, 일찍이 교무실에 들어가 업무에 바쁜 척을 했다. 교무실에 앉아 있는데 아이들이 몇 명씩 들러서 이따가 몇 시에 저희 교실에 와주세요, 부탁을 한다. 천연덕스럽게 무슨 일이냐고 묻자 아이들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나중에 알려주겠다고 한다. 나도 애써 웃음을 참아가며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학교를 정말 떠나야 할 때가 왔다. 익숙했던 교무실의 강아지와 떠돌이 개들, 교무실 앞 화단과 무성한 나무들, 이름 모를 꽃들과 교무실 옆 우거진 숲, 매점 앞에 붐비던 아이들까지도 이제 모두 놓아두고 떠나야 할 때가 왔다. 1번 교사를 나와 수업이 있는 2번 교사로 가는 사이에 만나는 아이들마다 오늘이 마지막이냐고 묻는다. 가지 말라고, 선생님 가지 말라고 옷을 붙들고 늘어진다. 오늘만큼은 아이들이 짓궂게 굴어도 마냥 좋은 선생님의 얼굴이다. 오늘까지 만이다. 이렇게 너희들과 장난치고 웃을 수 있는 것도 오늘까지 만이다.

학교 선생들에게 모두 인사를 건네고 아침 조회에 참석했다. 아이들이 모인 자리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한다. 동료 선생들과 함께 아이들 앞에 서서 여전히 서툰 이곳 말로 더듬더듬 인사를 건넨다. 짜 킷틍. 너희들이 그리울 것이다. 아이들의 웃음이 그립고 아이들과 함께 하던 교정이 그리울 것이다. 가끔 땀 흘려 같이 농구도 하고 아이스크림도 사먹던 기억들에 그리워할 것이고, 조그마한 것이라도 선생님이 사준다고 하면 좋아하다가도 선생님, 괜찮다고 저희는 괜찮다고 하던 아이들의 겸손함이 그리울 것이다.

 

 

무엇보다도 크루, 선생님이라고 불러주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그리울 것이다. 아이들 중 일부 눈시울이 붉어지고 덩달아 나도 눈시울이 뜨겁다. 한바탕 고맙다고 아이들과 눈물 어린 인사를 나누고, 동료 선생들과도 아쉬운 인사를 주고받고, 그제야 언제나 고요하던 조회가 오늘따라 소란스레 마무리가 됐다. 울고 있는 몇 명의 학생들은 꼭 껴안아 주었다. 괜찮다고, 울지 말라고. 평소에는 규율 상 선생이 학생을 안아주는 것도 조심스러운 문화라지만, 오늘 같은 날 좀 안는다고 그게 무슨 대수일까. 아이들도 얼른 와서 폭 안긴다.

여느 때처럼 수업을 들어가려 했는데, 아이들이 선생님 마지막 날이라고 이것저것 준비한 것이 많나보다. 교실 들어가기 전부터 온통 그간 배워온 한국어로 적혀있는, 선생님,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이쪽으로 들어오라는 표지대로 교실을 들어가 문을 열어보니 아이들이 일렬로 줄지어 서 있다. 그간 내게 배운 노래를 서툴게 부르기 시작한다. 아이들의 한국어 역시 여전히 서툴지만 이만큼 아름다운 목소리 또한 없다. 칠판 가득 아이들이 써놓은 메시지로 가득하고, 내 얼굴을 여기저기 많이도 그려 놓았다. 형형색색 갖가지 하트들이 곳곳에 붙어있다. 무슨 선물을 한들 이것보다 더 좋을 수가 있을까.

애초에 수업을 할 생각도 없었다. 아이들의 노래가 끝나자 고맙다고 박수를 쳐주고 자리에 앉혔다. 나도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둥글게 둘러앉은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선생님이 많이 사랑한다고. 그리고 이름을 한 명씩 부른다. 내가 쓴 편지와 직접 인화한, 나와 아이들이 함께 찍은 사진을 건넨다. 한 명씩 한 명씩 너는 무엇을 잘 했고 앞으로 잘 할 것이고, 선생님은 너를 앞으로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해준다. 내가 너희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어디 있을까. 사랑한다고, 늘 기억하겠다고 아이들을 마지막으로 한 번씩 안아준다.

 

 

흐르던 눈물을 닦고 교무실로 돌아와 마음을 다잡고 있으면 아이들이 또 우르르 몰려와 손을 붙잡고 교실로 끌고 간다. 한참 자기들끼리 준비가 되었냐는 둥 소란스럽다가 순간 고요해진다. 아이들이 그간의 나와 동료 선생들 사진으로 영상을 만든 것이다. 노트북까지 어디서 들고 와서 편집된 영상들을 보여주는데 그 동안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선물이라고 건넨 하트 모양의 통에는 온갖 색종이들로 오려놓은 하트들이 가득 들어있다. 선생님, 사랑해요, 라고 수도 없이 말해주는 이 아이들을 앞에 두고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랑 고백으로 답해야 할까.

이 아이들을 모두 두고 이제 가야만 한다. 씁쓸한 일이면서도 예정된 것이었다. 그리워할 것이면서도 그리워해야 할 것이었다. 오히려 내가 선생이 되어서 해줄 수 있는 것은 미련 없이 떠나는 것이었다. 안아주고, 마음으로 다시 안아주면서, 한때 선생이었던 사람의 체온이 이러했다는 것을 일러주면서. 이젠 또 먼 길을 가야만 하는 것에 당연하게, 익숙하게 임하는 것이었다.

 

 

다시 안녕, 피짓

늘 이상하다고 느끼던 것 중 하나가 만남과 헤어짐의 인사가 안녕, 으로 같다는 것이었다. 이제 다시 안녕, 이라고 말할 때가 왔다. 아침부터 집에서 짐을 정리하고 내려오느라 정신이 없었다. 곧 나를 데리러 올 차가 이곳 마을로 올 것이다. 다른 지역에서 있었던 반가운 동료 선생들까지도 가득 실어서 올 것이다. 이상하게 그토록 반갑고 즐거워야할 시간임에도 그렇지 않다. 마음 한 편이 공허하고 괴롭다.

이른 아침부터 짐을 정리하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학교 선생들이 집으로 와주었다. 가장 많은 도움을 주었던 앤 교감 선생님, 콴 선생, 중국어를 가르치는 션루 선생 등, 다시 안녕, 우리는 몇 번이고 인사를 건넨다. 그러는 사이에 차가 파도처럼 밀려들어왔고, 차곡차곡 쌓아놓았던 짐들을 하나씩 차 안으로 옮겼다. 그간 살림살이도 이렇게 많아졌었구나, 정리하면서야 느꼈다. 살면서는 하나도 느끼지 못한 것들이 떠날 때가 되어서야 절실해지는 구석이 있다. 그렇게도 사는 것에 익숙해진 것이다. 나는 이 땅에서 살아오면서 그토록 목표로 하던 것들을 이뤘을까, 나 자신에 대한 두려움과 부담도 더불어서 차에 실린다.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 여전히 현실처럼 느껴져 오지 않는다.

 

 

이제 몸도 차에 실을 때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정말 안녕. 일일이 선생들을 껴안으며 다시 인사를 나누고 내가 살던 집과 동네, 집 앞 시장과 이웃, 이웃집 꼬마 아가씨, 모두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그 동안 덕분에 잘 살았습니다, 두 손을 모아 아주 경건하게 인사해야만 한다. 이 순간만큼은 절대로 경건해야만 한다.

버스에 올라 차창 너머로 흩날리는 이곳, 피짓의 풍경을 보며 알았다. 기어코 나는 이곳에서 살아봤구나. 그렇다면 그간 살아서 사랑했을까. 살아본 만큼, 나는 진정 사랑해왔을까.

사랑하는 모든 풍경들이 여전히 차창에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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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서` 2017-07-09 21:08:01
태국에서 사랑을 많이 주고, 많이 받는 시간이었기를 바랍니다.
기자님의 귀국을 축하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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